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14화 (14/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14화

검법서, 마법서, 회로 이론서.

세 가지의 유일 등급 보상을 보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일단 검법서는 패스.’

개인적인 취향도 맞지 않을뿐더러, 능력치만 봐도 검법서를 고를 이유는 없었다.

남은 건 마법서와 회로 이론서.

끌리는 건 마법서 쪽이었다. 각성자가 되었다고 하지만, 뭔가 각성자스러운 능력을 갖추고 싶다는 생각을 쭉 해오고 있었다.

솔직히 ‘균열 노숙자’라는 능력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꿈꿀만한 능력은 절대 아니니까.

반면에 누구나 한 번쯤 마법을 사용하는 상상은 하게 마련. 유치한 이유일 수 있지만 끌리는 걸 어쩌겠는가?

“흐음.”

그렇다고 회로 이론서가 쓸모없어 보인다는 건 아니다.

신지아에게 아티팩트에 대한 지식을 배우면서 힘든 점도 있지만, 꽤 적성에 잘 맞는다고 생각해 왔다.

최근에는 너무 늦게 공부를 시작해 아쉽다는 생각을 할 정도.

‘어쩌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하는 사이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5초 안에 보상을 고르지 않으면, 랜덤한 보상이 선택됩니다.]

“으헉!”

나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5…… 4…… 3……]

허둥대는 사이 시간은 자비 없이 계속 흘러갔다.

[2…… 1……]

“에잇!”

이를 악물고 눈앞의 스킬북 중의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아르키트 회로 초급 이론서’를 획득했습니다.]

[‘귀속’ 아이템은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습니다.]

[아르키트 회로 초급 이론서][유일][귀속]

-아르키트 왕국에 전해 내려오는 회로 이론.

-능력치 지능 20, 집중 20 필요.

-책을 끝까지 읽으면 스킬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휴우우.”

내 최종 선택은 회로 이론서였다. 단순히 멋있어 보이고 싶어서 마법서를 고르기에는 선택의 중요성이 너무 컸다.

멋은 좀 없을지라도 스스로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한 회로 이론서가 정답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멋진 마법을 사용할 기회는 아쉽게 사라졌지만 크게 아쉬워하지 않았다.

* * *

보상을 챙기고 거대 소라게와 싸웠던 장소로 돌아왔다.

“퓨이!”

나를 발견한 퓨이가 곧바로 튀어와 내 품에 안겼다.

“퓨! 퓨! 퓨이!”

“응? 저쪽?”

퓨이가 내 품에 안긴 채 꼬리를 움직여 한쪽을 가리켰다. 퓨이가 가리킨 곳은 원래 거대 소라게의 시체가 있던 곳이었다.

시체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약간의 흔적과 마석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D등급 균열의 마석][일반]

-독특한 결정의 마석이다.

평소와 달리 E등급이 아닌 한 단계 높은 D등급의 마석이 나왔다. 바닥을 샅샅이 뒤져 총 10개의 D등급 마석을 챙겼다.

[임시로 획득한 균열 소유권이 소멸합니다.]

알람과 함께 퓨이와 텐트의 모습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중에 보자. 퓨이야.”

“퓨이!”

퓨이와 짧은 작별인사를 나누고, 아직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임 경사를 향해 다가갔다.

“그 슬라임 친구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치료해줘서 고맙다는 말도 못 했는데. 아쉽군요.”

“나중에 제가 전해주겠습니다. 몸은 좀 괜찮으신지?”

“슬라임 친구 덕분에 외상은 치료가 됐는데, 오른팔은 당분간 움직이기 힘들 것 같습니다.”

최대한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오른팔의 통증이 심한지 찡그린 얼굴을 펴지 못했다.

나는 임 경사의 왼쪽 팔을 붙잡아 부축하고 균열 출구 쪽으로 천천히 향했다.

“경찰 아저씨!”

“아저씨!”

“괜찮으십니까?”

기다리고 있던 회사원과 여고생 2명이 우리를 발견하고 외쳤다. 걸레짝처럼 변한 임 경사의 모습에 모두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임 경사는 최대한 웃어 보이며 괜찮다고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잠시 후 균열 입구가 열렸다.

“천천히 나가시죠.”

임 경사의 말에 따라 5명은 입구로 나아갔다.

입구를 빠져나오고 눈앞에는 주변을 통제하는 경찰관들과 그 주변을 꽉 매운 시민과 기자들로 가득했다.

“나왔다!”

누군가의 외침에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 소리가 크게 울렸다.

우리가 나옴과 동시에 균열은 조용히 사라졌다.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5명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가장 상태가 심각한 임 경사는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여고생 2명과 회사원은 아무런 상처도 없었고, 땅바닥을 구르느라 생긴 긁힌 상처만 있던 나는 구급차 안에서 간단한 소독과 치료를 받았다.

‘퓨이의 슬라임젤 바르면 다 낫는데.’

귀찮았지만 응급대원들의 정성스러운 치료에 어쩔 수 없이 상처들을 전부 보여야 했다.

“괜찮으십니까?”

치료를 받고 있던 도중 같이 균열에 있었던 남자 회사원이 나를 찾아왔다.

“네. 저는 긁힌 상처만 입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까 그분과 다르게 경찰도 아니시라고 들었습니다.”

“아, 예. 사정이 있어서 돕게 됐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몸 성히 균열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남자는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차례로 여고생 2명과 부모님으로 보이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차례로 내게 감사 인사를 표했다.

여고생은 활짝 웃는 얼굴로 내게 인사했다.

“각성자 아저씨. 도와줘서 고마워요.”

“어, 어. 그래 공부 열심히 하고.”

아저씨라고 불려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아저씨 같은 덕담을 해줬다.

“아이고. 저희 딸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로 보이는 아줌마는 그 짧은 사이에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눈가에 눈물이 가득했다.

부모님들은 손을 붙잡고 회사원 못지않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진심이 담긴 인사에 왠지 민망해져 진땀을 뺐다.

그래도 감사 인사를 받으니, 정말 오랜만에 착한 일을 한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해졌다.

여기까지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여기까지는…….

“잠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

“누구시죠?”

“균열관리부 지역조사 담당관 김연석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특수한 균열 발생에 대해 세진 씨가 가장 먼저 발견하셨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뒤쪽을 슬쩍 바라보니, 익숙한 지구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도 신경 쓰이는지 연신 이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네. 그런데요?”

담당관은 이것저것 균열을 발견하게 된 상황부터, 균열을 빠져나오기까지 상세하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최대한 있는 그대로 경험한 일을 설명해 줬다.

“흠. 이상하군요.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쉬고 있던 임진혁 경사에게 연락하신 거죠?”

‘X발. 신고했지.’

그때 기억이 떠올라 순간 욕이 튀어나올 뻔한 것을 겨우 참아 넘겼다.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까 고민하는 사이, 이곳에 귀를 기울이던 지구대장이 난입해 대화를 중단시켰다.

“저 세진 씨는 균열에서 전투까지 치르고 나왔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따로 시간을 잡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아. 죄송합니다. 워낙 중요한 사안이라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나중에라도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연락처를 받아갈 수 있겠습니까?”

조금 떨떠름했지만, 순순히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그는 명함 한 장을 전하고 조용히 떠나갔다.

지구대장은 혼자남은 내 눈치를 보다가 슬쩍 말을 걸었다.

“크흠, 세진 씨. 정말 수고 많았어. 다친 곳은 없나?”

“아, 예. 피곤해서 저는 가 보겠습니다.”

내가 떠나려고 일어서자 지구대장이 황급히 말을 이었다.

“들어보니까 지구대에 균열이 생길 거라고 신고했었다던데.”

“네. 했었죠. 근데 제 말을 안 믿어주시더라고요.”

“안 믿은 게 아니야. 그때 지구대가 좀 바빠서 인원이 부족했거든.”

나는 지구대장의 변명에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내 싸늘한 반응에 그는 더욱 쩔쩔매기 시작했다.

“제발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 주게. 기계에도 잡히지 않는 이런 균열이 생겨날 줄 누가 알았겠나?”

“가 보겠습니다.”

“세진 씨. 세진 씨. 집까지 태워다 줄 테니 잠시 기다려봐.”

“괜찮습니다. 별로 멀지도 않으니 걸어가겠습니다.”

지구대장은 계속해서 날 불렀지만 무시하고 자리를 떴다.

솔직히 지구대장의 말이 일부분 동의할 수 있다.

기계에도 탐지되지 않는 균열이, 그것도 사람 많은 도시 한복판에 떡하니 생겨날 줄 누가 예상했겠나?

그렇지만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꽤 오랜 기간 얼굴 마주치며 일도 도와줬는데 위급한 신고를 대놓고 무시당했다.

‘만약 내가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대단한 능력의 각성자였다면, 신고를 그런 식으로 무시했을까?’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거리를 빠져나가는데 주위를 통제하던 박 경위와 이 순경을 발견했다. 나를 발견한 두 사람은 내 시선을 피하며 길을 열어주었다.

그나마 박 경위는 민망함에 시선을 피하는 것 같았지만, 이신우 이 새끼는 표정이 짜증으로 물들어 있었다.

뭔가 한마디 쏘아붙여 주려다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귀찮기도 했고 주변에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혹시 균열에 들어갔다 나오신 분입니까?”

“◎◎뉴스입니다. 인터뷰 부탁드립니다.”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통제 구역을 빠져나오자마자 이번엔 곧바로 기자들에게 둘러싸였다.

‘아니, 무슨 기자가 이렇게 많아? 그냥 차 태워달라고 할걸.’

생각보다 뜨거운 취재 열기에 빠져나오느라 애를 먹어야 했다.

* * *

위험한 균열을 제거한 지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 균열의 등장으로 한동안 세상이 들썩거렸다.

어떤 균열의 발생이든 기계로 미리 탐지할 수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는데, 이번 사건의 균열은 기계로도 탐지해내지 못했다.

거기다 도시 한복판에서 사람이 균열로 끌려가는 일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의 불안감이 치솟았다.

마치 세상에 처음 균열이 발생했을 때처럼.

하지만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흐르며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불안해하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갔다.

경찰서에서 용감한 시민상을 주겠다고 연락이 왔으나 거절했다.

전화를 걸었던 상대방도 어느 정도 사정을 아는지 사정사정했지만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각성자 관리 센터에서도 연락이 왔다. 능력에 대해 다시 상담을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는 전화였다. 역시 깔끔하게 거절했다.

또 한군데에서 연락 온 곳이 있었다.

바로 각성자 협회라는 곳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각성자 협회 최수진이라고 합니다.

청아한 목소리에 여자는 본인을 각성자 협회 소속이라고 소개했다.

-이번에 전세진 님의 용감한 행동에 협회는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전세진 님께 협회 이름으로 포상금을 드리려고 합니다.

일단 조용히 상대의 말을 경청했다.

-아직 협회에 가입하지 않으셨던데, 혹시 가입하실 의사가 있으신지요?

“저는 벌써 관리 센터에 각성자 등록을 마쳤는데요?”

-아. 각성자 협회는 국가 기관이 아닙니다. 각성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최수진은 협회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해줬다. 한국에서는 제일 거대한 각성자 집단이고 역사도 꽤 길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전투 능력을 가진 각성자는 대부분 협회에 가입한다고 한다.

-혹시 가입하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죄송합니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볼게요.”

-아뇨. 부담스럽게 생각하실 필요 없으세요. 그리고 포상금은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지급하기로 결정됐기 때문에 계좌번호 알려드리면 몇 시간 이내로 입금해드리겠습니다.

“원래 이런 건 직접 방문해서 높으신 분들 만나고, 상장 전달받고 해야 하지 않나요?”

-원하시면 그렇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근데 용감한 시민상도 거절하셨다고 들어서, 최대한 번거롭지 않게 진행하려 했습니다.

‘쩝. 귀찮아서 거절한 건 아닌데.’

-대신 포상금을 받으시면 언론 기사 몇 개가 나갈 예정입니다.

끝으로 협회 가입을 긍정적으로 고려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300만 원이라는 돈을 받게 됐다.

몇몇 언론사에서도 취재를 요청해 왔다.

나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꽤 멋진 말과 함께 취재를 거절했다.

그렇게 위험한 균열 사태는 정리가 되는 듯싶었는데…….

* * *

“아니, 이게 말이 됩니까?”

“세진 씨. 사람들이 쳐다봅니다.”

내 분노에 찬 외침에 임 경사가 조용히 타일렀다.

“임 경사님 그게 중요해요?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조용히 있으려고 했는데 이건 도저히 못 참겠습니다.”

“일단 진정하세요. 세진 씨. 저 팔이 이 모양이라 말리지도 못합니다.”

임 경사는 깁스한 오른팔을 들어 보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사정이 있습니다.”

“답답해 미치겠네.”

나를 답답해 미치게 만든 상황은 이랬다.

균열을 제거하는데 나보다 더 몸을 아끼지 않고 싸웠던 임 경사가 포상에서 제외됐다.

더 웃기는 건 박 경위와 이 순경이 포상 대상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신속한 상황 대처와 몸을 사리지 않는 사명감이라나 뭐라나.

직접 그 신속한 상황 대처를 보았던 나로서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특히 경찰 쪽에서는 이번 포상을 최대한 언론 노출을 자제하며 조용히 일을 처리했다. 마치 뭔가를 숨기려는 것처럼.

“임 경사님.”

“저는 괜찮습니다. 세진 씨가 신경 써주시는 건 고맙지만 이번 일은 이렇게 정리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저는 조금 다쳤지만, 모두 무사히 빠져나왔잖습니까? 그리고 지구대 동료분들도 평소에 열심히 경찰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포상받기에 절대 모자라지 않습니다.”

나는 박 경위나 이 순경이 평소에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한 게 아니었다.

“정말 말 안 해주실 겁니까?”

“나중에.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임 경사가 어떻게 생각하든 나 혼자서라도 일을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임 경사가 내 앞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세진 씨. 부탁드립니다.”

“…….”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하아, 알겠습니다. 빨리 고개 드세요.”

고개까지 숙이는 임 경사 앞에서 더는 고집을 부릴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세진 씨.”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임 경사님 말에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다 설명해 주실 거라 믿고 있겠습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임 경사는 나에게 잠시 지구대에 들렀다 가는 게 어떻겠냐고 권했다. 나로서는 매우 껄끄러웠지만, 마지 못해 지구대에 들르게 되었다.

“아니, 세진 씨.”

“오랜만에 뵙습니다.”

지구대장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반겨 주었다.

임 경사에게 듣기로 이번 균열 사건을 잘 해결한 덕분에 지구대장의 평가가 매우 좋아졌다고 한다.

괜히 저렇게 환한 미소가 나오는 게 아니다.

“한번 연락하려고 했었는데 일이 바빠서 못했네. 정말 미안하네.”

지구대장은 직접 커피라도 타올 기세로 나를 극진히 대접했다. 다른 지구대 사람들도 슬슬 눈치를 보며, 나를 부담스럽게 대하고 있었다.

이런 극적인 변화가 솔직히 달갑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불쾌할 정도였다.

“용감한 시민상을 거절했다던데. 왜 그랬어?”

“제가 한 게 뭐 있다고 그런 상을 받겠습니까? 받으면 임진혁 경사님 같은 분이 받으셔야죠.”

“크흠.”

지구대장은 임 경사 이야기에 헛기침하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때 구석 자리에 있던 이신우가 중얼거렸다.

“운이 좋아서 균열 한번 발견한 거로 더럽게 유세 떠네.”

“…….”

“이 순경! 그게 무슨 말이야? 당장 세진 씨한테 사과해.”

“솔직히 그렇잖습니까? 해결은 임 경사님이 하신 거고. 저 사람은 멀쩡하던데, 임 경사님이 싸울 동안 구경만 했겠죠.”

“아니, 저 녀석이.”

옆에서 지켜보던 임 경사도 나서려는 순간 내 휴대폰에서 통화 음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신우 순경님. 진짜 위험하다고요

-아아. 기계에는 아무것도 안 떠요. 괜히 이상한 장난치지 마세요. 뚝!

…….

-아아. 됐어요. 경찰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꺼요. 어디 균열에서 잠이나 쳐 자던 노숙자 새끼가 각성자 좀 됐다고 이래라 저래라야.

위험했던 균열이 발생한 날, 내가 지구대에 전화에 이신우와 나눴던 대화 내용이 적나라하게 지구대에 울려 퍼졌다.

통화 내용을 들은 이신우를 포함한 지구대 사람들이 모두 굳어버렸다.

그렇게 다급하게 신고를 하면서 녹음할 줄은 몰랐겠지.

“그. 그건 뭔가?”

창백해 보일 정도로 핏기가 사라진 지구대장이 떠듬떠듬 내게 물었다. 나는 굳이 대답해 주지 않고 이신우를 향해 걸어갔다.

“내가 사기를 심하게 당한 적이 있어서, 통화 내용을 자동으로 녹음하게 해놨거든.”

“…….”

나는 검지로 놈의 이마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왜? 운 좋게 각성한 노숙자 새끼라서 이런 거 못 할 줄 알았어?”

“…….”

이신우는 내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운 좋게 떨어진 남의 떡 처먹었으면, 가만히 찌그러져 있어. 괜히 나대지 말고.”

마지막 말과 함께 손바닥으로 앉아 있는 녀석의 이마를 힘껏 밀어버렸다. 이신우는 의자와 함께 뒤로 넘어가며 볼품없이 바닥을 굴렀다.

-쿠당탕.

바닥에 쓰러진 채 살기 가득한 눈으로 나를 노려봤지만, 가볍게 무시해 주고 다시 지구대장 곁으로 갔다.

“지구대장님. 밑에 애들 관리 좀 잘하세요.”

“……미안하네.”

나가기 전에 지구대를 한번 둘러봤다. 사람들 모두 내 눈을 피하기 바빴다.

나는 마지막으로 임 경사를 바라보며 눈빛으로 말했다.

‘저도 많이 참은 겁니다.’

그는 내 눈빛을 읽었는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아무래도 이곳과 인연은 이게 끝인 것 같네.’

나는 느긋하게 지구대를 빠져나왔다.

* * *

♩∼♬∼♪

휴대폰 벨소리.

신지아에게서 온 전화였다.

“여보세요?”

“세진 씨. 숙제 잘하고 계시죠?”

“지아 씨는 매번 숙제부터 확인하시네요.”

“저번에도 말했지만 저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서요.”

물론 계약 때문에 기술을 가르쳐주고 있지만, 신지아의 교육 열정은 엄청난 것 같다.

“숙제는 염려 마시고. 설마 숙제 검사하려고 전화하신 건 아니죠?”

“세진 씨. 아티팩트 부셔 먹은 거 기억하고 계시죠?”

“하하. 그 이야기는 왜 또.”

위험했던 균열에서 안전장치를 제거하는 바람에 회로가 완전히 박살이 나버린 아티팩트.

신지아는 그 아티팩트를 보고 나를 만난 이후로 처음 화를 냈다. 아티팩트를 고장 낸 것 때문이 아니라 위험한 사용 방식 때문에.

운이 좋아서 마지막 마법이 잘 사용되었지만, 자칫 잘못했으면 내가 큰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티팩트는 수리가 아니라 새로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쩝. 죄송합니다.”

“뭐. 계약이 된 거니까 계약대로 다시 만들어 드릴게요. 대신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래요?”

살짝 긴장하며 되물었다.

“무슨 부탁인데요?”

“세진 씨 마석을 거래하는 연구실 알죠? 거기 교수님이 세진 씨를 한번 만나보고 싶데요.”

“저를요?”

전혀 예상치 못한 부탁에 깜짝 놀랐다.

“워낙 교수님이 조심스럽게 부탁을 해와서 전부터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이번에 세진 씨 사고 친 김에 부탁하려고요.”

“하하. 그것참.”

신지아 특유의 솔직한 대답에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흐음.”

‘교수님과 만남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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