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균열에 산다-12화 (12/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12화

5. 위험한 균열

“으음.”

앞에 놓인 ‘마력 회로 이론 입문서’를 보며 신음을 흘렸다.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한데, 이놈의 이론서는 볼 때마다 머리를 어지럽혔다.

고등학교 때도 이렇게 열심히 공부해본 적이 없는데. 요즘은 신지아의 스파르타식 교육에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신지아는 명문대 박사 과정까지 밟다가 나온 수재 중의 수재였다.

본인 기준으로 수업을 진행하는데 여간 빡빡한 게 아니다.

“어휴. 잠깐 쉬자.”

두꺼운 이론서를 덮으며 텐트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퓨이가 열심히 그림책을 읽고 있었다.

“퓨이야. 재밌어?”

“퓨이. 퓨이!”

“그래, 우리 퓨이. 똑똑하기도 하지.”

아티팩트 공부를 시작한 뒤로 균열에서 책을 읽는 시간이 많아지자, 자연스럽게 퓨이도 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텐트에 있던 복잡하고 어려운 이론서들을 퓨이가 읽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를 따라 책을 읽고 싶은데 못해서 실망하는 퓨이.

그 모습이 안타까웠던 나는 서점에서 유아용 그림책을 몇 개를 퓨이에게 사다 주었다.

퓨이는 사다 준 그림책을 재미있게 읽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퓨이는 책 안에 나오는 짧은 글자들을 이해하고, 심지어 모르는 부분을 내게 묻는 일도 있었다.

조만간에 글자가 많은 책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퓨이야. 어렸을 때 공부 열심히 해야 해. 나처럼 나이 먹어서 고생 안 하려면.”

“퓨이?”

내 넋두리 같은 말에 퓨이가 물음표를 띄웠다. 나는 더 말은 이어나가지 않고 퓨이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삐익-삐익-]

[‘균열 탐색 Lv.1’ 능력으로 위험을 감지합니다.]

[곧 습격이 있을 예정입니다. 전투를 대비하십시오.]

[습격까지 남은 시간 : 5분]

위급한 경고음과 함께 알람이 눈앞에 나타났지만, 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 텐트에 누워 비비적거렸다.

처음 습격이 왔을 때, 불안함에 허둥대며 벌벌 떨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

“이번이 4번째 습격인가?”

첫 번째 습격이 있고 난 뒤, 한동안 습격이 없어 방심하고 있을 때 또다시 습격이 찾아왔다.

두 번째 습격에 약간 긴장했었는데 첫 번째 습격과 별다를 게 없어서 쉽게 막아냈다. 며칠 전에 있었던 세 번째 습격 역시 마찬가지.

보상으로 나무로 된 톱니바퀴를 2개 얻었고, 각각 보금자리의 수돗가와 화장실 설치에 사용했다.

그로 인해 균열의 편의성은 더욱 올라갔다.

[습격까지 남은 시간 : 2분]

시간이 2분 정도 남았을 때, 느릿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지아에게서 얻은 아티팩트를 손목에 차고, 첫 번째 습격 때부터 활약했던 야구 방망이를 챙겼다.

그림책을 읽던 퓨이도 자연스럽게 나를 따라 텐트 밖으로 나왔다.

[습격까지 남은 시간 : 10초]

[5…… 4…… 3…… 2…… 1……]

[습격이 시작됩니다.]

벽면에 균열 입구가 생겨나고 괴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삐이이익!

성인 남성 허리 정도 높이에, 전체적으로 독수리를 닮은 괴물들.

얼굴 생김새는 독수리보다 훨씬 추하게 생겼지만 부리나 발톱은 더욱 날카롭다.

날지 못한다는 특징 덕분에 닭수리라는 별명이 붙은 녀석이다.

방심해서 단체로 포위 공격을 받으면 꽤 위험한 괴물이다.

나는 아티팩트 잠금장치를 풀고 곧바로 공격을 시작했다.

-에너지 볼트!

-파지지지직.

강렬한 스파크를 튀기는 전기 구체가 괴물들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빠른 구체의 속도에 날개를 버둥거리던 몇몇이 적중당했다. 녀석들은 고기 타는 냄새와 함께 그대로 즉사해버렸다.

-삐익! 삐익!

흥분한 나머지 녀석들이 나와 퓨이를 향해 돌진해 왔다.

-매직 미사일.

화살 모양을 한 마력 덩어리에 닭수리 녀석들은 하나둘 바닥에 쓰러졌다.

마지막 남은 한 마리가 몇 걸음 앞까지 도달했지만.

“퓨우우우우!”

그나마 아티팩트의 공격을 모두 피했던 마지막 한 마리는 퓨이의 산성용액 공격에 그대로 녹아버렸다.

“퓨이야. 얘네들 마석 추출 좀 하고 있어. 보상받고 올게.”

“퓨이!”

괴물들이 튀어나왔던 균열 입구로 향했다. 입구를 지나 특별한 것 없이 균열핵을 제거했다.

[습격을 성공적으로 방어했습니다.]

[경험치 500 Exp를 획득합니다.]

[보상으로 ‘나무로 된 톱니바퀴×1’을 획득합니다.]

전과 다를 것 없는 경험치 획득과 보상이 나왔다.

균열핵을 가지고 밖으로 나오니 닭수리 놈들의 시체는 벌써 퓨이에 의해 마석으로 변해 있었다. 땅바닥에 떨어진 마석들을 수거하면서 상태창을 확인했다.

《상태》

전세진 Lv.6

Exp(660/750)

고유 능력 : 『균열 노숙자』

능력치 【체력 12】【근력 8】

【민첩 6】【지능 13】

【집중 12】【저항 8】

추가 능력치 : 12 Point

《스킬》

[균열 탐색 Lv.1](0/1)

-집중30 필요.

-E등급의 균열을 탐색할 수 있습니다.

-위험한 균열을 예견할 수 있습니다.

↳ 30개의 균열을 탐색하기 (달성)

[균열 획득 Lv.1](0/1)

-조건을 만족하면 균열의 소유권을 얻을 수 있습니다.

-현재 최대 소유할 수 있는 균열 개수 : 2개 (2/2)

-마석을 이용해 균열의 소유권 획득할 수 있습니다.

↳ 균열 획득 10번 사용하기 (달성)

[보금자리 생성 Lv.3](0/3)

-소유권을 얻은 균열에 보금자리를 생성합니다.

-보금자리에 펫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1/1)

↳ 보금자리 생성 후 균열에서 15일 지내기 (달성)

-보금자리에 손님을 초대할 수 있습니다. (0/4)

《특성》

[마력 회로 이론 Lv.1](0/1)

-마력 회로에 대한 지식을 얻습니다.

추가 SP : 14 Point

《상태》

퓨이 Lv.3

Exp(175/250)

능력치 【체력 5】【근력 3】

【민첩 3】【지능 7】

【마력 4】【저항 2】

스킬 : [산성용액 Lv.2], [슬라임젤 Lv.2]

특성 : [마석 추출 Lv.1]

친밀도 : 89%

최근에 ‘마력 회로 이론 Lv.1’ 특성과 마석을 이용해 균열의 소유권을 얻을 수 있는 것 외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추가 능력치와 SP가 각각 많이 남아 있지만, 성급히 투자하지 않고 아직 남겨두고 있다.

딱히 쓸 곳이 마력 회로 이론 특성을 제외하면 투자할 만한 곳이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싱겁게 끝난 습격 뒷정리도 대충 끝내고, 다시 텐트로 들어가 책을 펴려는 순간.

[삐익-삐익-]

또다시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균열 탐색 Lv.1’ 능력으로 위험을 감지합니다.]

[스킬 레벨이 낮아 정확한 정보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스킬 레벨이 낮다고?’

눈앞에 떠오른 낯선 알람을 확인하고 점점 불안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일단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남겨두었던 1SP를 사용해 ‘균열 탐색’의 레벨을 올렸다.

[‘균열 탐색’ 스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균열 탐색 Lv.2’ 능력으로 위험을 감지합니다.]

[곧 ‘??? 균열’이 생성될 예정입니다. 전투를 대비하십시오.]

[균열을 막지 못하면 페널티를 받습니다.]

[균열 생성까지 남은 시간 : 30분]

‘??? 균열이라고?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

아직 사태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 와중에 시간은 계속 흘러가기 시작했다.

‘습격이 아니야. 균열 생성이라고 했어. 그렇다면.’

나는 집중을 하고 균열 탐색 스킬을 사용하였다.

-균열 탐색!

감각이 확장되는 느낌과 함께 넓은 지역 곳곳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평소와 비슷하게 E등급 균열만 발견되고, 다른 수상한 균열의 낌새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럴 리 없어. 분명 뭔가 있을 거야.’

나는 불안한 마음에 다시 한번 세세하게 지역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찾았다!”

감각에 걸려든 미세한 균열 하나.

E등급 균열과 비교해도 작은 미세한 균열이었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위험한 균열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거리 한가운데 생긴 균열은, 마치 시한폭탄을 보는 것 같았다.

‘내가 위험한 건 둘째치고, 수많은 사람이 휘말릴 수 있다.’

생각을 정리한 끝에 휴대폰을 꺼내 들고 균열 밖으로 향했다. 황급히 밖으로 나와 지구대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연결되고, 상대방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전세진입니다.”

-어? 웬일이시죠?

전화를 받은 사람은 하필 이신우였다.

“지금 근처에서 위험한 균열이 생성될 것 같습니다. 당장 출동해서 막아야 합니다.”

-음. 탐지 기계에서는 아무것도 안 뜨는데요. 뭔가 잘못 아셨나 보죠.

이신우는 다급한 내 경고에도 심드렁한 어투로 대답했다.

“이신우 순경님. 진짜 위험하다고요.”

-아아. 기계에는 아무것도 안 떠요. 괜히 이상한 장난치지 마세요. 뚝!

“아니. 미친!”

상대의 일방적인 통화종료에 나도 모르게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치솟는 화를 꾹꾹 참으며 다시 전화를 걸었다.

-지구대 이신우 순경…….

“장난 아닙니다. 아니. 이신우 순경님 말고 다른 분이라도 바꿔줘요.”

-하아. 진짜 미쳤나.

“뭐. 뭐라고요?”

-이봐요, 당신. 지구대 들락날락하면서 능력 좀 사용하니까 자기가 경찰이라도 된 줄 알아요?

“…….”

-누구 맘대로 다른 사람을 바꿔라, 마라야. 당신이 내 상사야?

나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건 죄송합니다. 그런데 정말 위급한…….”

-아아. 됐어요. 경찰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꺼요. 어디 균열에서 잠이나 쳐 자던 노숙자 새끼가 각성자 좀 됐다고 이래라 저래라야.

이신우의 막말에 내가 폭발하려는 찰나. 휴대폰 너머로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길래 통화를 그렇게 해?

잠시 휴대폰 너머로 소요가 있고 나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진 씨?

“박 경위님? 저 전세진입니다.”

-지금 무슨 일입니까?

어느 정도 안면이 있는 박 경위에게 최대한 간략하게 사정을 설명했다.

-흠. 그런데 기계에는 아무것도 안 잡히는데.

“기계는 못 잡을지 몰라도 정말 위험한 균열입니다.”

-순찰이라도 보내고 싶지만 지금 차량과 인원이 나간 상태라. 나중에 그쪽으로 순찰 한 바퀴 돌라고 해놓을게.

박 경위의 느긋한 반응에 내가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그러면 늦습니다. 다른 지구대나 경찰서에 지원 요청은 안 됩니까?”

-세진 씨. 그렇게 막무가내로 지원 요청은 못 해. 그리고 정말 위험한 균열이라면 더더욱 기계에 잡혔을 텐데. 세진 씨가 잘못 본 거 아냐?

박 경위의 말은 이론적으로 옳았다. 위험한 균열일수록 탐지하기 쉽고, 탐지하기 어려울수록 위험하지 않은 균열이다.

기계가 탐지하지 못할 정도라면 전혀 위험하지 않은 균열이어야 한다.

하지만 내 눈으로 직접 본 그 균열은 일반적인 균열과 궤를 달리했다.

-세진 씨?

더 이상의 통화는 의미가 없을 것 같아 일방적으로 통화를 종료했다.

[균열 생성까지 남은 시간 : 22분]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갈팡질팡하던 나는 다시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임진혁 경사님. 저 전세진입니다.”

-안녕하세요. 세진 씨. 무슨 일로?

용건을 묻는 임진혁 경사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최대한 빠르게 설명했다.

내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임 경사는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입니까?

“믿기 힘든 일이라는 거 압니다. 근데 제 능력이 확실히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면 됩니까?

나는 균열의 위치를 설명해 줬다.

-바로 가겠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지구대에 연락하시고, 절대 위험한 행동은 삼가세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임 경사님.”

통화를 끝낸 나는 다시 균열로 들어가 외투와 야구 방망이, 아티팩트를 챙겼다.

“퓨이야. 나 잠시 다녀올게.”

“퓨우우우.”

퓨이는 뭔가 본능적으로 직감했는지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걱정하지 마. 별일 없을 거야.”

불안해하는 퓨이를 몇 번 쓰다듬어주고 바로 균열을 나섰다.

* * *

저녁 9시를 넘어가는 시점.

아직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헉. 헉. 헉.”

사람들을 이리저리 피해가며, 최대한 빠른 속도로 균열이 발생 될 지점을 향해 뛰어갔다.

[균열 생성까지 남은 시간 : 3분]

‘아슬아슬하다.’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겨우 참으며, 부지런하게 발을 움직였다.

쉬지 않고 발을 움직인 끝에 멀리서 균열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직접 봤을 때 느껴지는 불안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균열 생성까지 남은 시간 : 15초]

균열 주변에는 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는 중이었다.

[균열 생성까지 남은 시간 : 10초]

“거기서 피해요! 위험해요!”

나는 뛰어가는 와중에 소리를 질러 사람들을 대피시키려 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몇 명만 나를 미친놈처럼 쳐다볼 뿐.

[5…… 4…… 3…… 2…… 1……]

[??? 균열이 생성됩니다.]

균열이 생성됨과 동시에 시커멓고 붉은빛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으앗. 뭐야!”

“꺄아아악!”

검붉은 빛이 주변을 한참 동안 뒤덮었고, 빛이 사그라들었을 때는 수많은 사람이 자취를 감춘 뒤였다.

“헉…… 헉…… 젠장!”

나는 아직도 불쾌한 검붉은 빛을 내뿜는 균열 앞에서 헐떡이며 욕설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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