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4화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수지가 물었다.
“두 세계는 완전히 단절될 거다.”
“그럼 카오스 게이트도 열리지 않는 거야?”
“그렇게 되겠지.”
“다른 세계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애초에 너희 쪽에서 먼저 넘어가는 일도 없었으니.”
“응. 그렇구나. 그럼 그때가 마지막이었던 거네.”
오우거 노부부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마지막 인사라도 제대로 했을 텐데.
“그럼 이쪽 세계는 어떻게 되는 거야?”
“자연 상태에 가깝게 될 거다. 원래 그랬던 대로 약육강식의 세계가 유지되는 거지.”
“지배하진 않는 거야?”
“필요한 때가 오면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응. 그렇구나.”
잠시 뜸을 들인 수지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혼자가 돼서 외롭진 않아?”
“외롭다?”
“응. 적이 되긴 했어도, 가족이었던 거잖아. 오랫동안.”
“가족?”
“응.”
“피 한 방울 섞이지 않고, 알껍데기 하나 같이하지 않았는데, 인간은 그런 것도 가족이라고 부르는 거냐?”
“응.”
“…인간은 역시 이해하기 어렵군.”
고개를 돌린 카일론이 용주를 바라보았다.
용주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스쳐 지나가는 짧은 한 동작이었지만, 카일론은 거기 담긴 의미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나한테 묻지 마라.
용주는 정확히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인간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모든 인간이, 모든 상황에 그런 것은 또 아니었다.
“그런가.”
움켜쥔 손을 펴는 카일론.
그의 손에서 날아오른 건 한 조각의 세계석이었다.
세 사람을 크게 한 바퀴 돈 세계석 파편은 카일론에게로 돌아왔다.
그리고.
차원을 일그러뜨리며 일렁이는 포탈을 만들어 냈다.
“자리를 옮기지. 여기 계속 있어 봐야 좋을 것도 없으니.”
“그건 어디랑 연결된 거야? 우리 세계? 아니면 아까 갔던 거기?”
“가보면 안다.”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카일론은 포탈 너머로 사라졌다.
“여기로 나가면 이 세계랑은 영영 작별인 건가.”
포탈 앞에 선 수지가 물었다.
“왜? 그사이에 정이라도 든 거냐. 이 빌어먹을 세계랑.”
“응…. 조금 정돈?”
“조금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난 1분 1초도 여기 더 있기 싫다고.”
용주가 콧방귀를 뀌었다.
“응. 그치만 이 풍경은 우리밖에 모르는 거잖아. 다신 볼 수 없을 거고. 사진이라도 찍어두면 좋을 텐데.”
“이런 지옥 같은 풍경을 담아 둬서 뭐 하려고. 쓸데없는 생각 마.”
“음…. 게이트는 이제 안 열리는 거잖아. 언노운이 있었단 것도, 헌터들이 목숨 걸고 싸웠던 것도, 우리가 이렇게 여기 있는 것도, 조금만 지나면 전부 없었던 일이 되는 게 아닐까?”
뒷짐을 진 수지가 눈을 감았다.
“빛바랜 사진 한 컷, 박물관의 낡은 유물, 동화 속 이야기, 우리가 걸어온 모든 게 그렇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런 거면 뭐 하나라도 더 남겨 두면 좋지 않을까?”
“…….”
승리의 기쁨.
생존의 안도감.
그런 것보다 수지에게서 더 강하게 느껴지는 건 아련함이었다.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말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세상에 지금 상황에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엔 용주는 수지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었다.
수지는 전투에 미친 투견도 아니었고.
돈에 미쳐 있는 들개도 아니었다.
수지의 저 아련함은 그런 걸 베이스로 둔 게 아니었다.
눈을 감은 수지의 뒤로 수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그녀가 조용히 짊어지고 있던 생명의 무게들이.
수지는 그 사람들이 잊히는 게 두려운 거였다.
“하아….”
작은 한숨을 내쉰 용주는 수지와 마주 보고 섰다.
그리고.
검지와 중지로 수지의 이마를 꾹 밀었다.
“전부 없었던 일이 되진 않을 거다. 시간이 아무리 흐르고,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정말… 정말 그럴까?”
“전쟁 기념관에 기록된 수많은 이름들, 그리고 거기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이름들. 주인 잃은 수많은 이름표와 이름조차 찾지 못한 빈 이름표들. 그 모든 일들이, 그 모든 희생이 시간이 지난다고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니잖아.”
“…….”
“네 말대로 빛은 바래겠지. 먼지도 쌓일 거고, 동화처럼 이야기만 남게 될지도 몰라. 하지만 과거가 없어지진 않아. 과거 없이 존재하는 미래 따위는 없으니까.”
“…….”
용주의 표정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딘가….
평소보다도 더 따뜻했다.
당장을 위한 깊이 없는 위로가 아니었다.
용주의 지금 이 말은.
가장 소중한 걸.
전부였던 걸 잃어버렸기에 해줄 수 있는 말이었다.
누구보다 끔찍한 장애를 입었기에 해줄 수 있는 위로였다.
“게다가 다 잊어도 너는 기억해 줄 거잖아. 넌 그런 사람이니까.”
눈동자에 비치는 옅은 미소.
안심하라고,
괜찮다고 말하는 그 미소에 순간 눈앞에 흐려졌다.
용주의 상처를 알기에.
몸도 마음도 완전 만신창이라는 걸 알기에.
그 위로가 너무 슬프게 느껴졌다.
가장 힘든 사람은.
저 이야기를 들어야 할 사람은.
자신이 아닌데.
“응…. 그래야지.”
울먹임이 섞인 수지의 목소리.
“그럼 가자.”
뒤돌아선 용주는 한 걸음을 옮겼다.
“저기 있잖아!”
그때 들려오는 수지의 외침.
갑작스러운 수지의 외침에 용주는 뒤를 돌아보았다.
“……!”
그 순간 느껴지는 따스한 온기.
용주를 와락 껴안은 수지는 진하게 입을 맞췄다.
힘을 버티지 못한 용주는 요란하게 넘어갔지만, 수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눈높이가 같아져서 더 좋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용주의 허벅지 안쪽으로 한쪽 발을 집어넣은 수지는 용주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꼭 누르고 있었다.
“…….”
시간이 멈춘 듯 이어지는 두 사람의 입맞춤.
와락 끌어안았던 팔에 힘을 준 수지는 입술을 조금 떼어 냈다.
용주의 눈은 본 적 없을 정도로 커다랗게 변해 있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양 볼엔 옅은 홍조가 드리워 있었다.
“고마워. 그렇게 말해 줘서. 괜찮다고 안아 줘서. 쓰러지지 않고… 지금까지 버텨 줘서.”
“안수지…?”
“응. 이상한 거 알아. 나랑 안 어울리는 것도 알고. 그래도 괜찮아.”
“…무슨 소리를….”
다시 한번 용주를 틀어막는 수지의 입맞춤.
전보다도 더 진하게 입을 맞춘 수지는 천천히 입술을 뗐다.
“그때 받았던 거 돌려주는 거야. 네 상처도 다 나을 수 있게.”
“…….”
“그리고 첫 키스도 주는 거야. 그때 그건 아니라고 그랬으니까.”
자기 입술에 묻은 침을 닦아 낸 수지가 손가락을 쪽 빨았다.
두 사람의 얼굴은 이곳의 하늘만큼이나 붉게 물들어 있었다.
고요한 이곳에서 들을 수 있는 건 두 사람의 심장 소리뿐이었다.
* * *
짹짹!
찌르릉~.
들려오는 정겨운 새소리들.
반겨 주는 햇살은 눈이 부실 정도로 청명했다.
차원의 반대편엔 푸른 초원과 아름다운 숲이 펼쳐져 있었다.
“늦었군.”
포탈 앞을 지키고 있던 카일론이 나지막이 이야기했다.
“무슨 일 있었던 거냐? 둘 다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용주와 수지.
두 사람의 상태는 거의 비슷했다.
심장 박동이 불규칙했고, 호흡 역시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
둘 중 더 안 좋은 쪽을 뽑으라면.
용주라고 보는 게 맞겠지.
“…아무것도 아니다. 그보다 여긴?”
용주가 퉁명스레 주제를 돌렸다.
퀘스트 게이트 중 이곳과 가장 유사한 곳은 섬마음 등대였지만.
역시 그것보단 여긴 지구에 더 가까워 보였다.
날아가는 새들이며, 뛰어노는 벌레들이며.
전혀 이질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지.”
“…그래. 근데 왜 하필 여길 고른 거냐? 꼭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처럼 들렸는데.”
“가보면 안다.”
아까 했던 말의 재방송을 한 카일론이 두 사람을 안내했다.
푸른 초원을 조금 거닐자 저 멀리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연기의 아래에는.
나무로 지어진 집이 한 채 있었다.
“집?”
요리 보고 조리 봐도 통나무집이었다.
연기는 굴뚝에서 나오고 있었다.
집 근처엔 작은 텃밭이 있었고, 맑은 냇물이 흘러가고 있었다.
담벼락 없는 작은 정원엔 흔들 그네 하나가 놓여 있었다.
사람이 사는 집이다.
너무도 당연하게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여기는 누가 있는 거야? 와본 적 있어?”
수지가 용주에게 물었다.
“나도 처음 와본다만.”
“음…. 그래? 그럼 역시 가보는 수밖에 없겠네. 가보면 안댔으니까.”
수지의 시선이 카일론에게 옮겨갔다.
지금까지 앞장섰던 그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내가 동행해 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카일론이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응? 왜?”
“가보면 알 거다.”
또다시 돌아온 같은 말.
그를 빤히 바라본 용주는 먼저 앞장섰다.
“뭔가 맛있는 냄새가 나. 갓 지은 쌀밥 냄새 같은 거.”
용주와 나란히 걷던 수지가 이야기했다.
“뭐가 있을까? 대체 얼마나 대단한 거길래….”
갑자기 느려진 용주의 발걸음.
“응?”
뒤를 돌아본 수지는 고개를 갸웃했다.
뭘 봤는진 몰라도, 용주의 동공이 정처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왜? 뭐 있었어?”
“…….”
말없이 발걸음을 옮긴 용주는 통나무 계단을 밟았다.
근처에 창문이 하나 있었다.
유리로 된 창이나, 창호지가 따로 있는 창문은 아니었다.
창문은 작은 여닫이문이 두 개 달린 식이었는데, 반만 열려 있었다.
“후우….”
문 앞에 선 용주는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똑! 똑! 똑!
정중하게 세 번 문을 두드렸다.
“…….”
열리지 않는 문.
문 안쪽에선 두 사람의 대화가 오가는 게 들려왔다.
선명하지 않은 소리였지만, 그것만으로 용주는 알 수 있었다.
이 안에 있는 게 누군지.
그럴 리 없다고.
불가능한 일이라고.
머리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런 건 아무렴 좋았다.
똑! 똑! 똑!
다시 한번 문을 두드리는 용주.
놀란 듯 달려 나온 발소리에 굳게 닫혀 있던 문이 활짝 열렸다.
“누구…세….”
눈이 마주치는 두 사람.
부자연스럽게 끊어진 목소리는 다시 이어질 줄을 몰랐다.
“여기 계속 서 있게 할 거예요, 엄마?”
마른침을 삼킨 용주가 먼저 목소리를 냈다.
눈앞에 있는 어머니는 기억 속 그 모습 그대로였다.
“용주? 너… 정말 용주니?”
말이 나온 건 몸이 움직인 다음이었다.
용주의 어머니는 이미 용주를 껴안고 있었다.
“그럼 누구겠어요. 여기까지 찾아올 사람이.”
꿈에서.
카일론의 기억 속에서.
망각 속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봤었다.
이번 역시도 그런 것들 중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는 게 더 합리적인 판단일 것이다.
어머니의 마지막을 자기보다 또렷하게 보고, 기억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눈앞에 있는 건.
꿈도.
기억의 파편도.
망각도 아니었다.
체온을 나누고 있는 이 사람은 틀림없이 엄마였다.
“아들. 정말 우리 용주구나. 우리 용주야.”
어머니의 목소리는 금세 울먹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서 발소리가 하나 더 들려왔다.
“아들~ 이제 오는 거야?”
그리운 또 한 사람의 목소리.
너무도 듣고 싶었던 그 인사에 용주의 시선이 움직였다.
“네. 조금 늦었네요.”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용주.
웃고 있는 용주의 눈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울지 않겠다고.
아버지의 눈으로 울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는데.
아무래도 지금은 그 다짐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았다.
인자하고 여유로운 아버지의 그 눈이.
지금 자신을 보고 있었으니까.
“흑…. 흑흑…!”
울고 있는 용주의 등 뒤로 또 다른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는 용주만이 아니었다.
“수지도 같이네. 우리 수지 못 본 사이에 아가씨 다 됐네.”
“아줌마…! 아저씨…!”
왈칵 쏟아진 눈물을 수지는 닦아 내고 또 닦아 냈다.
하지만 아무리 닦아도 다 닦아지지가 않았다.
잃어버렸던 기억이.
잊고 있었던 것들이.
이젠 전부 보였다.
미안해서.
그리워서.
고마워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