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7화
3. 마석 판매
공장 일을 쉬는 일요일.
아침 일찍 목욕탕을 다녀오고 퓨이와 아침 겸 점심을 간단하게 챙겨 먹었다. 메뉴는 근처 버거왕에서 사 온 햄버거 세트.
햄버거를 처음 맛보는 퓨이는 꼬리로만 잡기 힘들어 내가 도와줘야 했다. 조금 먹기 불편했지만 맛있었는지 퓨이는 만족한 표정이었다.
식사 뒷정리도 깔끔하게 끝낸 뒤, 본격적으로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퓨이야. 나갔다 올게.”
내 목소리에 텐트 안에 깔린 이불이 꾸물거리더니, 이불 안에서 퓨이가 뿅 하고 나타났다.
“퓨우우우.”
퓨이는 전기장판의 뜨끈한 기운에 반쯤 풀린 얼굴로 내 말에 대답했다. 녀석은 텐트에 전기장판을 들여온 뒤로 저렇게 이불 안에서 뒹구는 걸 좋아하게 됐다.
“전기장판 너무 뜨거우면 온도 조절하고. 할 줄 알지?”
“퓨! 퓨!”
퓨이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내 말에 대답했다. 그리고 꼬리를 쭉 내밀어 바구니에 담긴 귤을 하나 꺼내 까먹기 시작했다.
몸은 절대로 이불 밖으로 나오지 않는 점이 포인트.
“하하. 참나.”
하는 짓만 보면 누가 봐도 일요일 날 늘어져 이불 안에서 귤 까먹는 사람이다.
이게 사람인지 슬라임인지.
팔자 좋게 늘어진 퓨이를 뒤로하고 균열 입구를 나섰다.
* * *
습격을 막아내고 2주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혹시 또 다른 습격이 올까 봐 긴장했지만, 또 다른 습격은 오지 않았다.
습격을 막아내고 보상으로 얻은 ‘나무 톱니바퀴’로 고민 끝에 전력공급 옵션을 선택했다.
그 결과 텐트에는 2개의 콘센트가 생겨났다. 어디서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무료로 전기가 공급되는 콘센트였다.
전력이 공급되자마자 추운 밤을 버텨낼 전기장판과 텐트에 들어갈 만한 작은 냉장고를 구매했다.
전기 콘센트 2개가 생겼을 뿐인데 텐트에서의 삶이 훨씬 윤택해진 기분이었다.
습격 후에 생긴 또 다른 변화.
퓨이의 마석 추출!
2주일 동안 지구대 사람들을 따라다니면서 꾸준히 퓨이의 마석 추출을 사용한 결과.
2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 번째. 마석 추출은 괴물의 시체뿐만 아니라 잡동사니 등급의 아이템, 심지어 균열 벽면에 붙어 있는 발광석에서도 추출이 가능했다.
잡동사니 등급의 아이템은 대부분 균열에 버리고 가기 때문에 더욱 구하기 쉬웠다.
두 번째. 퓨이의 마석 추출을 어느 곳에 사용하든 똑같은 크기와 모양새의 마석이 나왔다.
인터넷에서 틈틈이 정보를 찾아봤을 때.
마석의 크기와 모양새는 천차만별인 경우가 많고, 심지어 E등급 균열에서는 마석이 아예 잘 나오지 않는 편이라고 한다.
퓨이가 만들어 낸 마석은 오히려 마정석에 가까웠다.
마정석은 마석을 정제해서 불순물을 없애고 모양, 입자 배열을 인공적으로 재배열 시켜 만든 것이다.
내 가방 속 유리병에 똑같은 크기와 모양을 가진 마석 30개와 균열핵 1개가 들어 있다.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가져온 퓨이의 마석에는 뭔가 있을 것만 같았다.
일요일 일찍부터 외출을 준비한 이유가 이 마석들에 대해 알아보고 가능하면 판매하기 위해서다.
낮은 등급의 균열에서 나온 마석이기 때문에 취급하는 곳이 많지 않았다.
끈기를 가지고 인터넷에 수소문한 끝에 낮은 등급의 마석도 취급하는 중고 물품 가게를 찾을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30분. 도보로 15분.
목적지에 가까이 갈수록 높은 빌딩은 멀어지고, 주변은 온통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이는 낮은 건물들로 가득했다.
약간 후미진 골목을 돌아다닌 끝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석문 중고
-마석. 균열핵. 고장 난 중고 아티팩트.
-잡상인 사절. 흥정 사절.
허름해 보이는 간판과 외관을 가진 가게.
‘당기시오’라는 팻말이 붙은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은 수많은 기계 부품들이 가득 차 있었다. 엄청나게 많은 양이었지만 꽤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다.
좁은 통로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서자, 계산대에 앉아 기계 부품을 만지작거리는 노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오는 나를 힐끔 보더니 약간 퉁명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물건 팔러 왔어?”
“아, 예. 마석이랑 균열핵 하나 가져왔습니다.”
노인은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슬쩍 훑어보더니 만지던 기계 부품을 내려놓고 말했다.
“꺼내봐.”
나는 가방에서 마석이 담긴 유리병과 균열핵을 꺼내 계산대 위에 올려놨다.
그는 손도 대지 않고 균열핵을 한번 쓱 쳐다보고 말했다.
“E등급 균열핵은 3만 원. 마음에 안 들면 다시 가져가.”
“…….”
이번에는 노인이 유리병 속에 마석을 하나를 꺼내려는데.
“할아버지. 제가 저번에 부탁한 거 안 들어왔어요?”
가게 구석에서 갑자기 젊은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들은 노인이 눈에 띄게 움찔했다.
“할아버지. 제 말 안 들려요?”
“들린다. 손님 왔으니 조용히 둘러봐.”
“제가 부탁한 물건 안 들어왔냐고요.”
“안 들어왔어!”
노인은 약간 귀찮다는 듯 일방적으로 여자와의 대화를 끝냈다.
그리고 다시 유리병 속에 마석을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살펴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눈으로만 확인하다가, 서랍에서 돋보기를 꺼내 본격적으로 마석을 살폈다.
엄지손가락보다 약간 더 큰 마석을 이리저리 살펴보는 노인.
살펴보던 마석을 내려놓더니, 이번엔 유리병에서 여러 개의 마석을 한꺼번에 꺼내 살피기 시작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노인은 살펴보던 마석을 내려놓고 내 눈치를 슬쩍 봤다.
“……?”
“혹시 마석 판매하는 게 처음인가?”
“예? 네. 그렇습니다.”
갑작스러운 노인의 질문에 얼떨결에 대답했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말투는 아까보다 훨씬 상냥해졌다.
“크흠. 보니까 E등급 균열에서 나온 마석이구먼. E등급에서는 마석이 원래 잘 안 나오는데, 용케 이만큼 모았어.”
“네. 그렇죠.”
“E등급 마석은 거의 취급 안 하는 거 알고 있지? 가진 마력의 양도 적고 쓰임새도 없어서 거의 쓸모가 없지.”
어느 정도 인터넷에서 찾아본 내용과 비슷했다. E등급 마석은 원래 취급을 잘 안 한다. 그래서 이런 후미진 곳에 있는 가게까지 찾아온 거고.
“그래도 모양도 괜찮고, 불순물도 별로 없는 것 같고. 처음 우리 가게에 오는 손님이니. 내가 인심 좀 쓰지. 개당 만 원 어떤가?”
“만 원이요!?”
“그래. 이 정도 가격으로 딴 데서는 절대 못 팔 거다. 어때? 만 원에 팔겠어?”
만 원이라니!
찾아보기로는 E등급 마석은 2천 원, 3천 원 선에서 거래가 된다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높은 매입 가격에 의심스러웠지만, 내 입장에서 손해 볼 일이 없는 거래라 생각되었다.
“뭐길래 E등급 마석을 만 원에 사요. 잠깐 줘봐요.”
구석에서 패딩과 청바지 차림에 모자를 눌러쓴 여성이 튀어나왔다. 그녀는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와 노인이 들고 있던 마석과 돋보기를 뺏어 들었다.
마석을 살펴보던 여자가 살짝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마석 맞아요? 마정석 아니에요? 입자도 균일하고 모양도 좋고. 불순물도 거의 없네.”
“네가 뭘 안다고 그래?”
“제가 할아버지보다 더 잘 알 걸요? 이건 제 전문 분야니까.”
“갑자기 웬 오지랖이야. 이리 내!”
노인이 신경질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돋보기만 겨우 뺏을 수 있었다.
그녀는 계속 마석을 살펴보다 내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이거 정말 E등급 균열에서 나온 거예요?”
그녀는 모자에 가려져 있던 투명하고 커다란 두 눈으로 내 눈을 직시했다. 나는 살짝 부담스러웠지만, 시선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왜 남의 장사에 훼방을 놔? 살 물건 없으면 어서 내 가게에서 꺼져!”
“이상하잖아요? E등급 마석을 만 원에 사질 않나, 처음 온 손님한테 가격을 잘 쳐준다고 하질 않나. 보통 가게에 처음 오면 등쳐먹으려고 하잖아요.”
“내가 언제 등쳐먹었다고 그래!”
“당신도 잘 생각해봐요. 이 할아버지가 처음 오는 손님한테 그렇게 너그럽게 선심 쓸 것처럼 보여요?”
“아니. 이 년이?”
그녀의 말에 노인이 얼굴이 붉어지며 고함을 질렀다. 그녀는 그런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할아버지 저한테 부품 안 팔려고 하는 것도 저한테는 바가지 못 씌워서 그렇잖아요.”
“내, 내가 언제?”
살짝 노인이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제가 몇 년째 이 가게를 다니는데. 그것도 모를 것 같아요? 그러지 좀 마세요. 아버지 때부터 단골인데.”
“…….”
“다음에 제가 부탁한 물건 없으면 정말 화낼 거예요.”
“물건이 들어와야 팔지.”
“없으면 만들어 내세요. 또 올게요.”
“다신 오지 마라! 이년아!”
“네. 할아버지도 잘 지내세요.”
모자를 쓴 여자는 여유롭게 손까지 흔들며 가게를 나갔다. 노인은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는지 콧김을 거칠게 내뿜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봤다.
잠시 후 노인의 흥분이 가라앉고.
“…….”
“…….”
가게 안은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크흠. 큼. 그래. 거래는?”
“죄송합니다.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나는 계산대에 올려둔 균열핵과 마석을 챙겨 들고 다급히 가게를 나섰다.
등 뒤에 가게 출입문 사이로 노인의 아쉬운 한숨 소리가 들린 듯했다.
나는 다급히 가게를 뛰어나와 모자 쓴 여자를 발견하고 불러세웠다.
“저기요!”
“……?”
다행히 빨리 가게에서 나온 덕에 멀지 않은 곳에서 그녀를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왜 그러시죠?”
“혹시 제가 가진 마석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 해서. 시간 괜찮으시면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이것 참…….”
그녀는 내 부탁에 한 손으로 볼을 긁으며 살짝 난감하다는 듯이 반응했다.
“안 될까요?”
“저도 정확한 건 아니에요. 그냥 평범한 마석들에 비해서 특별해 보여서 말을 꺼내 본 것뿐이에요.”
“…….”
“물론 지 씨 할아버지 놀려주려고 한 것도 있지만, 저도 그 마석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하고 말한 건 아니에요.”
그녀는 계속 거부의 의사를 표했지만, 나는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았다.
단순한 감일 뿐이지만 눈앞의 여자가 이 마석에 대해서 뭔가 알아 내줄 것만 같았다.
“어휴. 오지랖 부렸으면 책임을 져야겠죠. 시간이 조금 걸릴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요?”
“오늘 안에만 끝나면 괜찮습니다.”
“좋아요. 저도 부품을 못 구해서 오늘 한가할 것 같으니 한 번 봐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고개 숙여 인사하는 내 눈앞에 가느다란 손가락들이 보였다.
“이름은 신지아. 작은 아티팩트 공방에서 일해요.”
“아. 저는 전세진이라고 합니다.”
나도 내민 그녀의 손을 맞잡으며 인사했다. 짧게 손을 흔들며 통성명을 끝내고, 그녀가 먼저 어디론가 향했다.
앞서 걷던 그녀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 공짜로 해주지는 않을 거니까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