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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353화 (353/357)

353화

* * *

‘갑자기 왜….’

갑작스럽게 멈춰 버린 용주의 움직임.

지금까지를 생각하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전진, 전진, 전진.

녀석은 무식할 정도로 그것밖에 몰랐었으니까.

‘설마 카일론 녀석이…?’

뭐가 어떻게 된 건진 알 수 없었지만,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그 정도로 용의주도한 녀석이었고.

그것 말곤 지금 이 멈춤이 설명이 되지 않았으니까.

‘이렇게 되면….’

이 침묵이.

이 공백이.

쥬다스에겐 유쾌하지 않았다.

1분 1초가 선택의 기로였다.

결단을 내리려거든 지금이 타이밍이었다.

‘어디 선택해 보시지. 어떻게 하든 웃는 건 나니까.’

용주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는 쥬다스.

180도로 찢어진 용주의 입이 어떻게 반응하던 상관없었다.

그대로 자신을 물어뜯어도 됐고.

지금처럼 가만히 있어도 됐다.

전자는 게획대로 되는 거고, 후자의 경우엔 승패가 뒤집히는 결과로 이어질 테니까.

“모든 것은 나로 인해 끝이 나며! 모든 순환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

모든 힘을 쥐어짠 쥬다스의 외침.

“나는 만물의 종결자. 내가 바로 죽음이다!!”

먹잇감을 눈앞에 둔 쥬다스의 이빨을 타고 죽음의 기운이 흘러내렸다.

그 순간.

파바바방!!

“!”

쥬다스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용주의 몸이 한순간 유리 조각처럼 깨져 나갔다.

피부를 스치는 건 그저 변태를 끝낸 번데기의 일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건….’

멈춘 듯 느리게 가는 시간.

눈앞을 지나는 갑피 조각을 하나하나 셀 수 있었고, 심장은 멈춘 듯 고요했다.

자신은 이 모습을 알고 있었다.

이건 완전체로 각성하던 그때의 모습.

그동안 전부라고 생각했던 육신을 벗고, 새롭게 태어나던 그때의 모습이었다.

“완전체로의 각성이라고….”

전에 있던 육신이 깨져 나가며 엄청난 양의 마나가 불어왔다.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건.

처음에 보았던 인간의 모습.

차가운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인간은 겉으로 보기엔 이전과 차이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지금의 녀석에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헌터로서의 힘도.

언노운으로서의 힘도.

완전체로 각성했다고 하기엔 그저 평범한 인간으로 강등당한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그건 녀석 본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녀석의 손에 들려 있는 건.

서로 다른 두 개의 힘이 하나가 되어 있는 저건….

‘죽음….’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떤 순간에서도.

심지어는 깨어난 괴물에게 전신이 뜯어먹히면서도 느낄 수 없었던 감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또렷하게 보였다.

자신의 죽음이.

죽음 그 자체인 자신의 마지막이.

“아니야.”

머릿속에 든 생각을 전력으로 부정하는 쥬다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더욱 길게 목을 늘린 쥬다스는 용주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죽음 그 자체인 존재! 근원인 내가 죽음에 삼켜질 리 없어!”

“이걸로 전부 끝내자. 이 순환도, 너에 대한 깊은 증오도.”

검을 움켜쥔 용주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하나도 남김없이.”

퍼져 나가는 강렬한 바람.

바람을 타고 흐르는 부패는 주사위가 던져졌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혜안이 보여 주는 미래.

그건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심장이.

이 검이 말해 주고 있었다.

지금이라고.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고.

“디 엔드(The End).”

영창과 함께 가볍게 휘두른 검.

평범하디 평범한 한 동작이었지만, 거기 담겨 있는 건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커헉…!”

뒤틀리는 쥬다스의 시야.

이미 한 번 망가졌던 시야는 조각조각 나며 수십 개의 상으로 갈라졌다.

“안 돼….”

속삭이는 작은 외침.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쥬다스는.

형체도 남지 않을 정도로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

재가 되어 사라지는 쥬다스.

찢긴 그의 육신 사이로 칠흑빛의 죽음이 쏟아졌다.

죽음의 늪에서 솟아오르는 푸른 영혼들.

불과 몇 개에 불과했던 영혼들의 승천은 물결이 되어 하늘을 뒤덮었다.

“…….”

용주를 향해 날아드는 몇몇 영혼들.

용주를 감싼 영혼들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용주의 곁을 맴돌았다.

표정도 볼 수 없고.

목소리도 들을 수 없었지만.

그들이 뭘 말하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

“가라. 너흴 위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빛이 되어 떠오르는 영혼들.

위를 올려다보던 용주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검이.

사라지고 있었다.

흩날리는 재가 되어서.

“디 엔드…. 끝에 걸맞은 이름이네.”

사라져 가는 칼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검을 움켜쥔 용주는 칼자루를 놓아 주었다.

떨어지는 마찰음은 들을 수 없었다.

땅에 닿기도 전에 재가 된 검은 바람을 타고 날아가고 있었다.

* * *

“다 끝났나 보네.”

하늘을 가득 채운 영혼들의 군무 사이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익숙한 목소리에 용주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목소리의 주인이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으니까.

왜 기다리지 않고 왔냐고.

위험하게 뭐 하는 거냐고.

그런 말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다 끝난 마당에 그런 말을 해서 뭐 하겠는가.

“어지럽진 않아?”

“그래.”

“응. 다행이다.”

또각거리며 다가오는 발굽 소리.

나란히 선 소리에 용주는 옆을 돌아보았다.

라이덴의 모습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고생했다.”

지금 라이덴이 사라지고 있는 건 용주의 뜻이 아니었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왜 녀석이 사라지고 있는 건지.

“괜히 잘못 걸려서…. 이제 편히 쉬어라.”

마주치는 두 사람의 시선.

용주에게 다가온 라이덴은 머리를 툭 부딪쳤다.

뿔도, 번개도 사용하지 않은 가벼운 박치기는 원망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가버렸네.”

완전히 사라져 버린 라이덴.

신세를 졌던 그녀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쓰다듬어 줬던 수지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을 푸르게 물들이던 영혼들의 군무는 끊어질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었다.

“가자. 여기도 곧 무너질 거야.”

바닥에서 미묘한 진동이 느껴졌다.

지금 자신들이 딛고 있는 건 살아 있는 세포 조직.

붕괴는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응. 근데 순순히 보내 줄 것 같진 않은데.”

“…….”

영혼들의 물결 사이로 언노운들이 보였다.

주인을 잃어버린 언노운들은 통제를 잃고 날뛰고 있었다.

녀석들끼리 물고 뜯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모든 녀석들이 그렇게 움직이는 건 아니었다.

“가보자. 우리가 들어왔던 포탈까지만 가면 될 거야.”

메스를 꺼내 든 수지가 용주의 손을 잡았다.

지금의 용주가 싸울 수 없다는 건 자신이라도 알 수 있었다.

용주에게선 마나의 편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저 녀석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주인을 쓰러뜨린 자를 처치한다.

그 상징적인 행위가 의미하는 건 녀석들에게도 상당히 중요한 부분일 테지.

특히 저기 있는….

S급 언노운들한테는.

“거기만 넘어서면….”

뒤로 돌아선 수지의 발걸음이 갑작스럽게 멈춰 섰다.

언노운이 몰려든 건 하늘만이 아니었다.

왕좌와 통하는 길목을 이미 차지한 언노운들.

하늘에 있는 녀석들과는 종류가 달랐지만, 저 녀석들 역시 S급 언노운이었다.

사신형 언노운.

필히 그 녀석들에 필적하거나 그 이상일 테지.

“막혔어.”

용주는 말이 없었다.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듯 그저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데리고 가겠다고 했어. 절대 혼자 안 갈 거야.”

용주가 무슨 생각을 할지 생각한 수지가 선수를 쳤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다만.”

“응. 그치만 하려고 했잖아.”

“그래. 뭐, 하려곤 했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는 용주.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다고.”

강하하던 언노운들이 일격에 쓸려나갔다.

동그랗게 갈라지는 영혼의 소용돌이.

원 사이를 통과한 실루엣은 수직으로 강하했다.

“…….”

겁에 질려 물러나는 S급 언노운들.

네발로 땅을 디딘 거대한 실루엣은 활시위를 당겼다.

단 한 번의 사격으로 사라진 목숨은 수십.

반격을 꾀하는 언노운은 단 한 마리도 없었다.

“너도 꽤 격하게 날뛴 모양이지?”

위를 올려다본 용주가 물었다.

하늘을 뚫고 떨어진 이는 카일론.

그는 언노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적은 아니었지.”

변화하는 카일론의 모습.

인간의 모습을 취한 카일론은 작게 숨을 내쉬었다.

지금 상태로 완전체를 유지하는 건 상당한 무리였다.

하지만 무리할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처음이 그러했으니.

마지막도 그러한 게 어울릴 테니까.

“계승자의 힘이 사라지고 있는 건, 느끼고 있겠지?”

“…그래. 계승자의 힘만 사라진 건 아닌 것 같지만 말이야.”

알고 있었다.

모든 힘을 잃어버리고 있단 걸.

라이덴이 사라진 건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더 이상 메뉴 패널을 불러올 수 없었다.

HP도, MP도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 왔던 대항력조차 사라지고 있었다.

몸이 무거웠다.

마치 다른 사람의 몸이 된 것 같았다.

전과 같은 힘도, 전과 같은 속도도 낼 수 없었다.

그리고 아마 다신 돌아갈 수 없을 거다.

이건 단순히 마나를 다 사용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 고갈된 건 힘 그 자체.

자신은 더 이상 헌터도, 계승자도 아니었다.

차원 압력에 당장 찢겨 죽지 않았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마지막 일격이 모든 걸 앗아 간 모양이지.”

“모든 건 아니야. 그 일격이 베어 낸 건 쥬다스만이 아니었으니까.”

“…그런가.”

그 일격이 베어 낸 것.

거기엔 자기 내면에 있던 또 다른 자아도 포함되어 있을 거다.

녀석이 깨어나는 순간을.

녀석이 날뛰고 있단 걸 느낄 수 있었으니까.

어쩌면 그가 베어 낸 것 중엔 지금과 다른 미래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죽음까지 차지한 광기가 날뛰기 시작했다면, 지금의 자신 역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을 테니까.

“미래를 보았나?”

심연 아래로 가라앉았을 의식을 스스로 끌어 올린 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영영 가라앉았다 해도 전혀 이상할 건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 올라왔다.

그 정도의 강한 의지가.

잠겨선 안 될 간절함이 있었다는 이야기겠지.

“그래.”

“지금 이 모습이었나?”

“아니.”

“그럼 네가 본 미래는 어떤 모습이었지?”

“노코멘트. 말할 필요 없잖아. 그런 건 이제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렇군.”

카일론이 자신의 오래된 상처에 손을 올렸다.

“후회는 없나? 이제 곧 평범한 인간이 될 텐데.”

“할 리가 없잖아. 녀석들을 내 손으로 찢었으면 그걸로 족해.”

용주가 왼손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살짝 끌어당기는 동작에도 점멸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말이나 하자고 온 건 아닐 텐데?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피차 이득일 것 같은데.”

“…네가 보지 못한 마지막 메시지를 전해 주러 왔다.”

오른손을 든 카일론은 허공에 점을 찍었다.

점자로 써지는 한 문장.

그 점자가 의미하는 건 ‘퀘스트 클리어’였다.

“그래. 잘 받았다. 안 어울리게 친절하군.”

점자를 확인한 용주가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차원 압력은 네 쪽에서 어떻게 하고 있는 거냐?”

“잔류한 네 힘이 사라지면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거다. 길어 봤자 몇 분이 한계겠지.”

“그러냐.”

순간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내 힘이 전부 사라지면, 다른 녀석들이 있던 세계는 어떻게 되는 거냐.”

무너진 퀘스트 게이트를 자신의 차원에 정착시켜 뒀었다.

자신의 힘이 사라지면….

그 세계 또한 붕괴할지도 몰랐다.

“그 세계는 네가 창조했지만, 더 이상 너만의 소유물은 아니다. 네 힘이 사라져도, 세계는 붕괴되지 않는다.”

“그래? 그거 안심이군.”

안도의 한숨을 삼킨 용주는 쥬다스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았다.

“쥬다스는 정말 끝난 거냐?”

스스로 던지고도 바보 같은 질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확신이 있었기에 베었고.

베었기에 확신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로지는 육신을 잃어버리고도 잔류해 있었다.

그렇기에 쥬다스 역시 잔념이 남았다 해도 이상하진 않았다.

“네가 가진 모든 것이 부딪치며 죽음의 성배가 파괴되는 걸 느꼈다. 근원 자체가 소멸했으니, 녀석이라도 어떻게 할 순 없을 거다.”

고개를 든 카일론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게 무엇보다 명백한 증거다. 죽음은 더 이상 저들을 속박하고 있지 않아.”

영혼들은 아직까지도 승천하고 있었다.

아름답다면 아름답고.

기괴하다면 기괴한 광경이었지만.

카일론은 그 어떤 감정도 느끼고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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