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11화
오연우와 나는 가까운 파자 가게에서 피자 2판을 사서 균열 입구가 있는 공원으로 향했다.
“여긴가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오연우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눈앞에 있는 균열 입구를 보지 못했다.
두리번거리는 오연우를 균열의 손님으로 초대했다.
[‘오연우’를 균열의 손님으로 초대합니다.]
[초대한 손님 (1/4)]
“우왓!”
“이제 보여?”
“네. 원래 다른 사람은 입구가 안 보이는 건가요?”
“다른 사람은 못 보더라고. 너는 손님으로 초대된 거니까. 들어가자.”
내가 먼저 입구로 들어가고 오연우가 뒤따라 들어왔다.
“퓨이!”
균열에 들어온 나를 보고 퓨이가 내 품으로 달려들었다.
“다녀왔어. 퓨이야.”
“어어?”
오연우는 갑자기 달려드는 슬라임을 보고 놀랐는지 엉덩방아를 찧었다.
“세진 형. 그거 슬라임 아니에요?”
“내가 말했잖아. 여기에 잘 먹는 식구 한 명이 더 있다고.”
“퓨이!”
내 품에 얌전히 안겨있는 퓨이를 보고 오연우가 슬금슬금 일어섰다. 아직 겁을 먹었는지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말을 걸었다.
“형. 위험한 거 아니죠?”
“나는 괜찮은데 손님은 처음이라.”
“으으으.”
“그래도 내 말은 잘 따르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저쪽으로 가자.”
불안해하는 오연우를 이끌고 텐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내가 식사를 위해 의자, 휴대용 식탁, 식기들을 준비하는 동안, 오연우는 텐트 내부를 둘러봤다.
“우와! 형! 냉장고도 있네요? 여기 균열에도 전기가 들어와요?”
“내 능력으로 전기는 들어와.”
“생각보다 괜찮네요.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글을 보고 좀 더 열악한 상황을 예상했었는데.”
“뭐. 그때는 훨씬 열악한 상황이긴 했지. 일단 나와봐, 피자부터 먹고 하자.”
나와 오연우가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고, 퓨이는 내 무릎 위에 자리했다.
그리고 오연우가 산 피자 두 판이 휴대용 식탁 위에 펼쳐졌다. 피자를 처음 보는 퓨이가 두 눈을 반짝거렸다.
“퓨이. 퓨이.”
내 무릎 위에서 퓨이가 몸을 흔들며 나를 재촉했다.
“알았어. 잠시만 기다려. 먹기 좋게 잘라줄게.”
피자 한 조각을 그릇 위에 올려놓고 퓨이가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놨다. 퓨이는 꼬리로 조각난 피자를 하나씩 집어 먹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피자 맛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내가 퓨이를 챙기는 와중에, 오연우도 퓨이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뭐해? 안 먹고?”
“그 슬라임 퓨이라고 했죠? 보면 볼수록 귀엽네요.”
“하하. 우리 퓨이가 좀 귀엽긴 하지. 그것보다 너도 빨리 먹어. 늦장 부리다 퓨이가 다 먹을지도 몰라.”
“알겠어요. 형도 얼른 드세요. 식으면 맛없어요.”
나와 퓨이, 오연우 셋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피자를 맛있게 먹었다.
* * *
“나∼ 나나∼.”
“…….”
나는 무릎 위에 퓨이를 쓰다듬으며 식사의 여운을 즐기고 있었고, 오연우는 콧노래를 부르며 뭔가를 셋팅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촬영 장비들인 것 같았다.
“연우야.”
“네. 왜 그러세요?”
“혹시 촬영 준비하는 거니?”
“맞아요. 생각보다 균열 안이 밝아서 휴대용 조명으로도 화면 잘 나올 것 같아요.”
“근데 난 촬영 허락해준 적 없는데.”
분명 카페에서는 균열에만 들어가 볼 수 없겠냐고 했었는데, 식사가 끝나고 나니 자연스럽게 촬영 준비를 하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에이. 형! 그때랑 상황이 달라졌죠.”
“뭐가 달라졌는데?”
“호형호제도 하고, 음식도 나눠 먹고, 식구도 소개받았으면 이제 가족 아닙니까? 그렇지 퓨이야?”
“퓨이!”
“보세요. 퓨이도 그렇다잖아요.”
“……너 어째 이미지가 많이 달라졌다?”
분명 처음 만났을 때는 약간 어리숙하고, 꿈을 위해 열정을 불태우는 순수 청년 이미지였는데, 지금은 능글능글한 사기꾼 같이 변해 있었다.
“제가 처음에는 낯을 좀 많이 가려서. 헤헤.”
“이거 호구 잡히는 느낌인데.”
“호구라뇨. 저 오연우. 절대 은혜는 잊지 않는 남자입니다. 이번에 한 번 도와주시면 어떻게든 은혜 갚습니다.”
“흐음.”
“형. 한 번만 해줘요. 네? 아잉. 세진이 형.”
이제는 옆에 붙어서 아양까지 부리며 내게 부탁했다. 솔직히 속은 느낌도 없지 않아 있지만, 생각보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오연우가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약간 능구렁이 같은 기질은 다분해 보였지만, 애교로 봐줄 만한 정도였다.
“얼굴 나오는 건 좀 그럴 것 같은데.”
“그건 문제없죠.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오연우는 가져온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무언가를 꺼내서 내 앞으로 내밀었다.
“짠! 가면도 준비해 놨어요.”
“하핫. 이것 참.”
가면까지 꺼내는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려 버렸다.
“형. 이제 허락해 주시는 거죠? 맞죠?”
“연우야. 너는 너튜버로 꼭 성공해라. 절대 사기꾼 같은 거 하면 안 된다?”
“아니, 세상에 이렇게 귀여운 사기꾼이 어딨어요. 아무튼, 촬영 허락해주시는 거죠?”
“그래. 해라, 해.”
“아싸! 형 조금만 기다리세요. 카메라랑 조명 한 번만 더 확인하고요.”
오연우는 촬영 장비를 점검하고, 아까 이야기를 나누며 작성했던 노트를 꺼내 질문과 진행 내용을 확인했다.
나는 평범한 흰색 가면을 뒤집어쓰고 촬영을 기다렸다.
무릎 위에 있던 퓨이는 가면을 쓴 내 모습이 신기했는지 꼬리로 가면을 툭툭 건드렸다.
“형. 준비 끝났어요. 바로 시작할까요?”
“퓨이야. 잠시 텐트에 가 있어.”
“퓨이? 퓨! 퓨!”
퓨이는 텐트로 가기 싫은지 거부의 의사를 표현했다. 자기도 끼워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형. 퓨이가 나와도 상관없어요.”
“그래? 막 돌아다니고 그럴 텐데?”
“제가 최대한 편집해서 영상 만들 거니까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퓨이!”
그렇게 나와 퓨이 모두 영상에 등장하게 되었다.
촬영은 생각보다 쉽게 이루어졌다.
오연우가 자연스럽게 진행을 하면서 진행과 질문을 이어갔고, 나는 있는 그대로 질문에 대답했다.
퓨이는 내 무릎 위에 있다가 심심했는지 촬영 장비를 둘러보기도 하고, 오연우 주변을 맴돌기도 했다.
대부분 내 능력에 관한 질문이었고, 뒤에 퓨이에 관한 질문도 몇 개 있었다.
퓨이도 자신에 관한 질문은 귀신같이 알아채고, 눈을 번뜩이며 질문에 집중했다.
중간에 퓨이가 카메라를 만져 초점이 비틀려 잠시 촬영이 중단된 것만 빼면 순조로운 촬영이었다.
1시간 반 정도 촬영이 진행되고.
준비했던 질문과 이야기가 끝나고 촬영이 종료되었다.
“끝났습니다. 형 고생하셨어요.”
“어. 고생은 네가 했지. 근데 이렇게 해도 되는 거야? 영상이 별로 재미없을 것 같은데?”
오연우가 시키는 대로 영상을 찍긴 했는데, 나로서는 크게 재미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괜찮아요. 충분히 흥미로운 주제에 재미를 더하는 건 편집자의 실력이니까요. 저는 괜찮은 것 같아요.”
“그런가?”
“편집 다 끝내면 영상 주소 보내드릴게요. 세진이 형. 고마워요. 은혜는 잊지 않을게요.”
“뭘 은혜까지야. 너튜브 잘되면 밥이나 한번 사.”
“물론이죠.”
“퓨이!”
“퓨이. 너도 수고했어.”
그렇게 나와 퓨이의 첫 너튜브 촬영이 끝났다.
* * *
[‘집중’이 유지됩니다.]
[초급 마력 회로 제작에 성공합니다.]
[경험치를 5 Exp를 획득합니다.]
“으어어어!”
나는 괴성을 지르며 기지개를 켰다.
벌써 몇 시간째 회로기판을 붙잡고 작업을 하느라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일 자체는 단순하지만 집중하지 않아 삑 나면 바로 불량이 돼버리기 때문에 생각보다 피로감이 컸다.
목표했던 기판 제작을 모두 끝내고 신지아에게 보고하러 갔다. 그녀는 휴대폰으로 뭔가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지아 씨. 회로기판 제작 끝났어요.”
“다 했어요? 대충해서 불량 나면 안 되는 거 알죠?”
“꼼꼼하게 다 확인했어요.”
그녀가 휴대폰을 내려놓고 내가 제작한 회로기판들을 확인했다.
“지아 씨. 회로에 대해 알려주는 건 고마운데, 공방의 작업까지 떠넘기는 건 노동 착취 아닙니까?”
“원래 기술을 쉽게 가르쳐주는 줄 알아요? 다 일 도와주면서 어깨너머로 배우는 거지.”
“그런 것 치고는 너무 단순노동인 것 같은데.”
“원래 기초는 다 그런 법이에요. 이런 경험이 쌓여서 실력이 되는 거예요.”
“허허.”
“아무튼, 오늘은 수고하셨어요. 아! 그리고 아티팩트 준비해 놨으니까 가져가세요.”
“오. 감사합니다.”
그녀가 건네준 박스에는 팔찌 모양을 한 아티팩트가 들어 있었다.
“D등급 균열까지는 쓸만할 거예요. 들어가 있는 마법은 매직 미사일, 쉴드, 에너지 볼트, 3가지. 사용하는 방법은 저번에 알려드렸죠?”
“네. 고맙습니다. 잘 쓸게요.”
“고맙긴요. 계약대로 한 것뿐이죠. 대신 장비 등록하시는 거 잊지 마시고요. 등록 안 하고 사용하다 걸리면 저도 곤란해지니까.”
“꼭 등록할게요.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세진 씨도 회로 제작하느라 고생하셨어요.”
아티팩트를 챙기고 나서려는데 신지아의 휴대폰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퓨이!
‘응?’
“지아 씨. 뭐 보고 계세요?”
“잠시 너튜브 보면서 쉬고 있는데, 인기 동영상 중에 신기한 영상이 있어서 보고 있었어요. 균열에 사는 각성자인데 슬라임을 키우고 있네요.”
“어…….”
휴대폰에 재생되는 영상은 오연우가 찍은 나와 퓨이의 영상이었다.
“여기 나오는 슬라임 엄청 귀엽네요. 세진 씨는 균열에서 슬라임 본 적 있으세요?”
“본 적 있죠.”
“그래요? 슬라임은 전부 영상 속 슬라임처럼 귀엽나요?”
“흠흠. 영상 속에 슬라임이 좀 많이 귀여운 편이네요.”
나는 뿌듯해지는 감정을 숨기며 대답했다.
“어? 그러고 보니 영상 속 각성자랑 세진 씨 목소리가 엄청 비슷하네요.”
움찔!
“그, 그런가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았는데, 세진 씨랑 비슷한 목소리였네요.”
“제 목소리가 좀 평범한 편이어서. 그럼 가 볼게요.”
“네. 수고하셨어요.”
당황한 나는 피하듯이 아티팩트 공방을 떠나왔다. 다행히 수상쩍은 내 행동을 신지아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당황해서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해버렸네.’
딱히 숨겨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거짓말로 반응해버렸다.
영상이 올라갔다는 사실은 오연우에게 연락을 받아서 이미 알고 있었지만, 가까이 지내는 지인이 그 영상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
휴대폰 벨 소리가 울리고.
화면을 확인하니 오연우에게서 온 전화였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휴대폰 너머로 엄청나게 흥분한 오연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대박이에요. 대박!!
“귀 아프다. 작게 말해.”
-형이랑 퓨이 찍은 영상. 지금 인기 급상승 영상으로 올라갔어요. 지금 구독이랑 조회수가 떡상하는 중이에요.
“안 그래도 아는 지인이 그 영상을 보고 있길래 깜짝 놀라는 중이었다.”
조회수, 댓글들 반응, 좋아요, 구독자 숫자 등등.
오연우의 설명이 이어졌지만, 너튜브를 잘 모르는 나로서는 막연히 잘되고 있다는 사실만 알 수 있었다.
“아무튼, 잘되고 있다니 다행이다.”
-형이랑 퓨이 덕분이죠. 정말 고마워요. 형.
“네가 열심히 한 거지 뭐.
-이 은혜 절대 잊지 않을게요. 그리고 메신저로 형한테 피자 선물 넣어놨어요. 퓨이도 잘 먹는 것 같아서 비싼 거로 선물했으니까 퓨이랑 같이 드세요.
“오냐. 잘 먹으마.”
짧은 통화는 다음에 연락하겠다는 인사와 함께 종료됐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겪네. 가면 안 썼으면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알아보고 그랬으려나? 큭큭.’
거리에서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는 상상을 하며 혼자 키득거렸다.
* * *
오연우가 올린 영상은 전세진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넷상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다.
일단 영상의 주된 내용이었던 전세진의 능력, 균열 노숙자에 대한 반응은 별로 없었다.
-능력이 신기하네.
-특이하긴 한데 쓸모는 없는 듯.
-그래도 집값 비싼 서울에서는 의외로 개이득각?
이 정도가 끝이었다면, 영상 댓글란과 여러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주제는 따로 있었다.
-저 슬라임 진짜임?
바로 퓨이의 진실 여부였다.
균열에서 출몰하는 괴물들은 등급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기본적으로 엄청난 호전성을 가지고 있다. 절대 길들일 수 없는 야생의 맹수와 다름없다.
그런데 영상의 슬라임, 퓨이는 강아지와 비교해봐도 손색없을 정도로 주인의 말을 잘 따르고 친근감을 표시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데. 이거 조작한 거 아님?
-아니. 영상을 어떻게 조작했다는 거야.
-CG로 충분히 조작할 수 있지.
-이제 구독자 1만 명 겨우 넘은 채널에서 그 정도 투자를 해서 영상을 만든다고? CG가 애들 장난인 줄 아나.
-왜? 채널 키우고 싶으면 뭔 짓을 못 해.
영상 속 퓨이가 CG로 만들어 낸 존재라는 의견에 갑론을박이 이어졌고. 논란을 주제로 다른 너튜버가 영상을 따로 만들었을 정도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저 영상에 나오는 각성자, 예전에 각성자 커뮤니티에 글 올렸던 균숙자 아님?
-맞는 듯. 아직도 커뮤니티에 글 남아 있음. 근데 그 글에는 괴물을 길들일 수 있다는 말은 없었음. 아무래도 영상이 조작인 듯.
-X발. 멍청이들인가? 고유 능력은 레벨업하면 추가 능력도 충분히 생길 수 있는데.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내용은 완전 초보일 때 올린 글이더구먼.
-팩트) 해외나 국내에서 균열 괴물을 길들인 사례는 공식적으로 보고된 사례가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이런 격렬한 논쟁보다 더 큰 화제가 있었다.
영상에 제대로 모습이 나온 시간은 적지만, 압도적인 귀여움을 보여준 슬라임 퓨이!!
-꺄아! 퓨이 너무 귀엽다!!
-품에 얌전히 안겨서 주인 손길 느끼는 것 좀 봐. 나도 퓨이 만져보고 싶다.
-이 영상을 보고 균열에서 슬라임을 공격할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나만 슬라임 없어 ㅜㅜ
-나도 한 마리 키우고 싶다. 인터넷에 혹시나 찾아봤는데 슬라임을 키워봤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더라.
퓨이의 귀여움에 매료된 수많은 사람이 생겨났고, 15분 남짓한 짧은 영상을 아쉬워했다.
이런 사람들의 반응에 실제로 균열에서 슬라임을 포획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전부 실패로 돌아갔다.
애초에 균열 괴물들은 균열 밖으로 나갈 수 없으므로 헛된 시도였다.
이렇게 전세진이 모르는 사이, 균숙자와 퓨이라는 이름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게 됐다.
정말 가면을 쓰지 않았더라면 전세진의 생각대로 됐을지도 모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