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 에필로그, Happily Ever After (22/22)

21. 에필로그, Happily Ever After

“……이런.”

어딘가 엉성한 매무새의 하녀 제복을 차려입은 여자가 바쁘게 지나다니는 기사들을 보며 벽 뒤로 몸을 숨겼다.

“벌써 들켰나.”

목 위로 올라온 흰색 칼라와 손목을 덮은 소매 안쪽은 온통 가죽에 쓸려 생긴 상처로 가득했다. 그러나 고통 따위는 느낄 새도 없다는 듯 여자는 우르르 지나가는 발걸음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여자는 얼핏 보면 평범한 궁성의 사용인처럼 보일 법한 차림새를 하고 있었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어딘가 이상한 데가 있었다.

바싹 마른 몸에 비해 제복은 어깨선이 한참이나 아래로 내려올 정도로 품이 컸고, 치마는 잔뜩 조여 묶었음에도 어딘가 어정쩡한 느낌이 들었다. 발목까지 내려와야 할 치맛자락은 정강이 아래를 겨우 덮었으며 머리 위에 올려놓은 메이드 모자 역시 제대로 고정이 되지 않아 자꾸만 미끄러졌다.

“한 번만, 제발. 신이시여, 딱 한 번만 도와주세요.”

여자, 이브는 양손을 모아 잡고 웅얼웅얼 기도하고는 다시 벽 너머의 사정에 귀를 기울였다. 거리가 제법 멀어진 듯 웅성거리는 소리가 멀찍이서 들려왔다. 이브가 발을 막 내디디려던 찰나였다.

“쉿.”

등 뒤에서 손이 뻗어져 나왔다.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잡고 뒤쪽으로 끌어당기며 손으로 입 위를 덮었다. 이브는 저도 모르게 악 내지를 뻔한 비명을 억지로 삼키고는 요동치는 심장을 가라앉혔다.

곧 근처 복도에서 미세한 기척이 느껴졌다. 발소리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이브는 입 안의 혀를 잘근잘근 깨물며 사람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잠시 후 얼굴 위에서 두꺼운 손이 떨어져 나갔다. 이브는 조심스럽게 몸을 돌려 저를 도와준 사람의 얼굴을 확인했다.

“……기사님.”

저를 괴롭히는 남자의 오른팔이다. 매번 그 남자와 함께 그녀의 지옥을 지켜보고는 했던.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이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렇게 허무하게 끌려갈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 이브가 입술을 깨물고는 다급히 남자의 팔을 잡았다.

“제발.”

카스텔 비텔스바흐는 이브가 제게 무엇을 부탁하는지를 알았다. 그는 자유를 향해 부나방처럼 몸을 내던지는 이 여자의 타오르는 눈동자와 시선을 마주친 순간 무언가 목 안쪽에서 울컥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것을 뱉어내는 대신 팔에 걸치고 있던 천을 여자의 어깨 위에 둘러주었다.

“밖은 춥습니다.”

이브는 약간 얼떨떨한 표정으로 목 아래에 어설픈 솜씨로 삐뚜름히 매어지는 리본을 내려다보았다.

“……따라오십시오. 정문은 이미 막혔습니다.”

제기랄. 이브의 입술에서 고아하지 못한 욕설이 작게 튀어나왔다. 적어도 10여 분 정도는 눈치채지 못할 줄 알았건만.

남자는 이브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몸을 돌려 걸어갔다. 이브는 고개를 푹 숙이고 남자의 등 뒤에 바짝 붙었다.

이미 들켜버린 마당에 속는 셈 치고 남자를 따라가기로 한 이브는 흘끗 남자의 넓은 등을 훔쳐보며 그가 저를 돕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저가 보기에도 내가 불쌍해 보이긴 했는가 보지.’

이브가 서늘하게 식은 얼굴을 하고서는 이내 고개를 다시 숙였다.

잿빛 머리의 기사는 악마 같은 남자의 충견이었다. 길었던 이브의 머리칼을 목덜미 언저리까지 베어내고, 한쪽 무릎에 상처를 낸 것 역시 이 기사였다.

그러나 이브는 영리한 사람이었기에 분노의 방향을 착각하지 않았다. 이자는 그저 그 남자의 도구일 뿐이었다. 칼에 찔린다 한들 칼을 미워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이브는 긴장한 탓에 저려오는 다리를 애써 무시하며 걸음을 옮겼다. 남자는 귀신같이 사람이 오지 않는 길만을 골라 발소리도 내지 않고서 걸었다.

이브가 약하게 다리를 절며 걷는 소리만이 귓가를 간질였다. 차 한 잔을 마실 시간이 지난 끝에 두 사람은 바깥으로 이어지는 창고의 작은 쪽문 앞에 다다랐다.

그리고 카스텔의 손이 쪽문의 문을 열고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순간.

“여전하군, 자네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브의 손끝이 벌벌 떨려오기 시작했다.

카스텔 역시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놀란 듯 약간 머뭇거렸으나, 곧 그는 슬그머니 이브의 앞을 가로막으며 입을 열었다.

“전하.”

이 기사의 덩치가 크니 자길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브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은 채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이브. 또 허튼짓을 하면 이번엔 개에게 던져준다 했었지.”

이브가 아랫입술을 질끈 짓씹었다. 피딱지가 앉은 입술이 다시 터지고 말았다.

“카스텔, 그녀를 이리 데려와라.”

그러나 그는 곧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브는 넓은 등 위로 번민하는 남자의 감정을 읽었다. 그녀는 주먹을 두어 번 쥐었다가 펴고는 카스텔을 옆으로 밀쳤다.

미약한 움직임에도 남자는 옆으로 밀려나주었다. 이브는 서늘하게 식은 얼굴로 제 발로 걸어 에드워드의 앞까지 다가갔다.

꿀처럼 밝은 금발이 겨울 햇살 아래에서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오래된 유화 속의 요정처럼 아름다운 얼굴을 한 남자가 다정하게 웃고 있었다. 그러나 상냥한 미소가 무색하게 그의 등 뒤로 칼을 차고 있는 기사들이 차가운 얼굴로 이브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런. 내 아가씨가 배짱이 두둑해졌는걸.”

에드워드는 손을 뻗어 지척에 다가온 이브의 뺨 언저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마치 징그러운 뱀 따위가 살 위를 기어 다니는 것만 같은 혐오감에 이브는 미간을 와락 구기며 고개를 틀었다.

길고 흰 손마디가 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 오랜 시간 빛을 보지 못해 희어진 목덜미를 더듬었다. 이윽고 남자의 손은 빗장뼈 아래에 느슨히 묶인 망토의 매듭까지 내려갔다.

그는 사분사분히 웃으며 리본 모양으로 묶인 매듭의 끝을 쥐고 서서히 그것을 잡아당겼다.

“다른 사내에게 받은 걸 내 앞에서 자랑하다니.”

이내 남자의 손가락이 망토의 목깃 아래로 파고들었다. 슬쩍 움직이는 것만으로 천 자락은 힘없이 어깨 아래로 흘러내리고 말았다.

겨울 망토 한 겹으로 막아내고 있던 한겨울의 날 선 바람이 이브의 살갗을 매섭게 후려쳤지만 남자는 그녀가 느낄 추위 따위는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

“그렇게까지 도망치고 싶었나?”

“…….”

“좋아. 그렇다면 사랑하는 그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지.”

에드워드는 등 뒤로 손을 까딱였다. 그러자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사 하나가 가까이 다가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짧은 단검 하나를 그의 손 위에 조심히 넘겨주었다.

남자는 단검을 검집 안에서 빼 들고는, 자상하게 웃으며 그녀의 손에 직접 검 손잡이를 쥐여 주었다.

“나는 복종치 않는 개는 기르지 않아.”

“대체, 뭘…….”

“이걸로 카스텔의 배를 찔러. 힘껏. 남자를 찌르면 대신 너는 풀어주마.”

“뭐, 네?”

“저 사내를 이 칼로 찌르라고 했다.”

자유로워지고 싶잖아. 귓가에 에드워드의 달콤한 속삭임이 흘러들어 왔다.

이브의 얼굴이 멍해졌다가, 곧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려 카스텔을 바라보았다. 기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복잡한 눈으로 제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그런. 그럴 수는.”

“왜? 못 하겠나? 그래, 그대도 내심 내 새장이 마음에 들었던 거로군. 약속했으니 특별히 오늘은 새 친구들을 소개해주겠네. 마침 덩치가 큰 사냥개를 들인 참이거든.”

농담이 아니었다. 남자는 입 밖에 꺼낸 말, 특히 이브를 괴롭히는 종류의 말은 반드시 지켰다.

칼을 쥔 이브의 손이 멀리서 보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이브의 어깨를 잡고 움직여 뒤를 돌게 한 에드워드가 그녀의 어깨 위에 손을 얹은 채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한 번이면 돼. 그대가 칼을 꽂아 넣을 수 있다면 그대를 자유케 하리다. 약속하지.”

그렇게 속삭인 남자가 살짝 이브의 등을 떠밀었다. 이브는 주춤주춤 발을 움직여 카스텔이 있는 곳으로 두어 발짝 다가갔다.

여전히 깊은 회색 눈을 가진 기사는 가만히 이브가 제 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카스텔은 이브의 얼굴 위로 소용돌이치는 감정들을 느꼈다. 혼란스러운 듯 떨려오던 동공이 결국 무엇을 다짐한 것인지 곧게 제 쪽으로 고정되었다.

망설이던 이브가 다리 한쪽을 살짝 끌면서도 성큼성큼 남자가 있는 앞으로 다가갔다. 두 사람의 거리가 좁혀진 순간, 남자는 손을 마구 떨면서도 제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이브의 강렬한 눈동자를 보며 속으로 웃어버렸다.

“……그렇게 쥐면 다칩니다.”

카스텔은 손을 뻗어 칼자루를 쥔 이브의 손을 조금 매만졌다. 칼을 쥔 손가락들을 움직여 제대로 된 파지법을 알려준 남자는 제 배 위를 더듬더니 어느 한 곳을 짚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뼈가 없는 쪽으로 찔러야 그나마 저항이 덜할 겁니다.”

이브는 남자가 짚어주는 부분을 유심히 보았다. 카스텔은 평소의 말수 적은 모습이 거짓말인 것처럼 길게 말을 이어나갔다.

“장기가 크게 상하는 부분은 아닙니다. 영애, 아니. 아가씨는 힘이 약하시니 힘주어 찔러도 제가 죽는 일은 없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제 배를 찌르라고 내어주며 친절히 검을 박아 넣을 부위까지 짚어주는 남자와 칼을 꽂아 넣을 자리를 눈으로 가늠하며 감사 인사를 하는 여자의 괴이한 모습을, 에드워드는 재미있는 연극을 관람하듯 즐겁게 감상하고 있었다.

이브는 작게 심호흡을 하고는 굳은 얼굴로 카스텔이 알려준 배 언저리를 바라보다가 이를 악물고는 손목에 힘을 실어 남자의 배 위를 들고 있던 단검으로 강하게 찔렀다.

칼날은 예리하였으나 그것을 찌르는 자의 힘이 부족해 단검의 날이 남자의 살갗 안으로 3분의 1 정도 파고들고는 멈추었다.

만약 이브가 힘이 있었다면 꽤 그럴듯하게 찔러 넣을 수 있었을 터였다. 남자의 눈에 이를 악물어 빳빳하게 근육이 선 이브의 턱 언저리와, 잔뜩 긴장한 얼굴 위로 눈물이 고인 헤이즐넛색 눈동자가 보였다.

햇볕이 스며든 눈동자와 눈가에 맺힌 눈물방울이 마치 보석처럼 반짝였다. 카스텔은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그녀의 뺨 언저리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순간, 그는 어질한 현기증을 느끼고는 헉 하고 숨을 삼키며 휘청이다가 이내 자리에 무릎을 대고 꿇어앉았다.

“윽…….”

“무슨……?”

그리고 뒤이어 뒤쪽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던 에드워드가 뒤쪽에 늘어서 있던 기사들에게 명령했다.

“카스텔 경이 습격당했다. 무장을 해제시키고 범인을 제압해라.”

기사들 몇이 우르르 몰려와 카스텔을 양옆에서 부축했고 또 나머지 몇은 이브의 양팔을 잡아 뒤로 꺾어 결박했다.

당황한 얼굴을 하고 몸을 뒤틀며 저항하던 이브는 순간 제 앞에서 카스텔의 배에 박힌 칼을 더욱 깊이 찔러 넣는 기사들을 보며 소리 질렀다.

“당, 당신들 뭐야!”

“말했잖나. 복종하지 않는 개는 기르지 않는다고.”

어느새 그들 가까이 다가온 에드워드가 왈칵 피를 토해내고 만 카스텔의 머리 위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아주 강한 독이다. 수분 내로 정신을 잃게 되겠지. 비록 네가 나를 배반했으나 그간의 충정을 생각해 깔끔하게 보내주마.”

“전, 하.”

“……이 짓도 슬슬 질리는군. 근위 기사를 해한 범인을 감옥으로 보내라. 친히 심문하겠다.”

“이거 놔, 이거 놔요! 거짓말! 약속했잖아요! 이거 놔!”

“자유는 자유고, 죄는 죄일세. 사랑스러운 그대여.”

“이, 이이……! 저질스러운 작자 같으니라고! 사기꾼! 비열한 놈아!”

모시는 주인을 향해 폭언을 내뱉는 여자를 한 대 쳐서라도 입을 막고 싶어 하는 기사들을 보며 에드워드가 느긋하게 웃어 보였다.

“끌고 가라.”

울컥울컥 피를 토하며 점차 의식을 잃어가는 오랜 친우를 내려다보는 에드워드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여자가 비명처럼 내지르는 발악이 점차 멀어졌다.

“……아, 씨발.”

아직 해가 뜨기 전인지 방 안이 온통 어둑어둑했다. 천천히 상반신을 움직여 자리에 앉은 이브는 제가 있는 공간이 지하실의 음습한 감옥이 아니라는 것부터 확인했다.

“주말 댓바람부터 기분 좆같게.”

스트레스로 지끈지끈 관자놀이가 다 아파왔다. 남자들의 얼굴을 보아도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르지 않게 된 지 오래였지만 한 번씩 이렇게 옛 기억을 꿈으로 되풀이할 때면 괜히 뭐든 집어 던져 화풀이하고 싶었다.

“이너피스, 이너피스…….”

“으음.”

“아, 미안. 깼어요?”

이브는 가물가물 눈을 뜨고 있는 카스텔을 보며 이마를 도닥였다. 남자는 잠이 덜 깬 멍한 얼굴로 눈을 두어 번 깜빡거리더니 제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이브를 올려다보며 가늘게 웃어 보였다.

‘엄마나. 웬일이야, 귀엽게스리.’

이브는 킬킬 웃으며 허리를 굽히곤 남자의 뺨 위로 쪽쪽 입을 맞추었다.

“몇 시입니까?”

“더 자도 돼요. 아직 해도 안 떴어.”

카스텔의 입에서 잔뜩 쉬고 갈라져 잠긴 목소리가 작게 흘러나왔다. 짧은 물음도 버거웠는지 이내 콜록콜록 기침을 뱉는 남자를 보고는 이브가 침대에서 미끄러져 내려왔다.

침대 곁 키 작은 수납장 위에 올려둔 물병에서 물을 따른 이브는 미지근한 물이 담긴 컵을 들고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은 채 이브에게 물컵을 받아 들었다. 꿀꺽꿀꺽 물 들이켜는 소리와 함께 요동치는 목울대를 유심히 지켜보던 이브가 이내 빈 컵을 제게 돌려주는 카스텔을 보며 웃었다.

“더 마실래요?”

“괜찮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이브는 저도 자리끼를 마신 후 다시 침대로 돌아와 누웠다.

“경은 오늘 비번이죠?”

“예.”

“부럽다. 난 서류 작업 때문에 오전에 잠깐 갔다 와야 해요. 아, 출근하기 싫다.”

“……제가 도울 일은 없습니까?”

“무슨 소리세요. 안 그래도 사귀네, 어쩌네 의심받고 있는 마당에. 비번에 같이 출근해서 일 돕는 거 단장, 아니. 이제 은퇴하셨으니까. 그, 후작님한테 들키기라도 했다간 그날로 당신 나랑 식 올려야 돼.”

카스텔은 최근 들어 부쩍 맏아들의 여자관계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래서였군. 남자가 속으로 생각했다.

“……저는.”

“아아. 경은 괜찮겠지만 내가 웨딩 링이라도 끼면 그날로 그랑 플루멘에 뛰어들 남자가 한두 명이 아니라서 말예요.”

심드렁한 얼굴로 이게 다 아가페죠, 아가페, 하고 뜻 모를 소리를 중얼거리던 이브가 카스텔의 방향으로 몸을 돌려 옆으로 눕더니 살살 가슴 위를 더듬었다.

“일찍 일어난 김에, 한 번 할래요?”

“아. 그.”

“어디 보자. 아직 5시도 안 됐네. 한 시간 바짝 하고 씻으면 되겠다.”

“그, 경. 아니, 이브.”

“그러고 보니 어제 잘 참으면 넣게 해준다 그랬는데 당신이 일찍 뻗은 바람에 못 넣었지.”

“출, 근을.”

“출근하는 내가 괜찮다는데 뭘 그렇게 빼고 그래요. 어제 귀엽게 울었으니까 오늘은 상으로 안에 넣게 해줄게.”

어느새 이브는 카스텔의 아랫배 위로 올라타 앉았다. 오래 검을 쥐어 굳은살이 박인 손가락이 더듬더듬 남자의 도드라진 복근 위를 쓰다듬었다.

슬그머니 꿈속에서 제가 칼을 찔러 넣었던 부근 언저리를 더듬자 카스텔이 붉어진 얼굴로 그녀의 손목 위를 감싸왔다.

“아, 여기 말고 다른 데 만져달라고?”

“……읏.”

짓궂게 웃음을 터트린 이브가 곧 허리를 내려 봉긋 솟은 가슴 위를 길게 혀로 핥아 올렸다. 가슴 아래를 받쳐 쥔 이브의 손이 주물럭주물럭 가슴근육을 주무르자 카스텔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거는 이제 가슴이라기보단, 젖이지 젖. 호옥시 애라도 생기면 이 양반이 젖 물려도 되겠는데.’

아마 남자가 들었다면 기겁을 할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 하면서 이브가 금세 볼록 올라온 유두 위를 이로 살살 깨물었다.

“하, 흑……!”

이로 물었던 가슴 돌기를 혀로 짓누르듯 문지르다 입술을 대고 빨아들이니 엉덩이 아래에 깔린 복부 근육이 움찔하고 꿈틀대는 것이 느껴졌다.

입으로 물고 있지 않은 반대편은 손가락을 세워 꼬집듯 강하게 힘주어 문질러주었다. 이브는 민망해하던 남자가 가슴을 조금 만져진 것으로 흥분해 헐떡이며 애타게 제 허벅지를 쓰다듬는 것을 느끼고는 몰래 웃음을 삼켰다.

카스텔은 앞도 뒤도 무척 민감한 편이었다. 양손을 침대 헤드에 묶어놓고 남자의 위에 올라탄 이브가 조금도 움직이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한 후 허리를 내려 바짝 선 성기를 품자 카스텔은 마치 코앞에 고기가 들이밀어진 개처럼 애처로운 얼굴을 하고 헐떡였다.

카스텔의 허리가 본능에 따라 움직이고 싶은 듯 이리저리 움찔거렸으나 결국 그는 이브의 「기다려」 하는 명령에 순종했다. 다리 사이로 뜨거운 박동이 느껴졌으나 그보다 더 이브를 돋운 것은 애타는 얼굴로 이를 악문 채 그녀의 말 한마디에 복종하고 있는 길이 잘 든 남자의 모습이었다.

이브는 삽입을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었으나 움직임을 강제당한 채 성기를 감질나게 자극당한 탓에 조급해진 카스텔의 얼굴을 보고 그만 가볍게 흥분했다. 괜히 아래를 조이며 느릿느릿 허리를 움직이니 얼마 못 가 남자가 눈물까지 고인 얼굴로 헐떡이며 이브에게 빌어왔다.

“아, 이브. 제발…….”

“제발?”

“움직, 여…… 크흑, 움직여주십시오.”

“지금도 움직이고 있는데?”

“더, 하아……. 더 세게, 제발.”

“질척질척 엉망으로 문질러달라고?”

“아, 흐윽, 제발……! 더는.”

괴로움과 쾌감이 잔뜩 뒤엉켜 잔뜩 상기된 얼굴을 보며 흥이 오른 이브는 그대로 허리를 격렬하게 움직여 한 번 남자를 사정시킨 후 재빨리 몸을 일으켜 장식장을 뒤졌다. 얼마 안 가 침대로 돌아온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신경접속형 어른의 장난감 마도구 마크3였다.

한바탕 허리를 떨며 토정한 직후인지라 살짝 늘어져 멍하게 숨을 헐떡이고 있던 카스텔이 돌기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양의 여자 팔뚝만 한 먹쇠를 보고는 희게 질린 안색으로 작게 도리질 쳤다.

“그런, 그건 너무 큽니다.”

“하하하. 괜찮아요. 당신 오늘 비번이잖아.”

“그런 문제가 아니라…….”

“착하지? 얌전히 엉덩이 앙 벌리고 주는 대로 받아먹어요.”

“흐읏, 그런……. 안, 안 들어갑니다.”

“하……. 개꼴리네, 진짜. 넣으면 다 들어가게 돼 있어요. 걱정 말고 나만 믿어요.”

방긋 웃은 이브는 카스텔의 다리 사이에 손을 넣어 어젯밤 잔뜩 괴롭힘을 당해 붉게 부어올라 있는 구멍 위를 손가락으로 살살 더듬으며 살살 남자를 달랬다.

이미 전날 풀어질 대로 풀린 괄약근은 손가락이 몇 번 왔다 갔다 한 것만으로 다시 유연함을 되찾았다. 한참을 손가락으로 입구를 풀어준 이브가 함께 꺼내 온 윤활제를 손 위로 듬뿍 부어 다리 사이를 더듬었다.

곧이어 이브는 잔뜩 열이 오른 얼굴로 둔덕 아래에 부착한, 윤활제가 잔뜩 묻어 번들거리고 있는 돌기가 솟은 모조성기를 그대로 카스텔의 다리 사이로 밀어 넣었다.

둥근 선단이 고기 벽 사이로 밀려들어 가기 시작했다. 이브는 마도구에 링크된 감각 덕에 장난감 위로 불룩불룩 솟은 돌기가 입구에서 드득드득 걸리며 억지로 살을 비집고 파고드는 감촉을 선연히 느낄 수 있었다.

“하, 미치겠네…….”

천천히 허리 짓을 하자 안으로 밀려들어 간 장난감이 다시 온 내벽을 득득 긁어가며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마치 장난감을 물고 놔주지 않으려는 듯 안쪽 장벽들이 돌기에 걸려 함께 딸려 나오기라도 할 것 같은 감각이었다.

한번 찔러 들어갈 때마다 카스텔의 목이 뒤로 젖혀지며 허벅지가 강하게 경련했고, 그런 그의 민감한 반응에 잔뜩 신이 난 이브는 사정 봐주지 않고 힘주어 내벽 안쪽 깊숙한 곳까지 푹푹 쑤셔 박아 넣었다.

이브는 커다란 장난감이 배 안으로 밀려들어 갈 때마다 남자의 아랫배가 눈에 띄게 융기하는 것을 보며 깔깔 웃음을 터트린 후 불쑥 솟아오르는 뱃가죽을 느릿하게 손바닥으로 눌렀다.

“흐으, 큭! 크흣, 아긋, 아학……!”

“하아……. 숨 쉬어요, 캐스.”

“으흑, 흐, 으응, 읏……! 아……! 아핫, 하악!”

“아무것도 안 들리나 보네.”

이브는 강렬한 고통과 극심한 쾌감에 눈까지 뒤집힌 남자의 얼굴을 두어 번 찰싹찰싹 때려본 후 턱을 억지로 끌어내려 쪽쪽 입을 맞추었다.

이윽고 파정의 순간이 찾아왔다. 이브는 내벽이 잔뜩 조이는 것을 느끼고는 다정하게 웃으며 남자의 목 위를 손으로 짓누름과 동시에 강하게 허리를 처박아 결장 안까지 모조성기를 쑤셔주었다. 결국 오래 지나지 않아 카스텔은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짐승처럼 길게 울음을 토하며 제 배 위로 백탁액을 울컥 쏟아내고야 말았다.

“아이고, 허리야.”

서류를 들여다보던 이브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침 운동이 너무 격렬했다. 이브는 허리께를 가볍게 통통 두드리면서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그 이후 남자를 뒤만으로 사정시키는 짓을 세 번 정도 반복한 후, 이브는 죽을 것 같다며 발버둥을 친 끝에 완전히 정신을 잃고 만 카스텔을 보고서야 간신히 이성을 되찾았다.

물을 받아 와 기절한 남자의 몸을 닦아주고 혹여 다친 곳이 있을까 다리 사이를 꼼꼼히 살피며 약을 발라준 후 새 시트를 가져와 침대 위를 대충 정리하니 출근 시간이 아슬아슬했다. 결국 이브는 몸에 물만 끼얹고 출근해야 했다.

‘오전 근무라 서류 작업 일찍 끝내면 점심이나 같이하자고 하려고 했는데.’

이브는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며 턱을 긁적였다.

그런 그녀를 보던 이브의 부관이 허리를 두드리는 이브의 모습에 반응했다.

“허리요?”

“어어.”

“혹시, 이거?”

이브는 제 부관이 새끼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고는 펜을 내려놓은 뒤 깍지를 끼며 부드럽게 웃었다.

“엘리제 경. 오늘 오전 근무지? 이따 근무 마치고 잠깐 연병장 좀 같이 갈까?”

“네?”

“자네 후배들 보는 앞에서 뒤지게 처맞고 싶나?”

“헉, 시정하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카타리나 경에게 개헛소리를 씨불인 것도 경이었지. 덕분에 지금 사교계에서 무슨 소문이 돌고 있는지 알고 있나?”

“아이, 바쁘다 바빠. 행정실에 서류 좀 제출하고 오겠습니다.”

밝은 금발을 사내처럼 짧게 다듬어 자른 여자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서류를 들고 잽싸게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이브는 금방 콧바람을 픽 불고는 다시 펜을 쥐었다.

물론 그거가 맞긴 하지만, 거시기 파트너 엇비슷한 관계인 직장 동료와 새벽 내내 신나게 뒹굴다 허리가 나갈 뻔했다는 사실을 부관에게 시인할 수야 없는 일이었다.

이브가 외궁 경비와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제3기사단의 단장으로 승진 아닌 승진을 한 이유도 그 「사교계의 소문」 탓이었다.

제3기사단은 주로 갓 임관을 받은 신출내기들이나 한미한 가문 혹은 평민 출신의 기사, 행정 업무에 능숙한 여기사들로 구성된 기사단이었다.

말이 승진이지 한직으로 밀려난 거나 다름없는 상태였지만 이브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단장으로 임명된 첫날, 드디어 정시출근과 정시퇴근을 하는 꿀보직을 맡았다며 좋아할 정도였다.

이미 외궁 경비를 담당하기 3주 전, 황태자 아멜리아에게 불려가 한차례 「그러게 조심 좀 하지 그랬느냐」며 잔소리와 함께 사건의 진상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아멜리아가 넌지시 눈치를 주기로는 대충 황제와 그의 최측근 호위인 카스텔 그리고 측근 근위 기사 중 유일하게 여성인 이브 사이에 사랑과 전쟁급 삼각관계 치정 로맨스가 얽혀 있다는 내용의 소문이 돌고 있다는 것 같았다.

그 여성 근위 기사가 오래 전 에드워드와 윌리엄 대공 사이에 끼었던 남장을 한 레이디였다는 이야기가 다시금 도마에 오르며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물론 어떻게 보자면 아주 날조된 소문은 아니나 남들 앞에서는 티를 낸 적이 없었는데 어찌 알고 그런 소문이 돌았는지 이브로서는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에드워드는 남모르게 의사와 마법사의 도움을 받아 생식능력을 말려나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를 빌미로 황녀 아멜리아를 후계자로 삼고, 후계 교육이 끝나는 대로 그녀에게 제위를 물려주겠다고 선포한 지 오래였다.

그러니 그가 생식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아멜리아의 태자 책봉을 반대하는 구 귀족들이 틈을 노려 달려들 수도 있는 문제였다.

카스텔이 제1기사단의 단장으로 임명된 지 얼마 안 된 지금, 공석이 된 부단장 자리에 이브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던 마당에 난데없이 그녀가 황제 측근 근위대에서 3기사단의 단장으로 전출이 된 데에는 이러한 사정이 있었다.

‘어차피 아멜리아가 황제 자리 먹으면 내가 다시 측근 근위 기사가 될 수밖에 없지. 이래저래 부수적인 효과도 있고, 에드워드 감시하기도 편한 데다 그 여자 입장에선 아무래도 카스텔보단 내가 부려먹기도 더 편할 테니까.’

복귀가 예정되어 있는 한시적인 전근이나 다름없었다. 이브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아멜리아가 제위에 오르기 전까지는 여유를 가지고 쉬엄쉬엄 일해야지 마음먹었다.

보고서 작성과 결재가 필요한 서류를 확인하는 작업을 마친 이브가 대충 위에 올려 보낼 서류들을 따로 정리한 후 시계를 보았다.

‘시간이 좀 뜨네. 걍 바로 퇴근할까.’

마치 이브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미리 예견이라도 한 듯, 문 바깥에서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예.”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황제의 측근 기사 중 한 사람인 카인 웨슬리 경이었다.

“수고하십니다.”

“그래요. 카인 경. 갑자기 무슨 일로?”

“폐하께서 호출하셨습니다.”

“……무슨 일로 부르셨는데요?”

“그게.”

남자는 곤란하다는 얼굴을 한 채 말을 이었다.

“미리 말씀드리지 말라고…….”

“아오. 아. 아악.”

순간적으로 욕설이 튀어 나갈 뻔한 이브는 가까스로 인내의 끈을 잡은 채 이를 악물었다.

“알겠습니다.”

대강 책상 위를 정리한 이브는 엘리제에게 집무실 문단속을 부탁한 후 남자를 따라 문밖으로 나섰다.

“분위기는 좀 어때요?”

“……평범하십니다.”

“아오.”

평소와 같이 변덕스럽고 또라이 같다는 말을 짧게 응축해 담은 기사의 답변에 이브가 마른세수를 했다.

계단을 올라 황제의 침실이 있는 층까지 간 이브는 남자가 저를 집무실이나 응접실이 아닌 드레스룸으로 데리고 간다는 것을 알아채고 입 안으로 작게 욕을 웅얼거렸다.

“이런. 벌써 왔군, 이브.”

“주군을 뵙습니다. 어쩐 일로 호출을 다 하시고……?”

“이리 와 이것 좀 보게.”

에드워드는 이브에게 손짓하며 그녀를 가까이로 불렀다. 이브는 한쪽에 주르륵 열 맞추어 서 있는 시종들과 남자의 뒤에 서 있는 두 기사를 보고 간신히 얼굴에 웃음을 걸며 그에게 다가갔다.

“이쪽 푸른색이 나을까? 아니면 이쪽 파릇한 색이 더 나을까?”

“아, 예에…….”

마침 의복을 갈아입던 와중이었는지 남자는 짙은 감색 프록코트와 부드러운 은색 웨이스트코트를 차려입고 있었다. 목에 걸칠 실크 스카프를 번갈아 보여주는 그의 모습을 보며 이브가 눈을 흐렸다.

월급 주는 사람을 때리면 안 된다고 머릿속으로 열 번 정도 되뇐 이브는 잘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미묘한 색 차의 스카프 두 개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한쪽을 짚었다. 솔직히 그게 그거처럼 보였지만 대충 고르는 티를 내면 또 웃으며 지랄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이쪽 색이 더 예쁜 것 같습니다.”

그러자 에드워드는 웃으면서 그 반대편 것을 골라 목에 걸게 지시했다. 명을 받은 시종이 이브가 고른 스카프를 챙겨 옆에 따로 빼두자 이브의 눈이 다시금 흐릿해졌다.

‘미친 또라이 새끼. 여기가 한국이었으면 진작 회사 오너 갑질로 페이스×이나 네이× 판에 글 올렸다.’

이브는 창가에서 쏟아지는 햇볕을 받아 반짝이고 있는 금발을 바라보다가 불현듯 떠오른 꿈속의 장면을 잊기 위해 얼른 고개를 털고 입을 열었다.

“외출 일정이 있으셨습니까?”

“오늘 정했으니 모를 수밖에. 갑자기 바람이 쐬고 싶더군.”

“……폐하의 안위를 위해 적어도 3일 전에는 근위대에 일정을 공유해주셔야 합니다.”

“갑작스럽게 나가고 싶어진 것을 어쩌겠나. 설마 그대들은 짐을 궁에 가두어 기르는 가축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이브는 어처구니가 없어 말문이 막혔지만, 곧 차분히 아닙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래서 자네를 부르지 않았나.”

“예에…….”

“카스텔 경 다음 가는 소드 마스터 아닌가. 누가 자네의 호위를 받는 내 멱을 딸 수 있겠느냔 말이지. 카스텔 경이나 자네 본인이 아니고서야.”

기절할 정도로 불경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웃으며 말하는 에드워드의 고약한 심보에 이브는 깊이 한숨을 쉬었다. 에드워드의 등 뒤에 서 있던 근위 기사들이 흠칫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부디 그런 말씀은 거두어주시지요.”

묵묵히 충성스러운 기사처럼 행세하고 있는 이브를 보며 에드워드는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였다.

더 이상 이브는 전처럼 막무가내로 날뛰지 않았다. 어느 날을 기점으로 한층 성숙해진 그녀는 에드워드의 기행을 어린애 장난쯤으로 치부하는 것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고는 했다. 가엾고 불쌍한 미물을 보는 그녀의 서늘한 눈빛을 보고 있자면, 남자는 이따금 그녀를 바닥에 내동댕이쳐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기도 했다.

물론 저렇게 상식인의 모습을 하고 딱딱한 척 선을 긋고 있어도 단둘만 남으면 거리낄 것 없이 남자를 자아 없는 물건처럼 다루고는 한다는 점이 에드워드에게 있어 더없이 자극적이기도 했다.

“오늘의 일정을 말씀해주시면 사람을 추가로 배치하겠습니다.”

“구 시가지에 있는 식료품 시장을 한번 보고 싶더군.”

“예. 알겠습니다.”

“그 안쪽으로 가면 해물 요리를 잘하는 오래된 식당이 있다던데.”

“아. 네. 저도 압니다. 트윈 펄이라는 식당인데 거기 요리사가 항구 도시 출신이라더군요.”

“그대로 남쪽으로 들어가면 영세 출판 사무실들이 모인 거리가 있다지.”

“예에. 그렇습니다.”

어쩐지 에드워드가 묘사하는 거리의 정경이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이브는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남자가 말하는 외출 일정을 새겨듣고 있었다.

“출판 사무실 거리를 지나쳐 루크 스트리트로 들어가 세 블록쯤 지나면 녹색 지붕의 2층 저택이 나온다던데.”

“예에, 예……?”

“그 집에서 키우는 개가 보통 덩치가 아니라더군.”

이브는 그만 양손으로 얼굴을 짚고 얼굴을 북북 문지르고 말았다.

“……미리 사람을 보내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대하지.”

근위 기사들은 뜻 모를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을 보며 무표정을 유지하면서도 속으로 의아해했다.

“가는 길에 대광장에 들러 분수를 구경하고 가심은 어떠신지요?”

“그것도 나쁘지 않군.”

그러고 보니 긴 시간 동안 에드워드를 제 저택에 들인 적이 없었다. 한 주 전 윌리엄이 입궁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었다. 이브는 아마도 그때 두 사람이 푸닥거리를 했나 보다, 하고 짐작했다.

환복을 마무리 짓는 에드워드를 뒤로한 채 이브는 드레스룸에서 나왔다. 머릿속으로 황궁에서 제 저택까지 가는 길목에 배치할 기사 목록과 마차의 이동 동선을 그려보면서 이브는 궁성의 사환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에드워드와 이브는 마차에 올랐다. 퇴근길을 상사와 함께한다니 끔찍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지만, 이브는 어른스럽게 속내를 숨기고는 남자를 데리고 센트럴시티의 번화가와 옛 시가지 구역을 돌며 관광 가이드 역할을 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순수 수도 태생은 에드워드 쪽이었지만, 궁에서 태어나 말마따나 「궁에서 기르는 가축」처럼 궁성에 매여 살았던 남자는 궁성 부지와 웨스트 플루멘의 일부 지역, 황실의 사유지를 제외한 구역에 대한 지식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다음엔 강 동쪽에도 가보고 싶군.”

“근위대 애들 기절하는 소리 좀 하지 마십쇼.”

“수인 갱단 정리를 너무 일찍 해버렸어. 지금 같아선 친히 친정까지도 불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친정 같은 소리 하십니다. 헛소리 마시고 아이스크림이나 마저 드세요.”

이브가 미리 기미한, 작은 컵에 담긴 한 스쿱짜리 아이스크림을 조그만 일회용 티스푼으로 퍼먹으며 에드워드가 작게 속삭였다. 방수 처리가 된 종이컵을 눈앞까지 들어 이리저리 돌리는 폼이 퍽 순진하게 보였다.

“여기까지 살아본 기억이 없어서 말일세. 그동안 별것이 다 생겼군.”

“요즘은 테이크아웃이 부쩍 유행하는가 보더라고요.”

“테이크, 뭐?”

“자, 이것도 한번 드셔보십쇼.”

말을 돌리기 위해 이브는 제가 먹던 레몬셔벗을 한 스푼 푹 퍼 남자의 입 안에 쑤셔 넣었다.

혀가 찌릿할 정도로 새콤한 맛에 에드워드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유독 신맛에 약한 에드워드를 보며 이브가 눈을 휘고 웃었다.

“뱉지 마세요. 꿀꺽 삼켜요. 꿀꺽.”

이브에게 종속된 영혼이 그의 목울대를 움직여 입 안에 든 고약한 이물질을 목 뒤로 넘겼다. 혀로 입천장을 문지르며 입 안 가득한 신맛을 느낀 남자가 새침한 얼굴로 이브를 바라보았다.

“너무하는군. 차라리 독을 먹여.”

“그게 다 나이 먹어서 그래요. 늙어가지고 미각 세포가 퇴화해서 신맛을 싫어하는 거라고요.”

“굳이 따지자면 몸은 아직 30대인데.”

“알맹이는 거의 백 살 아닙니까?”

“그렇게 따지자면 그대도 할 말이 없지 않나?”

푸른 눈동자가 반짝이는 금색 속눈썹 사이로 숨어버릴 정도로 눈이 휘어졌다. 고고한 자세로 다리를 꼰 남자가 입 안을 덮은 신맛을 씻어내려는 듯 손에 들린 초콜릿 맛 아이스크림을 입에 퍼 넣었다.

그러는 동안 마차는 마지막 행선지인 이브의 저택 앞까지 다다랐다. 중산층들이 주로 모여 사는 거리의 저택답게 별도로 마차를 댈 만한 공간은 없었기 때문에 마차는 집 앞 대로변에 멈추어 섰고, 이브는 먼저 마차에서 내려 남자에게 손을 뻗었다.

에드워드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 이브의 손을 잡고 사뿐히 마차에서 내려섰다. 마부 제복으로 변복한 채 마차를 몰고 있던 근위 기사에게 다가간 이브는 폐하의 「서민 체험」을 방해하지 않도록 저택 바깥으로만 호위를 세울 것을 명령한 후 마차보관소에 마차를 댄 품삯은 꼭 영수증을 받아 공금 처리를 하라고 당부했다.

이 남자가 저택 안에 들어서면 일상복으로 변복을 한 기사들이 거리 주변에 잠복한 채 호위를 서게 될 것이었다. 수많은 기사들을 팔자에 없는 외근을 하도록 만든, 마차 앞에서 예쁘게 웃고 있는 만악의 근원을 흘긋 바라본 이브는 남자를 에스코트하며 함께 웃어주었다.

“모시겠습니다.”

“음. 「서민」의 집은 어떤 행색을 하고 있을지 퍽 기대가 되네.”

‘그걸 또 들었냐.’

속삭인다고 속삭인 변명을 용케 주워듣고는 고대로 이브를 놀리는 데에 써먹는 남자를 보며 이브가 질린 얼굴을 했다.

저택의 하녀들은 이브가 보낸 사환이 귀띔한 대로 귀한 손님을 맞을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다만 예상치 못한 것은 아직도 카스텔이 저택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어어. 그, 경은 대체……?”

“폐하께서 오신다기에 모시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만.”

‘아니, 내가 이 인간 온다고 미리 알려준 건 얼른 집에 가라고 그런 거지……! 아이고, 이 답답한 양반아!’

에드워드가 이브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게 된 이후로 그의 욕받이 겸 스트레스 해소의 대상이 된 것은 주로 그와 직접 대면하는 일이 잦은 각 부처의 대신들과 추밀원의 의장, 상원의원들 그리고 근위 기사들이었다.

처음 에드워드가 자신의 「불능」에 대한 진단서와 함께 아멜리아를 후계자로 책봉했을 때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기세로 반대를 하고 나섰던 귀족원의 의원들도 이제는 차라리 태자 아멜리아를 하루빨리 제위에 올리고 황제를 뒷방으로 보내버리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겠다며 이를 갈았다.

그런 에드워드에게 가장 갈굼을 많이 당한 사람은 단연 눈앞의 강철 같은 기사였다. 노골적일 정도의 괴롭힘이었다.

다만 카스텔은 워낙에 멘탈이 단단한 사람인지라 업무 외적인 사항으로 트집을 잡혀 욕을 들어먹을 때에도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그것들을 넘겨버렸다.

질릴 정도의 충성심이었지만, 보는 사람이 불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눈치를 주어 얼른 치워버릴 작정이었건만 남자는 제 의도를 알아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오히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는 이브의 의도를 먼저 알아챈 것은 에드워드 쪽이었다. 황제는 이마를 짚는 이브를 물끄러미 보다가 어딘가 심사가 꼬인 듯한 아름다운 미소를 그려 보이며 이브의 팔을 붙들었다.

“개를 보여줘야지, 이브.”

“아니 뭘 또 그런 걸 굳이 보려고 하십니까.”

“그래도 시두스의 알파라고 하면 악명이 자자하지 않았나. 그런 자가 고작 집에서 키우는 집짐승이 되었다는데 내 어찌 구경하지 않을 수 있겠어.”

“그냥 눈으로만 보시고 절대 괴롭히지는 마세요. 우리 애가 윌리엄 그 작자만 보면 경기를 한단 말예요.”

이브는 카스텔에게 얼른 집에 가라고 눈짓하고는 에드워드를 데리고 로비와 연결된 1층 응접실로 넘어갔다. 응접실 한쪽에는 자물쇠가 걸려 있는 작은 곁방이 있었다. 원래는 문 없이 뚫려 있던 작은 거실에 문을 달아 따로 밀폐된 방으로 만들어둔 공간이었다.

이브는 문 옆에 걸려 있는 작은 열쇠로 자물쇠를 풀고 똑똑, 노크했다.

“바스카?”

먼저 기척을 내고, 뒤이어 문을 연 이브가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방문을 열기가 무섭게 바실리오의 반짝이는 붉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일찌감치 잠에서 깨어 문 쪽을 주시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서야 조금 안심한 듯 남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이브가 있는 방향으로 다가왔다. 튼튼한 소가죽 목갑과 목갑에 연결된 긴 사슬을 매달고 있는 탓에 남자가 움직일 때마다 절그럭절그럭 하고 쇳소리가 울렸다.

처음 정신이 돌아왔을 때만 해도 발광하며 목숨을 끊기 위해 자해를 하던 바실리오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는 그저 체념한 듯 제게 마련된 자리에 숨죽이고 누워 내리 잠만 잤다.

바실리오는 차라리 미쳐 있는 쪽이 더 낫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부터 남자가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주기가 뜸해지기 시작했다며 그를 돌보는 하녀들이 말했다. 이브로서는 그 편이 관리하기 편했기 때문에 보고를 듣고서는 잘됐네, 하고 웃고 말았다.

오늘은 남자가 「개」 상태인 모양이라고 생각하고는 이브는 제 쪽으로 쩔뚝이며 다가오는 바실리오에게 손을 뻗었다.

“이리 온.”

이브의 뒤에 서 있는 낯선 사람을 경계하듯 바실리오의 목 안에서 그르르 하고 짐승 울음소리 같은 목울음이 울렸다.

입에 문 재갈과 입마개만 아니었다면 아마 개처럼 컹컹 짖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따위를 하며 이브는 바실리오에게 다가가 남자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쉬, 괜찮아. 손님이야.”

에드워드는 문가에 기대 팔짱을 끼고는 이브의 곁에서 갯과 짐승처럼 구는 덩치 큰 남자를 무심히 바라보았다.

“정말 「개」로군.”

“개처럼 키웠으니까요.”

“무척 지독한 처사야. 짐승이길 거부한 수인을 짐승처럼 기르다니.”

“그렇다고 제가 진짜 개랑 접붙이진 않잖아요?”

무심히 대답한 이브가 손을 내밀며 손! 하고 가볍게 외쳤다. 멍한 눈으로 그것을 내려다보던 바실리오가 이내 주먹 쥔 손을 그 위에 올렸다.

“아이고, 착해. 예뻐, 예뻐.”

이브가 남자의 뺨과 머리를 마구 헤집고 쓰다듬자 재갈을 문 바실리오의 입 안에서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은 손님이 계시니까 밥은 조금 이따 줄게.”

쓰다듬을 받던 남자가 이브의 말을 알아듣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후 곁방의 문이 닫히고 자물쇠가 걸렸다. 에드워드는 개를 보고 싶다고 칭얼대던 것이 무색하게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광경이었네.”

“그러신가요.”

“그러면 이만 올라가지.”

남자의 노골적인 요구에 이브의 얼굴에 픽 비웃음이 걸렸다.

“바스카만 개가 됐다고 비웃을 게 아닌걸.”

“하하.”

“왜 다들 내 집에 와서 영역표시 하듯 정액을 갈기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진짜 개새끼들도 아니고.”

가벼운 어조로 경멸의 감정을 담아 중얼거리던 이브는 곧장 응접실을 빠져나와 2층으로 에드워드를 안내했다.

이브가 마구 눈치를 준 덕인지 카스텔은 저택을 빠져나간 후였다. 그러나 이브는 그 고지식한 남자가 저택 근처에서 경계를 서는 근위 기사들과 함께 시간을 때우다가 환궁하는 황제를 모실 것임을 알았다.

‘이쯤 되면 저 남자도 뭐, 스불재지. 스스로 불러온 재앙. 괴롭힘 당하는 걸 자처하겠다는데 내가 어떻게 말리겠냐.’

주인 침실이 아닌 손님방으로 안내받은 에드워드는 문을 열자마자 바로 침대가 보이는 구조를 보고 무척 신기해했다.

“응접실은 없나?”

“이 저택은 대귀족들의 타운하우스가 아니니 어쩔 수 없지요. 게스트룸까지 일일이 응접실을 달 수 있는 건 귀족들이나 가능한걸요. 여긴 어디까지나 「서민」용 저택이니까요.”

“그렇군.”

이브는 남자가 조금 더 방 안을 둘러보게 내버려둔 채 손님방에 만들어둔 설렁줄을 당겼다. 미리 언질을 받은 하녀 두 사람이 곧 가벼운 티푸드와 다기, 오늘자의 신문을 얹은 은제 트레이를 들고서 방문을 두드렸다.

둥그런 모양의 어두운 월넛 테이블 위로 찻잔과 찻주전자가 착착 놓여졌다. 티푸드가 담긴 접시와 신문까지 테이블에 올린 하녀들에게 이브가 웃어 보였다.

“수고했어. 다시 부를 때까진 2층에 사람 올리지 말고 식사 밑 준비 부탁해. 아, 쟁반도 거기 그냥 그대로 두고 가줘.”

이브는 고개를 숙이는 하녀들을 물리고는 창가에 서서 창밖 풍경을 내다보고 있는 에드워드를 불렀다.

“이리 온.”

“하하. 오늘은 개 취급인가.”

에드워드는 느긋한 손짓으로 커튼을 묶고 있던 매듭을 풀어 창문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그러고는 제일 먼저 코트를 벗어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내려둔 후 타이처럼 모양 잡아 목에 둘러맨 스카프를 끌렀다.

남자가 한 걸음씩 다가오며 몸 위에 걸친 것들을 하나하나 풀어 헤치자 걸음을 따라 마치 허물을 벗은 것처럼 옷의 길이 만들어졌다.

황록색 카펫 위에 에드워드의 맨 무릎이 닿았다. 어느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이 된 남자는 자연스럽게 이브가 앉아 있는 의자의 발치께에 얌전한 얼굴로 무릎을 꿇고 앉았다.

“개라니요? 개는 귀엽기라도 하지.”

이브는 무심한 얼굴로 중얼거리고는 에드워드를 발치 근처에 엎드리게끔 자세를 잡아주었다. 판판해진 남자의 등판 위로 길쭉한 은쟁반이 올려지고, 그 위로 뜨거운 홍차가 가득 담긴 찻잔 하나가 올라갔다.

“오늘은 바빠서 아직 신문을 못 읽었거든. 신문 한 부를 다 읽을 동안 그대로 자세 유지하세요. 찻물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벌 줄 거야.”

그렇게 속삭인 이브는 제 찻잔에도 홍차를 따른 후 다리를 꼬고 앉으며 보란 듯이 신문을 펼쳐들었다.

방 안은 간헐적으로 바스락바스락 하고 종잇장이 넘어가는 소리와 찻물을 삼키는 소리, 찻잔이 소서와 부딪혀 잘그락대는 소리로 채워졌다.

이브는 언제나 에드워드를 도구 그 이상으로는 보지 않았다. 열 오른 눈빛으로 사랑을 말해도 그녀의 눈동자는 언제나 차갑게 식어 있었다. 에드워드의 영혼을 영원토록 종속시킨 그날로부터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으나 이브의 심장은 한결같이 돌처럼 단단하고 얼음처럼 차가웠다.

지금의 이브에게 있어 그는 그저 길이 들고 손에 익은 편리한 도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수없이 반복한 시간 속에서 이처럼 마음 가득 충만해진 적도 없었다.

영혼의 뿌리까지 복속되고서야 마침내 남자는 뱃속을 가득 채운 허기가 가시는 것을 느꼈다. 육체의 고통 따위는 영혼의 갈급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에드워드는 그녀에게 제 목숨 줄을 들려주고서야 이브의 날개를 꺾는 데에 성공했음을 깨달았다. 그는 더 이상 이브가 제게서 떠날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익숙한 얼굴로 팔과 다리를 바짝 긴장시키며 등을 곧게 편 자세를 유지했다. 그간 기사들의 도움을 받아 틈틈이 운동을 해둔 덕에 근육이 단단히 잡힌 팔뚝 위로 파르란 힘줄이 돋아 올랐다.

한참을 신문에 집중하던 이브가 돌연 고개를 들고 문 쪽을 바라보았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님방의 문 바깥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난데, 들어가도 돼?”

“안 돼.”

“들어간다.”

작게 열린 문틈 사이로 윌리엄이 쑥 하고 들어왔다. 소리 없이 도로 문을 닫고 자물쇠까지 건 윌리엄은 나신으로 엎드려 있는 에드워드를 마치 없는 사람처럼 무시하며 이브가 앉아 있는 맞은편 암체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제가 대공 전하를 초대한 적이 있던가요?”

“어제는 카스텔 경이랑 잤잖아. 오늘은 내 차례 아닌가?”

“아니, 인간적으로 너네들 너무한 거 아니냐? 내 아랫도리가 무슨 365일 영업하는 24시간 편의점이야? 니들은 사나흘에 한 번씩 하는 거지만 나는 어? 주말도 없이 떡을 친다고. 나는 뭐 정력이 화수분처럼 샘솟는 줄 알아?”

“오늘을 위해 특별히 주문제작한 속옷도 입고 왔는데.”

“……그, 큼. 크흠. 무슨 속옷인데?”

정색하며 따지고 드는 이브의 얼굴을 보며 윌리엄이 테이블에 팔을 괴고 손으로 턱을 받친 채 눈을 접어 웃었다. 사르르 눈꼬리를 휘며 속삭이는 남자의 말에 이브의 딱딱하게 굳어 있던 얼굴이 한순간 슬쩍 무너졌다.

“벗겨볼래?”

“이 새끼, 잔머리만 늘어가지고.”

하, 하고 한숨 같은 웃음소리를 뱉어낸 이브를 향해 부드럽게 마주 웃어 보인 윌리엄이 테이블에 놓인 찻주전자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간간히 이브가 제 찻잔을 채우기는 했으나 찻물은 아직 티포트의 절반 정도를 채우고 있었다. 이브의 코앞까지 다가간 그는 날카롭게 선 눈빛으로 발아래를 내려다보며 이브의 발치 언저리에 엎드려 있는 「쟁반받침」의 머리를 향해 주전자를 기울였다.

곱게 우러난 금홍빛 찻물이 황금을 실로 자아낸 듯한 부드러운 당밀색 금발 위로 쪼르르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완전히 주전자를 거꾸로 엎어버린 탓에 주전자를 덮고 있던 조그마한 뚜껑이 에드워드의 머리 위로 퍽 하는 소리를 내며 떨어져버렸다.

한 김 식어 미지근해진 찻물이 머리 위를 적시며 관자놀이와 뺨을 타고 턱선을 따라 뚝뚝 떨어져도, 갑작스레 딱딱한 자기 덮개가 뒤통수를 아프게 후려갈겨도 남자는 미동 않고 자세를 유지했다. 별 제지 없이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이브가 픽 웃으며 말했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너 성격이 너무 변했어.”

“그런가?”

그저 더는 몸을 사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윌리엄은 언제 차가운 얼굴을 했느냐는 듯 살근살근 웃어 보이며 빈 찻주전자를 도로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이브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에드워드가 바닥에 흘려두고 온 옷가지들 틈 사이에서 밝은 비췻빛 스카프를 들어 올렸다. 손바닥 안으로 부드러운 실크 특유의 촉감이 느껴졌다.

스카프를 가지고 자리로 돌아온 이브는 긴 스카프를 둘둘 말아 접은 후 에드워드의 눈 위에 둘러 끝을 두 번 매듭지어 당겨 묶었다.

“이쪽으로.”

그러고는 심술궂게 웃으며 침대 모서리에 털썩 엉덩이를 뭉개고 앉았다. 에드워드는 허리 위에 올려둔 쟁반과 찻잔을 무너트리지 않게 조심하며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천천히 팔과 무릎을 움직였다.

용케 등의 균형을 유지하며 천천히 네발로 기는 에드워드를 심드렁한 얼굴로 지켜보던 윌리엄이 소리 내지 않고 그의 곁으로 다가와 슬쩍 홍차가 담긴 찻잔을 밀어 엎었다. 은쟁반 위로 찻잔이 쓰러지며 챙그랑 하는 소음과 함께 안에 담겨 있던 적황색의 맑은 찻물이 트레이 위로 모두 쏟아져버렸다.

트레이의 깊이가 생각보다 깊어 찻물은 쟁반 안에 고인 채 찰랑거렸고, 붉은색 도료가 덧입혀진 찻잔은 찻물 위에서 뒹굴며 남자의 움직임에 맞추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이런. 당신은 가구로도 별 쓸모가 없네.”

다리를 꼰 채 더듬더듬 앞을 짚으며 제 발치까지 용케 기어온 남자에게 그렇게 툭 내뱉은 이브가 찻물이 찰박이는 트레이를 발끝으로 건드려 바닥으로 툭 밀어버렸다. 바닥에 깔린 카펫 덕에 트레이와 찻잔이 내는 와장창 하는 소음은 붉은 찻물과 함께 대부분 흡수되었다.

이브는 무기질을 보는 듯한 서늘한 얼굴로 가향 홍차 특유의 미세한 풀 내음이 풍기는 금발을 손안 가득 움켜쥐었다.

“우리 집 하녀들의 일거리를 늘렸으니 벌을 줘야겠지. 무슨 벌이 받고 싶어?”

머리채를 붙들린 채 고개가 뒤로 꺾여 있음에도 스카프 아래로 비치는 남자의 얼굴은 미약한 희열에 차 있었다.

“내 주인께서 주신다면 뭐든.”

들뜬 듯도 한 달콤한 목소리에 이브가 오물을 만진 것처럼 남자의 머리를 휙 밀어 털어냈다.

“그럼 거기서 발이라도 핥고 있든가.”

그 말을 들은 에드워드는 기다렸다는 듯 바닥을 더듬어 이브의 발을 쥐고 구두를 벗겨냈다. 제 발치에서 신을 벗기고 있는 남자를 가볍게 무시한 그녀는 팔을 뒤로 짚어 몸을 뒤로 기울인 채 윌리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뭘 준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벗어나 봐.”

“이제야 봐주네.”

“까불지 말고.”

이브의 눈앞에서 남자가 거리낄 것 하나 없다는 얼굴로 단추를 툭툭 풀어 헤치며 옷을 벗어 내리기 시작했다. 짙은 검푸른색 오버코트와 새카만 재킷이 떨어져 나가고 푸른색 웨이스트코트와 푸른빛 도는 새하얀 셔츠까지 모두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하하하! 혹시 위아래 세트야?”

“맞혀봐.”

“이리 와.”

살갗이 드러난 상반신 위로 둘러진 것은 곱게 짜인 검은색 레이스였다. 이 시대의 속옷 형태보다는 두 사람이 공유하는 시간대의 브라렛에 더 가까운 세련된 디자인의 속옷을 보고 결국 그녀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브는 어느새 양말까지 벗겨져 서늘한 바깥 공기에 노출된 발등 위를 혀가 더듬어오는 것을 무시하며 제 곁으로 다가온 윌리엄의 바지춤을 잽싸게 풀어 헤쳤다.

“귀하신 대공 전하께서 옷 아래에 이런 음탕하고 천박한 속옷을 입고 계실 줄은 몰랐는걸요.”

“그대 아니면 누가 보겠어.”

“혹시 모르는 일이지. 정말 어디 들키기라도 하면 황족으로서의 체면이 땅으로 떨어지겠는데.”

“벌거벗은 채 기사의 맨 발바닥을 게걸스레 핥는 황족도 있는데, 이 정도쯤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하는 윌리엄의 목소리에 킥킥 웃은 이브가 손을 내밀어 성기 위를 감싸듯 둘러져 있는 성기게 짜인 레이스 위를 더듬었다.

“가렵진 않아? 레이스 속옷은 간질간질하다던데.”

“조금.”

“혹시 우리 집 약골이 그래? 내가 남자가 여자 속옷 입는 거 좋아한다고?”

“들켰네.”

“그건 걔가 여자 속옷을 엄청 싫어해서 입히는 건데. 뭐, 이것도 나쁘진 않네.”

잘 어울린다. 이브가 살살 속삭이며 웃었다.

“이렇게 차려입고 방문하신 저의가 무엇인지요?”

“예쁘게 차려입고 애살이라도 떨면 그대가 좀 예뻐해줄까 싶어서.”

“그렇게 귀염 받고 싶었어?”

어느새 남자의 몸이 이브의 허벅다리 위로 올라왔다. 이브는 손을 들어 날카로운 턱선을 따라 더듬듯 윌리엄의 뺨을 쓰다듬었다. 이브를 내려다보는 남자의 눈동자 가득 깊은 허기가 들어차 있었다.

길게 흘러내린 밤하늘을 담은 남색 머리카락이 손가락 가득 감겼다. 이브는 천천히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애완동물을 어르듯 남자를 슬슬 얼렀다.

어느새 반대편 발까지 신과 양말이 벗겨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잠깐 신경을 다른 데로 쏟고 있는 것을 눈치챘는지 윌리엄이 이브의 어깨를 밀어 침대 위로 강제로 누였다.

“자꾸 한눈팔다간 큰일 날지도 몰라.”

“큰일?”

윌리엄의 입매가 부드럽게 호선을 그렸다. 다정한 미소를 그리는 남자의 눈만은 흉악할 정도로 번뜩이고 있었다. 그는 이브에게 대꾸하는 대신 몸을 숙여 이브의 셔츠를 벗겨내면서 동시에 목 빗장 위를 입술로 더듬어갔다.

부드럽고 말랑한 입술이 쪽쪽 소리를 내며 이브의 살갗 위로 잘게 떨어졌다. 남자의 머리칼 사이로 은은한 백단 향이 풍겨왔다. 갈급한 몸짓으로 이브의 상체를 더듬던 윌리엄은 곧 이브의 셔츠 여밈을 모두 풀어 헤친 후 천을 한 겹 덧댔을 뿐인 수수한 디자인의 가슴 띠를 위로 걷어 올렸다.

부드럽게 솟아오른 완만한 곡선을 손으로 부드럽게 받쳐 올린 윌리엄이 곧 가슴팍의 살갗 위로 고개를 묻었다. 위아래로 침을 발리고 있는 느낌이 마치 개에게 영역표시를 당하고 있는 기분인 것만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브는 심드렁히 남자가 저 좋을 대로 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윌리엄은 둥근 젖무덤 위에 입을 대고 약간 따가울 정도로 살갗을 빨아들이다가, 긴 손가락으로 마사지하듯 주무르며 유륜 위를 살살 자극했다. 남자가 꽤 가슴에 공을 들이고는 있지만 이브는 그다지 흥이 오른 얼굴이 아니었다.

“전에도 얘기했잖아. 가슴으로 잘 못 느낀다고. 이제 슬슬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어?”

“진짜 안 느끼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체질이야, 체질.”

쯧, 하고 혀를 찬 윌리엄이 잔뜩 심통이 난 얼굴로 이를 세웠다. 콱, 하고 남자의 송곳니가 이브의 가슴 살 위에 틀어박히는 순간 이브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이브가 팔을 뻗어 남자의 긴 머리채를 다섯 손가락 가득 휘감아 쥐고 그대로 뒤로 들어 올렸다.

이브는 복근의 힘만으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앉고는 냉랭한 표정을 유지한 채 손을 펴 매섭게 윌리엄의 뺨을 후려갈겼다.

짜악, 짝!

윤이 나는 머리채를 틀어쥔 채 뺨을 서너 대 후려친 이브가 온기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늘하게 식은 눈을 마주 보던 윌리엄은 결국 슬쩍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기죽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기어오르지 말라고 했지.”

“흐, 읏.”

“봐주는 데에도 한계가 있어. 적당히 까불어.”

“윽, 아. 죄송, 해요. 잘못했어요…….”

순순히 고분고분한 태도를 취하는 남자를 보며 이브는 김샜다는 얼굴로 틀어쥐었던 머리카락을 놓아주었다. 윌리엄은 금세 벌겋게 달아오른 뺨을 손등으로 문지르면서도 내심 이브가 저를 꽤 봐주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브가 정말 화가 나서 때렸다면 그냥 뺨이 좀 붓고 말 정도에서 그치지 않았을 터였다.

다시금 샐쭉 솟아오르는 장난기를 억지로 누른 남자는 슬슬 눈치를 보며 이브의 어깨 위에 슬그머니 고개를 묻고 몸을 치대왔다.

이후로 난잡한 난교가 이어졌다. 교접이라고는 해도 적당히 장난감과 이런저런 도구를 가지고 남자들의 구멍이란 구멍은 죄 쑤시고 후빈 것뿐이었지만.

벌이라는 명목하에 윌리엄은 사정을 금지당한 채 마도구형 모조 페니스를 부착한 이브의 몸 위에 올라타 스스로 구멍을 쑤시며 헐떡이는 에드워드를 지켜보아야만 했다.

그러나 개발이 덜 되어 전립선 자극으로 쉽게 절정에 도달하지 못하는 에드워드는 결국 이브에게 목이 졸리고서야 그녀의 배 위에 사정할 수 있었다. 숨이 차 헐떡이면서도 에드워드는 교육을 잘 받은 개처럼 허리를 숙여 이브의 몸을 더럽힌 오물들을 혀로 삭삭 핥아 올렸다.

결국 참지 못한 윌리엄이 이브에게 다가와 반쯤 울며 애정을 갈구하고 나서야 이브는 잔뜩 성이 오른 윌리엄의 사타구니를 발로 꾹꾹 짓밟아주며 토정하는 것을 허락했다.

이내 윌리엄이 쏘아낸 비릿한 백탁액이 이브의 발바닥을 적시고야 말았고, 그것을 입으로 닦아내는 일은 역시나 도구로서의 기능을 명령받은 에드워드였다.

이래저래 이브의 발아래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잔뜩 짓밟히고서도 두 남자는 그녀를 열렬한 신도처럼 숭앙의 눈빛으로 올려다보았다.

기이한 방식이기는 해도 이브에게서 어느 정도의 애정을 채운 두 남자는 크게 만족하며 식사까지 얻어먹고 돌아갔다.

두 귀하신 분들을 시간 차를 두고 마차를 태워 배웅한 이브가 목을 이리저리 젖혀 목 근육을 풀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에드워드와 귀가를 한 게 점심나절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SM이라는 게 관계의 우위는 도미넌트가 가지고 있다고는 해도 결국은 도미넌트가 서브미시브에게 바치는 일종의 육체적 정신적 서비스나 다를 게 없다니까. 저 자식들은 플레이 루틴 하나 짜는 데에도 대가리가 터진다는 걸 알까 몰라. 아무튼 잔뜩 즐기고 갔으니 한동안은 얌전하겠지, 망할 새끼들.’

저택 안으로 돌아와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이브가 제 방 거실의 안락의자에 몸을 깊이 파묻은 채 한숨을 돌리고 있던 때였다.

“주인님, 방문 카드가 왔습니다.”

“방문 카드?”

“네. 베르묄 저택에서 보낸 사람이었어요.”

이제 좀 쉬는가 보다 하고 느른히 늘어져 있던 이브가 안나의 말에 으음 하고 침음성을 흘리며 작은 카드를 건네받았다.

방문 카드는 주인이 자리를 비웠을 때 방문 약속을 잡기 위해 남기는, 상류 계급 사람들의 고상한 문화 중 하나였다. 귀족식 예절은 영 익숙해지지 않는단 말이야, 하고 입 안으로 중얼거리면서 이브는 카드의 앞뒷면을 슥 훑어보았다.

고급 종이 위에 유려한 필체로 적힌 알베리크의 이름을 확인한 이브는 곧바로 안나에게 편지지를 준비해줄 것을 부탁했다.

“어휴, 기 빨려. 나 이러다 마흔 전에 뼈 삭는 거 아냐……?”

이러니저러니 해도 제 슬레이브에게만은 꽤 다정한 주인인 이브는 입으로는 툴툴대면서도 알베리크와의 약속을 잡기 위해 머릿속으로 적당한 날짜를 꼽아보았다.

그러다 문득 그녀는 자신이 새벽에 꾸었던 기분 더러운 꿈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록 깊게 새겨진 상처는 흔적을 남긴 채 아물었으나 더는 그것이 고통스럽지 않았다. 기분은 조금 나쁘지만 잊으려면 얼마든지 잊을 수 있었다. 시간은 유수와 같이 흐르니 그녀의 상처 역시 곧 꿈으로도 되새겨지지 않을 정도로 기억 저 너머로 흘러갈 것이 분명했다.

몸이야 조금 고되긴 하지만 부족할 것 없는 삶이었다. 이브는 진심으로, 지금의 삶에 더없이 만족하고 있었다.

“뭐, 이런 것도 행복이라면 행복이지.”

「마침내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하는 흔하디흔한 동화 속 구절을 떠올리며 이브는 옅게 웃었다.

『남주들을 조교할 생각은 없었는데요』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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