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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351화 (351/357)

351화

‘젠장. 내가 이 정도로 찢길 줄이야.’

흩날리는 역병 포자 속 쥬다스가 피를 토해 냈다.

엉망으로 찢긴 전신은 성한 곳이 없었다.

‘재생이 제대로 따라가질 못해.’

모든 부분에서 떨어져 가는 이쪽과 달리 저쪽의 공격력은 폭발적이었다.

기반은 비슷했고, 다양성은 감소했다.

공격의 정교함, 계획성 등 종합적인 측면에서 봐도 단순해진 건 확실했다.

하지만 저 포악성.

끊임없이 상대를 물어뜯는 저 식탐만큼은 전과 비교할 수 없었다.

“카하하학!!”

짜릿한 웃음을 선사한 용주는 쥬다스의 찢긴 입속으로 뛰어들었다.

날카로운 칼날로 변한 양팔.

안쪽으로 휘두른 양팔에 쥬다스의 이빨 하나가 잘려 나갔다.

“턱이 세 개면 좀 다를 줄 알았더니, 딱히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지? 하나만 날아가도 제대로 씹지도 못하잖아.”

잘려 나간 이빨 밑동을 붙잡은 용주는 단번에 힘을 주었다.

뿌리까지 뽑혀 나오는 이빨.

샘물처럼 솟아나는 피를 한 사발 들이킨 용주는 옆에 있던 다른 이빨 역시도 들어냈다.

“분하면 뭐라도 좀 해봐. 숨겨 둔 게 있으면 어디 다 꺼내 보라고. 카하학!”

순식간에 세 개의 이빨을 뽑아낸 용주가 광적으로 웃어 보였다.

“제멋대로 날뛰는 것 말곤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짐승 주제에…!”

역병이 뚝뚝 떨어지는 쥬다스의 이빨.

남은 두 개의 턱을 쫙 벌린 쥬다스는 일제히 이빨을 맞부딪쳤다.

포자 폭발의 뒤를 잇는 역병 폭발.

쥬다스의 입에서 튕겨 나온 끈적한 덩어리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카학! 하하학!”

점액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날카로운 손톱.

오른손을 간신히 꺼낸 용주는 점액 밖으로 기어 나왔다.

역병에 물든 전신은 썩어 문드러져 있었고, 칼날 모양으로 변이됐던 팔엔 구멍이 송송 나 있었다.

“제멋대로 날뛸 수 있으면 그거면 된 거 아니야?”

세 갈래로 갈라지는 양팔.

두 발로 일어선 용주는 지면을 후벼 팠다.

“그래서 네가 짐승이란 거다.”

용주의 머리 위로 모여드는 죽음의 소용돌이.

하늘을 검게 물들이던 죽음은 낙뢰가 되어 떨어졌다.

“!”

“그것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는데?”

죽음의 머리를 찢고 나오는 용주.

모든 대미지를 그대로 뒤집어쓴 몸은 너덜거렸지만, 광기와 희열에 가득 찬 눈만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러고 보니 너 미간 사이에 꽤 오래되어 보이는 상처가 하나 있던데.”

날카롭게 빛나는 여섯 개의 칼날.

쥬다스의 입속으로 돌아온 용주는 안쪽 깊숙이 치고 들어갔다.

“치료하지 못하는 상처인 모양이지?”

미간을 좁힐 때 유독 부각되는 상처가 하나 있었다.

예리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간 듯한 상처.

다른 상처들과 달리 저건 이미 녀석의 일부가 된 물건이었다.

“어때? 이렇게 된 거 조금 더 멋진 문신으로 바꾸는 게. 카학! 카하학~!!”

피를 물드는 쥬다스의 시야.

균열이 생긴 역안에 비치고 있는 건….

‘광기’라는 현상 그 자체였다.

* * *

‘차가워.’

점점 더 깊은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 몸.

몽롱해진 의식은 아이러니하게도 편안함마저 들었다.

뭔가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느낌 같달까.

집요하게 자신을 괴롭히고 있던 것들이 한순간 사라진 기분이었다.

‘졸려.’

눈꺼풀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왜 견뎌야 하는가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그냥 이 편안함을 받아들이면 일은 알아서 잘 끝나지 않겠는가.

“그렇죠? 그러니까… 한숨 자도 되겠죠, 아빠?”

머금고 있던 숨을 내뱉은 용주의 눈이 점점 감겼다.

그때.

주륵….

뺨을 타고 한 줄기의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혜안이….’

혜안을 발동시킬 수 있는 마나는 남아 있지 않을 터였다.

그런데도 뭔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

끝없이 추락하던 용주의 발밑으로 보이는 새로운 풍경.

하늘에 멈춰 선 용주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여긴….”

새로운 풍경이라고 생각했었다.

모든 것이 파괴되어 있는 이곳의 모습을 보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딘지 눈에 익었다.

산 정상에 위치한 부러진 타워.

부서져 무너진 아파트와 빌라들.

널브러진 간판과 붉게 물든 호수공원.

버려진 차들과 무너진 다리.

여긴….

서울이었다.

“망각이 보여 주는 환상인가.”

처음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뭔가 이상했다.

로지는 분명 사라졌다.

자신이 받아들인 건 망각이 아니었고, 이걸 보여 주고 있는 건 혜안이었다.

“그럼 대체….”

고개를 돌린 용주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이건….”

거대한 카오스 게이트가 하늘을 갈라놓고 있었다.

무엇 하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이트는 안정화되지 않을 텐데.

쥬다스는 분명 거기서 끝났을 텐데.

혜안은 어째서 이런 미래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인가.

“…….”

자석에 이끌린 철 가루처럼 산 정상으로 끌려가는 몸.

팔각정 근처로 떨어진 용주는 바닥을 짚었다.

피와 살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 녀석들 건가?”

게이트가 보였을 때 실패작들을 여럿 봤었다.

이것과 비슷한 일을 벌여 놓기도 했었고.

그렇기에 이것만으로 뭔가를 느끼기엔 부족함이 있었다.

“뭘 보여 주고 싶은 거야? 뭘 보란 거냐고?”

제3의 자신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가 분명 자신을 이끌고 있었다.

“잠깐만….”

그때.

용주의 눈에 낯익은 물건이 보였다.

뭐에 홀린 듯 달려간 용주는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두 동강 나 있긴 했지만 틀림없었다.

이건.

형만의 대검이었다.

“왜 이게 여기에….”

불현듯 스친 불길함에 용주는 주변을 살폈다.

그러고 보니 이 주변만 새까맣게 불타 있었다.

칼자루를 내려놓은 용주는 주변에 있던 또 다른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갈기갈기 찢긴 안대.

부서진 핸드폰과 이어폰.

납작하게 찌그러진 강철 케이스.

하나같이 전부 눈에 익은 물건들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전투의 흔적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그 녀석 물건만 안 보이는데. 녀석을 찾으면 뭔가 알 수 있는 건가?”

그때 내보냈던 녀석들 중 서윤의 물건만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딘가로 끌려가는 용주의 몸.

남산을 내려온 용주의 눈에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자신의 코트를 걸치고 있는.

분홍 머리의 여자가.

“서윤?”

삐딱한 자세의 그녀는 사복검을 들고 있었다.

마치 뭔가와 싸우고 있던 것처럼.

“어이.”

하지만 용주의 부름에도 그녀는 반응하지 않았다.

용주의 등골을 타고 흐르는 깊은 불안감.

“!”

서윤의 어깨에 손을 올린 용주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뭔가.

뭔가 이상했다.

손이 닿은 어깨가 음푹 파여 있었다.

“으으…. 으아아….”

삐걱거리며 움직인 서윤이 서서히 뒤를 돌았다.

서윤의 얼굴은 피로 떡칠이 되어 있었다.

관절은 기괴하게 꺾여 있었고, 옷은 넝마가 되어 있었다.

안쪽으로 보이는 살결은 썩어 문드러져 있었다.

“대체 무슨….”

좀비가 되어 버린 듯한 그녀의 모습.

본능적으로 손을 움직인 용주는 룬검을 뽑으려 했지만 할 수 없었다.

룬검은 거기 없었다.

“아아악!!!”

괴성과 함께 달려드는 서윤.

날카롭게 휘저은 사복검을 피해 물러난 용주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건 죽음과 부패의 기운.

카일론과 쥬다스가 가지고 있던 두 근원의 힘이었다.

“기다려. 난 너한테 물어볼 게….”

어떤 말을 해도 소용없었다.

서윤은 완전히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뛰고 있었다.

움직이곤 있지만, 살아 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

자신이 ‘종숙주’로 일으켜 세웠던 언노운들처럼.

“으아악!!”

“젠장….”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본능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때.

휘익~!

어깨를 잡아당기는 감촉과 함께 차원 너머로 몸이 빨려 들어갔다.

“뭐야, 또….”

건너편으로 내던져진 용주는 몸을 일으켰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거냐고.”

새롭게 펼쳐진 풍경은 어느 한 건물 내부였다.

많은 것이 부서지고, 달라져 있긴 했지만 용주는 여기가 어딘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은정이 있던 그 병원인가.”

워낙 신세를 많이 졌던 곳이기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전기도 다 나간 거로 봐서 비상전력까지 다 꺼진 모양이었다.

“그런데….”

카운터와 복도 여기저기에 피와 살들이 짓뭉개져 있었다.

갈가리 찢긴 고기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고, 터져 나간 내장이 벽에 눌어붙어 있었다.

들것과 탈것.

이동식 침대와 휠체어를 비롯한 모든 게 여기저기 버려져 있었다.

용주는 이런 풍경을 본 적 있었다.

이건.

차원 압력에 찢긴 인간들의 모습이었다.

“왜 사람이 있는 거야. 대피하지 않은 거야?”

대피령이라면 분명 내렸었다.

무수히 많은 피난 행렬도 두 눈으로 목격했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대피하지 않았다.

“아니, 대피할 수 없었던 건가….”

병원엔 중환자들도 많았을 거다.

거동은 고사하고, 당장 치료받지 않으면 죽을 사람들도 있었을 거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두고 떠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었을 거다.

자신이 아는 어떤 사람처럼.

“설마….”

순간 머릿속을 스친 누군가의 얼굴.

가빠진 호흡을 애써 진정시킨 용주는 널브러져 있는 옷가지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닐 거야.”

간호사 가운과 의사 가운을 집중적으로 뒤지는 용주.

분주하게 움직이던 용주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제발 없었으면 하는 이름이.

그냥 캐비닛에 들어가 있었으면 하는 이름이 거기 있었다.

“왜…. 대체 왜….”

이름표를 움켜쥔 용주가 입술을 깨물었다.

다른 사람이 그녀의 옷을 빌려 입은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아님을 너무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사람들이 위험할 걸 알면서 혼자 도망갈 위인이 못 됐으니까.

“잠깐만….”

여기 있는 사람들은 차원 압력에 찢겨 죽었다.

그게 의미하는 건 혹시….

“!”

또 한 번 용주를 빨아당기는 차원.

다른 곳으로 내뱉어진 용주의 눈에 전쟁 기념관의 여러 구조물들이 보였다.

이곳 역시도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기념비는 반으로 잘려 있었고, 피와 살 그리고 내장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꿀꺽….

형제의 상을 올려다본 용주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두 동상의 머리가 잘려 나가 있었다.

단순히 그것뿐이었다면 용주가 이 정도로 놀라진 않았을 거다.

잘려 나간 머리에 다른 무언가가 놓여 있었다.

눈동자를 굴리고 있는 두 개의 머리.

저기 있는 건 이안과….

서아의 머리였다.

“…….”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조금만 정신을 놓쳤다면 분명 주저앉았을 거다.

“그럼 여기 있는 다른 녀석들도….”

이안이 있던 곳에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러자마자 그걸 두 눈으로 확인하고 말았다.

“젠장….”

심한 구역감이 밀려왔다.

쥬다스의 성채에서 살아 있는 머리라면 이미 봤었건만,

이건 그것과 전혀 느낌이 달랐다.

“어디까지 봐야 하는 거야. 언제까지….”

순간 피부를 스치는 불길한 바람.

동물적인 속도로 반응한 용주는 왼쪽으로 미끄러졌다.

“서윤이 끝이 아니었던 거냐.”

용주의 입술을 타고 붉은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승우와 주원이었다.

서윤과 마찬가지로 둘 다 정상적인 상태와는 거리가 멀었다.

좀비처럼 변한 승우는 예나를 업고 있었다.

예나는 상대적으로 온전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건 앞에서 보인 모습일 뿐이었다.

그가 실제로 업고 있는 건 반으로 찢긴 예나의 상반신.

자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예나는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으에에….”

주원은 목이 반쯤 뜯겨 나가 있었다.

월영식을 사용할 때마다 목이 90도로 꺾이는 게, 보고만 있어도 정신이 아득해졌다.

주원 역시 승우와 마찬가지로 다른 이의 일부를 가지고 있었다.

주원이 가지고 있는 건 금화의 투구.

머리와 함께 흔들리는 투구는 간신히 형태만 유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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