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8화
신지아와 나는 그녀가 일하는 공방으로 향했다.
아까 ‘석문 중고’ 가게도 번화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그녀의 공방은 더욱 도시 외곽 쪽에 있는 듯했다.
그렇게 한참 걷다 보니 어느새 도시보다 산이 더 가깝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주변 건물도 점점 드문드문해지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이거 납치당해서 어디로 팔려가는 거 아냐?’
불안해지려고 할 때쯤.
“다 왔어요. 여기가 제가 일하는 공방이에요.”
도착한 공방의 첫인상은 폐공장 느낌이었다. 뭔가 사람의 활기가 느껴지기보다는 유령이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저기 오늘은 일요일이라 아무도 없는 거죠?”
“아뇨. 여기서 저 혼자 일하는데요?”
“아……. 네.”
“그럼 들어가죠.”
나는 신지아를 따라 공방으로 들어가면서 잘못 부탁한 게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공방 내부는 많은 기계와 부품으로 가득했다. 눈에 띄는 건 구석구석 먼지가 내려앉아 사용된 지 꽤 오래돼 보인다는 점.
신지아는 기계들을 지나 곧장 2층으로 향했다. 나도 그녀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은 1층에 비해 작은 기계들이 있었고, 1층에 기계보다 최근에 사용되었는지 깔끔해 보였다.
“여기는 신발 벗고 들어오시면 돼요.”
2층 구석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일반 가정집 같은 공간이 나타났다. 부엌과 작은 거실, 안방으로 보이는 곳까지.
아마 신지아가 사는 곳 같았다.
모자와 외투를 벗고 편한 차림이 된 그녀의 모습을 보고, 내가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방문했다는 사실을 그제야 인지했다.
많이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에 잠시 얼어 있는데. 신지아가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뭐해요. 얼른 안 들어오고?”
나는 그녀가 이끄는 대로 거실에 놓인 탁자 옆에 앉았다. 신지아는 자연스럽게 내 반대편에 자리했다.
내가 슬금슬금 주변을 살피며 어색해하는 사이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마석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공짜로는 안 봐준다고 했죠?”
“네. 그랬죠.”
“지금 당장 비용을 내주셔야겠는데요.”
단도직입적으로 비용 이야기를 꺼내는 모습에 나는 당황했다.
‘매달 빚의 이자와 원금을 갚느라 여유 자금이 없는데. 이거 괜히 마석에 대해 알아보려다 손해만 보는 거 아닌가?’
마음속으로 통장 계좌에 있을 금액을 생각하며 너무 부담되는 금액을 부르지 않을까? 고민하는 사이.
그녀가 탁자 위로 무언가를 꺼내 내 앞으로 내밀었다.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것을 받아들었다.
“금…… 룡…… 각?”
“저는 짜장면 곱빼기요.”
“…….”
“아! 당연히 탕수육 추가인 거 아시죠?”
“…….”
“뭐해요. 빨리 주문 안 하고. 여기 정말 맛집이에요.”
그녀의 재촉에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휴대폰을 들고 종이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네. 금룡각이죠? 짜장면 곱빼기 하나랑 보통 하나랑 탕수육 하나 가져다주세요. 주소요?”
“아티팩트 공방이라고 말하면 알아요.”
“아티팩트 공방으로 가져다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주문이 끝나고 나는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신지아에게 물었다.
“근데 이 정도로 충분해요?”
“충분하죠. 저야 한가해진 시간을 이용해 잠시 마석 측정해드리고 점심 얻어먹는 건데. 그것보다 마석 꺼내봐요.”
“여기 있어요.”
내가 건넨 유리병에서 마석 2개를 꺼내 들며 그녀가 말했다.
“2개는 측정용으로 쓸 거예요. 측정하고 나면 부서지니까 알고 계세요.”
그러고는 곧장 기계가 있는 공방으로 향했다.
“아. 냉장고에 물이랑 음료수도 있으니까, 목마르면 꺼내 마셔요.”
-철컥
그녀가 방을 나서자 이곳에는 나 혼자만 남게 되었다.
뻘쭘하게 앉아서 방안을 둘러보던 중, 벽에 걸린 사진에 눈이 갔다. 사진에는 교복을 입은 소녀와 중년 남성이 사이좋게 나란히 서 있었다.
‘소녀는 지아 씨 같고, 옆에 남자는 아버지인가?’
이리저리 집안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다.
띵-동. 띵-동.
벨소리가 들리고, 밖에 있던 신지아가 문을 열며 외쳤다.
“1층에 도착한 것 같아요. 내려가서 계산하고 와요!”
* * *
정말 금방 배달이 온 듯, 따뜻하게 김이 나는 짜장면과 고소한 기름 냄새가 풍기는 탕수육.
“잘 먹을게요.”
“잘 먹겠습니다.”
짜장면이 보기 전까지는 분명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나무젓가락으로 짜장면을 비비는 사이 나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
‘진짜 맛있다.’
너무 달지도, 느끼하지도 않은 적적한 맛 비율에 탱글탱글한 면발까지. 괜히 신지아가 자신 있게 맛집이라고 말한 게 아니었다.
탕수육은 평범했지만 튀김도 바삭하고, 고기 잡내도 전혀 안 나서 적당히 맛있었다.
신지아와 단둘이 하는 식사의 시작은 어색했지만, 생각보다 맛있는 짜장면 때문에 어색함을 잊고 식사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먹는 짜장면을 정신없이 먹다 보니 어느새 그릇이 바닥을 드러냈다.
짜장면 보통을 시킨 내가 먼저 그릇과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곱빼기를 시킨 신지아는 아직도 식사 도중이었다.
그녀는 어깨 밑으로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머리끈으로 질끈 뒤로 묶고, 조심스럽게 짜장면과 탕수육을 입으로 가져갔다.
오물오물.
짜장면과 탕수육을 야무지게 먹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균열에 혼자 있을 퓨이가 생각났다.
아침 겸 점심을 먹은 탓에 탕수육을 많이 먹지 못했는데, 그녀는 짜장면 곱빼기와 남은 탕수육을 차근차근 먹어나갔다.
‘몸매도 날씬해 보이는데. 저 음식들은 어디로 다 들어가는 걸까?’
아무 생각 없이 식사하는 그녀를 바라보다 고개를 든 그녀와 눈이 딱 마주쳤다.
당황한 나는 허둥대다가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질문을 던졌다.
“혼자 사시는 것 같은데, 아무나 막 집에 초대해도 돼요?”
그녀는 휴지로 입을 한번 닦아내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요? 허튼짓이라도 하시게요?”
“아뇨. 그런 건 아니고…….”
화들짝 놀라며 대답하는 나에게 그녀는 한쪽 팔을 들어 나에게 보여줬다. 팔 손목에 팔찌를 차고 있었다.
“이게 뭔지 아세요?”
“아티팩트?”
“세진 씨는 전투 능력 각성자도 아닌 것 같고, 딱 봐도 각성한 지 얼마 안 되는 초짜인데. 이거 하나면 충분하죠.”
“…….”
뭔가 나를 무시하는 발언 같았지만, 전부 사실이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부탁은 세진 씨가 하셨지만, 저도 그 신기한 마석에 좀 관심이 있었고. 거기다 공짜로 점심도 먹을 수 있으니 좋은 일이죠. 저도 생각 없이 모르는 남자를 집으로 데려온 건 아니에요.”
“그렇군요.”
“거기다 지 씨 할아버지한테 호구 취급당하는 게 좀 불쌍해 보이기도 했고요.”
지나치게 솔직한 그녀의 말에 감사를 표해야 할지 난색을 보여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그녀의 식사도 마무리되었다.
식사 뒷정리를 끝내고.
“커피 드세요?”
“네. 커피 좋죠.”
“그럼 제 것도 좀 타주실래요? 컵은 찬장에 있고 커피랑 커피포트는 옆에 있어요.”
“…….”
“저는 좀 묽게 타주세요.”
“보통 이런 건 집주인이 손님에게 대접하는 게 정상 아닌가요?”
“지금 바로 마석 측정값을 확인해야 해서요. 죄송해요.”
말을 끝마친 그녀는 곧바로 다시 마석을 확인하러 갔다. 얼떨결에 커피 심부름을 받은 나는 어쩔 수 없이 찬장을 뒤져 컵을 꺼냈다.
‘그래도 손님인데. 설마 나 호구 취급당하는 건가?’
아쉬운 사람은 나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커피포트의 끓는 물을 컵에 따르려는 순간.
“말도 안 돼!!”
문밖에서 신지아의 비명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진심이 담긴 비명에 놀라 끓는 물을 쏟을 뻔했다.
“무슨 일이에요?”
급히 문을 열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한 기계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중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는 대뜸 내게 질문했다.
“어떻게 하신 거예요?”
“네?”
“이거. 마석 아니, 마정석! 이거! 이거 어떻게 구하셨어요? 직접 만드신 거예요? 설마 훔치신 건 아니죠?”
중고 가게 노인이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낼 때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던 그녀.
처음 만난 뒤로 항상 한결같은 여유로움을 보여주던 그녀가 다급한 표정으로 나를 붙잡았다.
“일단 진정하시고.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설명 좀 해주실래요.”
“후우, 죄송해요. 너무 흥분해서.”
그녀는 심호흡하면서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래도 쉽사리 진정이 안 되는지 얼굴은 살짝 상기된 상태였다.
“아까 주신 마석 2개의 검사가 끝났어요. 그런데 예상 못 한 결과가. 아니, 상식 밖의 결과가 나와서.”
“상식 밖의 결과요?”
“최대한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면 하나는 마석이 포함한 총 마력을 측정하는 검사, 하나는 마석이 얼마나 일정하고 안정적으로 마력을 방출하는지 측정하는 검사에요.”
그녀는 내게 종이 한 장을 보여주며 말을 이어갔다.
“이게 마석이 포함한 총 마력치. 이것도 좀 이상하지만, 예상한 결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어요. 문제는 여기!”
“오차범위 1%?”
“마석이 방출하는 마력의 오차범위를 나타낸 거예요. 아티팩트에 쓰이는 마정석이 최대 15%, 정말 정밀한 마력 회로에 쓰이는 마정석이 최대 5% 오차범위를 허용해요.”
“……?”
“한 마디로 세진 씨가 가져온 마석은 정말 정밀한 마력 회로에 쓰이는 마정석보다 안정성이 더 뛰어나다는 말이에요.”
신지아는 설명이 길어질수록 점점 다시 흥분하기 시작했다.
“거기다 여기. 마력 전환률 보이세요?”
“89%라고 적혀 있네요.”
“이게 얼마나 대단한 수치인 줄 아세요?”
그녀의 비장함마저 느껴지는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3년 전부터 한 대기업에서 1,000억 원을 마정석 가공 기술에 투자, 연구를 시작했어요. 그들이 발표한 목표는 전환률 50%. 올해 그 연구 결과가 나왔는데 겨우 전환률 45% 정도만 달성했죠. 저조한 연구 결과 때문에 한때 난리였죠.”
나도 기사로 본적이 있는 것 같다. 그것 때문에 주가 엄청나게 내려가고 관련 회사들도 타격을 엄청나게 입었다고 봤었던 기억이 난다.
“솔직히 말해서 이 정도 전환률은 기계 오류라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합리적일 정도에요.”
“그 정도로 대단한 거예요?”
“앞에 설명 안 들으셨어요? 대기업에 쟁쟁한 연구진들이 1,000억과 3년을 투자해도 달성 못 한 결과물을 세진 씨가 가져온 거라니까요. 대단한 정도가 아니라고요!”
마치 남 일을 보는 듯 무덤덤한 내 반응에 그녀가 화를 냈다.
“죄송해요. 이쪽에는 지식이 전혀 없어서 얼마나 대단한 건지 감이 잘 안 왔어요.”
“아뇨. 오히려 제가 죄송하죠. 너무 흥분해서. 근데 그만큼 엄청난 사실인 건 틀림없어요.”
“그럼 이 마석들, 비싸게 팔 수 있는 건가요?”
나는 기대를 하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그건 몰라요.”
“네? 1,000억을 투자할 정도로 엄청 대단한 거라면서요?”
“어쨌든 이 마석은 E등급 마석에 불과해요. 대단한 건 이 마석이 만들어지는 과정이에요.”
그녀는 엄청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만약 이 마석을 만드는 방법을 알고 계신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죠. 그건 정말로 1,000억, 아니, 어쩌면 수조 원에 달하는 가치를 지녔을지도 몰라요.”
“…….”
“다시 한번 더 물어볼게요. 이 마석. 어디서 구하신 거예요? 아니, 어떻게 만드신 거예요?”
신지아는 이미 내가 그 마석을 만들어 냈다고 확정을 지은 듯했다.
그녀의 질문에 정답의 존재를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퓨이!
지금쯤 전기장판에 몸을 지지며 귤 까먹고 있을 퓨이를 생각하니, 진지한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왜 웃으세요?”
“흠흠. 죄송합니다. 그 마석 어떻게 구했느냐면요.”
내가 마석에 대해 입을 열려고 하자 그녀가 심각한 표정으로 내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 오래 이야기했더니 목이 마르네.”
“……?”
“커피 한잔 마시면 딱 좋겠네요.”
그녀가 샐쭉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진짜 이럴 거예요?”
나는 그녀의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싱글거리며 웃었다.
이미 전세는 뒤집혔다.
뭐 어쩌겠는가? 아쉬운 사람이 커피를 타야지.
신지아는 결국 커피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