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5. 외팔의 기사님과 미소년(?) 마법사 (6/22)

05. 외팔의 기사님과 미소년(?) 마법사

당초 사나흘로 잡았던 수도행이 열흘로 늘어난 것은 순전히 알베리크의 일정 때문이었다. 그는 온종일 제 볼일을 보기에 바빠 보였고 그 덕에 이브는 감시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되어 홀로 강 동쪽을 헤집고 다니거나, 다시 옥타비아를 찾아가거나 하는 등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할 수 있었다.

수도 체류 일정이 길어진 덕분에 이브는 옥타비아에게 은밀하게 부탁한 물건의 전 단계 정도로 보이는 프로토 타입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일주일 내내 밤을 새운 것인지 눈 아래가 새카맣게 변해 반쯤 시체가 된 몰골로도 신이 나서 헤헤 웃으며 「마나 회로를 어떻게 짜야 할지 감이 잡혔어요! 다음번엔 완성품으로 보내드릴게요!」 하고 의욕에 차 있는 옥타비아를 보며 이브는 이것이 바로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광기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열흘 후 두 사람은 각자의 볼일을 마치고 다시 베르묄 저택으로 돌아왔다. 역시 기차는 일등석 칸이었다.

알베리크와 수도에서 돌아온 지도 며칠이 채 안 되어, 알베리크가 이브를 테스트하기 위해 모셔왔다는 「분」이 백작저를 방문했다.

샌드위치를 막 입에 넣으려던 찰나 손님의 방문을 알려온 알베리크의 시종 때문에 이브는 소태를 씹은 얼굴로 신선한 양상추와 베이컨, 반숙 계란과 씨겨자소스를 넣은 탐스러운 샌드위치와 강제로 이별해야만 했다.

아직 채도 낮은 노란빛의 가벼운 오전 실내용 드레스를 입은 채였으나 이브는 아마 상대도 신경 쓰지 않을 거라면서 틸다의 만류를 뿌리치고 그 모습 그대로 알베리크의 시종을 따라나섰다.

시종의 안내를 받아 응접실이 아닌, 알베리크의 개인 집무실로 들어서다가 집무실의 서책들을 구경하는 듯 책장 한편에 서 있던 사람과 정통으로 눈이 마주쳤다. 이브는 이 키 큰 여자가 남자가 말한 「그분」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아, 마침 도착했군요.”

“음.”

그녀는 키가 크고 우람한 덩치의, 옷 아래로도 근육이 잘 짜여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중년의 외팔 검사였다. 괴물들을 상대하는 일을 하다 보면 신체 여기저기가 뜯겨나간 사람들을 보는 것도 부기지수였던지라, 이브는 별다른 내색하지 않고 그녀에게 다가가 왼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이벨린 베르묄입니다.”

“반갑군. 마거릿 플랑드르라네.”

이것 봐라, 하는 얼굴로 이브가 내민 손을 내려다본 그녀가 씨익 미소 지으며 이브의 손을 맞잡았다. 가볍게 힘주어 두어 번 흔든 후 손을 떼어내려는데 별안간 우악스러운 힘이 이브의 손을 잡아채어 그것을 으스러트릴 듯이 강하게 쥐어짰다.

“백작가의 영애라 하지 않았나?”

“큭…….”

“놀랍군. 귀족 영애라기보다는…… 도살자의 눈빛이야.”

“…….”

이브는 순식간에 숨통을 죄어오는 살기에 전율했다. 감정 스킬이 없어도 알 수 있었다. 눈앞의 검사는 비록 팔 하나가 없음에도 이브를 손가락 하나로 농락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실력자였다.

테스트고 나발이고, 지금 당장 목숨이 간당간당할 지경이었다. 조금만 허투루 움직인다면 순식간에 그녀의 검이 자신의 목을 베어낼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브는 상대의 살기에 반응해 저도 모르게 발길질을 해버릴 것만 같았다. 공격을 하고 싶어 꿈틀대는 몸을 억지로 갈무리한 이브는 얼굴 위에서 표정을 지워내며 눈앞의 여자를 주시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무기를 잡아본 손은 또 아니란 말이지.”

“……잡아본 적 없으니까요.”

“얘야.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느냐?”

“꿈에서라면 수십, 수백 번이고.”

“하하하, 꿈에서?”

“괴물도 죽여봤죠. 괴물을 죽이려다가 미쳐버린 사람들도 죽여보고. 더 이상 살아날 가망이 없는 동료도 죽여봤고요. 물론 다 꿈속의 이야기지만요.”

이브는 쏟아지는 살기 아래에서도 빳빳이 고개를 들고 마거릿을 마주 보았다. 고작 몇 년 단련한 몸으로 반평생을 칼을 잡아온 실력자가 뿜어대는 기세를 버틸 수는 없었다. 이브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과거의 기억과 이브 자신의 오기뿐이었다.

아무리 각성을 했다고는 해도 「주영」은 고작해야 C급 무투 계열 강화 헌터였다. 그렇기에 제 레벨을 훌쩍 웃도는 몬스터들을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베어 넘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죽음을 턱 아래에 두고 살아왔고, 죽지 않기 위해 상대를 죽이는 삶을 살아왔다. 진짜 검이나 발톱도 아닌 살기 따위에 무릎을 꿇는 것은 10년 경력의 헌터에게는 쪽팔린 일이었다.

“지옥을 본 적이 있구나. 그렇지?”

마거릿은 저쪽에 앉아 있는 알베리크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무척이나 작은 속삭임에 이브는 말없이 마거릿의 잿빛 눈을 응시했다. 곧 저절로 입꼬리가 위로 향하며 붉은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마거릿은 삽시간에 그녀를 짓누르던 기세를 거두었다.

“경께서도 본 적이 있으시군요.”

“하하, 내가 언제 기사라고 소개했던가?”

이브는 언제 피가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미소를 지었느냐는 듯 얼굴에서 살기를 씻은 듯이 지워내고 그 나이대에 맞는 숙녀처럼 해맑게 웃어 보였다. 마거릿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순백의 기사 마르그리트 로렌 비텔스바흐를 모르는 소녀들도 있던가요.”

“이런. 알베리크, 자네가 말했나?”

“아닙니다. 맹세코, 마거릿님에 관한 이야기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습니다.”

마거릿이 오래전 그녀의 손으로 직접 흙바닥에 묻어버린 이름을 듣자마자 고개를 돌려 뒤쪽에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알베리크에게 물었다. 알베리크는 담담히 부정했고, 그의 모습을 가늘어진 눈으로 쏘아보던 마거릿은 다시 이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전쟁에서 영웅이 되어 돌아온 남자들은 많아요. 하지만 우리같이 보잘것없는 소녀들의 우상이 되어준 사람은 마르그리트 비텔스바흐 경 단 한 분뿐이죠. 저 역시 어릴 때부터 고아원의 나이 많은 언니들에게 장미전쟁과 관련된 무훈들을 전설처럼 전해들으며 자랐어요. 경의 이야기는 우리 같은 고아 소녀들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셨죠. 적어도 평민 소녀들 중에 경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이들은 없을걸요.”

“영애는 베르묄의 아가씨가 아니던가?”

“오라버니께서 빼먹은 말이 있나 보네요. 저는 열세 살까지 수도 인근의 고아원에서 자랐답니다.”

“재미있군. 제법이기도 하고.”

이브 역시 설마 팔 하나가 없는 이 중년의 검사가 「그」 마르그리트 로렌 비텔스바흐일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계산대로라면 이미 쉰을 한참 넘겼을 그녀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직 마흔 초입에 들어선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마법사뿐만 아니라 검사 역시 검기를 다루게 되는 순간 신체의 시간이 더디게 흐른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산증인이었다.

이브는 제가 말한 것과 같이 고아원에 있을 시절, 기사 마르그리트 로렌 비텔스바흐의 무훈을 마치 동화처럼 들으며 자랐다. 그녀의 이야기는 어린 소녀들에게 수녀가 되는 길 말고도 다양한 길이 그녀들 앞에 펼쳐져 있음을 일깨워주고는 했다. 이 백발과 잿빛 눈을 가진 여기사는 브리타니아 소녀들의 우상이었다.

그러나 이브는 이브가 아닐 때부터 그녀를 알고 있었다. 순백의 기사 마르그리트는 「이브를 위하여」 속 남자 조연 캐릭터 중 한 명인 카스텔 비텔스바흐의 생모이기도 했다.

황태자의 검이라고 불리는, 황실 제1기사단의 부단장 카스텔 비텔스바흐는 선황의 명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결혼한 전대 최강의 검사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검술 천재였다.

마르그리트, 결혼 전에는 성도 없이 그저 마거릿으로 불리던 여인은 전쟁에 대한 공훈으로 로렌이라는 성과 명예작위를 받으며 귀족 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타고난 출신이 천했기에 그녀는 귀족 사내와 결혼했음에도 제국법에 따라 후작부인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그녀의 배를 타고난 카스텔 비텔스바흐는 제국 최고의 무장 발루아 후작의 장자이면서도 작위를 계승받지는 못했다.

검술의 극의를 본 이들끼리는 통하는 데가 제법 있었다던가 하는 이유로 마르그리트와 발루아의 후작, 아르놀트 비텔스바흐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사이를 유지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푸른 피를 이은 귀족가의 여인을 부인으로 들여야 한다는 가신들의 압박에 발루아 후작은 결국 마르그리트와의 합의 끝에 이혼한 후 어느 백작가의 여식과 두 번째 결혼을 올렸다.

카스텔은 애당초 황가의 검으로 삼기 위해 두 절정의 고수들을 접붙여 만들어낸 존재였다. 그 사실을 그의 부모도,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는 모든 욕망과 욕구, 사사로운 감정들을 거세당한 채 오로지 검술과 황족에 대한 충성만을 배우며 정서적으로 메마른 채 자라왔다.

그는 주로 황태자를 보필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 황태자 루트를 타다 보면 필수적으로 엮이게 되는 서브남주였다. 그는 황태자가 이브를 납치해다가 이렇고 저렇고 그런 짓들을 서슴없이 저지를 때마다 두어 걸음 뒤에서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며 묵묵히 황태자의 명령을 수행하는 역할을 도맡았다.

그러나 그는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끝까지 권력자에게 반항하며 기운을 잃지 않는 이브를 보며 조금씩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별의별 험한 꼴을 보며 감금되어 있는 처지에 놓여 있는 주제에 되레 자신을 동정하는 그녀에게 결국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카스텔은 미친놈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학대나 다름없는 고약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 감정적으로는 아주 메말라 있는 사람이기는 했으나 그는 교육받은 기사 출신이라서 그런지 굳이 따지자면 정상인의 범주에 속하는 모럴을 가졌다. 그래서 일찍 죽었다.

카스텔 루트를 함께 타게 되면 처음엔 목석같이 굴던 그는 마지막엔 항상 이브를 도와주려고 했다. 감옥에서 빼내준다거나, 국경을 넘는 것을 도와준다거나. 호감도가 100퍼센트에 달하면 아예 함께 사랑의 도피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메인남주들은 모두 고약할 정도로 영리하고 사악했다. 카스텔은 모든 루트에서 그들이 놓은 덫에 빠져 이브를 탈출시키려던 계획을 성공시키지 못하고 죽었다. 이브를 대신해 죽기도 하고, 이브와 함께 죽기도 하고.

아무튼 그 불쌍하고 명 짧은 남자의 어머니가 바로 눈앞의 검사였다. 게임 속에서는 이름만 잠깐 나왔다가 사라져 금방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녀와 대화 몇 마디를 나누어보니 금방 정체를 유추할 수 있었다. 이 세계에서 이 정도로 강한 여성 실력자는 단연코 마르그리트뿐이었다.

“……이 망아지 같은 아가씨는 내가 맡도록 하지.”

한쪽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한참 고민에 빠져 있던 마거릿은 이윽고 소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맡도록 하신다는 말씀은?”

“개인적으로 흥미가 생겨서 말이야. 집에 남는 방 좀 있나?”

“마거릿님께서 머물러주신다면야 제게는 영광입니다만.”

“그러면 잠시 신세 좀 지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별관을 비워두도록 지시하지요. 앞으로는 그곳에 머무르시면 됩니다. 모시는 데에 불편함이 없으시도록 미리 이야기해둘 테니 부디 편하게 이용해주십시오.”

“이거, 말년에 호강하게 생겼군.”

알베리크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마거릿을 보던 이브가 돌연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물었다.

“설마 제 이야기는 아니시죠?”

“세상에 그냥 풀어뒀다간 괜히 후회할 일이 생길 것 같아서 말이야.”

“제가요? 저 진짜 착한 사람인데요.”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기요? 제 의사는요?”

마거릿은 껄껄 호탕하게 웃으며 이브의 말을 완벽히 못 들은 것처럼 무시해버렸다. 알베리크까지 픽 웃는 소리가 들리자 이브의 얼굴이 와락 험악하게 구겨졌다.

‘아, 뭔데. 갑자기 기분이 엄청 싸한데.’

마거릿이 별관의 손님이 되는 것은 확실시되었다. 틸다는 알베리크의 명령으로 다시 아델라이드 부인에게 돌아갔고 이브는 간단히 짐을 챙겨 별관으로 침실을 옮겼다. 어차피 한동안은 또 저택 밖으로 나가지 못할 터였기에 이브는 단출한 옷가지들과 옥타비아의 발명품들만을 챙겨 왔다.

디귿 자 모양의 거대한 저택 본관 뒤쪽 오른편에 작게 세워져 있는 별관은 본관에 비하면 규모는 작았으나 안락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있었다.

대대로 거동이 불편한 노가주들이 자식에게 작위를 물려준 후 요양하는 공간이라고 설명한 알베리크의 말이 무색하지 않게 별관은 노인이 활동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도록 대부분 발에 걸리는 턱이 없었고, 전반적으로 창이 무척 큼직큼직해 채광이 무척 좋았다.

알베리크는 전대의 가주들이 기거했던 공간이기는 하나 지금의 백작은 이곳을 뒷방 늙은이의 공간 정도로 여겨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두 사람이 한동안 별관에 머물러도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자신이 직접 준비시킨 하녀들에게 다시금 두 사람을 모시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주의를 시킨 후 본관으로 돌아갔다.

“그러면 옷을 갈아입고 별관 후원에서 보도록 할까.”

“지금 당장 말인가요?”

“생각난 김에 움직여야지. 나이를 먹으면 자꾸 깜빡깜빡한단 말이야.”

“아, 그런데 제가 바지가 없어서요. 그냥 속바지만 입고 나가도 괜찮을까요?”

“으하하하! 골 때리는 아가씨네, 정말!”

빵 터진 마거릿이 몇 차례 더 허리를 접고 웃다가 이브의 등짝을 두드렸다. 물론 무척 아팠지만, 자신이 준비한 옷을 하녀가 챙겨줄 테니 그것으로 갈아입고 오라고 말한 마거릿은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메이드와 함께 그녀에게 배정된 방으로 사라져버렸다.

잠시 후 옷을 갈아입은 이브가 후원으로 나왔을 때에는 한 식경이 채 지나지 않은 때였다. 연한 베이지색의 몹시 가벼운 코튼 아일릿 셔츠와 정강이까지 올라오는 짧은 갈색 바지는 남성복의 디자인을 그대로 사이즈만 줄여 만든 듯 굉장히 몸에 편하게 감겨왔다. 물론 치마에 비한다면 말이었다.

이전 삶의 전투복들이 떠오른 이브는 알베리크에게 돈을 좀 더 뜯어내서 편안한 활동복을 주문제작 맡기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인기척도 없이 가까이 다가온 마거릿이 뒤늦게 기척을 내비치며 말을 걸었다. 이브에게 준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디자인의 남성용 훈련복을 걸친 그녀는 중년의 나이임에도 몸집이 두툼하고 키가 커 아주 맵시가 좋았다. 뒤로 질끈 묶은, 곱슬 기 없는 잿빛 도는 흰색의 머리카락은 꼬리가 고작해야 한 뼘 정도인 것을 보니 아마도 머리를 풀어도 기껏해야 어깨를 조금 넘는 정도의 단발머리이지 싶었다.

“일찍 나왔군.”

“어어, 네. 음. 스승님……?”

“간지러운 호칭 집어치우도록. 그냥 마거릿님이라고 부르게.”

“에이, 느낌이 영 안 살잖아요.”

툴툴대는 이브의 앞에 돌연 기다란 막대 같은 것이 휙 하고 날아왔다. 이브는 얼결에 재빨리 얼굴 앞으로 던져진 것을 잡아채고는 이어 손안에 붙잡힌 것을 확인했다. 날이 무딘 연습용 철검이었다.

“오늘은 간단히 몸에 남은 버릇이나 확인해볼까.”

“예?”

“검을 쓸 줄은 알지? 덤벼보게나.”

그렇게 말한 마거릿은 하나 남은 팔을 빙글빙글 돌리며 어깨의 근육을 풀고, 고개를 두어 번 좌우로 꺾어 목 근육을 이완했다. 이브는 검을 쥔 채로 잠시 얼떨떨한 얼굴을 하다가, 곧 전신의 근육을 긴장시키며 몸을 낮추고 마거릿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이브가 주영이었을 시절, 그녀의 스킬은 각성자치고는 형편없는 편에 속했다. 대다수가 외부 요소에 대한 저항 패시브였고 그럭저럭 쓸 만한 스킬 역시 검기를 방출해내는 오라 블레이드와 신체 강화뿐이었다.

이브가 된 이후로 스킬창이 뜬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과거의 감각을 떠올리다 보면 얼추 스킬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되고는 했다.

이브는 몸의 감각이 예리하게 벼려지는 것과 동시에 신체가 전투에 특화되어 변화했음을 느꼈다. 순식간에 이브에게서 날카로운 살기가 피어올랐다. 약간의 틈이라도 보이는 순간 순식간에 달려들어 목을 물어뜯을 듯한 기세였다.

“사냥을 했었군. 그것도 주로 덩치가 큰 놈들을.”

“…….”

이브는 그녀의 말을 귀 뒤로 흘려 넘기며 검의 끝을 마거릿에게 겨눈 채 천천히 몸을 옆으로 움직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녀의 시야 사각에 들었다는 확신이 들자 이브는 마거릿이 잠깐 눈을 깜빡이는 순간을 노려 단숨에 그녀에게 짓쳐들어 갔다.

부웅!

검이 살짝 바닥을 긁고 그대로 무시무시한 바람 가르는 소리를 내며 한 바퀴 빙 돌아 마거릿의 오른쪽 허리께를 수평으로 그었다. 그대로 허리에 철검의 뭉툭한 날이 닿는다고 생각한 순간.

퍼억!

이브는 간신히 검을 세워 들고 날아든 마거릿의 발을 막아냈다. 인간의 육체와 쇠막대가 부딪쳤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묵직한 타격음이 터져 나왔다.

이브는 힘을 주어 그대로 검을 바깥으로 밀쳐내고는 궤적을 바꾸어 이번에는 어깻죽지를 노리며 왼편을 횡으로 휘익 휘둘러 내리그었다. 마거릿은 그것을 몸을 슬쩍 비트는 것만으로도 간단히 피해버렸다.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기가 무섭게 다시금 검이 빠르게 회수되었다가 날카롭게 찔러 들어왔다. 목을 노리던 검 끝이 목표를 잃고 어깨와 허리 그리고 다시 목을 향해 재차 내질러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차례의 공격이 퍼부어졌다.

한순간, 순식간에 마거릿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브는 당황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뒤로 돌림과 동시에 몸을 돌리는 방향대로 크게 검을 부웅, 휘둘렀다.

퍼억! 다시 그녀의 다리와 검이 마주 닿았다.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면 등을 제대로 걷어차였을 것이다.

이브는 양손으로 검 손잡이를 꾸욱 말아 쥐며 아래로 검 끝을 내렸다. 그그극, 하고 검 끝이 바닥을 긁는 소리와 함께 다시 이브는 몸을 낮추어 마거릿이 빈틈을 보이기까지 기다렸다.

“주로 크고 묵직한 대검을 애용했던 모양이지. 자꾸 땅을 끄는 못된 버릇이 있어. 게다가 사이사이 연계동작이 어딘가 어설퍼. 검술을 제대로 배운 건 아니고, 실전용 검술인가.”

이브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거릿 역시 대답을 바라고 던지는 말은 아닐 터였다. 송곳처럼 매섭게 들이치는 찌르기와 정확히 급소를 노리는 베기. 이브의 검은 무척이나 날카로웠다. 마거릿은 혀를 쯧쯧 차며 홀로 중얼거렸다.

“폼은 그럴싸하지만 피 냄새가 너무 짙어. 이건, 완전히 살상용인데.”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이브의 신형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다시 한 번 횡으로 베기. 이번에는 오른쪽에서 왼쪽 하단으로 검격이 이어졌다.

마거릿은 그것을 막는 대신 몸을 훌쩍 뒤로 물렸다. 횡으로 베어내던 힘을 원심력 삼아 그대로 몸을 빙글 돌린 이브가 빠르게 회전력을 이용해 그녀를 걷어차려 했으나 마거릿의 움직임이 약간 더 빨랐다.

허공에 헛발질하게 된 이브가 칫, 하고 작게 혀를 찼다. 횡 베기는 블러핑이었다.

“체술은 어느 정도로 익혔지?”

“……관절기 정도는 쓸 수 있어요.”

“흐음.”

이번에는 마거릿 쪽에서 순식간에 치고 들어왔다. 그녀의 주먹이 이브의 안면으로 궤적을 알아보기 쉬울 정도로 곧게 파고들었다. 그러나 그 궤도에서 들리는, 공기를 찢는 파열음에 이브는 안색을 딱딱하게 굳히며 몸을 뒤쪽으로 물렸다.

그대로 아래쪽에서 무릎이 복부를 향해 파고들었다. 순식간에 가까워진 거리에 검을 휘두를 만한 간격이 나오지 않았다. 이브는 그대로 검을 내던지고는 양손을 교차시켜 모아 묵직한 무릎을 받아내며 재빠르게 옆으로 몸을 굴렸다. 비껴 맞은 손목이 욱신거렸으나 정통으로 맞았다면 일어서지 못했을 터였다.

한차례 바닥을 구른 이브가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10여 차례 정도 주먹과 무릎, 발이 이브에게 정신없이 쏟아졌고 이브는 눈으로 궤적을 좇기 힘들 정도로 빨라지는 움직임에 감각만으로 그것들을 막거나 피해야 했다.

기감은 그럭저럭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갔으나, 아직 완전히 만들어지지 않은 이브의 몸은 감각을 따라가지 못하고 자꾸만 마거릿의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제대로 옆구리를 걷어차인 이브가 오른편으로 쿠당탕 소리를 내며 데굴데굴 굴렀다. 무릎을 꿇은 채 허리를 붙들고 소리도 내지 못하며 끅끅대는 이브를 보던 마거릿이 길게 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체술은 아주 오래전에 익히다 만 것 같고. 검술은 완전히 급소를 베고 찔러 상대를 죽이기 위해서만 익힌 것 같고. 그럭저럭 감은 괜찮은데 아직 몸이 안 따라주는군. 그거야 계속 단련하면 금방 괜찮아질 테고……. 아무튼, 대충 알 것 같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헉, 허억……. 가…… 간단히…… 으어, 한다, 면서요…….”

“쯧쯔……. 젊은 사람이 체력이 그게 뭔가.”

“흐어, 헉……. 마……거릿님이…… 헉…… 사람이 아닌…… 흐억…….”

“후후……. 헛소리를 다 하는구나. 들어가서 씻고 쉬게나. 내일은 아마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할 테니 푹 쉬고 모레부터 시작해야겠군.”

정신이 쏙 빠질 정도의 격한 움직임에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마거릿이 후원에서 사라지자마자 이브는 그대로 풀밭에 드러누워 헐떡이는 숨을 골랐다. 폐가 쪼그라들어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그녀는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미친! 저 정도면 인간병기다, 병기! 마지막 한 방은 진짜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어! 저게 사람이냐? 왜 또라이 선황이 억지로 결혼까지 시켜가며 대를 이으려고 했는지 알겠네! 저런 괴물 같은 사람의 2세 뽑기라니 나 같아도 도전해보겠다! 최소 슈퍼 레어 등급 확정 아냐!’

이브는 대자로 늘어져 헉헉대다가 한참 만에야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부드러운 손바닥은 딱딱한 검 손잡이를 쥐고 강한 타격을 버틴 탓에 찢어져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온몸이 흙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싶었다.

아주 오랜만에 뜨거운 물로 여유 부리며 몸을 씻어 여독을 푼 마거릿이 말끔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하녀들을 모두 밖으로 물리고는 때가 탄 짐 가방을 뒤져 통신용 수정구를 꺼내 들었다. 작은 마정석을 수정구에 작게 파인 홈에 끼우고 호출 버튼을 누르자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수정구 안에 사람 얼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거릿은 허리를 단정히 펴며 조용히 상대를 불렀다.

“전하.”

―마거릿. 칼레스령에 도착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네.

“방금 막 그 아이를 만나고 온 참입니다.”

―어떤가, 그녀는?

“뭐라고 딱 집어 단언하기는 힘듭니다만……. 굳이 말하자면 굶주린 들개 같아 보였습니다.”

―하하, 들개라…….

“게다가 말씀하신 것과는 다르게 생각 외로 수준급의 무력을 갖추고 있더군요. 다만…….”

―다만?

“매일같이 운동한다 하니 체력이나 근력 상태가 또래보다 월등히 좋은 것은 이해가 가지만, 그 기세나 자세가 홀로 수련해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누군가 접근해 작정하고 키운 것이 아닌 이상에야……. 그 나이에 그 성취라니,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짐작 가는 바가 있다네. 마거릿 경, 그녀를 잘 부탁하네.

“전하의 명이시니 이 노복은 따를 수밖에요.”

―어떻게 알았는지 따로 심어둔 세작의 암호 책까지 알아내 불태웠다고 하는군. 감이 아주 좋은 여자야. 앞으로는 한동안 이렇게 연락하는 일을 삼가야 할 것 같네.

“명 받듭니다.”

―아들에게 전할 메시지는 없나?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카스텔은 지금 자리를 비웠군.

“으음. 삼시 세끼 꼬박 잘 챙기고 수면은 하루 7시간 이상 꼭 취하라고 전해주십시오.”

―하하하. 알겠네. 그러면 다음엔 내 쪽에서 먼저 연락하도록 하지.

“예.”

길지 않은 대화가 오간 후 통신구에서 새어 나오던 빛이 사그라졌다. 마거릿은 수정구가 완전히 빛을 잃은 후에 마정석을 다시 꺼내어 그것들을 짐 가방 깊숙한 곳에 잘 정리해 집어넣었다.

그 후 다시 의자로 돌아와 한동안 말없이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 생각을 정리해보던 마거릿은 이윽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하녀를 불러 식사를 올려달라고 지시했다.

별관에서의 하루는 아주 단조로웠다. 그렇다고 힘들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었다. 이브는 아침에 눈을 뜨면 미지근한 물을 한 컵 마시고 공복 상태에서 몸을 풀어주기 위해 삼사십 분가량 전신 스트레칭과 맨손 근력 운동을 한 후 목욕을 했다.

가운을 걸친 채 아침 식사를 한 후 훈련복으로 갈아입고 후원으로 나가 날이 무딘 페더슈베르트(연습용 철검)를 들고 내려치기 300회, 횡 베기 300회, 찌르기 300회를 했다.

처음 며칠은 나쁜 버릇이 들었다며 한 동작에 한 번씩은 꼭 마거릿에게 쇠 부지깽이로 얻어맞았다. 이대로 다른 기사들과 검을 맞대면 암살자라고 오해받아도 할 말이 없을 거라며 자세가 나쁜 부위를 퍽퍽 소리가 날 정도로 두들겨 맞았다. 그것도 시간이 지나니 점차 맞는 일이 없어졌다.

체력을 아무리 키웠다고는 해도 신체를 강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실전용 검과 다를 바 없는 철제 검을 들고 900회의 움직임을, 그것도 근육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신경 써서 수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모두가 아침을 시작하는 시간부터 나와 검을 쥐고 휘둘러도 해가 질 무렵에나 일정이 모두 끝났다. 이브는 매일 저녁 팔과 다리를 덜덜 떨어가며 뜨거운 물로 땀을 씻어내고 영 안 먹히는 저녁을 억지로 꾸역꾸역 입 안에 쑤셔 넣은 후 기절하듯 잠에 빠졌다. 사정을 전해 들었는지 한동안은 알베리크도 자신을 찾지 않았다.

식사 역시 마거릿의 지시가 있었던지 간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 심지어 양은 또 어찌나 많은지, 이브는 매일 아침저녁 향신료를 많이 쓰지 않은 밍밍한 맛의 음식들을 위장 안으로 밀어 넣으면서 고통 받았다.

‘무슨 고인물 헬창한테 일대일 개인 레슨 받는 헬스장 뉴비 멸치도 아니고! 지옥의 하드 트레이닝이야 뭐야!’

아무튼 식단을 관리받고 매일매일 죽기 직전까지 몸을 움직이다가 가끔가다 메이드들에게 향유 마사지를 받아 뭉친 근육을 풀어주니 정신은 바짝 말라 시들시들해져 가도 육체는 무척이나 건강해졌다.

하지만 이브는 행복하지 않았다. 마거릿이 금지한 정제된 밀가루로 만든 간식거리들이 너무 먹고 싶었다. 차를 마시면서 티푸드를 곁들이지 못하는 삶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다.

“아니, 그냥 검술만 좀 배울 줄 알았더니 너무 본격적이잖아요!”

횡 베기를 100번쯤 하다 말고 묵직한 페더를 저쪽으로 내팽개친 다음 이브는 벌러덩 바닥에 드러누워버렸다. 팔다리를 마구 바동거리면서 징징대는 나이 어린 제자를 내려다보던 마거릿이 피식 웃었다.

“형태가 중요한 게 아니란다, 이 어린것아.”

“아아아악! 하다못해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케이크 먹게 해주세요!”

“저런. 훈련 때문이 아니라 식단 때문이었군.”

“당 떨어진다고요! 빵! 설탕! 빵!”

“꿀은 괜찮다고 했잖나.”

“그 맛이 아니야! 정제된 설탕! 사탕수수! 단것 먹게 해주세요! 간식 주세요! 고기 질려! 풀 질려!”

“이거 참…….”

곤란하다는 듯 웃은 마거릿은 결국 주에 한 번씩은 군것질거리를 허락했다. 이브는 그것만으로 만족한 듯 잽싸게 다시 몸을 일으킨 후 내던졌던 목검을 주워 왔다. 무척이나 빠르게 끝난 반항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공자의 시종이 왔다 갔단다.”

“네?”

“중요한 손님이 왔으니 별관에서 될 수 있으면 나오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더구나.”

“아하……. 네에.”

‘칼리스토가 왔구나.’

이브는 무언가 짐작이 간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숨을 고르며 자세를 잡았다. 마거릿은 몇 걸음 물러선 곳에서 이브의 근육이 움직이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브가 가진 버릇들은 일이 년 안에 생긴 것들이 아니었다. 적어도 10여 년 가까이 묵은 습관들로 보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브의 몸 자체는 검을 쓴 적이 없다 싶을 정도로 깨끗했고, 그 탓인지 나쁜 버릇들을 고치는 일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이브의 버릇은 몸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닌 정신에 남아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올바르게 근육을 움직이는 방법을 끊임없이 반복해 깨끗한 몸에 제대로 된 기억을 심어주면 되는 일이었다.

위기의 순간 인간의 몸은 생각을 거치기보다는 반복 훈련을 통해 몸에 박힌 기억을 따라 반사적으로 움직이기 마련이었다. 이대로 조금 더 바른 움직임을 세뇌시킨 후 본격적으로 스텝을 가르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의아한 것은 대체 어떻게 수련을 해야 정신에만 습관을 남기는 방식으로 수준급의 무력을 갖추게끔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정말 꿈속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아가며 거대한 맹수를 사냥하기라도 한 것인가. 마거릿은 자기도 모르게 떠오른 생각에 헛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받은 명령은 「베르묄의 아가씨를 보호할 것」 그것뿐이었다. 이브의 정체를 짐작해보려던 마거릿은 머리를 비우고 다시 이브의 자세를 지적했다.

“어깨가 처지잖나. 팔 더 들어 올려. 허리 더 세우고.”

“으으으…….”

“어서 오십시오, 칼리스토님.”

“오랜만이야, 공자.”

응접실에 들어선 알베리크는 장의자에 제멋대로 다리를 쭉 편 채 다리를 꼬고 제집처럼 늘어져 있는 분홍색 머리의 소년을 보면서도 당황한 기색 하나 비치지 않고 예를 갖추어 인사했다. 칼리스토는 건성으로 손을 흔들어 보이며 그에게 알은척을 한 후 다시 팔을 내려 만사 귀찮다는 얼굴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야. 제 아비가 싫어한다는 이유만으로 너를 기용한다는 게 나는 이해가 안 간단 말이지. 에드워드는 대체 무슨 생각일까?”

“제가 어찌 감히 그분의 뜻을 짐작하겠습니까.”

“가끔 그 녀석은 모든 걸 다 망가트리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원래 자네를 이렇게 드러내놓고 지원하는 일은 하지 않기로 되어 있었단 말이야.”

“그렇다면 저에게는 다행인 일이로군요.”

“그 탓에 파리 새끼가 꼬인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 오는 길에 시두스의 늑대 몇 마리를 보았어. 세뇌를 시키고 돌려보내기는 했지만. 아무튼 벌써 벌레가 들러붙다니, 예상외로 빨리 들켰어. 적어도 1년은 더 숨길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차 시중 메이드까지 모두 물린 탓에 칼리스토의 맞은편에 앉아 직접 차를 우리던 알베리크가 잠시 손을 멈칫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찻잔에 홍차를 부었다.

“시두스의 늑대라면, 에트루리아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범죄조직 아닙니까?”

“그래. 둘째 놈의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는 사냥개 놈들이기도 하고. 돈만 주면 뭐든 하는 벌레들과 손을 잡다니,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지.”

“……우선 말씀드린 대로 저택에 보호, 은닉 마법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당분간은 마거릿님이 계시니 보호 마법만으로도 충분할 겁니다.”

“하, 마거릿이? 수완이 제법인데? 어떻게 그분을 꼬신 거야? 제 아들 부탁도 들어주지 않는 딱딱한 사람이라고.”

“저도 마거릿님을 직접 보내주실 줄 몰랐습니다만…… 전하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아아. 과연. 마거릿은 어디 모셨지? 인사라도 드려야겠어.”

“본관 오른편에 따로 마련된 별관에 계십니다만…….”

알베리크는 벌떡 일어나 응접실을 나서는 칼리스토를 막지 못했다. 과연 이 걸어 다니는 폭탄 같은 남자를 그 애와 마주치게 두어도 되는 걸까. 알베리크는 벌써 마음속 한구석에 피어나는 불안감에 심장이 두근대는 것을 느꼈다.

아무튼 알베리크의 걱정을 뒤로한 채 칼리스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본관을 빠져나갔다. 과연 대저택의 벽을 따라 오른편 후원 방향으로 돌아가니 잘 정리된 후원 쪽에 2층짜리 작은 별관이 보였다. 크기는 작았으나 매우 세심하게 관리되고 있는 듯한 깔끔한 외관이나 별관 앞 입구 쪽 길목을 따라 아름다운 장식물들이 세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결코 지위가 낮은 사람이 머무는 장소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칼리스토는 건물 안으로 들어서려다 말고 건물 뒤편에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다. 거리가 먼 탓에 아주 작게 들리기는 했어도 어딘가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별관을 빙 돌아 별관 후원으로 넘어갔다.

“하체에 힘을 더 실어라! 하체에 더 중심이 실려야 한다고 몇 번이나 말해!”

“아, 대체 뭘 더 어떻게 하라고요!”

“자꾸 팔만 신경 쓰지 말고! 검을 휘두르는 것은 팔이지만 그걸 지탱하는 건 다리라는 걸 계속 의식하란 말이야!”

“끄으으…….”

칼리스토의 눈앞에 제 기억 속 모습보다 더 나이를 먹은 중년의 여인이 부지깽이를 들고 머리를 높이 올려 묶은 여자의 허벅다리를 매섭게 후려치고 있는 장면이 보였다.

“마거릿!”

“음?”

그는 반갑게 그녀를 부르며 쪼르르 달려왔다. 칼리스토를 알아본 듯 마거릿의 눈이 크게 뜨였다가 곧 반가운 기색으로 부드럽게 휘었다.

“칼리스토, 오랜만이군.”

“오랜만이네요. 신수가 훤하시군요?”

“후후, 그야 뭐. 보이는 대로.”

이브는 검을 내려놓고 숨을 몰아쉬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훔쳤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두 사람을 멀뚱히 쳐다보고 있으니 마거릿이 아, 하며 그녀를 소개했다.

“이쪽은 베르묄 공자의 사촌 동생인 이벨린 베르묄 백작 영애일세. 영애, 이쪽은…….”

“칼리스토다. 칼리스토님이라고 부르도록 해라.”

칼리스토는 마거릿의 말을 자르며 생글생글 웃었다. 그의 정체를 알고 있는 이브로서는 징그러움에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가증스러운 웃음이었다.

‘일부러 자기가 누군지 숨기려고 저러나 본데…….’

마거릿 역시 칼리스토의 고약한 성미를 알고 있는지 자신의 말을 자른 그를 보고도 곤혹스럽게 웃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브에게 별다른 언질을 주지 않는 것으로 보아 칼리스토의 유희에 끼어들 생각은 없는 듯 보였다.

이브는 이미 그를 마구 어린애 취급하기로 마음먹었다. 성질이 뻗쳐서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주마. 이브는 생긋 마주 웃어 보이며 말했다.

“마거릿, 이 쥐톨은 뭐죠? 아는 꼬마인가요?”

“푸하하하!”

“쥐, 쥐 뭐?”

“꼬마야, 누나가 지금 검을 휘두르는 중이라 여기는 아주 위험해요. 다른 데 가서 놀아라.”

“하하하하! 그래, 칼리스토. 다른 곳에 가서 놀도록 하게.”

“하! 나 참! 그깟 연습용 검이 뭐가 위험하다고!”

이브는 그대로 페더를 가로로 베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칼리스토는 날 무딘 연습용 검이 일으킨 풍압이 제 머리카락을 두어 가닥 베어내고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깨달았다. 그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가 파랗게 변하더니 이윽고 새빨갛게 물들었다.

“에휴……. 쥐콩만 한 게 까부네. 그깟 연습용 검이라니, 이래 봬도 철검인데. 안 그래요, 마거릿님?”

“크흡……. 그렇지.”

“미…… 미친 거 아니야! 가만히 있는 사람한테 함부로 검을 휘두르다니!”

“아, 칼리스토.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혹 이벨린에게 마법을 쓰면 어쩔 수 없이 내가 자네를 제압해야 한다네. 부디 자네를 내 손으로 기절시키는 일이 없도록 해주게.”

“진심이에요, 마거릿? 저를?”

마거릿은 이브가 볼 수 없도록 그녀에게서 등을 돌린 채 칼리스토에게 입을 벙긋거렸다. 명령일세. 칼리스토는 그제야 그녀가 누구의 명을 받고 칼레스 백작령에 내려왔는지를 깨닫고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

“오, 너 마법사야?”

킥킥 웃으며 자꾸만 칼리스토의 신경을 긁는 이브를 피식 웃으며 지켜보던 마거릿이 그녀를 나무랐다.

“이벨린. 자꾸 그를 자극하지 마라.”

“아하하. 조금만 더 놀고요. 얘, 마법은 좀 하니?”

“내가 살다 살다 이렇게 예의 없고 막무가내인 인간은 처음 본다!”

“오……. 자기 이야기를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하는 재주가 있네.”

이브로서는 칼리스토가 저를 보고 치를 떨면 떨수록 좋았다. 마거릿은 불꽃이 화르르 붙은 듯한 두 사람의 사이를 중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뒤늦게 끼어들었다.

“이벨린. 찌르기까지 끝내면 마보 한 시간 추가다. 이렇게 기운차게 깔깔대는 걸 보니 훈련이 아주 편한가 보군.”

“아악! 마거릿님! 그게 무슨 소리세요!”

“두 시간?”

“아닙니다!”

이브는 화들짝 놀라 그들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다시 자세를 잡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거릿이 몸을 돌려 칼리스토에게 말을 건넸다.

“자네도 그만큼 나이를 먹었으면 그런 장난은 그만둘 때도 되지 않았나.”

“칫……. 잔소리는 그쯤 하세요.”

“동생 같아 그러네, 동생 같아서. 솔직히 지금 그 얼굴을 보고 있으면 가끔은 나도 소름이 끼쳐.”

“이젠 이 모습에 적응하실 때도 되지 않았나요?”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소년이라니, 어떻게 적응하란 말인가.”

“아무튼 오랜만에 뵈어 좋네요. 저건 저렇게 두고 들어가 저와 차나 한잔하시죠.”

“흐음…….”

잠시 고민하던 마거릿은 이브에게 마보까지 모두 마치고 들어가라며 당부한 후 칼리스토와 함께 별관으로 돌아가버렸다. 자유의 몸이 된 것도 잠시, 그녀가 보낸 메이드가 이브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이브는 울상을 지으며 다시 찌르기 자세를 잡았다.

한편 별관으로 들어온 두 사람은 마거릿이 머무는 방에 연결된 응접실로 향했다. 간단한 다과가 테이블에 차려졌고, 마거릿은 그대로 하녀 두 사람을 모두 밖으로 물렸다.

“아주 버릇없는 계집애네요. 정말 저 미친 망아지를 전하께서 보호하라고 하셨어요?”

“기사는 그저 명령에 따를 뿐이지.”

“나 참……. 정말 에드워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가끔은 녀석의 머리를 뜯어 내용물을 확인하고 싶어질 정도라니까요.”

“생각만 하게. 진짜 시도하려고 했다간 카스텔에게 목이 베일걸.”

“물론이죠.”

잠시 두 사람은 찻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칼리스토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팔은…… 의수를 알아볼까요.”

“신경 끄게. 이건 그런 약속이었으니까.”

“그는 미쳤어요. 그런 자와의 약속을 굳이 지킬 필요는 없다고요.”

“……의수를 단다 해도 이미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네. 신경이 죽은 지 오래라 오른팔로는 이제 검을 들 수 없을 거야. 그런 의미에서 내가 양손잡이라는 게 다행이지 않나.”

“마거릿.”

“오른팔 하나와 황손의 목숨을 맞바꾼다니, 그 정도면 싸게 먹힌 거지. 그래도 자네가 있어 죽지 않고 팔 하나만 베어내고 끝낼 수 있지 않았나. 항상 그대에겐 빚을 졌다고 생각하고 있네.”

“빚이라니요. 말도 안 돼요.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걸요. 그날…… 차라리…….”

“언사를 조심하게. 미친 사내여도 그는 이 나라의 군왕일세.”

“아직은, 말이죠.”

마거릿은 그의 얼굴에 깊이 남아 있는 상처의 흔적을 보았다. 강력한 무력을 가진 검사도, 뛰어난 마법적 재능을 가진 마법사도 권력의 앞에서는 일개 개인일 뿐이었다. 칼리스토는 제 성취에 프라이드가 높은 사람인 만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날의 기억은 그에게 큰 치욕으로 남았을 터였다.

그날 미쳐 날뛰는 황제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황제를 지키는 황실의 기사단 단장도, 랑그라다의 성을 받은 대마법사도, 하다못해 궁 내부를 총괄하는 대신 역시 황제의 칼 아래 태자궁의 궁인들이 무참히 베어지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아야만 했다.

책임질 이름도, 가문도 없었던 평민 기사 마거릿 로렌만이 간신히 황제의 검 앞에 뛰어들어 충심으로 호소했다. 그녀의 뒤에는 어린 아들과 그보다 더 어린 황제의 아들이 있었다.

황제의 광증은 오래 묵은 원한에서 비롯되었기에 약으로는 고칠 수가 없었다. 간헐적으로 터져 나오는 목적 없는 분노는 매번 순식간에 피로 얼룩져 황후궁과 태자궁의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고는 했다.

카스텔은 어릴 때부터 충성심 함양을 위해 태자의 놀이친구라는 이름으로 궁성 방문을 허락받았고, 그가 입궁하는 날은 마거릿 역시 태자궁에서 경계를 설 수 있게끔 배려 받았다. 황실 제1기사단의 단장인 전남편의 입김이 분명 반영된 처사였을 것이다. 비록 이혼한 사이였으나 발루아 후작은 여전히 마거릿을 오랜 친구처럼 대했으니.

미친 황제가 제 아들을 죽이기 위해 태자궁에 기다란 검을 질질 끌고 들어온 날은 마침 카스텔이 입궁해 어린 태자와 어울리던 날이었다. 만일 하루만 늦었어도 황가의 적장자는 아버지의 손에 의해 그날로 명을 달리했을 터였다.

황제는 제 칼끝을 막아선 평민 출신 기사에게 말했다.

―너 역시 그 악마가 저지른 부덕의 피해자이니 이번 한 번은 눈감아주마. 대신 항명의 죄를 물어 오른팔을 거두겠다. 그 오른팔이 저 새끼 악마를 구명할 것이다. 어떠냐? 지금이라도 몸을 물리면 없던 것으로 해주지.

마거릿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황제의 명으로 마거릿의 팔을 자른 것은 아르놀트 비텔스바흐, 그녀의 전남편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칼리스토는 황제가 자리를 뜬 이후에야 손을 떨며 마거릿의 어깨 바로 아래의 상처를 지혈했다. 다시 붙일 것을 염두에 둔 듯 단면은 무척이나 깔끔했으나 마거릿은 순식간에 너무 많은 피를 흘려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제 팔을 황제에게 가져가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날을 기점으로 마거릿은 기사 작위를 내려놓고 자취를 감추었다. 칼리스토 역시 궁정 마법사직을 사퇴하고 공작저를 나와 북쪽으로 향했다. 가끔 서로 연락을 주고받기는 했으나 이렇게 마주앉아 느긋하게 담소를 나누는 것은 그날 이후 처음이었다.

“아직도 아르노는 날 보면 운다네. 10년도 더 넘게 지난 일인데 말이야. 그도 자네도 나보다 더 내 팔에 미련을 가지고 있는 거 아닌가?”

“……지혈을 해드리는 게 고작이었죠. 역시 바로 신경을 이었다면 팔을 잃는 일은 없었을 텐데.”

“그땐 자네도 어리지 않았나. 그마저도 없었다면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죽었을 거야. 게다가 교환 조건은 팔을 내놓는 것이었다네. 너무 자책하지 말게.”

“제기랄. 어디까지 사람이 좋을 생각이에요? 나 같으면 진작 다 뒤집어엎었다고요.”

“부디 자네가 반역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 것만은 피해주게.”

마거릿이 잔뜩 인상을 구긴 칼리스토를 보며 느긋하게 웃었다. 두 사람은 찻잔을 기울이며 대화의 주제를 바꾸었다. 과거의 악몽은 빨리 잊어버릴수록 좋았다.

“그러면 한동안은 이쪽에 머무르실 계획인가요?”

“음. 그 아가씨가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출 때까진.”

“어느 정도라니, 너무 애매한데요.”

“하하, 자네 생각보다는 짧을 걸세. 타고난 신체조건도 나쁘지 않은 데다 혼자서도 제법 꾸준히 단련해왔는지 몸 쓰는 법을 아주 잘 알아. 금방 요령을 익히더군. 노력 여하에 따라선 저때 카스텔의 성취를 넘길 수도 있을 거야.”

“검사들의 이야기는 잘 몰라요. 요약하자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라는 거죠?”

“그렇지.”

“그러면 한동안은 저도 이쪽에 신세를 져야겠네요. 제 정체를 알게 된 저 어린 꼬마가 기겁하는 모습을 꼭 봐야겠어요.”

사납게 웃는 칼리스토를 보며 마거릿은 이미 그 애는 자네 정체를 눈치챈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해줄까 고민하다가 그냥 입을 다물고 티푸드를 입에 넣었다. 앞뒤로 노릇하게 잘 구워진 토스트를 보고 있자니 간식을 먹게 해달라며 발버둥 치던 이브의 모습이 떠올라 그녀는 입 안으로 쿡쿡 웃음을 삼켰다.

“그나저나 대공령에 무슨 일이 생겼다지?”

“아. 들으셨군요.”

“북쪽은 자네 담당이니 나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작년 가을인가부터 갑자기 대공저의 움직임이 이상해졌어요. 특히 올해 들어서는 하루에도 의사가 몇 번씩 다녀가질 않나, 이쪽을 치료할 수 있는 마법사를 은밀히 알아보고 있더라고요.”

칼리스토는 제 머리를 톡톡 치며 말했다. 이야기를 듣던 마거릿이 턱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사고를 당한 건가? 아니면 암살?”

“글쎄요……. 아무튼, 죽진 않았어요. 출발하기 전날에도 그가 멀쩡히 걸어 다니는 모습을 확인했으니까. 하지만 갑자기 경비가 삼엄해진 걸 보니 무슨 일이 생긴 건 분명해요. 갑자기 보안이 철통같아져서 도청을 하기 힘들어지긴 했지만, 곧 심어둔 세작이 연락을 취해올 거예요.”

“폐하께서 아신다면 또 한바탕 난리가 날 텐데.”

“왜 아니겠어요. 바로 에드워드부터 불러서 네가 저지른 짓이냐고 달달 볶아댈걸요.”

“별일이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또 한바탕 시끄러워질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군.”

마거릿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칼리스토 역시 깊이 한숨을 내쉬며 찻잔에 입을 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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