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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균열에 산다-21화 (21/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21화

8. 가족의 방패

오늘도 정 씨 가족을 따라 D등급 균열에 들어왔다.

평소처럼 전투를 마치고 균열 안쪽에서 돌아오는 그들을 맞이했다.

나는 대훈 아저씨의 장비 점검을 도와주고, 남매는 알아서 텐트 냉장고에서 마실 것을 꺼내 아저씨에게 나눠주며 자신들도 마시기 시작했다.

굉장히 익숙해진 이 광경이 조금 달라지기 시작한 건, 대훈 아저씨가 내게 특별한 제안을 하면서부터였다.

“네? 파티에 들어올 생각 없냐고요?”

“그래. 세진이 너랑 우리랑 벌써 1달 넘게 같이 다녔는데. 계속 외부인 동행으로 균열에 들어가는 것도 그렇고.”

“그렇긴 한데…….”

“무엇보다 매번 균열 들어가고 나올 때도 센터 직원에게 따로 확인받는 것도 귀찮잖아.”

“으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살짝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내심 기분 좋기도 했다. 어찌 됐든 파티 제안은 내 능력과는 별개로 나를 믿어준다는 의미니까.

“파티에 소속만 돼 있으면 네 각성자 기록에 균열 제거 기록도 남을 것이고. 물론 전투 능력이 없는 너에게 큰 도움은 되지 않겠지만, 나중에 어떻게 될 줄 모르니 미리 쌓아놔서 나쁠 건 없지 않겠어?”

보통 전투 능력을 가진 각성자들은 균열을 제거할 때마다 기록이 남는다.

특별히 국가에서 각성자들의 전투 능력을 등급으로 나누지 않기 때문에 이 균열 제거 기록이 곧 전투 능력의 평가 지표임과 동시에 가치를 나타낸다.

나는 비전투 각성자이기 때문에 균열 제거 기록이 크게 의미는 없지만, 아저씨의 말대로 쌓아놔서 나쁠 건 전혀 없다.

“뭐. 세진이 네가 우리 파티에 들어오기 싫다면 강요할 생각은 없다만.”

“아뇨. 싫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단지 너무 폐 끼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어차피 수당을 나눠 받는 것도 아니고 그냥 소속만 변하는 것뿐이야. 너무 무겁게 생각 안 해도 돼.”

슬쩍 뒤쪽에서 퓨이와 놀고 있는 남매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애들한테도 말 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애들? 벌써 물어봤어. 너만 괜찮다면 상관없데.”

“그래요?”

나는 조금 놀랐다.

‘선우는 그렇다 치고 아윤이는 반대할 줄 알았는데.’

당분간은 이 사람들과 같이 균열에 들어와야 할 것 같고, 또 기록만 쌓아도 나쁠 것 같지 않았다.

“그럼 그렇게 할까요?”

“하하. 잘 생각했어. 말 나온 김에 오늘 바로 처리하러 가자.”

“오늘 바로요?”

“신분증만 있으면 상관없어. 요즘은 인터넷으로도 신청 가능한데, 직접 가서 처리하는 게 더 빠르거든.”

아저씨는 싱글벙글 웃으며 남매에게 소리쳤다.

“얘들아. 세진이도 파티에 들어오기로 했다.”

* * *

나와 정 씨 가족은 곧바로 균열 관리 센터로 향했다.

균열이 언제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센터의 운영 시간은 24시간이지만, 파티 가입과 같은 업무는 여느 관공서와 다르지 않게 오후 5시까지다.

우리는 오후 4시가 약간 넘어서 균열 관리 센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파티를 대표하는 인원 한 명과 새로 파티를 들어오려는 사람 한 명. 두 명만 직접 방문하면 곧바로 파티 가입이 완료된다고 한다.

정 씨 가족과 비슷하게 오랫동안 파티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지만, 용병처럼 파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각성자도 많아서 파티 가입 절차는 그렇게 까다롭지 않다고 한다.

우리는 78 번호표를 뽑고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의자에 앉아 기다리기 시작했다.

업무시간 마지막 타임이라 그런지 대기 인원이 좀 많았다.

나는 처음 와본 균열 관리 센터가 신기해 이곳저곳 둘러보았지만, 정 씨 가족들은 이곳이 익숙한지 지루해 보였다.

-띵동!

-78

마침내 우리 차례가 되었고, 나와 아저씨가 직원이 있는 창구로 향했다.

“대훈아!”

“오랜만이다, 영식아. 일은 할 만하냐?”

“공무원 일이 다 그렇지 뭐. 오늘은 무슨 일이야?”

아저씨는 창구 직원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비슷한 연배에 친근한 대화로 보아서 친구 관계인 것 같았다.

“여기 이 친구 좀 새롭게 파티에 등록하려고.”

“오! 이제 1단계 벗어날 생각이야?”

“아냐. 이 친구는 비전투 계열이라서 등록만 해두고, 균열은 예전처럼 다닐 거야.”

“아…… 그래?”

직원은 나를 파티에 등록한다는 말에 크게 기뻐했다가 비전투 계열이라는 말을 듣고 얼굴을 흐렸다. 나는 상황을 잘 모르지만 여기서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리고 이상함을 느낀 건 나뿐만은 아니었다.

“영식아. 뭔 일 있냐?”

직원의 표정에서 이상함을 바로 느낀 아저씨가 얼굴을 굳히며 물었다.

“그게…… 이 친구 등록은 다음에 하면 안 되겠냐? 지금 좀 상황이 좀 그렇다.”

“뭔데? 무슨 일이야?”

“나중에 설명할게. 그러니까 다음에 다시 와라. 일단 내 말 들어.”

막무가내로 돌려보내려 하는 직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돌아 나오는데.

또 다른 중년 남성이 우리 쪽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오랜만이다.”

“그래. 오랜만이다, 창호야.”

창구 직원과 마찬가지로 아저씨와 아는 사이인 것 같았지만, 주변에 흐르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미정 씨는 잘 지내냐?”

“어. 잘 지내.”

“그래?”

잠시 침묵이 흐르고.

창호라고 불린 남자가 다시 말을 꺼냈다.

“혹시 오늘 있었던 일 소식 들었냐?”

“무슨 소식?”

“아직 균열 제거 경험이 1년이 안 된 어린 친구가 D등급 2단계 균열에서 조금 다쳤어.”

“…….”

“그 친구가 이제 17살. 집안 사정이 어려워 일찍 균열 제거에 뛰어들었다더군.”

“…….”

“아마 네 막내아들이 올해 18살이었지?”

남자의 마지막 질문에 아저씨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창구에 앉아 있던 직원이 뛰어나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창호야. 그건 사고였어. 대훈이랑 그게 무슨 상관이라고.”

“상관있는지 없는지는 본인이 더 잘 알겠지. 안 그래?”

“…….”

점점 이상해지는 분위기에 앉아서 기다리던 정아윤이 가까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창호 아저씨. 영식 아저씨.”

“…….”

“오. 그래 아윤이구나. 대훈아, 애들 기다린다. 빨리 데리고 가라.”

어서 떠나라 재촉하는 말에도 대훈 아저씨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정대훈. 우리도 이 바닥에서 굴러먹은 지 20년이 넘었다. 선배면 선배답게 행동해라.”

“아니, 창호 아저씨. 지금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아윤아. 넌 가만히 있어.”

“아빠.”

“넌 가만히 있으래도.”

“…….”

아슬아슬하던 분위기는 창호라는 남자의 다음 말에 의해서 선을 넘어버렸다.

“너는 미정 씨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거냐? 아픈 미정 씨를 이용해서라도?”

-뿌득.

대훈 아저씨는 처음으로 그의 말에 반응해 이를 꽉 깨물며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정아윤과 센터 직원 영식이 창호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창호 아저씨.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우리 아빠가 엄마를 팔아서 일한다는 거예요?”

“한창호! 친구끼리 왜 그러냐? 대훈이네 사정 잘 알면서.”

높아진 목소리 덕분에 센터 내의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이곳으로 향했다.

소란으로 번질 것 같았는지 다른 센터 직원들도 눈치를 보며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똑바로 해라.”

한창호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돌아서 센터를 빠져나갔다. 잠시 주변에 수군대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곧 평범한 센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대훈 아저씨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다, 영식아.”

“네가 뭐가 미안해. 신경 쓰지 말고 애들이나 챙겨. 나 다시 일하러 간다.”

그는 다시 직원 창구로 향했다.

“세진아 미안하다. 파티 등록은 다음에 해야겠다.”

아저씨는 힘없는 목소리로 내게 사과했다.

나와 대훈 아저씨, 아윤은 의자에 앉아 있던 선우를 챙기고 센터를 빠져나왔다.

대훈 아저씨가 미안해하며 차를 태워주겠다고 말했지만, 나는 당연히 거절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굳어 있는 표정의 아저씨와 꿍한 표정의 정아윤, 상황을 몰라 당황스러운 정선우까지.

도저히 내가 차 안에 같이 탈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렇게 정 씨 가족이 떠나가고 나는 홀로 집으로 향했다.

원래 새롭게 파티 등록이 끝나면 환영의 의미로 같이 밥을 먹을 예정이었는데 생각보다 집에 일찍 가게 되었다.

버스를 타고 균열 입구 앞에 도착했을 때쯤.

♩∼♬∼♪

대훈 아저씨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세진아. 오늘 술 한잔 같이하자.

갑작스러운 아저씨의 연락.

하지만 아까 굳어 있는 아저씨의 표정이 떠올라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

* * *

저녁 7시.

아저씨가 보내준 장소를 찾아 헤매다가, 편의점 앞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는 아저씨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저씨는 이미 혼자 소주 한 병을 비우고 두 병째를 마시는 중이었다.

“아저씨.”

“오오. 세진이 왔어? 앉아. 앉아. 먼저 조금 마시고 있었다.”

테이블에는 마른오징어와 새우 맛 나는 과자. 종이컵 2개.

아저씨는 종이컵에 소주를 따라주며 말했다.

“세진아 미안하다. 갑자기 불러내서.”

“괜찮아요.”

“너밖에 불러낼 사람이 없더라.”

“…….”

불러낼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는 말이 너무 씁쓸하게 들려서, 종이컵의 소주를 고개 돌려 들이켰다.

“편하게 마셔도 돼. 그냥 편하게 마셔.”

“네.”

나는 소주병을 들어 비어 있는 그의 종이컵에 따라주었다.

“오늘 일은 미안하다. 아저씨가 못난 모습 보여줬어.”

“저는 정말 괜찮아요.”

“내가 우리 와이프 이야기했었던가?”

“아뇨.”

“우리 와이프는 말이야. 엄청 이뻐. 우리 애들 봤지? 애들이 나 안 닮고 우리 와이프 닮아서 그렇게 예쁘고 잘생긴 거야.”

아저씨는 전형적인 팔불출의 모습으로 아내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거기다 예전에는 엄청나게 잘나가는 각성자였어. 3대 길드라고 들어본 적 있어? 거기에서 영입 제의 들어오고 막 그랬어. 진짜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대단하네요.”

“대단하지? 정말 어떻게 내가 그렇게 완벽한 여자랑 결혼했는지. 아직도 옆에 자고 있는 와이프 보면 꿈꾸는 것 같다니까. 허허허.”

아저씨는 실없이 웃으며 종이컵의 소주를 들이켰다.

“근데 말이야. 우리 와이프가 지금 많이 아파.”

“무슨 일이라도?”

“빌어먹을 병에 걸렸어. 티머시 증후군이라고 들어본 적 있어?”

“아…….”

티머시 증후군(Timothy Syndrome)

들어본 적 있었다.

영국의 유명한 각성자였던 사람이 앓다 죽었던 병으로, 그의 이름을 따 티머시 증후군이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도 꽤 유명한 각성자가 이 병에 걸려 한때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각성자들의 병 또는 균열병으로 불리는 불치병이다.

오직 각성자들만 걸리는 병으로.

증상은 제각각이지만, 대체로 각성 능력을 사용하면 증상이 악화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 병에 걸린 각성자가 능력을 사용했을 때, 가벼운 통증부터 심하면 발작, 심장마비와 호흡곤란까지 일으키는 무서운 병이다.

문제는 전혀 능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환자는 점점 생기를 잃고 죽어간다는 점이다.

아직 정확한 발병원인과 치료법이 나오지 않아, 각성자들에게는 악몽과 같은 병.

인터넷에서는 종종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 실제로 직접 가까운 사람에게서 이야기를 듣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말 잔인한 병이야. 그렇게 뛰어난 각성자였던 아내가 순식간에 불치병 환자가 돼버렸으니.”

그는 얼마 안 남은 소주병을 탈탈 털어 종이컵에 부어 그대로 입으로 털어 넣었다.

“어이. 술이 떨어졌네.”

아저씨는 편의점에 들어가 다시 소주 두 병을 사 왔다.

그리고 자기 종이컵에 넘칠 정도로 소주를 따르기 시작했다.

“아저씨. 천천히 드세요.”

“아냐. 괜찮아.”

괜찮다는 말과 함께 종이컵 가득한 소주를 다시 들이켰다.

“크으.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아아. 그 빌어먹을 병 이야기하고 있었지.”

“…….”

“그 빌어먹을 병의 진행을 막으려면 희귀한 약초가 필요한데 약초가 얼만 줄 알아? 비쌀 때는 한 뿌리에 200만 원이야. 200만 원. 나랑 애들이 균열 열심히 돌아다녀도 한 달에 겨우 두 뿌리 사는 거야.”

아저씨는 침통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만약 내가 좀만 더 능력이 있었더라면 아윤이랑 선우, 균열에 데리고 가는 일은 없었을 거야. 둘 다 각성했어도 평범한 일을 하게 하고 싶었거든. 아윤이는 디자이너 쪽 일을 하고 싶어 했었고, 선우는 공부를 잘해서 뭐든 할 수 있었을 텐데. 내가 망쳐버렸어. 나 혼자 감당하지 못하고 그 아이들을 균열로 오게 한 거야.”

그는 자조적인 말과 함께 다시 소주를 종이컵 가득 따르기 시작했다.

나는 양손으로 겨우 그의 손을 붙잡아 소주병을 멈췄다.

“아저씨. 저도 마셔야죠. 혼자 그렇게 드시면 어떡해요?”

“아아. 미안하다 세진아.”

아저씨는 이번에는 내 종이컵에 소주를 가득 따라주었다.

“오늘 고1 각성자가 다쳤다는 이야기 너도 들었지?”

“네. 아까 관리 센터에서 들었죠.”

“그거. 어쩌면 나 때문일지도 몰라.”

“예?”

이어진 아저씨의 설명은 이러했다.

원래 D등급 균열 파티가 처음 생기고 1년 동안은 1단계를 맡을 수 있지만, 1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2단계와 3단계를 지정받게 된다고 한다.

센터에 소속된 파티들 사이의 일종에 불문율.

하지만 아저씨 파티의 경우 남매도 어렸고, 불치병의 걸린 가족이 있다는 딱한 사정 때문에 파티 경력이 1년을 넘었음에도 계속 1단계 균열을 배정받을 수 있게 배려해 준 것이다.

하지만 비싼 약초값을 감당하기 위해 적은 수당의 1단계를 더 많이 돌아야 했고, 자연스레 다른 파티에게는 1단계 균열이 배정되지 않게 되었다.

문제는 새로운 신입 각성자가 들어왔을 때다.

당연히 경험이 없는 신입은 1단계 균열을 돌아야 하는데, 아저씨 파티가 1단계 균열을 독점하다시피 하니 신입이 어쩔 수 없이 2단계 이상 균열을 경험 없이 돌게 된다는 것.

“꼭 1단계 균열만 돌아야 하나요? 돈 때문이라면 2단계 균열을 도는 게…….”

“푸흐흐. 나도 그러고 싶지. 근데 못해. 무서워서.”

“균열에 들어가는 게 무섭다고요?”

“균열 따위는 하나도 안 무서워. 근데 혹시 이런 이야기 들어본 적 있어?”

“……?”

“균열병인가 뭔가 하는 병. 유전될 수 있다는 거. 거기다 높은 등급의 균열에 들어갈수록 발병할 확률이 높아진 데.”

“…….”

“난 너무 무섭다. 내 자식들도 와이프처럼 그런 몹쓸 병에 걸려버릴까 봐. 그래서 1단계에서 버티는 거야.”

아저씨는 남아 있는 소주병째로 입안에 털어 넣고 말했다.

“세진아. 나는 말이야. 방패만 있으면 균열에서 얼마나 무서운 괴물이 나와도 물러서지 않을 자신이 있어. 지금까지 그래왔고.”

“…….”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나보고 쓸모없는 놈이라 욕해도 견딜 수 있어. 아까 그 재수 없는 창호 놈이 뭐라 그래도 다 넘겨 들을 수 있어. 근데 있잖아.”

그는 울부짖었다.

“내 새끼들이 다치거나, 병에 걸리는 건 죽어도 못 참을 것 같다. 내가 모자라서 욕먹는 건 참을 수 있지만. 내가 모자라서. 내가 부족해서 내 자식들이 다치거나 병든다면…… 나는 정말…… 정말 견딜 자신이 없다.”

“아저씨…….”

속에 있는 서러움을 전부 토해낸 아저씨의 처절한 모습에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흐윽……. 흑…… 흑…….”

그리고 아저씨는 결국 참았던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가족을 위해 방패를 들었던 거친 손위로 아버지의 눈물이 떨어졌다.

평소에 나를 볼 때도, 남매들을 볼 때도 항상 시원한 웃음을 짓던 아저씨.

그의 슬픈 모습에 내 가슴이 울렁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아저씨가 감정을 다 털어낼 때까지 옆자리를 지키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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