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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356화 (356/357)

356화

“눈을 떴을 때, 엄마도 아빠도 더 이상 헌터가 아니었어. 마나도 없었고, 스킬을 쓸 수도 없었지. 혜안은 더 이상 아무것도 보여 주지 않았어.”

오른손을 펼친 아버지는 무언가를 휘어잡으려는 듯 손을 움켜쥐었다.

“…카일론은요?”

“그 뒤로 한 번도 만난 적 없어.”

고개를 돌린 아버지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반만 열려 있는 창문엔 특별한 무언가가 보이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분명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안심했지. 둘만의 오붓한 해피 라이프에 불청객이 끼어드는 건 좀 그렇잖아?”

자리에서 일어난 아버지가 창가로 다가갔다.

장난기 있는 얼굴엔 진득한 여유가 묻어 있었다.

“게다가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니까.”

자연스레 창틀에 올려놓은 오른손.

들 푸른 초원 위엔 한 사내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아버지가 용주를 불렀다.

“…네.”

“외로웠지?”

잔잔하게 들려온 한마디에 용주는 순간 목구멍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억누르고 있는 것만으로 편도선이 아팠고, 당장이라도 목소리가 흔들릴 것 같았다.

외롭고 힘들었던 그 시간들이.

이를 악물고 버텨 왔던 그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빠 원망한 적 있어?”

아버지의 물음에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아뇨. 없어요.”

간신히 떨림을 억누른 용주가 짧게 대답했다.

“왜?”

“원망받을 일 하신 적 없으니까요.”

“아들한테 다 떠넘겼는데도? 책임도, 부담도, 무게도.”

“떠넘김당했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한 번도.”

“왜?”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면, 절대 그러시지 않으셨겠죠. 제가 그 정도도 모르겠어요?”

“…….”

“설령 아버지를 원망하고 싶었다고 해도, 원망할 시간도 없었어요. 그럴 시간이 있었으면 한 번이라도 더 움직이고, 한 푼이라도 더 벌었을 거라고요.”

용주가 가볍게 어깨를 들썩였다.

“게다가 그것만 물려주신 것도 아니잖아요? 이게 없었으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거예요.”

꼭 혜안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빛.

지금 용주가 말하는 건 그 자체이기도 했고.

두 분과 함께할 수 있었던 그 모든 시간들이기도 했다.

“음. 그랬구나. 그랬어.”

창문을 타고 불어오는 기분 좋은 바람.

따스한 봄바람에선 은은한 꽃향기가 났다.

“그럼 다른 헌터들을 원망한 적은?”

“그건… 그건 있어요.”

“수지한테도 못되게 굴었었겠네?”

“…네… 뭐.”

삼자대면을 하는 건 코 푸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다.

아무리 좋게 봐도 그게 좋은 만남이 될 순 없을 테지.

“지금은 어때?”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좋은 녀석들도 많구나 싶어요. 그런 일이 아니었다면, 그날이 그렇게 쓸쓸하진 않았을 거라고.”

수지나 팀 H의 녀석들만을 지칭하는 건 아니었다.

마지막 게이트로 오며 정말 많은 헌터들을 볼 수 있었다.

싸우다 죽은 수많은 헌터들의 시체를 마주할 수 있었다.

가지고 있는 힘의 크기는 달랐지만, 그들 모두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단순히 돈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이 검을 들고 있던 이유는.

그들이 목숨을 바쳐 싸운 이유는.

그렇게 하찮은 게 아니었다.

돈을 보고 움직였던 몇몇 녀석들에게 심한 구역감이 났던 것도 분명 그 때문이었겠지.

다이아몬드 사이의 석탄은.

성분이 비슷해도 더 하찮게 보일 뿐이니까.

“지고 있던 짐을 내려놓은 소감은 어때?”

“아직 아무 생각도 안 들어요. 뭔가 현실 감각이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아쉽진 않아?”

“어떤 부분에서요?”

“엄청난 힘을 부렸었잖아. 아빠보다도, 엄마보다도, 그 어떤 헌터보다도 강한 힘을. 이제 막 손에 넣었는데…. 그게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잖아.”

“음… 글쎄요. 전혀 아니라고 하면 또 아닌 것 같기도 하고요.”

“아쉬운 거네?”

“뭐… 그래도 크게 집착하진 않아요. 그걸로 게이트를 영영 닫았다고 하면, 남는 장사잖아요.”

“어른이네. 우리 아들.”

“…그리고 제 힘은 분명 위험했을 거예요.”

잠시 생각에 잠겼던 용주가 이야기를 이어 갔다.

“음~ 어떤 점에서?”

“견제되지 않는 정점의 힘. 그건 그 세 녀석보다도 위험할 테니까요.”

자기 손에 의해 파괴된 도시의 모습이 뇌리를 스쳐 갔다.

그건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지만, 자신의 힘인 것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

“헌터로서도 언노운으로서도 정점. 다른 차원으로의 문을 여는 것도 시간만 있었다면 충분히 가능했을 거예요. 미래를 볼 수 있으니, 죽음도 피해 갈 수 있겠죠. 제가 마음만 먹으면, 또 다른 쥬다스가… 아니, 그 이상의 무언가가 될 수 있었을 거예요.”

근원을 가진 세 존재는 완전히 독립된 존재였다.

세 힘 역시 완전히 독립되어 있었고, 그들이 흡수했던 힘들 또한 완전히 독립되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자신은 그들보다 더 위험한 존재였다.

“현실과 다른 풍경들을 본 적 있어요. 한 번은 제가 영웅이 되어 있는 세계였어요. 모두가 절 우러러보고, 모두에게 존경받는 그런 세상이었죠.”

“…….”

“다른 한 번은 모든 게 파괴되고 살육되어 저 혼자만 남은 세계였어요. 모든 걸 파괴하고, 도살한 건 다름 아닌 저였죠.”

용주의 시선이 자신의 왼손을 향했다.

“솔직히 양쪽 모두 마음에 안 들었어요. 힘의 대가가 그런 거라면, 딱히 필요 없어요.”

모두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미래.

절정의 힘으로 모든 걸 쓸어버릴 수 있는 미래.

양쪽 모두 누군가의 시선엔 최고의 미래였을 거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에겐 아니었다.

그런 미래보단.

그냥 지금까지처럼의 일상이 더 마음에 들었다.

그게 더 ‘자신’다웠으니까.

“…그래. 그럼 그런 아쉬움은? 좋은 사람들이랑 이제 함께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헌터 일 못 한다고 죽는 것도 아니잖아요. 헌터들도 어차피 다 실업자 신세일 거고요. 다시 처음부터 열심히 해봐야죠. 이것도 해냈는데 뭔들 못 하겠어요.”

용주의 이야기에 마침표가 찍힌 그때.

“아니.”

수지가 고개를 저었다.

“헌터는 가족. 가족은 가족 버리지 않아. 그렇게 배웠어.”

“…….”

“힘을 잃어버렸어도, 기억을 잃어버렸어도, 모두한테 잊혔다고 해도, 혼자가 되진 않을 거야. 그렇게 두지 않을 거니까.”

“믿음직스럽네.”

테이블 위에 올라가 있는 수지의 손.

그 손등 위에 손을 포개어 놓은 어머니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합격.”

뒤로 돌아선 아버지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합격?”

“우리 집 며느리로 합격이라고. 이제 아버님이라고 부르렴.”

잠시 멍해졌던 용주가 이마를 짚었다.

정말이지.

이 무슨 의식의 흐름으로도 따라갈 수 없는 날림 전개란 말인가.

“그럼 이제 슬슬 저 친구한테도 관심 좀 줘볼까? 계속 혼자 두기 좀 미안하네.”

창틀을 짚고 있던 아버지가 단번에 창틀을 뛰어넘었다.

“여보! 창문으로 좀 나가지 마요!”

“말한다고 들으면 아빠가 아니죠.”

“하여튼…! 용주 너는 절대 저러면 안 된다!”

“아무리 그래도 제가 저러겠어요. 저런 건 아빠나….”

부자연스럽게 끊긴 용주의 목소리.

용주의 눈동자에 비치고 있는 건 아빠랑 똑같이 창틀을 넘고 있는 수지의 뒷모습이었다.

* * *

“여어~.”

오랜 친구를 만난 듯 자연스럽게 건네는 인사.

마주 선 두 사람의 태도는 극명하게 상반됐다.

“그다지 잘 지낸 얼굴은 아니네.”

“…….”

“그래도 한 번 정돈 반가운 척이라도 좀 해달라고. 내 손이 민망하잖아.”

“…미래는 이어졌나?”

침묵을 지키던 카일론이 한마디를 던졌다.

“그래. 내가 본 것 이상으로 잘.”

“그런가.”

카일론이 안심한 듯 숨을 내쉬었다.

“어때? 순환을 끊은 감상은.”

“글쎄. 잘 모르겠군.”

“혹시 후회하고 있다든가?”

“아니.”

“즉답이네.”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한 거랑 아닌 거랑은 다르니.”

“찾지 못했다라…. 어때? 그럼 내가 찾는 거 한번 도와줘 볼까?”

“사양하지. 그게 뭐든 그리 중요한 부분은 아니니.”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뭐 어쩔 수 없고.”

단칼에 돌아온 거절에 아버지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나저나 어땠어? 우리 용주는.”

“어땠다?”

“뭐, 좋든 싫든 용주의 성장을 쭉 지켜봤을 거 아니야. 거기에 대한 감상.”

“형편없었다.”

“오… 그 말은 좀 상처인데.”

1초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에 아버지가 뒤통수를 긁적였다.

“사실이다. 힘에 있어 네 힘을 전혀 물려받지 못했더군. 솔직히 말해 첫 담금질에서 부러질 확률이 90% 이상일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곳에서도.”

“그럼 확실하게 부러질 상황이었으면 어떻게 했을 거야?”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거다.”

“죽게 내버려 둔다고?”

“그러면 그것 또한 미래라 생각하고 받아들였겠지. 내가 알고 있는 건 그 눈이 단서란 것뿐이었으니.”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용주는 그 10%로 계속 살아남았단 거네?”

“10%가 계속되던 건 아니었다. 조금씩이지만 매 순간 가능성을 늘려 나갔지.”

“음~.”

“힘을 제외한 부분에선 상당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순간순간의 계획과 판단, 짐승 같은 집념. 그 부분은 칭찬받아 마땅할 테지.”

“이쪽으론 평가가 꽤 후하네.”

“보고 느낀 그대로를 말했을 뿐이다.”

“그래도 나쁘지 않지 않았어? 성장하는 걸 보는 거 말이야. 어찌 됐든 용주의 스승인데.”

들려오는 발소리에 카일론이 고개를 돌렸다.

수지를 필두로 한 세 사람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인간의 감정이다. 나한테 그런 건 없어.”

“글쎄…. 난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데.”

“터무니없는 소릴.”

어깨를 툭 쳐오는 손길에 카일론이 한 걸음 물러났다.

“뭐~ 대답하기 싫으면 말고. 그럼~ 이제부턴 어떻게 할 거야? 그건 말해 줄 수 있지?”

주제를 돌린 아버지가 물었다.

“두 세계를 완전히 단절시킬 거다.”

“우린?”

“소멸하지 않는다. 이 세계의 세계석은 내 손안에 있으니.”

“저 둘은 그래도 돌려보내야지?”

“말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다. 한 가지만 처리하고 난 뒤에.”

“처리? 아직도 할 게 남았어?”

“물론.”

카일론이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아주 먼 곳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고래의 울음소리 같은 소리에 용주는 고개를 들었다.

“저건….”

하늘에 있는 건.

베히모스였다.

이 거리임에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왜 베히모스가….”

“다차원의 교집합에 이 차원 역시 포함시켰다.”

다차원의 교집합.

표현 자체는 낯설었지만, 의미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왜지?”

“그게 내가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일 테니.”

카일론의 손길을 따라 일렁이는 차원.

다른 차원에서 무언가를 꺼낸 카일론은 용주에게 던졌다.

푸른빛이 도는 작은 수정.

이형 결정체처럼도 생겼고.

이형 워프 장치처럼도 생긴 물건이었다.

“선물?”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 만날 수 있을 거다. 너와. 네가 원하는 누구라도.”

“그게 무슨 소리야?”

“모든 문이 닫혀도 창조자의 길은 남아 있을 거다. 그 세계의 중심을 만든 건 너니.”

“창조자의 길? 잠깐만! 그 말은…!”

“계승자로서, 내 검으로서의 네 모든 역할은 끝났다. 너는 네게 주어진 모든 임무를 훌륭하게 해냈다. 강한 자여. 경의를 표하지.”

“…….”

“전부를 돌려줄 능력은 내게 없다. 하지만 일부라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카일론이 수정을 가리켰다.

“이게 할 수 있는 나의 최소한의 속죄다.”

저절로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다신 헤어지고 싶지 않지만, 그게 불가능한 일일 거란 건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마지막이 오더라도 울지 않겠노라.

처음과 끝이 같진 않겠노라.

그렇게 다짐했었다.

그런데….

“가져가고 싶다면 가져가라.”

카일론의 손을 떠나는 또 다른 물체.

용주의 앞에 비스듬하게 꽂힌 건 카일론의 클레이모어였다.

“필요 없어. 더 이상 필요 없는 물건이야.”

“검을 말한 게 아니다.”

무릎을 꿇은 카일론이 고개를 숙였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여기 있는 모두가 알 수 있었다.

“하아~ 바보냐 너.”

깊은 한숨을 내쉰 용주가 한심하단 듯 이야기했다.

“문을 닫을 거라며, 그런 녀석 목이 여기서 달아나면 어쩌자는 건데.”

“…….”

“게다가 네가 사라지면 여기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잖아. 너희처럼 성장한 녀석이 또 문을 열려고 할지도 모르고.”

허리춤을 짚은 용주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왕좌가 비면 누군간 거기 오르려고 할 거야. 그러니 잘 지키라고. 배신자들의 왕. 거기가 네 감옥이니까.”

“그래…. 달게 받도록 하지.”

자리에서 일어난 카일론이 원을 그렸다.

원을 따라 열리는 포탈.

할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듯 카일론은 뒤로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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