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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균열에 산다-5화 (5/263)

나 혼자 균열에 산다 5화

아직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실감하지 못하는 도중.

눈앞의 슬라임의 상태창이 떠올랐다.

《상태》

퓨이 Lv.1

Exp(0/30)

능력치 【체력 4】【근력 3】

【민첩 3】【지능 6】

【마력 4】【저항 2】

스킬 : [산성용액 Lv.1], [슬라임젤 Lv.1]

특성 : [없음]

친밀도 : 5%

‘정말 펫으로 등록된 건가?’

천진난만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슬라임.

조금 전까지 죽일 듯 내 팔을 물어뜯던 녀석이 맞나? 싶을 정도로 순수한 눈빛이었다.

“그러니까. 퓨이?”

“퓨이! 퓨이!”

슬라임은 자기를 부른다는 사실에 기쁜지 통통 튀어 나에게 다가왔다. 갑자기 다가오는 녀석의 움직임에 놀라 움찔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녀석은 멈춰 서서

-왜 그렇게 놀라는 거예요?

라는 의문의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표정을 보고 과도하게 겁먹은 자신이 살짝 민망해졌다.

확실히 아까 전과 같은 적의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살짝 안심하고 긴장이 풀리자 아까 공격받았던 오른팔의 통증이 느껴졌다.

“으윽.”

화상을 입은 것처럼 벌겋게 부어오르고, 엄청 쓰라린 통증이 느껴졌다.

‘구급상자도 없는데 어쩌지. 응급실에라도 가야 하나?’

생각보다 심한 통증에 심각하게 응급실행을 고민했다.

“퓨이?”

내가 고민에 빠져 있는 사이, 바로 옆자리로 다가온 퓨이가 상처 입은 오른팔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슬금슬금 내 오른팔에 아주 가깝게 다가오더니 어찌해볼 틈도 없이 내 오른팔을 물었다.

-덥석!

“으헉!”

또다시 공격받는 줄 알고 놀라 괴상한 소리를 냈다. 강제로 퓨이를 떼어내려고 왼손을 움직이려는 순간. 눈앞에 알람이 생겨났다.

[‘슬라임젤 Lv.1’ 효과를 받습니다.]

[외상이 치료되고, 통증이 가라앉습니다.]

“어어?”

알림을 보고 얼이 빠져 있는 사이, 오른팔의 통증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통증은 완전히 사라지고 약간 간지러운 느낌만 남게 되었다.

통증이 사라지자 퓨이가 내 팔에서 떨어졌다. 아직 오른팔이 울긋불긋했지만 붓기도 많이 빠져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눈앞의 슬라임이 내 팔을 치료해 줬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신기했다.

애초에 퓨이 때문에 다친 팔이었지만, 그래도 고마운 마음에 녀석을 쓰다듬으며 감사를 표했다.

“고마워. 퓨이야.”

“퓨이∼ 퓨이!”

내 인사에 퓨이가 들떠서 검은 줄에 물방울이 달린 꼬리를 흔들며 기뻐했다.

손에서 느껴지는 녀석의 말랑하면서 부드러운 느낌이 기분 좋아서 계속 만지작거렸다.

[친밀도가 상승했습니다. (현재 10%)]

스킨십 덕분인지 퓨이의 친밀도가 상승했다. 퓨이도 내 손길이 기분 좋은지 눈을 감고 가만히 내 손길에 몸을 맡겼다.

-꼬르르륵

긴장이 완전히 풀린 덕분인지, 조용하던 배에서 배고픔을 알리는 아우성이 들려왔다.

한바탕 난리를 벌였던 탓에 아까보다 더 배고파진 것 같았다.

먹을 것 좀 사기 위해 나갈 준비를 했다. 아까 전의 난리로 어질러진 텐트와 주변 물건들을 정리하고 외투를 껴입었다.

내 행동을 지켜보던 퓨이는 입구로 향하는 내 뒤에 따라붙었다.

“기다리고 있어. 잠시 나갔다 올 테니까.”

“퓨이?”

“금방 다녀올게. 말썽부리지 말고.”

“퓨이!”

신기하게도 내 말을 이해한 것인지 퓨이는 나에게서 떨어져 텐트로 돌아갔다. 그 모습이 왠지 귀여워서 피식 웃음이 났다.

편의점에 도착한 나는 평소처럼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챙겼다. 챙긴 물건을 가지고 계산대로 향하려다 불현듯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흠. 슬라임은 뭘 먹여야 하는 거지?’

균열에서 기다리고 있을 퓨이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첫 만남은 최악이었지만, 펫으로 지정된 뒤에 보여주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뭔가 챙겨주고 싶었다.

급한 대로 휴대폰을 이용해 검색을 해봤다.

‘슬라임…… 먹이…….’

정보의 바다라고 불리는 인터넷에서도 슬라임 먹이에 관한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균열에서 출현하는 괴물을 펫으로 삼은 일 자체가 없는 듯했다.

어쩌면 퓨이는 세계 최초의 펫 일지도 모르는 상황.

나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편의점 안을 둘러봤다. 아무리 둘러봐도 뭘 사줘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 한 제품 판매대에 눈길이 멈췄다.

바로 애완견, 애완묘 제품들을 모아놓은 곳이었다. 사료부터 간식까지 진열돼 있었다.

‘그래도 사람 음식보다는 이런 게 덜 해롭지 않을까?.’

슬라임을 강아지나 고양이에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꽤 합리적인 생각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며 강아지, 고양이 간식을 집어 들었다.

퓨이에게 줄 간식까지 계산을 끝내고 곧장 균열로 돌아왔다. 내가 균열에 들어가자마자 텐트 앞에 있던 퓨이가 날 반겨줬다.

“퓨이!”

몸을 공처럼 튀기며 내 앞에 도착한 퓨이는 온몸으로 내게 반가움을 표시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물을 끓이기 위해 불 위에 주전자를 올려놓고, 편의점에서 사 온 강아지 간식을 하나 꺼내 퓨이에게 뜯어줬다.

“자!”

“…….”

퓨이는 강아지 간식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살짝 민망해진 나는 서둘러 고양이 간식을 꺼내 들었다. 통조림 뚜껑을 따 퓨이 앞에 내려놓았다.

“…….”

이번에도 퓨이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왜 이런 걸 자꾸 주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어쩔 수 없이 개, 고양이 간식을 한쪽으로 치워야 했다.

-삐이이익!

불 위에 올려두었던 주전자가 끓기 시작했다. 서둘러 컵라면 포장을 뜯어 분말 스프를 뿌리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그리고 컵라면 위에 삼각김밥을 살포시 얹어 놓았다.

개와 고양이 간식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던 퓨이가 컵라면과 삼각김밥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먹고 싶어?”

“퓨이!”

내 물음에 퓨이는 긍정의 소리를 냈다.

컵라면 열에 따뜻해진 삼각김밥의 포장을 뜯어, 손으로 절반을 잘라 퓨이의 입가에 가져다줬다.

잠시 삼각김밥을 살피던 퓨이는 덥석 삼각김밥을 집어삼켰다.

오물오물.

퓨이는 입안에 삼각김밥을 가득 물고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도 삼각김밥 반쪽을 먹기 시작했다. 삼각김밥을 다 먹을 때쯤 미리 물을 부어놨던 컵라면이 다 익은 것 같았다.

컵라면의 뚜껑을 열고 젓가락으로 한입 먹으려는데.

“퓨우우.”

“…….”

삼각김밥은 이미 다 먹어버린 퓨이가 한층 더 강렬한 눈빛으로 컵라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완전히 컵라면에 시선을 뺏겨버린 퓨이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 미소가 지어졌다.

젓가락에 걸린 라면을 후후 불어 식힌 다음, 조심스럽게 퓨이의 입안에 넣어줬다.

어미 새가 가져다주는 먹이를 기다린 새끼 새처럼 컵라면을 받아먹은 퓨이.

“맛있어?”

끄덕끄덕.

컵라면도 마음에 들었는지 온몸으로 내 질문에 대답을 해줬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나도 컵라면을 한 입 떠먹었다.

그렇게 퓨이와 컵라면을 국물까지 맛있게 나눠 먹었다. 양은 부족했지만, 왠지 기분은 충만한 기분이 들었다.

“흐아암.”

약간의 포만감 때문인지 바로 졸음이 몰려왔다. 시간을 보니 벌써 밤 11시를 넘어 12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먹었던 컵라면과 주변을 대충 정리하고 잠을 잘 준비를 했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자리에 누웠을 때, 퓨이가 살금살금 내 곁으로 다가왔다. 누워 있는 상태로 고개를 들어 퓨이를 바라봤다.

나와 눈이 마주친 퓨이는 마치 아주 조심스럽게

-여기서 자도 괜찮아요?

라고 말하는 듯했다.

나는 왼쪽 팔로 퓨이를 내 품으로 끌어왔다. 부드럽게 녀석을 쓰다듬으며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말을 했다.

“잘자 퓨이야.”

“퓨이!”

내 인사에 답한 퓨이는 내 품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누군가와 같이 잠을 자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비록 슬라임이지만,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잠자리가 더 아늑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나는 부드럽고 말랑한 퓨이의 몸을 쓰다듬다가 스르륵 잠들었다.

* * *

탐색한 균열의 위치를 표시하던 도중 옆으로 다가온 임진혁 경사가 말을 걸었다.

“세진 씨 요즘 표정이 좋은데, 무슨 좋은 일 있어요?”

“아뇨. 별일 없어요.”

내 대답에 자리에서 서류작업을 하던 경찰관이 짓궂은 표정으로 말했다.

“에이. 별일 없는 거치고는 최근에 표정이 엄청나게 밝아졌는데. 여자친구라도 생긴 거 아냐?

“그런 거 아니에요. 균열 탐색 끝났으니 저는 이만 가 볼게요.”

“수고했어요. 세진 씨.”

“아무튼, 세진 씨 요즘 보기 좋아.”

지구대 사람들과 짧은 인사를 나누고 밖으로 나왔다. 일과를 끝내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공원 균열로 향했다.

퓨이와 함께 균열에 살게 된 지 벌써 1주일.

요즘은 균열로 향하는 길이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들뜨는 기분이다.

“퓨이야. 나 왔다.”

“퓨이!”

퇴근해 균열에 돌아오자마자 퓨이가 나를 향해 뛰어와 내 품에 쏙 안겼다. 이제는 퇴근해 돌아올 때마다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일상이다.

1주일 동안 크고 작은 것들이 변했다.

첫 번째 변화로 보금자리 스킬이 Lv.3가 되었다.

[보금자리 생성 Lv.3](0/3)

-소유권을 얻은 균열에 보금자리를 생성합니다.

-보금자리에 펫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1/1)

↳ 보금자리 생성 후 균열에서 15일 지내기 (달성)

-보금자리에 손님을 초대할 수 있습니다. (0/4)

Lv.2의 1∼2인용 텐트는 퓨이와 함께 지내기 너무 비좁아 SP 3을 투자해서 Lv.3의 4∼5인용 텐트로 업그레이드했다. 지금은 내부 공간이 넓어져 꽤 여유로워졌다.

“퓨이야 배고프지? 빨리 저녁 준비해 줄게.”

두 번째 변화로 밥을 잘 챙겨 먹게 되었다.

퓨이가 이곳에 오기 전에는 아침은 물론, 저녁도 굶는 날이 많았다. 하지만 퓨이가 온 뒤로는 굶는 날이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

물론 고향 집밥처럼 밥, 국, 반찬을 챙겨주지는 못한다. 오늘도 라면을 끓여줄 뿐이다.

좀 더 맛있고, 다양한 음식을 퓨이에게 먹여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아직 여유가 없다.

균열에서 가장 자주 해 먹는 라면이다 보니 익숙하게 라면을 끓여냈다.

팔팔 끓는 라면을 그릇에 담아 퓨이의 앞에 놔주었다.

“뜨거우니까 조심해서 먹어.”

“퓨이!”

퓨이는 꼬리를 쭉 내밀어 어린이용 포크를 집어 들었다. 꼬리 끝에 달린 물방울 부분을 이용해 포크를 움직이며 꽤 능숙하게 라면을 떠먹기 시작했다.

처음 퓨이가 꼬리를 이용해 스스로 식사를 하는 모습에 꽤 놀랐지만, 지금은 익숙한 균열의 식사 풍경이 되었다.

퓨이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뒤늦게 내 몫의 라면을 그릇에 떠서 먹기 시작했다.

마지막 세 번째 변화는 어쩌면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생활에 활기가 생겨났다는 점이다.

모든 것을 잃고, 큰 빚을 지고.

각성으로 뭔가 변할 거라는 기대도 점점 사라지고.

그런 상황 속에 나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아무도 없는 균열에 돌아와서 하는 생각은 온통 부정적인 생각뿐이었다.

포기할까? 포기하면 편해지지 않을까?

밤새 이런 생각으로 잠 못 이루다 다시 힘겨운 일터로 향하는 악순환.

하지만 퓨이가 이곳으로 온 뒤부터는 달라졌다.

균열에서 퓨이와 함께하는 시간 만큼은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냥 같이 밥 먹고, 장난치고, 같이 잠드는 평범한 일상.

그것만으로도 나에게 많은 힘이 되었다. 정말 혼자 사는 사람이 왜 애완동물을 키우는지 절실히 알 수 있었다.

퓨이 때문에 어려운 상황이 나아진 건 아니지만, 적어도 포기하고 싶다고 하지 않게 되었다.

“퓨이?”

어느새 그릇을 싹 비운 퓨이가 내 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냄비에 남은 라면을 싹 긁어 퓨이의 그릇에 다시 담아주었다.

다시 열심히 포크를 움직여 라면을 먹는 퓨이.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르다는 말을 몸소 느끼고 있었다.

라면 먹는 슬라임을 보는 것만으로도 안정이 되는 사람의 마음이란, 오묘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것인지.

저녁 식사를 마치고 뒷정리를 시작했다. 수도 시설이 없는 균열에서 설거지를 처리하는 일은 꽤 번거롭다.

균열 근처에 있는 공원 화장실 물을 떠서 해결해야 하는 데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설거지와 뒷정리를 마치고 잠시 텐트에 누웠다. 퓨이는 내 옆에서 핸드폰 게임에 정신이 팔린 상태.

꼬리를 이용해 화면을 터치하는 모습이 꽤 능숙하다. 슬쩍 게임 점수를 보니 고득점 중이었다.

능력치 중에 괜히 지능이 제일 높은 게 아닌 것 같다.

‘휴대폰 배터리 너무 쓰면 안 되는데.’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균열이다 보니 휴대폰 충전도 마음대로 하기 힘들다. 보통은 공장 휴게실에 눈치를 보며 충전을 하고 있다.

그렇게 퓨이가 휴대폰 게임을 하는 것을 말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삐익-삐익-]

불길한 경고음이 들렸다.

그리고 평소와 전혀 다른 느낌의 알람이 눈앞에 떠올랐다.

[‘균열 탐색 Lv.1’ 능력으로 위험을 감지합니다.]

[곧 습격이 있을 예정입니다. 전투를 대비하십시오.]

[습격까지 남은 시간 : 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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