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20화
신지아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아르키트 회로 스킬을 얻었던 일, 스킬의 힘으로 문양을 찾아낸 일, 그리고 목격했던 문양의 엄청난 위력까지.
믿기 힘든 이야기였지만 신지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한 태도로 경청해 주었다.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그러니까. 세진 씨가 아르키트 회로라는 새로운 스킬을 얻었고, 그 힘을 제어할 아티팩트를 만들고 싶다는 말이죠?”
“네. 근데 아직 제 능력으로는 혼자서 그런 아티팩트는 만들기 힘들 것 같아서 이야기를 꺼내게 됐습니다.”
“흐음.”
신지아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내게 말했다.
“그럼. 그 문양이라는 것 좀 보여주세요.”
“잠시만요.”
나는 주변의 종이에 Cala(빛) 문양을 그려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그녀는 종이 속 문양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얼굴을 찡그렸다.
“이게 문양이라는 건가요?”
“네. 빛이라는 의미의 문양이에요.”
“정말 회로처럼 생기긴 했는데. 저는 이게 어떤 원리로 작동되는 것인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어요.”
“…….”
“세진 씨의 말을 의심하는 건 아닌데, 저는 아직도 이 문양이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 힘을 지녔다고 믿기 힘드네요.”
그녀의 말에 나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
신지아는 나보다 훨씬 더 많은 회로 이론 지식과 경험이 있다.
당연히 이 문양이 지닌 힘과 잠재력을 이해할 거로 생각했지만, 내 예상과 달리 그녀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 직접 보여드릴게요.”
나는 기판을 하나 꺼내 직접 회로를 짜기 시작했다. 기판에 빛의 문양을 새기고 시험용 작은 마석을 연결했다.
그리고 회로를 가동했다.
-파아아앗!
마석은 곧바로 회로와 반응하여 엄청난 빛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시험용 작은 마석의 마력이 전부 소모될 때까지 강렬한 빛은 계속됐다.
마석의 마력이 전부 소모되고 빛이 사그라들었을 때, 신지아의 얼굴은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정말이군요. 세진 씨가 말한 문양이라는 게.”
그녀는 내가 기판에 새긴 빛의 문양을 이리저리 뜯어보기 시작했다. 이번엔 그녀가 직접 마석을 연결해 회로를 가동해 보았다.
“…….”
“…….”
아무런 반응이 없는 마석.
“어. 왜 이러지?”
내가 당황하며 회로에 손을 댔다. 그제야 마석은 회로와 반응하여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괴현상에 당황했다.
분명 똑같은 회로에 똑같은 마석을 연결했는데, 나의 손길에만 회로가 반응을 보였다.
그 뒤로 몇 번이고 신지아가 회로를 가동하려 시도해 보았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아무래도 이 문양이라는 것은 오직 세진 씨만 사용할 수 있나 봐요.”
“저도 처음 알았어요.”
“아쉬워요. 만약 문양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었다면, 아티팩트 제작의 새로운 세상이 열렸을 텐데 말이죠.”
신지아는 정말 아쉬운 듯 문양을 바라보았다.
“혹시 다른 문양도 볼 수 있을까요?”
“네. 보여드릴게요.”
나는 차례로 바위, 물의 문양까지 회로를 만들어 보여주었다. 물론 빛의 문양과 마찬가지로 신지아는 사용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번개의 문양이 남았는데, 이건 안에서 보여드리기 좀 위험할 것 같은데요.”
“그럼 뒤쪽 공터로 가죠.”
나와 신지아는 번개의 문양이 그려진 회로를 가지고 공방 뒤쪽의 공터로 향했다.
공터 정중앙에 회로를 놓고 마석을 연결했다.
번개의 문양은 마석이 연결되자마자 격렬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파지지지직!
시험용 마석에 위력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스파크를 일으켰다.
어제 균열에서 일어난 폭발에 비교하면 작은 수준이었지만, 번개 문양의 위력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확실히 엄청난 위력이네요. 시험용 마석의 마력으로 이 정도 위력이라니.”
“저도 어제 큰일 날 뻔했었죠.”
“문제는 이 위력을 어떻게 조절하고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느냐인데.”
그녀에게도 쉽지 않은 문제인지 난감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였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을 부탁해 왔네요. 세진 씨?”
“죄송합니다.”
내가 미안한 감정을 내비치자, 그녀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이번 일의 수고는 나중에 몇 배로 받아낼 거예요.”
“물론이죠.”
“뭐. 성공을 자신할 수는 없지만. 잘 모르면 직접 부딪쳐봐야 하지 않겠어요? 세진 씨도 각오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각오하고 있을게요.”
“좋아요. 그럼 바로 시작할까요?”
신지아는 활기찬 목소리로 말하며 공방으로 걸음을 옮겼고, 나도 그런 그녀를 뒤따랐다.
* * *
나와 신지아가 문양을 이용한 아티팩트 연구를 시작한 지 벌써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콰지직. 펑!
공터 한가운데에서 엄청난 소리를 내며 터져버리는 아티팩트.
“으앙!”
신지아는 그 광경을 보고 얼굴을 가리며 주저앉아 버렸다. 나 역시 씁쓸한 표정이었다.
오늘 하루종일 제작했던 아티팩트가 순식간에 터져나가는 모습은 언제봐도 마음이 아팠다.
일주일 동안 나와 신지아는 공방 일이 없을 때, 계속해서 문양을 이용한 아티팩트를 연구했다.
그 결과. 날려 먹은 회로기판과, 마석만 수십 개째. 아직 아티팩트를 완성하지 못했다.
아예 성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어느 정도 방향은 잡을 수 있었는데.
문양만으로 회로를 짜는 게 아니라, 기존의 마법 회로에 문양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회로를 만드는 게 더 안정성도 좋고, 회로도 만들기 쉽다는 걸 발견했다.
예를 들어 에너지 볼트를 발동하는 마법 회로에 번개의 문양을 추가하는 방식처럼.
문제는 문양의 힘이 담긴 회로는 일반 마법 회로보다 몇 배나 더 높은 안정성과 절제된 마력 수급을 필요로 했다.
신지아가 이것을 보고 ‘사실상 회로가 아니라 폭탄에 가깝다.’ 표현했을 정도로 그 정도가 심했다.
그렇다고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마석의 출력을 너무 낮추면 마법회로를 작동시킬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
신지아의 질문에는 참담한 감정이 가득했다. 일주일 동안 그녀는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
하지만 결과를 얻지 못하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지아 씨. 일단 식사부터 할까요? 오늘 점심도 걸렀잖아요.”
“하아, 그러죠.”
그녀는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켰다. 나는 터져버린 잔해물들을 챙기고 그녀와 함께 공방으로 돌아갔다.
저녁은 간단히 컵라면을 끓여 먹기로 했다.
커피포트에 물이 끓고 각자의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전자레인지에 조금 돌려드릴까요?”
“…….”
신지아는 아티팩트에 대한 생각에 빠진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컵라면을 먼저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리기 시작했다.
“어? 제 컵라면은요?”
뒤늦게 정신을 차린 신지아가 컵라면을 찾았다.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있어요. 혹시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거 안 좋아하세요?”
“아뇨. 괜찮아요.”
먼저 전자레인지에 돌린 그녀의 컵라면을 꺼내고, 다시 내 컵라면을 넣었다.
그녀의 컵라면은 벌써 먹기 좋게 익었지만, 그녀는 입맛이 없는지 젓가락으로 깨작거리기만 했다.
너무 쳐져 있는 분위기가 어색해 아무 말이나 그녀에게 하기 시작했다.
“전자레인지는 무슨 원리일까요? 볼 때마다 신기한 것 같아요.”
“마이크로파를 이용해 음식물을 가열하는 원리에요.”
“…….”
“액체 상태의 물 분자들은 방향이 제멋대로인데, 강한 전기장 속에 있으면 물 분자가 방향을 바꾸기 위해 회전하고 서로 충돌해 열에너지가 발생하죠.”
분위기를 환기시키려 가볍게 꺼낸 이야기였는데.
그녀는 무언가에 홀린 듯 전자레인지에 관한 과학적 지식을 줄줄 내뱉기 시작했다.
“전자레인지 안에 물체가 빙글빙글 돌면서…….”
“……?”
한참을 전자레인지에 대해 설명하던 그녀는 갑자기 자리에 벌떡 일어나 전기에 감전된 듯 몸을 부르르 떨면서 눈을 크게 떴다.
“지아 씨. 괜찮아요?”
그녀는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먹던 컵라면을 내팽개치고 다시 아티팩트 작업실로 향했다.
나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뒤늦게 그녀를 따라 작업실로 향했다.
“지아 씨. 갑자기 왜 그래요?”
“세진 씨. 여기에 다시 번개의 문양 그려주세요.”
그녀는 나에게 회로 작업을 지시하고, 본인도 새로운 회로 작업을 시작했다.
도저히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그녀의 지시대로 회로 작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2시간 넘게 회로 작업에 집중해서 또 하나의 아티팩트 시험체를 만들 수 있었다.
우리는 아티팩트 시험체를 가지고 다시 공터로 향했다. 이미 해가 저물어 공터에는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휴대용 손전등을 가지고 공터 한가운데에 아티팩트를 설치했다.
신지아는 기대감과 불안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럼 시작할게요.”
“…….”
그녀는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티팩트를 발동시킴과 동시에 그곳에서 떨어져 신지아의 곁에 섰다.
평소보다 발동되기까지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린 뒤, 아티팩트에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나와 신지아는 숨죽이며 그 장면을 지켜봤다.
-파지지직!
작지만 강한 스파크를 튀기며 생성되는 에너지 볼트.
생성된 전기 구체는 곧바로 발사되어 공터 구석의 흙벽을 강타하며 폭발했다.
-펑!
공터의 어둠을 전부 밝힐 정도로 큰 전기 폭발이 일어났다. 보통의 에너지 볼트와는 비교하기 힘든 강력한 위력.
공터에는 어둠과 적막이 다시 찾아왔다.
“…….”
“…….”
나와 신지아는 혹시 모를 돌발 상황에 주의하기 위해 계속 숨죽이고 아티팩트를 주시했다.
“세진 씨……이거 성공한 거죠?”
“그런 것 같은데요.”
“…….”
“…….”
“꺄아아아악!”
그녀는 비명 같은 환호성을 지르며 나를 껴안았다.
그녀의 행동에 조금 당황했지만 나도 기뻐하며 그녀를 가볍게 안았다.
그렇게 성공의 기쁨에 취하길 몇 분.
감정이 다시 가라앉고, 그녀는 살며시 내게서 떨어졌다. 어두워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쑥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죄송해요. 갑자기 너무 흥분해서.”
“괜찮아요. 근데 어떻게 하신 거예요?”
“아까 전자레인지를 보고 갑자기 생각이 났어요.”
그녀는 약간 상기된 말투로 차근차근 설명했다.
“아까와 같은 아티팩트 회로에 한 가지만 더 추가했어요. 가장 문제가 됐던 문양 회로에 마력장이 형성되도록 했어요.”
“마력장?”
“네. 새롭게 형성된 마력장은 마력의 흐름을 방해해서 상대적으로 느리고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하게 해줘요.”
한 번 숨을 고른 그녀는 다시 설명을 이어나갔다.
“대신 마석의 마력 소모가 크고, 마법의 발동속도도 느려지는 단점이 생겼지만요. 그래도 위력은 엄청나게 상승했고, 단점만 조금 보완한다면 엄청난 아티팩트가 탄생할 거예요.”
설명이 길어질수록 그녀는 다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들뜬 감정을 그대로 표출했다.
순수하게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이 뭔가 귀엽게 느껴져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고생했어요, 지아 씨. 저 혼자서는 절대 이렇게 완성 못 했을 거예요.”
“당연하죠. 제가 이것 때문에 일주일 동안 얼마나 골머리를 싸맸는지.”
그녀는 허리에 손을 척 올리고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번에 말했던 대로 이번에 고생한 건 몇 배로 돌려받을 거니까. 각오하세요.”
“하하.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좋은 마음가짐이에요. 그럼 일단…….”
-꼬르르륵.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
그 소리에 당황한 신지아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많이 배고프신가 봐요? 세진 씨.”
“아뇨. 이건 저한테서 난 소리가 아닌…….”
“와악!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제가 똑똑히 들었어요.”
“푸흡, 알았어요. 배고프니까 들어가서 저녁이나 먹죠.”
“그럴까요? 저는 별로 배가 안 고프지만요.”
나와 신지아는 공터를 정리하고 공방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우리는 성공을 자축하기 위해 소소한 치킨 파티를 열었다.
* * *
[삐익-삐익-]
[‘균열 탐색 Lv.2’ 능력으로 위험을 감지합니다.]
[곧 습격이 있을 예정입니다. 전투를 대비하십시오.]
[습격까지 남은 시간 : 5분]
엄청 오랜만에 습격 알람이 떠올랐다.
정체를 알 수 없던 균열을 제거한 뒤로 처음 발생하는 습격이었다.
습격을 맞이하는 내 감정은 두려움이나 긴장감이 아닌 설렘으로 가득했다.
드디어 완성된 아티팩트를 사용해 볼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고이 모셔두었던 아티팩트를 꺼내 팔에 장착했다.
예전에 팔찌 모양의 아주 작았던 아티팩트에 비해, 팔목부터 팔꿈치 절반 정도 크기로 커지고 묵직해졌다.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은 예전과 달라지지 않았지만, 각 마법에 문양의 힘이 추가되어 위력은 비교할 수가 없어졌다.
[습격까지 남은 시간 : 10초]
[5…… 4…… 3…… 2…… 1……]
[습격이 시작됩니다.]
곧이어 균열 입구가 생성되고 괴물들이 차례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끼릭! 끼릭!
-크어어억!
랫맨, 통칭 쥐돌이 놈들이었다.
저번과 다른 점이라면 녹슨 무기나 낡아빠진 방어구가 아니라, 날이 제대로 선 위협적인 무기와 든든한 갑옷들로 무장한 상태였다.
거기다 일반 랫맨보다 덩치가 훨씬 커다란 놈도 섞여 있었다.
‘조금 어려우려나?’
생각보다 강해진 놈들의 모습에 없던 긴장이 살짝 생기려 했다.
“퓨이!”
놈들의 등장과 함께 퓨이도 전의를 불태웠다. 나는 퓨이를 조금 뒤로 물리게 한 뒤 선제공격을 준비했다.
‘일단 범위 공격으로 숫자를 줄인다.’
-에너지 볼트
번개 문양의 힘이 깃든 에너지 볼트가 아티팩트를 통해 시전되었다.
-파지지직!
“가랏!”
내 손짓에 따라 전격 구체가 랫맨들을 향해 쏘아졌다. 마법은 정확히 놈들의 한가운데에 적중하고.
-파아아앗. 콰과과광!
폭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주변이 온통 번개로 뒤덮였다. 생각보다 강력한 위력에 나와 퓨이는 살짝 뒤로 물러났다.
폭발로 인한 먼지와 돌가루가 가라앉고.
“…….”
“퓨이?”
땅을 딛고 서 있는 랫맨은 한 마리도 없었고, 모두 번개에 노릇하게 구워진 처참한 모습으로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었다.
말 그대로.
“한 방 컷?”
숫자를 줄이려고 사용한 범위 공격에 모든 적이 한방에 제거돼버렸다.
생각보다 훨씬 강력해진 아티팩트의 위력에 나는 대략 정신이 멍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