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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352화 (352/357)

352화

“젠장. 젠장! 젠장!! 젠장!!!”

몰아치는 두 사람의 공격.

끊어질 듯 꺾인 주원의 목을 눈앞에 둔 용주는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주원이 사용하는 월영식이라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다.

라스와의 일전을 준비하면서 각 기술들의 특징과 사전 동작 같은 걸 꽤 디테일하게 파악해 뒀었으니까.

마음만 먹으면 반격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쥬다스가 이겼을 리 없어. 내가 졌을 리가 없다고.”

“카악!”

바닥을 기는 싹쓸바람.

발목이 잘려 나갈 위기를 벗어난 용주의 눈에 빛이 보였다.

회전하는 칼날이 뿜어내는 바알 블래스터.

악마의 빛은 일직선상에 있던 모든 것을 날려 버렸다.

“왜 이딴 걸 보여 주는 거야?”

바알 블래스터에 날아간 용주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만해. 그만하라고.”

두 사람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눈에 하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용주의 목소리는 소리 없는 아우성일 뿐이었다.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으으….”

원을 그리며 떨어지는 주원의 월영식 - 청.

회전과 회전 사이의 틈을 치고 들어간 용주는 주원의 가슴을 찍어눌렀다.

사선을 그리며 추락하는 주원.

공중에 두 다리가 뜬 용주를 덮친 바람은 칼날이 되었다.

공중을 차며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빗겨 보내는 용주.

“!”

그런 용주의 귓가에 한 줄기 바람이 더 스쳐 갔다.

승우가 있는 자리에서 불어온 바람이 아니었다.

이건 정반대편에서 불어온 바람.

순간, 한 녀석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은 녀석밖에 없었다.

“큭!”

바닥을 긁어낸 용주가 뺨을 닦아 냈다.

흘러내리는 붉은 피를 보고 있을 여유도 없었다.

저 앞에 녀석이 있었다.

텅 빈 안구로 자신을 보고 있는 금발의 여인이.

“대체 뭐가….”

S급 헌터 혹은 그에 필적하는 힘을 가진 사람.

이걸로 모두의 사망이 확인된 셈이었다.

“설마 카일론이….”

쥬다스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것 말곤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녀석이 왜.

그럴 생각이었으면 지금까지 있던 일련의 사건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다른 두 녀석을 제거하기 위해서?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맞는 퍼즐이 보이지 않았다.

무엇 하나 말이 되는 게 없었다.

아버지가 보셨던 미래와 지금 현실이 다르기라도 하다는 건가?

“모두 죽었다고. 그럼….”

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두 눈으로 목격한 건 아니지만 너무도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는 결과였다.

“뭔가 잘못됐어.”

용주가 오른쪽 눈을 짚었다.

눈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눈을 뜨고 있는 것조차 괴로웠고, 눈알이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당장이라도 이 눈을 뽑아내고 싶었다.

“잘못돼도 아주 단단히 잘못됐다고.”

사방에서 덮쳐 오는 세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카학! 하하하학!”

기괴한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지.’

갑작스럽게 멈춰선 세 사람.

공포에 질린 듯 뒷걸음질 치는 그들의 모습에서 용주는 불길함을 느낄 수 있었다.

“카하하학!!”

하늘 위에서 떨어지는 강렬한 웃음소리.

천지를 뒤흔드는 진동 속에 용주는 마른침을 삼켰다.

“너는….”

눈앞에 있는 건.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크흐흑! 크하하학!”

평범한 모습이 아니었다.

몇 배나 거대하진 몸은 카일론의 언노운 폼보다 거대해져 있었고, 전신을 뒤덮은 칠흑의 갑피에선 죽음과 부패의 기운이 진하게 묻어 나왔다.

꿀렁…. 꾸드득!

폭소를 터뜨리는 그의 목과 어깨를 타고 끈적한 점액이 흘러내렸다.

점액 사이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수많은 얼굴들.

용주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게 녀석에게 살해되고 흡수당한 인간들의 마지막이란 걸.

“아니야….”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중얼거림이었다.

이게 자신이 한 일일 리가 없었다.

저기 있는 게 자신일 리 없었다.

하지만.

저기 있는 건 분명 자신이었다.

비록 겉모습이 변했어도 확신할 수 있었다.

녀석의 마나, 녀석의 기운, 녀석의 근원.

두 눈에 서린 짙은 광기까지.

다른 사람일 리 없었다.

“설마….”

혜안이 말하고 싶던 게 뭐였는지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았다.

저기 있는 건 자신.

정확히는 녀석에게 몸을 뺏긴 자신이다.

그렇게 가정하면 앞뒤가 맞아떨어졌다.

쥬다스도 카일론도 아니었다.

게이트를 연 건 자신.

모든 헌터들을 도륙하고 포식한 것도 자신.

서윤을 비롯한 녀석들을 저 몰골로 만든 것도 자신.

은정과 예은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을 죽게 만든 것 역시도 자신이었다.

“이걸 말하고 싶었던 거야? 이걸 보여 주고 싶었던 거냐고.”

사라져 가는 풍경.

혜안이 보여 주던 모든 미래가 사라진 그곳엔 어둠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뭘 해야 하는 건데, 지금의 내가 뭘 할 수 있는데.’

점점 더 깊은 심연 속으로 잠겨 가는 몸은 이미 무력감에 묻혀 버렸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고, 눈조차 떠지지 않았다.

그나마 수면 위로 떠 올랐던 의식은, 빠르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몽롱한 편안함이 조금 전 봤던 모든 것들을 지우려 하고 있었다.

그때.

“아들. 그만 자고 일어나야지.”

“!”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던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아빠?’

늦잠을 잘 때면 듣곤 했던 친숙한 말이었다.

눈을 뜬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보이는 건 어둠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말을 들을 때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었다.

계속 어린아이로 남을 수 있을 것 같았고.

평생 두 분이 곁에 있을 것만 같았다.

그게 불가능한 허상이란 건 알고 있었다.

그 정도로 바보 같진 않았으니까.

그렇지만 그걸 알면서도 그냥 좋았다.

동생과 둘만 남게 되었을 때도 가끔 그 말이 떠오르곤 했었다.

그 목소리를 듣고 싶어 일어났음에도 눈을 꼭 감고 있던 날도 있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들을 수 없었다.

그런 날이면 눈을 뜨는 게 두려웠다.

눈을 뜨면 마주해야 하는 빛이.

그 빈 자리가.

현실이.

차라리 전부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하곤 했다.

눈을 떠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그냥 그 목소리가 들렸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하곤 했었다.

“아들~?”

다시 한번 들려오는 아버지의 목소리.

순간 뺨을 쓰다듬은 따스한 손길에 용주는 눈을 떴다.

보이는 건 어둠뿐이었다.

보고 싶던 얼굴은 다시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해야 하는 게 뭔지 또렷이 알 수 있었다.

녀석을 날뛰게 두어선 안 된다.

아버지가 미래를 맡긴 건 녀석이 아닌 자신이었다.

* * *

“카하학! 보여 줄 건 더 없나 보네.”

엉망으로 부서진 채 널브러진 쥬다스의 머리.

꽃잎을 뜯듯 쥬다스의 남은 턱을 찢어 버린 용주가 혀를 길게 늘어뜨렸다.

“그럼 이제 슬슬 죽어. 저항하지 않는 사냥감엔 흥미 없으니까!”

불쾌함과 굴욕감에 일그러진 쥬다스를 내려다보는 용주에겐 진한 만족감이 느껴졌다.

“기어오르지 마라!”

먼저 달려드는 쥬다스의 머리.

목을 길게 뺀 이빨을 가볍게 흘려보낸 용주의 입이 180도로 찢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쥬다스의 입꼬리가 실룩였다.

죽음을 맞이하는 건 이쪽뿐이었다.

지금이 지나면 이 모든 굴욕을 되돌려 줄 수 있었다.

‘편하게 죽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넌 죽음의 밑바닥까지 보게 될 테니까.’

오히려 한발 먼저 나가면서 죽음을 앞당겼다.

카일론이 맞출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카학!”

녀석의 움직임이 갑자기 멈춰 버렸다.

몸이 굳어 버린 것처럼 부자연스럽게 말이다.

“너 이 자식…!”

내면 세계에서 다시금 마주한 두 사람.

시간이 멈춘 이곳에 있는 건 둘뿐이었다.

“어떻게 기어 올라온 거야? 심연 속으로 가라앉았을 텐데.”

“그래. 확실히 가라앉았었지.”

“근데 어떻게….”

“네 눈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 모양이지?”

“뭐?”

“그 눈을 맡은 건 네가 아니야. 미래를 봐야 하는 건 네가 아니라고.”

용주의 단호한 눈빛에 또 하나의 용주가 미간을 구겼다.

“나한테 맡긴다고 했던 건 너잖아.”

“그래. 확실히 그건 내 의지였지. 그러니까 이제 내 의지로 돌려받겠단 거야. 네 역할은 끝났다고.”

“웃기지 마.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바닥난 네 힘으로 뭘 할 수 있냐고! 죽는 것 말고 더 있어?! 왜 중요할 때 끼어드는 거야?!!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넌 이제 빠져.”

“멍청한 생각 하지 마! 네가 죽으면 네가 지키고 싶던 건? 다 잃을 거야?!”

“내가 알아서 한다고 했을 텐데?”

“…….”

짧게 이어지는 침묵.

광기와 희열에 찬 눈과 차갑게 얼어붙은 눈은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카학! 하하학! 웃기지 마!”

침묵을 깬 거친 웃음소리.

성대를 거칠게 긁어낸 또 하나의 용주는 입꼬리를 올렸다.

“지금 몸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건 나라고. 어떻게 기어 올라온 건데, 어떻게 차지한 몸인데! 내가 그렇게 쉽게 넘겨줄 것 같아?!”

이빨 사이로 뚝뚝 떨어지는 침방울.

날카로운 손톱을 세운 또 하나의 용주는 짙은 살기를 뿜어냈다.

“내 거야. 전부 내 거라고! 이 몸도, 힘도, 먹이도, 전부 내 거라고!”

용주에게 달려드는 또 하나의 용주.

오른손으로 땅을 짚은 또 하나의 용주는 그대로 꼬리를 휘저었다.

“넌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잠자코 가라앉으라고!”

뻗어 나오는 촉수들.

촉수를 타고 돋아나오는 팔과 손들은 용주를 붙잡으려 했다.

땅을 구른 용주는 사방에서 덮쳐 오는 것들에 최대한 저항했다.

하지만 피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어떤 스킬도 쓸 수 없었고, 어떤 무기도 휘두를 수 없었다.

“넌 날 막을 수 없어. 절대로. 절대로!”

용주의 발을 낚아채는 팔들.

하늘로 내던져진 용주는 등짝을 가격당하며 지면에 처박혔다.

용주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여섯 개의 촉수.

용주를 휘감은 촉수들은 용주를 들어 올렸다.

열매 대신 열린 머리들은 저마다의 눈으로 용주를 보고 있었다.

“글쎄, 과연 그럴까?”

“강한 척해 봤자야. 내 눈을 속일 순 없어. 너는 나고, 나는 너야.”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굵은 핏줄기.

녀석의 말은 부정할 수 없는 절대 질서처럼 보였다.

힘의 우위는 확실했고, 제대로 반격할 무언가는 보이지 않았다.

몸의 주도권 역시 저쪽으로 넘어간 상태.

모든 게 절망적으로만 보였다.

하지만.

뭘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모든 게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그래. 녀석도 이런 느낌이었던 건가?’

진각성을 하며 스킬이 발현된다.

서윤의 경우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발현된 스킬은 ‘혜안’ 정도뿐이었다.

조금 이상하단 생각은 있었다.

혜안은 엄밀히 따지면 빌려 온 능력.

그건 아버지의 힘이지, 자신의 힘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보였다.

그것과는 다른 힘이.

오래전부터 계속 거기 있었던 힘이.

‘검을 벼려 낸다라…. 네가 어디까지 알고, 어떤 생각으로 남긴 말인지는 몰라도, 정말이지 딱 맞는 말이야.’

용주가 오른손을 움켜쥐었다.

팔다리는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포박되어 있었다.

온몸이 으스러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우연인지 운명인지 오른손은 가슴 위에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그거면 충분했다.

뛰는 심장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뽑으라고.

‘카일론.’

한순간 찢겨 나가는 여섯 개의 촉수.

갈기갈기 찢긴 용주의 머리들이 피와 살덩이가 되어 쏟아졌다.

“카학?!”

“너는 나고 나는 너라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또 하나의 용주.

그를 목전에 둔 용주의 손엔 검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회색과 검은색이 오묘하게 배치된 예리한 칼날.

표면에 코팅된 어스름한 붉은빛을 타곤 회색의 입자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아니. 널 먹어 치운 건 나야. 네가 아무리 날고 기어 봤자, 넌 아무것도 아니라고.”

녀석이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는 용주.

“말도 안 돼. 있을 수 없어. 힘이 남아 있을 리 없다고!”

일그러진 그의 외침에 단 한 번의 참격이 지나갔다.

“카학…!”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또 하나의 용주.

“그 힘은… 대체 뭐야…! 이런 건….”

사라지는 그의 모습을 뒤로한 채 멈췄던 시간은 다시 흘러가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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