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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347화 (347/357)

347화

* * *

“망각의 세계….”

오래전 어디선가 보았던 세계의 풍경.

두 개의 붉은 강이 마주치는 이곳을 쥬다스는 알고 있었다.

“쯧…!”

코끝을 스치는 익숙한 악취.

인상을 구긴 쥬다스가 이마를 짚었다.

“되도 않는 장난을. 망각이야 악몽보다 못하다고 했거늘….”

“쥬다스!”

“쥬다스….”

그와 동시에 요동치는 강물.

강물에서 솟아오른 두 언노운은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만큼 거대했다.

매끈하고 긴 몸체를 가진 수룡형 언노운.

날카로운 날개와 뿔을 가진 고룡형 언노운.

각각 하얀색과 검은색으로 상징되는 두 언노운은 마찬가지로 쥬다스가 알고 있는 녀석들이었다.

“잘도… 잘도 우릴 배신했겠다.”

“왜 그런 거냐. 왜!”

뱀처럼 긴 꼬리를 휘두르는 두 언노운.

손짓 한 번으로 두 공격을 튕겨 낸 쥬다스는 가볍게 날아올랐다.

“길러 주고 키워 주고 보호해 줬더니! 이게 그 보답이냐!”

“말까지 하니 더 시끄러워졌군.”

원망 섞인 두 사람의 말에 쥬다스가 콧방귀를 뀌었다.

“여기서까지 부모 놀이를 하고 싶은 거냐? 하긴 내 기억으로 만들어진 찌꺼기들이니 그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겠지.”

폭발적으로 강하한 쥬다스가 강물로 뛰어들었다.

충격과 함께 솟구치는 하얀 뱀.

날개를 펼친 쥬다스는 하늘로 떠오른 언노운을 날카롭게 할퀴었다.

“보아하니 너흴 죽이면 깨지는 것 같은데.”

전광석화처럼 몰아치는 쥬다스의 공격.

손톱에 찢긴 상처 부위에선 피가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적잖이 우습게 보였나 보군.”

피 대신 흘러내리고 있는 건 망자들의 물결.

상처 부위는 이미 세포 하나하나까지 전부 죽어 있었다.

“쥬다스!!!”

분노에 찬 외침과 함께 날아오르는 검은 용.

붉은빛이 도는 뿔로 쥬다스를 들이받은 용은 검푸른 화염을 쏟아 냈다.

“정말이지. 하찮군.”

화염을 일직선으로 관통한 쥬다스는 검은 용의 미간 사이에 손을 올렸다.

오직 힘만으로 검은 용을 압도하는 쥬다스.

산을 두 개나 관통한 쥬다스는 검은 용을 그대로 땅속에 처박았다.

“지금의 내가 너희 따위에 고전할 리가 없지.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차원이 다른 존재니까.”

“자만심은 어디 못 버렸나 보지. 멍청한 녀석.”

거대한 폭발과 함께 몸을 일으킨 검은 용의 철산고.

쥬다스의 힘에 가로막힌 용은 날개 끝에 달린 손으로 지면을 할퀴었다.

할퀸 흔적에 피어오른 선명한 불꽃.

날개만으로 공격을 저지해 낸 쥬다스는 날개만으로 그의 중심을 무너뜨렸다.

후두둑…!

두 개의 뿔을 타고 흘러내리는 독기.

눈이 검게 변한 용은 짙은 독기를 토해 냈다.

독기에 잠식된 대지는 빠르게 병들어 갔고, 흘러넘친 독기는 더욱 넓게 퍼져 나갔다.

“광견화 바이러스. 질병과 바이러스를 상징했던 네 무기였지. 분명.”

일순간 찢겨 나가는 독기.

검은 용의 아래턱에 손을 올린 쥬다스는 녀석의 입을 강제로 다물렸다.

갈 곳을 잃어버린 독기는 이빨 사이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찮은 목숨. 과분한 죽음을 선사해 주지.”

쥬다스의 손안으로 모여드는 죽음의 힘.

완성된 구체가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려던 그때.

쥬다스의 머리 위로 붉은 폭포가 쏟아졌다.

강산성을 띠는 죽음의 액체.

쏟아지던 폭포를 단번에 날려 버린 쥬다스는 다른 곳을 흘겨보았다.

자기 꼬리를 물고 회전하고 있는 하얀 뱀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그리고.

찢어진 폭포는.

물방울이 되어 주변을 잔류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단다. 쥬다스. 이리로 오렴.”

“먹기 좋게 키워 놓고 삼킨다. 밖에 두면 삼키기 힘들지만, 안에 두면 언제든 기습할 수 있지. 아주 좋은 방식이야.”

“뭐라고?”

“너희가 그런 식으로 나를 보고 있단 것쯤은 진작 알고 있었어. 그래서 나도 때를 기다리고 있었지. 내 힘이 너희를 뛰어넘는 그때를.”

방울들이 일으킨 연쇄 폭발.

수소 폭발의 위력은 땅이 흔들릴 정도로 크고 선명했다.

“물론 내 힘을 숨기는 데에도 게을리하지 않았지. 위험이 된다고 판단되면 지체 없이 내 목이 날아갔을 테니까.”

“아니야. 나는….”

폭발을 뚫고 나온 쥬다스는 뱀의 머리를 쳤다.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질서. 죽음 앞에서 그건 애들 장난일 뿐이지.”

날아가는 뱀의 머리.

땅에 떨어진 머리를 짓밟은 쥬다스는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 피와 살이 된 너희 따위에 흥미 없다. 내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사라져라.”

납작하게 으깨지는 머리.

피 대신 흘러내린 죽음은 그녀의 눈과 입을 유린했다.

“쥬다스!!”

분노에 찬 검은 용의 돌진.

충격에 몇 미터를 날아간 쥬다스는 다가오는 용의 뿔을 붙잡았다.

“과분한 죽음을 약속했지. 너한텐.”

너무도 손쉽게 부러지는 뿔.

뿔이 부러지는 순간 일어난 검푸른 불꽃은 거대한 호수를 만들어 냈다.

잔열에 흘러넘치는 호수.

일그러진 공기는 들이마시는 것만으로 치명적이었다.

“그 약속 친히 들어주마.”

“크아앙!!!”

용의 미간 사이를 뚫고 들어간 뿔.

고통스러운 그의 비명에서 한 걸음 물러난 쥬다스는 오른손을 뻗었다.

순식간에 검은 용을 휘감는 죽음의 힘.

떠오른 그의 모습은 구 안으로 사라졌다.

“네가 맛보지 못한 죽음이다. 감사하도록.”

단번에 손을 움켜쥐는 쥬다스.

산산이 조각난 구체 안엔 더 이상 살아 있는 무언가가 들어 있지 않았다.

지상으로 쏟아지는 건 죽음.

형태가 남아 있던 그의 신체 조각은 지면에 닿기도 전에 죽음에 삼켜졌다.

그때.

“쥬다스!!”

또 다른 이의 날카로운 외침이 쥬다스를 강타했다.

지면을 뚫고 솟구치는 불의 지네.

지네의 몸통을 잡아 찢은 쥬다스는 여덟 머리를 가진 뱀과 마주해야 했다.

“…….”

아까와는 다르게 상당히 경직된 쥬다스의 얼굴.

그의 눈앞에 있는 건.

실베스였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변화한 풍경은.

실베스를 잃었던 바로 그곳으로 변해 있었다.

“슬슬 이 장난이 불쾌해지는구나.”

야마타노오로치의 머리를 쳐내는 쥬다스.

흑염을 다루는 실베스는 두 팔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이족 보행형 언노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꼬리와 팔, 머리를 비롯한 신체 곳곳엔 꺼지지 않는 불길이 타올랐고, 그가 지나간 곳엔 얼마간 불길이 잔류했다.

돌출된 이마엔 점균이 가득 묻어 있었는데, 점균과 불길이 닿으면 예외 없이 폭발이 일어났다.

크기로만 보면 앞선 두 녀석보단 작긴 했지만, 크다고 다 강한 건 아니었다.

“왜 날 죽게 내버려 둔 거냐?”

“명실상부 네가 마지막 열쇠겠지.”

하늘을 가득 채우는 검은 불꽃.

실베스의 말을 애써 무시한 쥬다스는 다가오는 재앙과 마주했다.

쥬다스의 손을 떠나는 죽음의 소용돌이.

주변의 모든 것을 삼켜 버린 폭풍은 오타케마루까지 한 점 남김없이 삼켜 버렸다.

“죽어라.”

실베스를 덮치는 불의 소용돌이.

실베스를 삼킨 소용돌이는 이내 다른 곳으로 흡수되었다.

소리 없이 키득거리고 있는 불의 족제비.

양손을 날카로운 칼날로 무장한 카마이타치는 수비를 넘어 공격에 나섰다.

“왜 날 찾지 않았지?! 나는 널 끝까지 기다리고 있었건만!”

맞부딪치는 두 사람의 힘.

근원과 불완전한 근원.

두 힘의 차이는 확연했다.

칼날을 휘두른 카마이타치는 실베스의 손짓 한 방에 산산이 조각나 버렸다.

양손에 점균을 바르는 실베스.

머리를 땅에 박은 실베스는 맹렬하게 돌진했다.

두 다리를 땅에 내린 쥬다스는 공격에 반응하지 않았다.

맞부딪치는 두 사람.

둘의 충돌에 날아간 쪽은….

실베스였다.

땅을 구르는 실베스의 한쪽 팔은 뜯겨 나가고 없었다.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쉰 쥬다스는 실베스의 팔을 내던졌다.

“크아아앙!!”

강렬한 포효와 함께 땅을 때리는 실베스.

둘 사이에 남은 점액의 길은 땅을 칠 때마다 강렬한 폭발을 일으켰다.

타다닥!

폭발을 뚫고 달리는 쥬다스.

가볍게 도약한 쥬다스는 실베스의 그림자를 지났다.

털썩!

그와 동시에 쓰러지는 실베스.

반듯하게 잘려 나간 그의 머리는 쥬다스의 손 위에 올라가 있었다.

* * *

“겨우 인간 나부랭이인 주제에. 성가신 일도 벌여 주는군.”

스쳐 지나가는 붉은 달의 풍경.

다시금 돌아온 왕좌에서 일어난 쥬다스는 짜증스럽게 용주를 노려보았다.

실베스의 머리는.

이제 거기 없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선물이 꽤 마음에 든 모양이지.”

“겨우 그걸로 날 흔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말했잖아. 그건 말 대신이었다고.”

그걸로 끝을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무섭다.

마주하고 싶지 않다.

그게 곧 패배를 의미한단 건 아니었다.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거다.

그런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으니까.

그 더러움이 절대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면.

지금 이 한 수는 어떤 신체적 타격보다 효과적인 공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녀석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효과가 있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실베스의 잔재를 처리한 건, 카일론이 아니라 너였던 거냐?”

“노코멘트하지.”

“그래. 그럼….”

날카롭게 휘젓는 쥬다스의 손길.

“죽어라.”

그의 손을 따라 일어나는 죽음의 물결은 용주가 있던 자리를 휩쓸었다.

알고 있단 듯 기민하게 반응한 용주는 그의 다음 손짓 역시도 가볍게 흘려보냈다.

죽음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엔 망자들의 길이 남아 있었는데, 늪 밖으로 솟아오른 팔과 다리들이 기괴하게 엉켜 있었다.

‘녀석의 기억에서 봤던 대로야.’

눈앞을 지나는 죽음의 파도.

물결을 피해 물러난 용주는 벽 쪽으로 바짝 붙었다.

꾸드득! 뿌득!

용주를 붙잡는 수많은 팔들.

벽에서 튀어나온 고통스러운 얼굴들은 용주를 잠식하고, 그 안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나오고 싶냐? 그럼 써먹어 주지.”

끌어당기는 것들을 역으로 끌어당긴 용주.

강제로 바깥으로 끌려 나온 것들은 용주의 망토가 되었다.

수많은 팔과 다리가 뒤엉킨 네크로 클록.

폭발적으로 솟아오른 용주의 모습이 인스네어 사이로 사라졌다.

휘익!

물결을 피해 날카롭게 강하하는 그림자.

용주의 손톱을 가볍게 피해 낸 쥬다스는 그의 명치에 왼손을 꽂아 넣었다.

용주를 관통하는 죽음의 힘.

가운데에서부터 터져 버린 용주는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잔영이라. 우스운 잔재주군.”

왼쪽으로 살짝 몸을 튼 쥬다스는 손톱을 휘둘렀다.

맞부딪치는 두 사람의 손톱.

용주의 손톱을 가볍게 부러뜨린 쥬다스는 용주를 세로로 찢어 놓았다.

찢기기 직전 풍선처럼 부푼 용주의 몸은.

종양 그 자체가 되어 있었다.

후두둑!

범람하는 피와 고름.

기분 나쁜 액체들을 뒤집어쓴 쥬다스는 노골적인 불쾌함을 드러냈다.

피에선 기분 나쁜 독이 느껴졌고,

고름에선 신경을 자극하는 더러움이 느껴졌다.

키이잉~!!

각기 다른 여덟 방향에 뿌리내린 광폭화 상태의 용주는 페이탈 붐을 끌어모았다.

쉬익~! 콰앙!!

일대를 잠식하는 거대한 폭발.

여섯 개의 꼬리를 펼친 용주들은 에스카톤 저지먼트로 공격을 이어 갔다.

“우스운 잔재주라고. 말했을 텐데.”

가볍게 손을 움켜쥐는 쥬다스.

여덟 용주를 사로잡은 구체는 일제히 찢겨 나갔다.

살아남은 잔영은 제로.

엉망으로 부서진 잔영들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일제히 뛰어오르는 잔영들.

죽음에 삼켜진 잔영들은 역으로 용주를 덮쳤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인스네어를 파고드는 잔영들.

점멸을 사용해 밖으로 물러난 용주는 흑염을 흩뿌렸다.

쾅! 콰강!

불길에 닿아 폭발하는 초록 가스.

모든 잔영을 날려 버린 용주는 급히 가드를 올렸다.

파악!

그런 용주를 강타하는 강렬한 충격.

뒤를 잡고 들어온 쥬다스의 일격을 사후 강직과 부분 광폭화로 대응한 용주였지만, 날아가는 충격 자체를 0으로 만들 순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만들지 않았다.

휘릭!

날아가는 순간 쥬다스를 휘감는 용주의 꼬리.

힘을 역이용한 용주는 그대로 쥬다스를 집어 던졌다.

쨍그랑!

순간, 깨져 나가는 차원.

다른 차원으로 날아간 두 사람을 반기는 것은 끊임없이 쏟아지는 뇌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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