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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350화 (350/357)

350화

* * *

“좋은 수였어. 그 점만은 칭찬해주지.”

흩날리는 재와 바다를 이룬 물결.

부서진 차원의 하늘은 엉망으로 찢어져 있었다.

카일론과 쥬다스.

양쪽 모두 반신이 날아가 있었다.

카일론의 왼팔과 어깨, 뒷다리 중 하나가 사라져 있었고.

쥬다스 역시 대부분의 꼬리를 잃고, 머리도 반 정도 날아가 있었다.

두 사람 다 재생은 멈춘 상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살육전의 승자는….

“…….”

카일론이었다.

반신이 부서진 그는 쥬다스의 머리를 발밑에 두고 있었다.

그가 휘둘렀던 수많은 무기들은 쥬다스의 몸 여기저기에 무자비하게 박혀 있었고,

카일론의 입가엔 살과 가죽이 난잡하게 묻어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넌 한 가지 큰 착오를 했어. 네가 벼려 왔던 검은 네가 생각한 만큼 예리하지 못했다는 거지.”

“…….”

“양쪽에서 동시에 날 친다. 만약 그런 수를 간구한다면, 로지를 어떻게든 회유하지 않을까 했는데. 어때? 지금 와선 후회되지 않나?”

계속되는 쥬다스의 물음에도 카일론은 입을 열지 않았다.

“왜 그래? 어디 말이라도 해봐. 날 그렇게 먹어 치우던 기세는 어디 간 거야?”

말 대신 날아드는 칼날.

입안을 시원하게 관통당한 쥬다스는 그 상태로도 칼날을 우적우적 씹었다.

“죽음이 보이지 않나?”

마침내 돌아온 짧은 물음.

입안에 남은 살점을 씹은 쥬다스는 입꼬리를 올렸다.

“죽음이야 항상 보여 왔지. 내가 바로 죽음이니까.”

“죽음의 눈엔 자기 죽음은 보이지 않는 모양이지.”

“훗! 보일 리가 없잖아. 경험할 리 없으니까.”

“네가 이겼다고 생각하나?”

“생각하는 게 아니야. 확정된 거지. 난 느낄 수 있어. 살점의 맛을, 피와 내장의 냄새를.”

쥬다스가 혀를 날름거렸다.

“네 작은 승리는 초라할 뿐이야. 알고 있잖아. 애써 외면하지 마.”

“그래.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지. 지금 당장은.”

“지금 당장은?”

“우리가 인간 세계와 처음 이어졌을 때. 우리 앞을 가로막았던 인간들 기억하고 있겠지?”

“그래. 녀석들을 내 손으로 죽음에 담글 때까진 잊을 수 없지. 녀석들이 빼앗아 간 게 있으니.”

“차원을 지배하던 남자, 힘을 조작하던 남자, 얼음과 신비로운 검술을 사용하는 남자, 상처를 되돌리던 여자.”

“상처를 되돌리던 여자는 셋이나 있었지. 그중 하나는 다른 것들도 흉내 낼 수 있었고.”

말꼬리를 이어받은 쥬다스가 그때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고 보니 네가 준비한 검도 비슷한 능력을 쓰더군. 네가 흡수하게 만든 거냐? 아니면 스스로 죽이고 빼앗은 거냐.”

“둘 다 맞을 수도, 둘 다 아닐 수도 있지.”

“뭐냐, 그 이도 저도 아닌 대답은?”

“내가 벼려 낸 검엔 내 손을 거치지 않은 부분이 있다.”

“호오? 그게 지금 와서 무슨 소용이지? 네 검은 이미 부러졌는데.”

“검이 부러졌다면, 그것 역시 미래의 풍경이었을 테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카일론은 크게 흔들리거나 동요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강한 척해 봤자 더 부질없는 짓이야. 네가 날 죽여도 변하는 건 없어. 순환은 계속된다. 너의 반쪽짜리 근원과 망각은….”

“아니, 잘못된 순환은 오늘 끝난다. 미래를 보는 남자는 그걸 봤을 테니까.”

단호하게 말꼬리를 자린 카일론은 마지막을 준비했다.

근거는 없었다.

쥬다스의 말은 확정된 정의인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믿는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길은 틀리지 않았다.

자신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그렇게 믿는 수밖에 없었다.

부러진 검은.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임무를 훌륭하게 해낼 거다.

* * *

사각사각….

귓가를 울리는 끔찍한 소리.

우적…! 우지끈!

전신을 타고 전해지는 끔찍한 고통.

몸이 넝마가 된 와중에도 그 통증만은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젠장.’

먹히고 있다.

스스로도 그걸 인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몸이 움직여 주지 않았다.

극심한 마나 고갈에 정신이 혼미했다.

‘어떻게든….’

생각하라.

움직여라.

끊임없이 자신에게 채찍질을 해봤지만 무엇하나 할 수 없었다.

죽음에 잠겨 가던 그때와 비슷했지만, 결정적으로 한 가지가 달랐다.

죽음은 이미 자신을 덮고 있었다.

“꽤 맛이 괜찮은걸. 인간들은 다 이런 맛인가? 크기는 작아도 이 정도면 진미군.”

허리가 뜯기고, 내장이 파먹히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때? 실패한 소감은? 죽음에 잠긴 감상은?”

녀석의 면상에 한 방 갈겨 주고 싶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입속에 있던 녀석의 작은 머리는 자신을 음미하고 있었다.

‘젠장….’

주절주절 떠드는 소리가 점차 멀어져 갔다.

붉게 물들었던 시야는 너무도 흐릿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포기할 거야?”

그때.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멈춰 버린 시간.

더 이상의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잡아먹게 둘 거냐고.”

‘이건… 내 목소리?’

틀림없었다.

이건 자신의 목소리였다.

‘이제 환청까지 들리는 거냐.’

“환청이라니. 이거 서운한걸.”

흐릿했던 시야 속에 순간 무언가 비쳤다.

마주 보고 있는 또 하나의 자신.

광폭화 상태의 자신이 거기 있었다.

‘너는….’

“이거 서운한데, 네가 날 먹었잖아. 내 광기, 내 살기, 내 피와 살까지.”

‘설마… 그때 만났던….’

떠오르는 건 한 가지밖에 없었다.

시련에서 삼켰던 그 녀석.

그 녀석 말곤 없었다.

‘단순히 만들어졌던 환영이 아니었던 거냐.’

“네 몸을 뺏지 않고 실체를 가질 수 있었던 건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긴 했지.”

‘말도 할 수 있었던 거냐.’

“너한테 삼켜진 이후로 나한테도 변화가 있었거든. 네 내면에 묻히면서 자연스레 얻게 된 것도 있지.”

‘인간의 말이 그중 하나고?’

“인간의 말인지 아니면 그 반대쪽인진 잘 몰라. 어쨌든 중요한 건 내가 수면 위로 올라왔단 거지.”

‘왜 나타난 거냐. 그냥 조용히 죽어 있지.’

“이거 서운하게 왜 그래? 같은 몸을 쓰고 있는 친구끼리.”

‘난 너 같은 놈이란 친구 한 기억 없다만.’

“카각! 뭐야? 그런 걸 따질 여유도 있나 보지?”

귀까지 입을 찢은 또 하나의 용주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지금 잡아먹히고 있는 게 너만이었으면 나도 잠자코 있었을 거야. 근데 유감스럽게도 나도 갈가리 찢기고 있어서 말이야. 먹히는 건 한 번이면 족하다고.”

‘…그래서?’

“주도권을 넘겨 주지 그래?”

‘뭐?’

“네가 이 상황이 와서도 참고, 견디고 있는 광기를 받아들이라고. 내가 녀석을 찢어 줄 테니까.”

‘웃기지 마. 힘이라면….’

“그래 힘은 다 떨어졌지. 네 힘은 말이야.”

‘내 힘?’

“그래. 네 힘은 바닥났지만 난 아니라고.”

‘그 말을 믿으라고?’

“이봐. 밑져야 본전이라고. 이대로 그냥 먹힐 거야?”

‘…….’

녀석을 어디까지 신뢰해도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녀석의 말이 어디까지 진실인지도 알 수 없었고.

애초에 녀석이 실체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군.’

“칵! 좋은 대답이야. 그럼 어디….”

두근!

순간, 강렬하게 뛰는 심장.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걱정 마. 난 자비로운 사람이거든. 너에 대한 경외를 담아 외로움의 시간은 최대한 짧게 해주지. 카일론도, 너희 세계의 인간들도….”

“날뛰어 보자고!! 카각! 가가각!!”

희열에 찬 광기를 뿜어낸 용주가 기괴한 웃음을 터뜨렸다.

“뭐?!”

“어이~ 맛있냐? 어? 맛있어?!”

순간 마주친 두 사람의 눈빛.

광기에 찬 용주의 눈빛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달랐다.

게다가.

“말을…?!”

말을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그만 먹지 그러냐. 기분 X나 더러운데.”

몸을 U자로 꺾은 용주가 이빨을 드러냈다.

순간 멀어지는 두 사람.

미간을 좁힌 쥬다스의 얼굴엔 선명한 이빨 자국이 남아 있었다.

“너 어떻게…!”

“카각! 가하학! 궁금해? 당연히 궁금하겠지.”

우적우적 쥬다스의 살점을 씹는 용주.

엉망으로 부서졌던 용주의 상처는 빠르게 아물어 가고 있었다.

“근데 어쩌나. 알려 줄 생각 없는데.”

폭발적으로 속도를 높이는 용주.

순식간에 목덜미를 물어뜯은 용주는 살점을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지금 너무 배가 고프거든. 말할 시간에 뭐라도 더 먹어야겠어.”

이빨 사이로 쏟아지는 대량의 타액.

방울방울 흩어져 사라지고 있던 언노운의 육신은 빠르게 형태를 복구했다.

‘이 녀석 대체….’

다 꺼졌던 불씨가 다시 피어오르고 있었다.

인간이 섞였던 불순물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건 자신과 똑같은 존재.

순수한 근원의 그릇이었다.

“카하칵! 좀 더 날뛰어 봐! 모처럼인데 재미있는 사냥감이 되어 달라고!”

맞부딪치는 두 사람의 꼬리.

예리하게 잘려 나간 쥬다스의 꼬리가 허공을 맴돌았다.

칼날 촉수에 잘려 나가는 꼬리.

순식간에 도륙 난 꼬리는 한낱 고깃덩이로 전락해 있었다.

“너 이 자식…. 누구냐?”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분명 그 인간이었다.

하지만 쥬다스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녀석은 조금 전 그 인간과는 별개의 존재였다.

“나? 이름은 없어. 그냥 배고픈 포식자지.”

잘게 다져진 고기를 한입에 삼키는 용주.

더욱 크고 포악하게 몸을 변이시킨 용주에게 날카로운 가시들이 자라났다.

“설마 카일론이 여기까지 내다본 건가.”

“카일론? 카핫! 하하핫!!”

폭소를 머금는 용주에게 죽음의 숨결이 작렬했다.

“녀석이 무슨 생각을 했고, 무슨 수를 뒀든 나랑은 상관없어.”

죽음에 잠긴 땅에서 자라나는 수많은 세포들.

부서졌던 신체 조직들은 하나의 땅으로 재구축되었다.

“너를 집어삼키면, 삼위일체가 완성되는 거야. 그 누구도 날 막을 수 없어. 너희 세계도 저쪽 세계도, 그 너머에 있는 세계들도 다 내 고기.”

활짝 펼쳐진 여섯 개의 꼬리.

꼬리 끝에서 자라난 세포들은 용주의 얼굴과 같은 모습이 되어 갔다.

“내가 기다려 온 만찬의 시간이라고! 카하학!”

한 점으로 모여드는 여섯 발의 페이탈 붐.

에스카톤 저지먼트에 더해진 페이탈 붐은 곧장 하늘을 갈랐다.

“이 녀석. 올리비아 흉내를.”

“흉내? 흉내라고? 카학!”

날뛰는 칼날 다리.

순식간에 쥬다스의 턱 밑까지 치고 들어온 용주는 그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콰앙! 쿠콰강!

일격에 처박힌 쥬다스의 머리.

솟구치는 아웃레이지 스내치를 뚫고 들어온 용주는 다시 한번 손을 휘둘렀다.

“어딜 가시나.”

간발에 차로 공격을 회피한 쥬다스.

더욱 날카롭게 손톱을 변이시킨 용주는 허공을 휘저었다.

“!”

순간, 갈라지는 죽음의 소용돌이.

일직선상에 있던 쥬다스의 몸은 반대편이 그대로 보였다.

그의 몸엔 다섯 개의 손톱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나라고 잠만 처자고 있던 건 아니거든.”

여섯 개의 머리를 뻗은 용주는 멀어지려는 쥬다스의 날개에 올라탔다.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날개.

일곱 개의 머리가 먹어 치우는 속도는 하나일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아무 데도 못 가. 여기가 내 식탁이고, 네 무덤이라고. 카하학!”

허공을 딛고 뛰어오른 용주는 C자로 몸을 꼬았다.

말뚝처럼 흩뿌려진 꼬리들.

쥬다스의 몸 여기저기에 박힌 꼬리들은 저마다의 포만감을 채우기 위해 정신이 없었다.

“감히….”

다시 한번 용주를 노리는 수많은 광원들.

쥬다스의 공격을 정통으로 뒤집어쓴 용주는 광기에 찬 미소를 지었다.

“카하하학! 다 했냐?”

엉망으로 부서진 몸 곳곳에 자라나는 꼬리와 머리.

가시들을 꼬리로 변이시킨 용주는 다시 한번 꼬리를 흩뿌렸다.

“크윽!”

“표정 좋은데, 그럼 들려 달라고, 고통스러운 비명을! 살려 달라는 눈빛을!!”

쥬다스의 몸 곳곳에 박힌 꼬리들에서 일제히 포자가 피어올랐다.

붉게 물든 꽃망울들.

산발적으로 시작된 포자 폭발은 일대를 붉게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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