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화
“아들, 어디 엄마 얼굴 좀 보자. 왜 이렇게 피부가 다 상했어. 응? 입술은 왜 다 부르텄고.”
어머니의 손길에 용주는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피하고 싶지 않았다.
어린아이처럼.
마음껏 어리광을 피우고 싶었다.
“엄마 보여? 보이는 거 맞지?”
“네. 잘 보여요. 안 보일 리가 없잖아요.”
“왕! 왕!!”
아버지의 발밑으로 강아지 한 마리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강아지와 거의 비슷했다.
꼬리가 2개고, 다리가 6개란 것만 빼면.
“그러지 말고 안으로 먼저 들이지 그래? 이야기할 게 아주 많을 것 같은데. 시간이라면 얼마든지 있잖아.”
“네. 그래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어머니는 눈물을 훔쳤다.
“들어오렴. 수지도. 우리 집이라 생각하고.”
방 안은 상당히 깔끔했다.
투박했지만 잘 정돈되어 있었고, 목재로 만든 다양한 가구들이 앤티크한 분위기를 풍겼다.
아까 봤던 강아지는 낯선 사람의 방문에도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아무래도 사교성이 상당히 좋은 모양이었다.
“할 말이 정말 산더미인데, 막상 하려니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용주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2인용 테이블 2개를 붙여 놓은 자리는 묘하게 높낮이가 있었다.
“그래? 그럼 아빠부터 한마디 할까?”
“…네. 그러세요.”
“아빠가 불을 안 끄고 왔거든! 잠깐만!!”
“아… 아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아버지가 정신없이 뛰어갔다.
코를 스치는 탄 냄새는 맛있는 냄새를 가리고 있었다.
“하….”
우당탕 정신없는 아버지의 뒷모습.
너무도 익숙한 그 모습에 용주의 입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이 익숙함.
마치 어제도 같이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빠도 참 여전하시네요.”
“뭐… 그렇지. 어디 간다고 바뀔 사람이었으면, 진작 바뀌었게.”
“그것도 그러네요.”
용주의 미소에 어머니의 얼굴에도 미소가 내려앉았다.
“이 강아지는 기르시는 거예요?”
강아지를 허벅지에 앉힌 수지가 물었다.
“응~ 똘이야. 새끼 때 혼자인 걸 발견해서 집에 데려왔어.”
“똘이.”
“혼자인 건 너무 쓸쓸하잖아. 부모님도 없이.”
어머니의 시선이 용주를 스쳐 갔다.
안쓰러움.
그리고 미안함.
눈빛에 담긴 빛깔은 너무도 선명했다.
“두 분 말고 다른 사람들도 더 사는 거예요? 아니, 사람이라 하니까 이상한가. 뭔가 소통할 수 있는 이종족 같은 거요.”
강아지를 힐끔 본 용주가 주제를 돌렸다.
“이종족?”
“…없나 보네요.”
어머니의 반응에 용주가 먼저 결론을 내렸다.
“설녀라든가, 뱀파이어라든가, 머리가 둘인 오우거라든가, 쥐 인간이라든가, 도마뱀 인간 같은 거 보신 적 없으세요?”
용주의 결론에도 수지가 한 번 더 물었다.
“설녀? 뱀파이어? 하핫! 얘도 참 무슨 소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네.”
“그럼 별자리로 된 사람이나 머리가 도형인 사람은요?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대한 고래는요?”
“음~ 글쎄. 만난 적 없는 것 같은데. 봤으면 신기했을 것 같긴 하네.”
용주의 어머니가 가벼운 미소를 보였다.
오랜만에 만난 사이임에도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가족인 듯.
어제까지 한 식탁에 앉아 있었던 듯 편안했고, 자연스러웠다.
“아빠는 뭐 치우러 가신 거예요?”
“아~ 밥이지, 뭐.”
“쌀도 있는 거예요?”
“응~ 근데 쌀이랑 완전 똑같진 않아. 새벽이면 이슬처럼 내리거든. 그리고 옥수수같이 생겼어. 그대로 찌면 주먹밥처럼 된다? 신기하지?”
“괜찮은 거예요? 그런 게 떨어져도….”
“찌기 전엔 솜사탕처럼 가벼워서 맞아도 괜찮아. 새벽같이 나갈 일도 별로 없고.”
“음… 그래요? 비슷하긴 해도, 확실히 다르네요.”
“그렇지, 뭐. 그래도 엄마는 여기도 나쁘진 않더라. 우리 용주랑 예은이가 없는 것만 빼면. 아! 우리 수지도.”
“굳이 안 넣어 주셔도 돼요.”
자신을 향한 곁눈질에 수지가 이야기했다.
“굳이라니~ 정말이야. 가족이니까 생각나는 게 당연하잖아. 안 그래?”
“…….”
입을 꾹 다문 수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고, 죄송했다.
그렇게 계속 생각해 주셨을 텐데….
이쪽은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예은이는 어때? 잘 지내고 있니?”
호흡을 가다듬은 어머니가 물었다.
“네. 학교 잘 다니고 있어요. 편식도 안 하고, 뭐 나쁜 데 빠지지도 않았고요.”
“뭐 하고 싶다고 하는 건 있었고?”
“의대 쪽으로 관심이 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음~ 의사? 멋진 꿈이네. 근데 의사면 되기 엄청 힘든 거 아니야?”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성적도 좋고, 저번에 보니까 잘 알 사람한테 이것저것 묻고 있더라고요.”
“잘 알 사람? 그게 누군데?”
“최은정이라고 의사예요. 의사니까 뭐, 저보다 그쪽으론 훨씬 잘 알겠죠.”
“여자 이름이네?”
“네…. 뭐….”
뭔가 꺼림직한 느낌을 감지한 용주가 반사적으로 거리를 뒀다.
엄마는 수지와 자신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그래도 양다리는 안 된다.”
“네…. 네?!”
“엄마가 딱 보면 척이지. 은정이란 사람 용주 너랑도 친한 거 맞지? 친한 것까진 좋은데, 어장은 두면 안 되는 거야.”
“그런 거 없어요. 딱히 그런 사이도 아니고요.”
“흐음~? 딱히 부정은 안 하네?”
퉁명스러운 용주의 대답에 어머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의미심장한 그 한마디에 용주는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부정이라뇨. 더 뭘….”
“양다리는 아니라는 건, 양쪽 다 어디엔 올려놨단 거잖아.”
눈썹을 들썩이는 어머니.
이 이상 말하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여기까지 같이 온 사람이 바로 옆에 있었으니 말이다.
“왜? 이번에도 아니라고 할 거야?”
“…….”
용주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자신을 향한 눈동자는 두 개가 전부가 아니었다.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또 다른 눈동자는 자신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아하핫! 아들, 귀까지 다 빨개졌네? 좋아좋아. 귀여워.”
“엄마!”
“수지라면 안심할 수 있지. 우리 용주 생각보다 눈이 높았네? 하긴 누구 아들인데!”
“…….”
“그럼 예은이는? 남자친구 있어? 혹시 소개시켜 준 적은?”
“남자친구요?”
“왜 예은이 인기 없어? 이상하네. 남자애들이 줄 서서 운동장 한 바퀴였는데. 혹시 스트레스에 폭식이라도 하니?”
“아뇨. 딱히 그런 건 아닌데.”
남자친구까진 아니어도 챙겨 주려는 사람이라면 하나 있긴 했다.
그런데, 뭐.
굳이 그런 이야기까지 할 필요 있겠는가.
“아차차~ 밑에는 살짝 그을려 버렸네. 아까워라.”
이야기가 한창이던 그때.
아버지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자자~ 어디까지 이야기하고 있었어? 아까보다 한결 분위기 좋아졌는데?”
우당탕거리며 자리에 앉은 아버지가 세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뭐,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요.”
“이런저런 이야기라…. 그거 좋네.”
아버지가 용주와 수지를 번갈아 보았다.
“혹시 엄마가 이 아빠 자랑하고 있었어? 이 집! 이 식탁! 이 멋진 의자까지! 전부 아빠가 만든 건데!”
“아…. 네, 뭐.”
용주가 대충 얼버무렸다.
원래 주제에 아빠까지 얹히면….
솔직히 머리가 좀 아플 것 같았다.
“물도 안 새고, 식탁에서 벌레도 안 나오고, 의자에 가시가 있지만 않았어도, 자랑해 줬을지도 모르는데요.”
깜빡이 없이 치고 들어오는 어머니의 일침.
한 대 거하게 얻어맞은 아버지는 곤란한 듯 뺨을 긁적였다.
“아하핫! 그… 그랬던가?”
“더 말해 줘요?”
“에이~ 아냐, 됐어. 그런 이야기 말고도 할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데.”
“그걸 아는 사람이 잘도 그런 이야길 했네요.”
이어지는 원투 펀치.
한 방에 KO를 당한 아버지는 먼저 시선을 피했다.
“아하하…. 아, 아무튼!”
마른기침으로 분위기를 환기한 아버지가 상체를 조금 기울였다.
“그럼 이제 아빠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겠니? 엄마 아빠 없이 어떻게 지냈는지.”
“…….”
아버지의 옅은 미소에 용주가 한숨을 삼켰다.
“아빠는 알고 계시지 않아요?”
“글쎄.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
용주는 말을 아꼈지만, 용주의 눈이 할 말을 대신 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용주의 눈빛에 아버지는 만족스럽단 눈빛을 보였다.
“뭐, 어느 쪽이면 어때? 아빤 아들한테 듣고 싶은데?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을 테니까.”
아버지의 대답에 용주가 잠시 침묵을 지켰다.
반칙이지 않은가.
저런 표정으로 보고 있으면,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알겠어요. 그럼 한번 해볼게요.”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쓸데없는 고민이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생각하지 않아도.
입이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우리 아들 고생했네. 응. 정말 고생했어.”
자리에서 일어난 어머니가 용주를 꼭 안아 주었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또 한 번 울컥한 용주는 이번엔 눈물을 참아 냈다.
“모두가 우릴 잊어버리고, 헌터가 되고, 이상한 일을 겪고, 알 수 없는 힘을 얻었다가 표적이 되고, 진각성을 하고, 다른 세계로 넘어와 사건을 해결하고, 마지막으로 모든 힘을 잃어버렸다. 우리 아들이 그런 일들을 겪었다고 생각하니, 자랑스럽기도 하고, 눈물이 나려고도 하네.”
이준의 일은 충격이었다.
그를 오랫동안 알고 지냈기에 더.
하지만 지금은 거기 포커스를 두고 싶지 않았다.
“…아빠가 아무 말도 안 해주셨어요?”
“응. 물어본 적은 많았는데, 시간이 알려 줄 거라고만 하더라고.”
“그래서 시간이 알려 줬잖아.”
잠시 창밖을 내다본 아버지가 이야기했다.
“말한 적 있지 않던가? 미래는 입에 담으면 바뀔지 모른다고.”
“…아빠.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어요.”
“그래~ 뭘까?”
“어디까지 보셨던 거예요? 그날. 이 눈으로.”
용주가 자기 눈을 짚었다.
“음~ 글쎄. 어디까지 봤을까?”
“그러시기에요?”
“농담이야~ 그렇지만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많은 걸 보진 못했을 거야. 오늘 이 풍경만 해도 처음 보는 거인걸.”
“거짓말이 너무 서투르신 거 아니에요? 시간이 알려 줄 거라고 하셨다면서요.”
“거짓말? 에이~ 아니야.”
“아니라고 하셔도….”
“꼭 다 봤어야만 믿는 건 아니잖아?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게 있으면 간절히 소망하고 기다리는 거지. 그게 진짜 믿음 아니겠어?”
“…….”
아버지의 말이 어디까지 진실인진 알 수 없었다.
정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마지막에 이 눈이 보여 줬던 것들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들었던 목소리 역시 잊지 않았다.
그건 절대 환각도 환청도 아니었다.
하지만 용주는 더 캐묻지 않기로 했다.
그런 데 쓸 시간조차 너무 아까웠으니까.
“그럼 아빠, 어떻게 여기 계신 거예요? 그날 있었던 일을 분명 제 눈으로 봤었는데, 두 분의 장례는… 분명 제가 치러드렸는데.”
원래대로라면 가장 먼저 물었어야 하는 질문이었지 않나 싶었다.
하지만 돌고 돌아 순서가 이렇게 되어 버렸다.
그 정도로 워낙 정신이 없었으니.
“음~ 그래. 궁금하겠지.”
“저도 듣고 싶어요.”
수지가 한마디를 거들었다.
“그날 일을 봤댔지?”
용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이 왔음을 직감했을 때, 그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어. 아니지. 들렸다기보단 울렸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 그건 머릿속에서 들렸으니까.”
“그 친구?”
“왜, 용주 너도 잘 알잖아.”
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버지가 말한 ‘친구’가 누구인지는.
“‘부패를 막는 건 쉬운 일. 하지만 그걸론 죽음을 막을 순 없다. 거기 남는 건 영혼 없는 산송장뿐.’”
그때 들었던 말을 자기 목소리로 옮긴 아버지가 잠시 숨을 골랐다.
“‘너희의 운명을 잠시 봉하겠다. 영혼마저 어둠에 삼켜지면 네 눈이 빛을 잃을지 모르니.’ 그 말이 끝나고, 뭔가에 빨려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어.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여기 있었지.”
“빨려 들어가는 느낌…?”
기억 속에서 봤던 장면 중 하나가 스쳐 갔다.
분명 있었다.
빛이 세계석으로 들어가는 듯한 장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