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8화
“망각? 아니야….”
머리 위로 떨어지는 뇌격.
무차별 좌표로 떨어지던 벼락은 피뢰침에 이끌리듯 쥬다스를 강타했다.
“다른 차원으로 무대를 옮긴 건가.”
발밑에 보이는 성난 바다는 보랏빛을 띠고 있었다.
파도가 칠 때마다 이는 스파크는 저 바다가 평범한 물이 아님을 말해 주고 있었다.
“전에도 그런 인간을 하나 본 적 있었지.”
날개를 펼친 쥬다스는 역으로 용주를 덮쳤다.
맞부딪치는 두 사람에게로 떨어지는 날 선 번개.
번개를 흠뻑 뒤집어쓴 용주에겐 고리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왼손을 움켜쥐는 용주와 용주의 입을 틀어막는 쥬다스.
강렬한 전자기장을 일으킨 용주의 모습은 강렬한 번개가 되어 찢어졌다.
‘레이징 브레이크.’
쥬다스의 뒤를 잡고 나타난 용주의 모습.
왼손으로 하늘을 짚은 용주는 그대로 녀석을 내리찍었다.
순간 번쩍이는 섬광.
번개가 더해진 일격에 가격당한 쥬다스는 고도를 잃고 추락했다.
“훗! 재밌군.”
바다의 표면을 훑고 비상하는 쥬다스.
그가 지난 자리의 바다는 바닥이 보일 만큼 깊게 갈라졌다.
“이번에도 세상을 죽음으로 덮어 주지.”
옅은 미소를 머금은 쥬다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의 곁에 나타난 네 개의 언노운의 머리.
언노운 형태의 쥬다스와 상당히 유사한 머리들은 일제히 세 방향으로 입을 찢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느껴라.”
일직선으로 뻗어 나가는 날카로운 죽음.
온갖 것들이 끈적하게 녹아 있는 브레스는 아슬아슬하게 용주를 스쳐 갔다.
‘더 온다.’
이것 역시도 기사의 기억에서 봤던 공격.
고도를 낮춘 용주는 빠른 속도로 하늘을 갈랐다.
그런 용주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브레스.
갑작스럽게 90도로 방향을 튼 용주는 죽음과 죽음 사이를 질주했다.
죽음이 떨어진 바다는 포탄이 떨어진 듯 솟구쳤다.
선명한 보랏빛을 띠던 바다는 죽음에 빠르게 오염되고 있었다.
“하핫! 꽁무니 빼는 모습이 아주 잘 어울리는구나. 하지만 과연 그런 식으로 언제까지 도망갈 수 있을까.”
한 번 더 손가락을 튕기는 쥬다스.
네 개의 머리가 더 추가된 공격은 폭격이나 다름없었다.
용주의 눈앞으로 떨어지는 죽음의 물결.
앞을 향하던 벡터를 역방향으로 돌린 용주는 불가능한 속도로 물러섰다.
그 순간, 용주를 포위하는 일곱 개의 머리.
사방에서 덮쳐 오는 브레스를 마주한 용주는 차원을 살짝 뒤틀었다.
목표물을 코앞에 두고 사라지는 브레스.
다른 차원으로 휩쓸려 들어간 브레스는 사라진 반대편 출구를 타고 나타났다.
순식간에 사라진 여섯 개의 머리.
속도를 높인 용주는 남은 일곱 번째 머리에 페이탈 블러드를 꽂아 넣었다.
산산이 부서지는 머리.
그와 동시에 바다를 향해 뻗어 나간 한 줄기의 혈사포는 마찬가지로 차원의 틈 속으로 사라졌다.
용주의 머리 위로 모여드는 브레스.
용주를 내려다보던 마지막 머리의 장전이 끝난 그때.
멀쩡하던 미간에 순간 구멍이 생겼다.
바스러지며 사라지는 마지막 머리.
녀석의 머리를 꿰뚫은 혈사포는 이번에야말로 바다에 떨어졌다.
“꽤 신기하게 움직이는구나.”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쥬다스.
가시 망토처럼 흩날리는 네크로 클록을 뜯어낸 쥬다스는 용주를 바닷속으로 처박았다.
산산조각 부서진 룬검의 파편은 작은 물결을 일으킬 뿐이었다.
푸왕~!
용주의 추락과 함께 솟구치는 자기장.
아래를 내려보는 쥬다스의 역안에 헤엄치는 그림자가 보였다.
“인간의 껍데기를 벗었나.”
쥬다스의 발밑에 나타난 석조문.
피융~!
문을 열려던 그 순간, 물살을 가르며 솟아오른 푸른 자기장은 쥬다스를 강타했다.
‘뭐지?’
불의의 일격에 직격당한 쥬다스는 뒤를 돌아보았다.
방금 그 공격.
용주가 아니었다.
번개와 자기장이 요동치는 바다에 뭔가가 더 있었다.
용주보다 훨씬 크고 거대한 무언가가.
피융~! 콰과강!!
포문을 연 자기장.
연속해서 날아드는 포격은 전함이 생각날 정도로 정교했고, 강력했다.
공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전혀 다른 장소에서 날아드는 에스카톤 저지먼트.
흑염을 두른 파동은 자기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화력을 뿜어냈다.
“분명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솟아오르는 푸른 기둥.
번개의 바다와 그 속에 사는 거대한 존재.
분명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장면이었다.
“그래. 그때인가.”
활짝 열린 석조문.
뒤틀린 비명과 함께 문 안에선 튀어나온 거대한 팔이 바다를 강타했다.
운석이 떨어진 듯 동그랗게 파인 자기장.
그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12개의 껍질을 가진 달팽이었다.
충전을 마친 첫 번째 껍질은 다시금 자기장을 쏘아 올렸다.
“유쾌한 장난인걸.”
다시 한번 내려치는 악마의 손.
일격에 으깨진 달팽이는 형태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투콰앙~!
그와 동시에 요동치는 물결.
바람보다 빠르게 다가온 무언가는 쥬다스와 강렬하게 부딪쳤다.
“올리비아….”
찢겨 나가는 살과 가죽.
순식간에 뒤집힌 위와 아래는 세상을 뒤집어 놓았다.
하늘이 된 바다와 바다가 된 하늘.
바다에서 솟구쳤던 괴물은 다시금 바닷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이건 좀 놀랐는걸. 인간.”
다시 한번 솟구치는 물결.
서로의 반신을 날려 버린 폭식 분쇄에 하늘과 바다가 또 한 번 뒤집혔다.
쉴 틈 없이 이어지는 폭식 분쇄.
부서져 내린 갑피 파편이 바다에 떨어지기가 무섭게 또 다른 파편이 하늘로 떨어졌다.
“재미있군.”
교차하며 지나가는 두 사람.
부딪쳐 부서진 쥬다스의 살점 속에서 새하얀 꼬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칵…!”
용주의 몸을 휘어 감는 강렬한 힘.
폭식 분쇄에 제동을 건 쥬다스는 용주를 찍어 눌렀다.
번개의 바다를 뚫고 들어오는 쥬다스.
쥬다스의 강하와 동시에 메마른 바닥이 또 한 번 드러났다.
“카각!”
“힘을 대가로 말을 잃어버린 건가. 가련하구나. 죽음 앞에 한마디 고할 수조차 없다니.”
엉망으로 부서지는 바닥.
용주를 더욱더 깊이 처박은 쥬다스가 고개를 저었다.
“로지를 쓰러뜨렸다고 해서 날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넘쳐 버린 성배처럼.
흘러내리는 죽음의 물결.
용주의 몸을 잠식한 죽음은 칠흑의 구가 되었다.
“카일론도 너도, 너희 세계도 죽음 아래 스러질 거다.”
마지막을 준비하는 쥬다스.
오른손을 치켜든 쥬다스는 순간 뒤를 흘겨보았다.
눈동자에 비치는 건 하늘 뒤에 숨어 있던 최악의 오니였다.
“실베스….”
구겨지는 쥬다스의 미간.
까드득!
그와 동시에 용주를 가둔 죽음의 구가 깨져 나갔다.
“아포칼립스를….”
쥬다스를 끌어당기는 강렬한 힘.
회전을 시작한 용주는 한 마리의 우로보로스를 연상케 했다.
작렬하는 용주의 ‘디스트로이어’.
힘에 이끌린 흑염은 한 점을 향해 빨려들었다.
마치 벼락처럼.
“큭!”
맞부딪치며 부서지는 두 사람의 몸.
불과 몇 초 만에 갈려 나간 쥬다스의 왼팔은 약 80% 정도가 소실되어 있었다.
자신의 입안에 오른손을 가져가는 쥬다스.
목구멍 안쪽으로 손을 넣은 쥬다스는 붙잡은 무언가를 단번에 뽑아냈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건 붉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검.
카일론의 기억 속에서 봤던 그 검이었다.
주르륵….
순간, 용주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피눈물.
날카롭게 휘두른 일격에 잘려 나간 차원은 끝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가 되어 있었다.
나락 끝에 떨어진 곳은 쥬다스의 왕좌.
처음 제자리로 돌아온 용주는 네발로 땅을 짚었다.
꼬리가 예리하게 절단되어 있었다.
단 일격.
녀석은 단 일격에 디스트로이어를 파훼해 버렸다.
‘그대로 계속 회전했었다면….’
혜안이 보여 준 경고는 분명했었다.
조금만 반응이 늦었다면, 저기 구르고 있는 건 머리였을 거다.
‘차원을 몇 개를 잘라 낸 거냐.’
번개가 파도치던 공간.
그 바깥쪽엔 다른 차원을 몇 개나 준비해 뒀었다.
그런데 그 노력이 전부 수포로 돌아가 버렸다.
“가학적인 걸 꽤 좋아하는 것 같던데. 어때? 마음에 들었나?”
빠르게 수복되는 쥬다스의 왼팔.
인간의 것이 아닌 형태로 복구된 팔은 단번에 용주를 내리쳤다.
지금 녀석의 손은 망각 속에서 봤던 검은 용의 형태.
압도적인 크기와 날카로움이 할퀸 자리엔 선명한 상처가 남아 있었다.
“칵!”
점멸로 팔을 관통한 용주는 녀석의 팔을 밟고 미끄러졌다.
각도가 기울어져 있지 않았고.
딱히 매끈하거나 미끄럽지도 않았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용주를 밀고 있는 건 벡터.
힘의 방향 그 자체였으니까.
키이익…!
잘려 나간 꼬리를 빠르게 복구한 용주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단단하게 문 꼬리를 달구는 마찰열.
유려하게 흘러간 공격은 강풍을 일으키며 회전했다.
챙!!
맞부딪치는 꼬리와 검.
두 힘의 충돌에 지면이 날카롭게 찢겨 나갔다.
“아까보단 좀 더 쓸 만한 물건이구나.”
각도나 구도가 좋지 않은 것도 지금 이 대치에 한몫했지만, 꼬리의 강도 역시 전과는 달랐다.
조금 더 선명해진 붉은 아지랑이.
왼팔을 살짝 들어 올린 쥬다스는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비스듬하게 잘려 나가는 칼날 꼬리.
검을 고쳐 잡은 쥬다스는 보란 듯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킥!”
그런 쥬다스에게 돌아온 용주의 비웃음.
부패하고 찢어진 입꼬리는 분명 웃고 있었다.
“!”
그와 동시에 찢겨 나가는 쥬다스의 몸.
복부와 가슴.
팔다리를 뚫고 나온 날카로운 깃털은 흑염으로 불타고 있었다.
머리를 지나간 마지막 일격은.
그의 오른쪽 이마를 그대로 앗아갔다.
‘설마 아까 그 꼬리는. 일부러….’
움켜쥔 검을 마저 휘두르는 카일론.
용주는 갑각을 닫은 조개처럼 두꺼운 갑각으로 자신을 두르고 있었다.
베이지 않고 하늘로 날아가는 용주.
왼팔을 휘두른 쥬다스는 잘려 나간 용주의 꼬리를 짓이겼다.
방금 그 공격.
저 꼬리에서 시작된 게 분명했다.
‘인간의 싸움법은 이렇게 과격하고 원시적이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인간의 형태로 돌아오는 왼손.
상처에서 흘러내린 죽음의 물결은 깃털들을 송두리째 집어삼켰다.
뻥 뚫렸던 머리는 꿀렁거리며 원래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날개를 빼앗았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지?”
고개를 든 쥬다스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거꾸로 뒤집힌 왕좌가 지키는 하늘에 붉은 혜성이 꼬리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머리를 날렸는데도 요원한가.’
붉은 피를 추진력 삼아 하늘을 날고 있는 용주가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머리가 날아가는 건 자신에게도 치명적인 사항이었다.
99.99% 죽음과 곧장 직결될 게 분명했다.
하지만 녀석은 그렇지 않았다.
‘아니, 꼭 요원한 것만은 아니야.’
겉으로 보이는 녀석은 불사 그 자체였다.
어떤 방법으로도 죽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방금 녀석이 머리를 수복할 때 녀석의 근원과 마나가 대량으로 소모된 걸 느낄 수 있었다.
녀석의 재생은 결코 무한하지 않았다.
‘큰 한방이면 전세를 뒤집을 수 있어.’
에스카톤 저지먼트.
디스트로이어.
폭식 분쇄.
지금까지 사용했던 스킬들을 뛰어넘는 한 방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한 방은 역시.
그것밖에 없었다.
‘생각해. 그때의 기억을, 그 감각을.’
바람 한 점 없던 하늘에 불기 시작한 바람.
용주의 갑피를 스치는 바람은 옅은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찬양하라. 나의 힘을.”
왼손을 펼치는 쥬다스.
또 한 번 형태를 변화한 팔은 갈기갈기 찢긴 날개의 형태가 되어 있었다.
“경배해라. 죽음을.”
용주를 향해 휘두른 왼손.
그가 그린 경로대로 생겨난 물방울은 연쇄적으로 폭발했다.
폭발 사이를 유려하게 통과한 용주.
쥬다스의 검격에 뒤집혀 있던 또 하나의 왕좌가 반으로 잘려 나갔다.
연이어 쏟아지는 검격과 피눈물이 흐르는 혜안.
미래를 한발 앞서 확인한 용주는 참격과 동시에 반응했다.
모든 걸 다 알고 있단 듯한 용주의 움직임.
폭발적으로 강하한 용주는 쥬다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콰지직!!
그런 용주를 막아서는 석조문.
용주의 팔과 다리는 문 중앙에 자리엔 눈동자에 박혀 있었다.
‘비켜.’
밀지도 밀리지도 않는 완전한 평행선.
문틈 사이를 비집고 나온 팔과 머리들은 용주의 몸을 붙들고 물어뜯었다.
‘비키지 않겠다면, 부숴 주마.’
용주의 몸을 찍어 누르는 엄청난 양의 벡터.
뼈가 으스러질 정도의 힘과 중력을 온몸으로 버텨 낸 용주는 평행선의 균형을 깨부쉈다.
찢겨 나가는 눈동자.
쓰나미처럼 범람한 유리액은 문 전체를 뒤흔들었고, 근간이 무너진 문은 더 이상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붕괴했다.
“카각!”
잃어버린 것 이상으로 수복한 힘과 속도.
그 어떤 붕괴보다도 빠르게 하강한 용주는.
일대의 모든 것을 날려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