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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균열에 산다-10화 (10/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10화

4. 너튜버 연우 PD

“어? 임진혁 경사님?”

“오랜만입니다. 세진 씨.”

집으로 돌아가던 중, 길거리에서 우연히 임진혁 경사를 만났다. 평소에 보던 경찰 제복이 아니라 사복 차림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요즘 지구대에도 잘 안 들리시고. 많이 바쁘신 모양입니다.”

“그렇게 됐습니다.”

“지구대장님이 요즘 세진 씨가 얼굴 자주 안 비춘다고 서운해하시던데.”

“하하.”

지구대장이 나를 보고 싶어 한다는 말에 어색하게 웃었다.

최근에 아티팩트 공방에 들러 공부하느라 바쁘다 보니, 지구대에 방문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내가 없더라도 탐지 기계가 있으니 걱정할 일은 아니다. 그리고…….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균열 탐지 능력이 아쉬운 거겠지.’

내가 자주 지구대에 들를수록 탐지 기계 유지비도 줄어들고, 근무도 편하니 지구대로서는 내 존재가 아쉬울 수밖에 없다.

특히 절약된 유지비가 지구대장 주머니로 들어가니 가장 아쉬워할 수밖에.

“오늘은 지구대에 안 나가셨나 보네요.”

“네. 쉬는 날이라 체육관에서 운동 좀 하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정말 운동이 끝난 지 얼마 안 됐는지, 두툼한 겨울 외투로 가려지지 않는 위압감이 뿜어져 나왔다.

“세진 씨. 저녁 드셨습니까?”

“아뇨. 아직 안 먹었습니다.”

“근처에 제가 자주 가는 뼈다귀해장국 집이 있는데, 시간 괜찮으시면 식사 같이하시겠습니까?

그의 식사 권유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구대 사람들과 얼굴을 본 지 꽤 됐지만, 개인적으로 식사를 권유하거나 자리를 함께한 적은 없었다.

솔직히 이신우 순경만큼 대놓고 무시하지는 않지만, 다른 지구대 사람들도 살짝 나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약간 대기업에서 하청 직원 대하는 느낌?

그나마 지구대에서 마주칠 때마다 살갑게 인사를 해주는 사람은 임진혁 경사뿐이었다.

개인적으로 임진혁 경사에게 고마움과 호감을 느끼고 있어서 그의 권유가 꽤 기꺼웠다.

“그럼 그럴까요?”

“가시죠. 여기서 얼마 안 걸립니다.”

임진혁 경사는 환하게 웃으며 앞장섰다.

그의 말대로 얼마 가지 않아 뼈다귀해장국 집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모. 여기 뼈다귀해장국 2인분 주세요.”

10평 남짓한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임 경사가 자연스럽게 주문을 했다.

가게 내부에는 아저씨 몇몇 분들이 해장국에 반주를 곁들어 식사하는 중이었다.

나와 임 경사는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갑자기 식사 권유를 하셔서 좀 놀랐습니다.”

“하하. 그렇습니까? 원래 혼자서 오려고 했는데, 우연히 세진 씨와 만나서 한번 권유해 봤습니다.”

“임 경사님은 여기 자주 오시나 봐요?”

“아는 형님이 알려준 가게인데. 그때부터 단골이 돼서 혼자서도 가끔 오는 편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푸짐한 반찬과 함께 펄펄 끓는 해장국이 뚝배기에 담겨 상위에 올라왔다.

“술 한잔하시겠습니까?”

“좋죠.”

그의 반주 제안에 나는 흔쾌히 동의했고, 주문과 동시에 종업원이 소주 1병과 소주잔 2병을 내왔다.

서로의 잔을 채우고 조용한 술잔을 부딪친 뒤, 첫 잔을 망설임 없이 입안에 털어 넣었다.

소주의 쓴맛이 가시기 전에 뜨거운 국물 한 숟가락을 떠먹었다.

소주의 뒷맛과 어우러지는 얼큰하고 진한 국물이 중독된 것처럼 숟가락을 계속 움직이게 했다.

전체적으로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가 계속되었다.

내가 아티팩트 공방에서 일하게 된 이야기. 임 경사가 최근에 근무하면서 겪었던 이야기. 지루하지만 평범한 일상 이야기와 술잔을 천천히 나눴다.

“무척 바쁘게 지내시는데도. 얼굴은 전보다 더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기억나실지 모르겠는데 저와 처음 만났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지셨어요.”

“하하. 부끄럽네요. 그때, 임 경사님 아니었으면 지금도 그 상태였을지도 모르죠.”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

임 경사는 내 말에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얼큰한 국물에 한잔, 뼈에 붙어 있는 두툼한 고기를 간장 소스에 찍어 한잔, 아직 뜨끈한 국물에 밥을 말아 한잔.

잔을 나누다 보니 새로 주문한 두 번째 소주도 바닥을 드러냈다. 약간의 아쉬운 마음이 있었지만, 내일 출근을 위해 서로 참기로 했다.

젊었을 때처럼 신이 나거나 들뜬 기분의 술자리는 아니었지만.

맛있는 음식과 반주 그리고 차분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말 상대가 있는 것만으로 힐링이 되는 느낌이었다.

‘이런. 나도 이제 아저씨가 다 된 건가.’

아저씨처럼 변해가는 취향에 조금 씁쓸하면서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식사가 끝나고 계산은 임 경사가 했다.

“잘 먹었습니다. 임 경사님.”

“아닙니다. 저야말로 외롭지 않게 저녁 식사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같이 식사 한 끼 했을 뿐인데도 왜인지 많이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그럼 저는 내일 출근 때문에 가 보겠습니다.”

작별인사를 하며 뒤돌아서려는 임진혁 경사를 불러 세웠다.

“저. 임 경사님.”

“……?”

“혹시 연락처 받을 수 있을까요? 가끔 이렇게 식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약간 쑥스러워하는 내 모습에, 임 경사는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야 고맙죠.”

그렇게 나와 임 경사는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임 경사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흐흐. 나중에 귀찮다고 연락 안 받으시면 안 됩니다.”

“걱정 마세요.”

“그럼 세진 씨. 다음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임 경사는 작별인사를 남기고 떠나갔다.

오랜만에 술을 마셔서 그런지 알딸딸한 기분과 함께 가슴이 훈훈해졌다.

‘그래. 뭐, 사는 게 별거 있나. 가끔 이렇게 마음 맞는 사람이랑 술 한잔할 수 있으면 되지.’

집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가는데, 휴대폰에서 소리가 울렸다. 본의 아니게 익숙해진 각성자 어플 알람 소리였다.

저번부터 계속해서 연락을 보내는 오연우라는 사람이었다. 너튜브에 채널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는데, 아예 그쪽은 관심이 없다 보니 계속 무시하는 중이었다.

알아서 포기하겠거니 하고 내버려 둔 게 벌써 2주 전이다. 하지만 이 사람은 2주 동안 포기하지 않고 계속 쪽지를 보내왔다.

무척 정중한 부탁이 적힌 쪽지였지만, 관심 없는 사람으로서는 귀찮은 대출 문자나 다름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대로 무시했을 테지만, 오랜만에 마신 술기운이 생각보다 강했는지 적혀 있는 연락처를 눌러 통화 연결을 해버렸다.

어떤 계획적인 행동이 아니라 충동적인 행동에 가까웠다.

통화 연결음이 몇 번 울리기 전에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오연우 씨 연락처 맞습니까?”

-네. 제가 오연우인데. 누구세요?

전형적인 30. 40대의 사기꾼 같은 목소리가 들려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어려 보이는 남자 목소리가 의외였다.

“너튜브 채널 운영하신다고 연락받았는데.”

-균숙자님?!

‘뭐라는 거야. 균숙자?’

-드디어 연락해 주셨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 감사할 건 없는데.”

-균숙자님이 제 채널 컨텐츠에 정말 어울리는 분이라고 생각해서 꼭 모시고 싶었거든요. 혹시 제 채널에 올라온 영상 보셨나요? 저는 주로…….

오연우라는 친구는 자기 혼자 신나서 채널 소개부터, 어떤 종류의 영상을 올리는지, 어떤 식으로 촬영하는지, 줄줄 쏟아내기 시작했다.

술기운 때문인지, 오연우라는 친구 때문인지 두통이 살살 몰려올 때쯤. 내가 말을 끊고 이야기했다.

“저 오연우 씨. 제가 연락드린 건 다름이 아니라, 너튜브인가 뭔가 하는 거 저는 관심 없다고 말씀드리려고 연락드린 겁니다.”

-아…….

“무시하면 알아서 포기하실 줄 알았는데. 아무튼, 더는 이런 일로 연락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내가 통화를 끊으려고 하자 오연우의 절박한 외침이 들려왔다.

-자, 잠깐만요!

“…….”

-저 영상 출연은 하지 않으셔도 되니까. 한 번만 직접 뵐 수는 없을까요? 능력이 너무 특이하셔서 이야기라도 나눠보고 싶은데 안될까요? 부탁드릴게요.

너무 간절하게 애원하는 목소리에 살짝 마음이 흔들렸다.

-저 대학교 다니는 것도 휴학하고, 알바하면서 채널 운영하는 데 정말 힘들거든요. 한 번만 만나주시면 안 될까요? 진짜 시간 많이는 안 뺏을게요. 형, 제발요.

“으음.”

애절하게 형이라 부르는데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게 알바하면서 뭔가 해보려는 친구 같은데. 너무 매몰차게 거절한 건가?’

-혹시 출연료가 필요하시면 제가 어떻게든 마련해서…….

돈까지 마련해 보겠다는 상대방.

오히려 내가 오연우에게 갑질하는듯한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하아. 출연료는 필요 없어요.”

-…….

“좋습니다. 시간이랑 장소는 제가 정해도 되죠?”

-만나주시는 거예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시간이랑 장소 정해주시면 어디든 제가 가겠습니다.

“쩝. 그럼 나중에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통화를 끊기 직전까지도 오연우라는 친구는 감사하다는 말을 계속했다.

원래는 거절하려고 연락한 건데 계획과는 다르게 만날 약속까지 잡아버렸다.

‘뭐, 잠시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그렇게 오연우와 만나기로 약속하고 며칠이 지났다.

* * *

살고 있는 균열 근처의 평범한 어느 카페.

오연우와 만날 약속을 잡고 기다리는 중이다. 적당히 한가한 날을 잡아 근처에 약속을 잡았다.

약속 시각이 20분 정도 남았을 때, 카페 입구로 한 남성이 들어왔다. 귀여운 인상에 밝은 표정이 인상적인 20대 초반 남성이었다.

남자는 카페를 두리번거리더니 나를 발견하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혹시 전세진 님?”

“네. 오연우 씨.”

“반갑습니다. 오연우라고 합니다. 제가 늦은 건 아니죠?”

“아뇨. 조금 한가해서 일부러 일찍 나와 있었습니다.”

첫인사를 끝내고 간단하게 신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대부분 오연우가 이야기하고 내가 듣는 쪽이었다.

오연우는 25살의 대학생이고 지금은 휴학 중이라고 한다. 20대 초반처럼 보였는데 생각보다 나이가 좀 더 많았다.

너튜브 채널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했지만, 관심이 없던 나는 시큰둥하게 듣기만 했다.

신통치 않은 내 반응에도 오연우는 전혀 개의치 않고 열심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근데 저에 대해서는 어떻게 아신 거예요?”

“각성자 커뮤니티에 올리신 글을 보고 알았어요.”

“그거 꽤 예전에 올린 글인데.”

“맞아요. 저도 게시판을 뒤지다가 우연히 찾아낸 거라. 그리고 세진 님이 올리신 글이 꽤 화제가 돼서 댓글도 많이 달렸었거든요.”

“좋은 쪽으로 화제가 된 건 아니었죠.”

“아. 그렇긴 하죠.”

그때 내가 올린 글에 수많은 댓글이 내 하찮은 능력을 애도하거나 비웃는 글들이었다. 물론 소수의 도움을 주려는 댓글들도 있었지만.

“괜찮으시면 형이라도 불러도 될까요?”

“네. 상관없어요. 저번에 전화할 때도 형이라고 부르셨던 것 같은데.”

“그때는 너무 다급해서……. 형도 말씀 편하게 하세요.”

“그럴까?”

서로 호칭도 편하게 바뀌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오연우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순수하고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너튜브 채널을 설명할 때 초롱초롱하게 변하는 눈, 말투에 자연스럽게 섞여 나오는 열정.

최근에 인연을 맺게 된 임진혁 경사나 신지아처럼 자기 일에 신념과 애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낀 건, 이런 사람이 크게 성공한다는 것.

“형. 그 균숙자 능력을 얻게 된 이야기 좀 들을 수 있을까요?”

“잠깐. 아니, 근데 균숙자라는 말은 어디서 나온 거야?”

“커뮤니티에서요. 사람들 전부 형을 균숙자라고 부르던데.”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능력이 ‘균열 노숙자’라서 반박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능력 얻었을 때, 이야기 좀 해주세요.”

오연우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펜과 노트, 녹음기까지 준비해뒀다.

그의 철저한 준비에 약간 부담스러웠지만, 최대한 담담하게 그때 기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업 실패 부분은 좀 껄끄러웠지만 이미 지나간 일. 최대한 있는 그대로 그때 있었던 일을 풀어냈다.

“와. 균열에서 우연히 잠들게 됐는데 능력을 얻으신 거네요.”

“그렇지.”

“그럼 아직도 그 균열에서 사는 거예요?”

“다른 균열로 옮기긴 했지만, 아직도 균열에서 살고 있어.”

“오오오!”

녀석은 눈을 반짝이며 크게 반응했다. 어린애 같은 반응에 나도 모르게 슬쩍 웃음이 났다.

“저어, 형. 그 균열에 한 번만 가 보면 안 될까요? 저 균열에 한 번도 안 들어가 봤는데.”

오연우는 내가 예상한 대로 균열에 가 보고 싶다고 부탁해 왔다.

‘어떻게 할까? 나쁜 녀석은 아닌 것 같은데.’

오연우와 만나기 전에는 이런 부탁 단칼에 거절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그의 첫인상이 괜찮아서 고민이 됐다.

“거절하셔도 돼요. 제가 너무 첫 만남에 너무 부담스럽게 해드렸죠?”

내가 고민하는 모습에 녀석이 주눅 들어 변명했다. 저번 전화 통화 때부터 이런 불쌍한 모습에 말려드는 것 같았다.

정말 이 모든 게 연기라면, 내 인생 최대의 사기꾼을 만난 걸지도 모르겠다.

“대신, 균열에서 먹을 저녁은 네가 사.”

“정말요? 형 고마워요.”

“아! 그리고 집에 잘 먹는 식구 한 명 더 있으니까 넉넉하게 준비해야 할 거야.”

내 마지막 말에 오연우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직접 보면 알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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