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균열에 산다 2화
1. 각성! 그런데?
“끄응.”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앓는 소리와 함께 힘겹게 눈을 떴다.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동굴 천장에 빛을 내는 발광석이었다.
‘뭐지?’
시야에 들어오는 균열 내부의 모습을 보면서 몸을 완전히 일으키자.
툭.
나의 몸을 덮고 있던 경찰 외투가 바닥에 떨어졌다. 떨어진 외투를 보고 자연스럽게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차례로 기억해냈다.
‘아. 어제 균열 안에서 잠들었었지…… 잠깐?! 아직 균열 안이라고?’
이상하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어 주변을 다시 둘러보았다. 의심할 여지 없이 어젯밤에 보았던 균열 내부의 모습이었다.
‘분명 30분 안에 균열은 소멸한다고 했었는데.’
황급히 주머니 안에 있던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5시.
균열 내부라 통화권은 잡히지 않지만, 휴대폰 화면에 시간은 정확히 알려주고 있었다.
어제 처음 균열에 들어왔을 때가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으니, 벌써 5시간이 넘게 균열 안에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눈앞에 이상한 문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당신은 각성했습니다.]
[당신의 고유 능력은 ‘균열 노숙자’입니다.]
[새로운 스킬 ‘균열 탐색 Lv.1’을 얻었습니다.]
[새로운 스킬 ‘균열 획득 Lv.1’을 얻었습니다.]
[새로운 스킬 ‘보금자리 생성 Lv.1’을 얻었습니다.]
“……균열 노숙자?”
정확히 고유 능력이 뭔지 모르겠지만, 균열 노숙자라는 말의 어감이 영 좋지 않았다.
어찌 보면 내가 처한 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도 그렇지 능력이 노숙자라니!
손을 휘저어 눈앞의 문장들을 없애고 나니 새로운 문장이 눈앞에 나타났다.
《상태》
전세진 Lv.1
Exp(0/100)
고유 능력 : 『균열 노숙자』
능력치 【체력 10】【근력 8】
【민첩 6】【지능 12】
【집중 11】【저항 7】
추가 능력치 : 2 Point
《스킬》
[균열 탐색 Lv.1](0/1)
-집중30 필요.
-E등급의 균열을 탐색할 수 있습니다.
↳ 30개의 균열을 탐색하기 (0/30)
[균열 획득 Lv.1](0/1)
-조건을 만족하면 균열의 소유권을 얻을 수 있습니다.
-현재 최대 소유할 수 있는 균열 개수 : 2개
↳ 균열 획득 10번 사용하기 (0/10)
[보금자리 생성 Lv.1](0/1)
-소유권을 얻은 균열에 보금자리를 생성합니다.
↳ 보금자리 생성 후 균열에서 15일 지내기 (0/15)
추가 SP : 3 Point
차례로 떠오르는 상태창과 스킬창을 대충 훑어보았다. 능력의 이름대로 뭔가 엄청난 능력을 얻은 것 같지는 않았다. 다시 한번 손을 휘저어 상태창과 스킬창을 닫았다.
[‘균열 획득 Lv.1’ 조건을 완료했습니다. (균열에 15분 머물기)]
[현재 입장한 균열(E등급)의 소유권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균열의 소유권을 획득하시겠습니까? (Y/N)]
연이어 떠오르는 문장들로 어지러운 상황. 조금 귀찮아진 나는 마지막 질문에 대충 대답했다.
“그래. 획득할게.”
[균열(E등급)의 소유권을 획득합니다. (1/2)]
[경험치 5 Exp를 획득합니다.]
약간의 경험치와 함께 소유권을 획득했다는 문장이 나타났다. 그런데도 균열에 딱히 변화가 생기거나 하지는 않았다.
[‘보금자리 생성 Lv.1’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이 균열에 보금자리를 생성하시겠습니까? (Y/N)]
보금자리라.
살짝 기대하면서 질문에 대답했다.
“그래.”
나의 대답과 동시에 눈앞에 범위가 표시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스킬을 사용할 장소를 지정하는 절차인 것 같았다.
균열 구석 적당한 곳을 찾아 범위를 지정하자 푸른 빛과 함께 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신기한 현상에 애처럼 두근대며 지켜보았다.
곧이어 푸른 빛이 사라지고 눈앞에 보금자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미친…….”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확인하자 나도 모르게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바닥에는 신문지 몇 장이 깔려 있고, 그 위에는 종이상자가 대충 쌓여 벽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보금자리라고 부르기에는 심히 초라하고, 허름한 모습이었다.
어찌 보면 ‘균열 노숙자’라는 능력에 가장 잘 어울리는 형태였지만, 어이가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이 상황이 누군가 나를 놀리기 위한 몰래카메라가 아닐까? 생각하며 현실을 부정하고 있을 때, 다시 한번 눈앞에 문장이 나타났다.
[SP를 사용해 스킬의 레벨을 올릴 수 있습니다. 또 스킬의 숙련도 임무를 완료할 시, 추가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마치 나에게 너무 실망하지 말라는 듯한 느낌의 문장이었다. 나는 그 말에 따라 스킬창을 열어 SP 1을 사용해 ‘보금자리 생성’의 스킬 레벨을 올려주었다.
[‘보금자리 생성’ 스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다시 한번 보금자리는 푸른 빛에 휩싸였다.
잠시 후 푸른 빛이 사그라들고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나마 처음보다는 괜찮아진 모습이었다.
신문지와 종이상자는 사라지고, 약간 허름해 보이는 1, 2인용 텐트로 변해 있었다.
극적인 변화는 아니었지만 방금 전보다는 훨씬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살짝 텐트 안으로 들어가 누워보았다. 생각보다 아늑한 느낌이 들어 나쁘지 않았다.
추운 겨울 갈 곳 없어 거리를 전전하는 신세에 이 정도면 호사라고 할 만했다.
어제 잠들기 직전에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이대로 계속 있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쩝. 아무리 그래도 균열 노숙자라니.’
각성이라는 현상이 만약 신이 행하는 일이라면. 신이라는 존재는 정말 자비로우면서, 성격 고약한 존재임이 틀림없는 것 같다.
멍하니 텐트에 누워 휴대폰의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5시 40분.
어제 오전 8시까지 근무한다던 임 경사의 말이 머리에 스쳤다. 아직 많이 이른 시각이지만 임 경사의 외투를 챙겨 몸을 일으켰다.
텐트에서 나와 균열 입구로 향했다. 균열 입구를 통해 바깥으로 나오자 싸늘한 새벽 공기가 느껴졌다.
어젯밤 봤던 공원의 풍경은 아직도 어둠에 잠겨 있었다.
균열 입구는 처음 봤을 때처럼 빛이 새어 나오지는 않고, 희미하게 균열의 흔적만 보였다. 하지만 균열의 존재감은 나에게 확실히 느껴졌다.
시험 삼아 균열에 들어갔나 나오기를 반복해 봤다. 딱히 출입에 제한은 없는 것 같았다.
짧은 실험을 마친 나는 어제 임 경사에게 들었던 지구대 위치를 생각하며 몸을 움직였다.
* * *
6시 30분쯤 어렵지 않게 지구대 앞에 도착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지구대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건물 안쪽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중년 남성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말이 돼?!”
“일단 그렇게 전달받았습니다. 최대한 순찰과 주민 신고로 해결하라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살짝 눈치를 살피고 있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반겨 주었다.
“오셨군요. 세진 씨.”
“아, 임 경사님. 외투 돌려드리러 왔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나는 임 경사가 이끄는 대로 자리에 앉았다. 그 와중에도 화난 목소리가 지구대 안에 울려 퍼졌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따뜻한 차라도 한잔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내가 거절할 새도 없이 임 경사는 지구대 안쪽으로 향했다. 혼자 남게 된 나는 슬쩍 지구대 안쪽을 살펴보았다.
계급이 조금 높아 보이는 사람 두 명이 계속 심각하게 대화를 하는 중이었고, 어제 균열에서 봤던 이 순경도 있었다.
밤새워 일했는지 조금 피곤해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임 경사가 따뜻한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내게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어젯밤에는 괜찮으셨습니까?”
“아…… 네. 다행히 머물 곳을 찾아서.”
“다행입니다. 밤새 날씨가 너무 추워서 조금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임 경사는 정말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별로 안 좋네요?”
“아. 다른 게 아니라 균열을 탐지하는 기계가 어제저녁에 고장이 났는데 당장 수리가 어려울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수리 기사를 부르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게 일이 조금 복잡합니다.”
임 경사의 설명에 따르면 계약을 맺고 수리를 해주던 회사가 경영 악화로 문을 닫아버렸다고 한다.
거기다 수리를 위해서는 부품이 필요한데, 주요 부품을 외국에서 가져오는 데 일주일 이상 걸릴 예정이라고.
“위에서는 일단 순찰과 주민 신고로 버티라고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거든요.”
“아! 그럼 어제 균열에 아무도 없었던 것도?”
“네, 맞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저희가 먼저 출동해서 출입을 제한했어야 했는데, 기계가 고장이 나서 주민신고를 듣고 뒤늦게 출동한 겁니다.”
“쩝. 힘드셨겠네요.”
“다행히 어제는 큰일이 없어서 괜찮았지만…… 그것 때문에 지구대장님도 저렇게 화가 나신 거죠.”
어제 균열에 아무도 없던 게 이상했었는데, 임 경사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대충 이해가 갔다.
이 와중에도 지구대장이라는 사람은 심각한 표정으로 경위 계급의 남자와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럼, 다른 지구대에서 지원은 계획은?”
“인근 지구대에서 우리 담당 쪽으로 탐지 범위를 최대한 넓혀준다고 합니다.”
“인원 지원은?”
“아직 인원 지원 이야기는…….”
“그럼 우리만 일주일 동안 뺑뺑이 돌라는 거야 뭐야?”
지구대장이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경위 계급의 남자도 답답한 표정이었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문득 각성해서 얻은 스킬을 기억해냈다.
균열 탐색 Lv.1
E등급의 균열을 탐색할 수 있습니다.
한 번도 직접 사용해 보지 않아서 자신은 없었다.
그래도 어젯밤부터 나를 배려해준 임 경사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임 경사님?”
“왜 그러시죠?”
“지구대에서 탐색해야 하는 균열이 E등급 균열 맞죠?”
“맞습니다. 애초에 이런 도시에서는 E등급 균열밖에 안 나타나니까요.”
“그러면 혹시 제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는데요.”
약간 아리송한 내 말에 임 경사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어젯밤 제가 균열에서 각성을 했거든요.”
“……!”
“뭐라고! 각성!!”
놀랍다는 표정을 짓는 임 경사.
그리고 뒤쪽에서 이 순경이 몰래 들었는지 비명과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