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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344화 (344/357)

344화

“…….”

전혀 다른 방향에서 동시에 날아든 부패의 힘.

왼손을 움켜쥔 기사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카르고스.”

포악한 괴수의 머리가 뜯겨 나가고 없었다.

남아 있는 건 아래턱을 비롯한 그 아랫부분.

아이러니하게도 괴수가 날려 버렸던 두개골과 지금 괴수의 모습은 거의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카르고스….”

기사를 감싸던 실드가 사라져 갔다.

카르고스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를 잠식하고 있던 죽음의 향기는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그때.

“카각!”

틈을 놓치지 않은 용주의 일격이 기사의 안면을 찍어눌렀다.

콰앙!

굉음과 함께 직격한 아토믹 버스터.

별똥별처럼 추락한 기사는 골격의 이빨을 세 개나 부러뜨리며 멈춰 섰다.

‘제대로 들어갔어.’

허공을 차며 폭발적으로 강하한 용주는 기사를 따라붙었다.

“꾸워어어!!! 죽인다! 전부 죽인다!”

거침없이 이어지는 두 사람의 공방.

아래에서 퍼 올린 대검을 빗겨 보낸 용주의 입가로 붉은 입자들이 모여들었다.

면전에서 쏘아 올린 페이탈 붐.

구체와 함께 날아가던 기사는 페이탈 붐을 두 개로 잘라 냈다.

휘익!

그와 동시에 그의 등 뒤에서 날아든 날카로운 일격.

점멸에서 이어진 대회전 베기를 막아 낸 기사였지만, 거기서 한 발 더 파생된 블랙패더까지 막아 내기엔 역부족이었다.

흩뿌려진 깃털과 함께 내리꽂힌 기사.

떨어지면서 복부에 박힌 깃털을 뽑아 낸 기사는 착지와 동시에 뛰쳐나갔다.

노리는 건 용주가 아닌 수지.

수지의 은장도는 완전히 으스러져 가루가 되어 있었다.

‘칫!’

벡터를 등에 업은 용주는 폭발적으로 강하했다.

사방으로 빗발치는 날카로운 가시들.

그럴 거란 걸 예상한 듯 반발 물러난 기사는 스치듯이 용주를 베며 지나갔다.

찢긴 기사의 갑옷은 불과 몇 초 만에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죽음만이 구원이고! 죽음만이 생명이다!”

용주보다 앞서간 한 번의 판단.

골키퍼를 제친 기사는 곧장 골대로 질주했다.

“…….”

눈앞에서 번뜩이는 붉은 안광.

맨손으로 칼날을 짚은 수지는 몸을 수직으로 세웠다.

조금만 늦었어도.

조금만 빨랐어도.

목숨이 날아갈 일촉즉발의 순간이었지만, 수지는 당황하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재워 줄게.”

한 바퀴를 회전한 수지는 왼손을 기사의 안면에 올렸다.

일렁거리는 빛.

“우워어어~!!”

이글거리는 안광으로 그녀를 노려보던 기사는 검의 검수 부분으로 수지를 후려갈겼다.

“……!”

제대로 된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수지.

먼지 대신 흩날리는 뼛가루 속에서 멈춰선 수지는 옆구리를 짚었다.

옆구리는 갈비 두 대만큼 찢겨 나가고 없었다.

“칵…!”

수지 앞을 가로막은 용주는 날카롭게 바닥을 긁어냈다.

수지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이 이상 그녀를 여기 둘 순 없었다.

당장 다른 차원으로….

“있잖아. 나 한 가지 해보고 싶은 게 있어.”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용주에게 수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식간에 피어오르는 흑염.

날뛰기 시작한 야마타노오로치와 오오무카데는 기사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까 그랬지? 저 사람이 자신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고.”

뒤를 돌아본 용주를 향해 수지가 이야기했다.

상처를 짚은 수지의 손에선 은은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럼 찾게 도와주면 되는 거 아닐까?”

“…….”

“제정신만 차리면 우릴 도와줄 거 아니야. 이 이상 싸울 필요도 없고.”

수지의 주장에 용주는 그녀를 노려보았다.

황당하다고.

대답할 가치가 없다고 느낄 수도 있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쓰러뜨리는 것 말곤 답이 없는 게 당연하니까.

하지만 수지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분명 조금 전에 뭔가 느낀 게 있는 거겠지.

“방금 저 사람. 망설이는 것 같았어. 아니, 망설이고 싶어 하는 것 같았어.”

찢기고 회복하기를 반복하는 뱀과 지네.

시간이 얼마 없음을 직감한 수지의 말이 좀 더 빨라졌다.

기사의 얼굴에 손을 올렸을 때.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의 안광이 흔들리는 걸 봤다.

그의 눈동자는 따뜻함에 이끌리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걸 허락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의 정신을 잠식하고, 그의 몸을 움직이는 것 같았다.

하나처럼 보이지만.

그 안엔 뭔가 다른 것들이 뒤섞여 있는 것 같았다.

“의료 헌터니까. 할 수 있을 거야. 해볼 수 있게 해줘.”

“…….”

잠시 생각에 잠겼던 용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지만, 성공만 한다면 이쪽의 힘도 최대한 보존할 수 있었다.

꽤 쓸 만한 아군이 생길 수도 있는 부분이었고.

빠지직!

손목 갑피를 인위적으로 변이시킨 용주는 갑피를 부러뜨렸다.

가루가 되어 버린 수지의 은장도와 같은 크기의 갑피.

미끄러진 갑피를 집어 든 수지는 검을 고쳐 잡았다.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겠지.’

마음 같아선 자신의 검을 그녀에게 건네주고 싶었다.

수지의 무기는 이미 가루가 됐기에, 스스로를 지킬 무기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수지는 이 검을 들 수 없었다.

그렇기에 생각해 낸 임시방편이 바로 이 방법이었다.

혈기 구축으로 만들어 낸 임시였기에 당연히 능력 같은 건 없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

‘쓸 상황 자체가 나오지 않게 하는 게 베스트고.’

잔불이 되어 사라지는 뱀과 지네.

지면을 깨부수며 폭발적으로 뛰쳐나간 용주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죽음은 그 날개로 모든 것을 삼키지.”

살을 주고 뼈를 깎는 기사의 일격.

팔등을 내어 준 기사는 용주의 복부에 대검을 욱여넣었다.

명치부터 옆구리까지 길게 이어진 상처.

치명상이라 볼 수 있는 대미지를 입고 내던져진 용주는 허공을 박찼다.

형태를 바꾼 용주의 다리는 바늘처럼 예리하게 변해 있었다.

“!”

순식간에 맞부딪치는 두 사람.

반파되어 흩날리는 두 사람의 파편은 쓰레기처럼 나뒹굴었다.

“칵…!”

엄청난 속도로 재생하는 갑피와 갑주.

쉴 틈 없이 몰아치는 폭식 분쇄는 무식할 정도로 과격하게 대미지를 주고받았다.

속도는 용주가 한 수 위.

저항을 무시한 용주의 속도는 기사조차도 따라오지 못했다.

“시련, 미련, 비련 모두 죽음의 찌꺼기일 뿐.”

다시 한번 흩날리는 검은 벚꽃.

칼날 폭풍으로 자신을 무장한 기사는 다가오는 충격에 맞섰다.

콰지직!!

또 한 번 흩뿌려지는 파편들.

왼발을 축 삼아 방향을 돌린 용주는 그 속도 그대로 기사를 관통했다.

날아간 상처에 절상이 더해졌지만, 용주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한 번 부딪칠 때마다 하나씩 깨지는 검.

여섯 개의 칼날이 부러지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잠깐 나랑 바람 좀 쐬줘야겠다.’

관통하는 순간 기사를 낚아챈 용주는 다른 차원으로 기사를 내던졌다.

하늘에서 땅으로.

그리고 땅에서 하늘로 이어지는 수많은 차원들.

스쳐 지나가는 얼음과 마그마.

맹독 가스와 강산성이 지배하는 완전히 다른 세계들.

겹겹이 쌓인 기왓장을 격파하듯 수많은 차원을 깨부순 두 사람은 더욱더 깊은 나락으로 추락했다.

‘판은 깔아 줬다.’

짙고 짙은 어둠 속에 보이는 한 줄기 빛.

동그란 빛무리 속 엉망으로 부서진 괴수의 두개골이 내려다보였다.

기사의 양팔과 다리를 붙잡은 용주는 그대로 차원 너머로 떨어졌다.

쾅!!

거대한 굉음과 함께 크게 기우는 두개골.

쓰러질 것처럼 요동치던 두개골은 카르고스의 부서진 유해에 기대며 멈춰 섰다.

“도와줄게.”

마치 이러기로 합을 맞춰 둔 듯 나타난 수지가 기사의 투구에 손을 얹었다.

“꾸오오오~!!”

거칠게 발버둥 치는 기사.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그의 외침은 점점 더 고통에 물들어갔다.

“도와줄 테니까. 너도 힘내.”

눈을 감은 수지는 모든 정신과 마나를 여기 집중했다.

주변을 밝게 물들일 정도로 선명하게 빛나는 힘.

태영에겐 큰 도움을 주지 못했었지만, 지금 이 사람에겐 줄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우오오~!!”

계속되는 기사의 괴성.

쏟아붓는 수지의 마나가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우으으어….”

고통스럽게 울부짖던 기사의 소리가 조금 누그러들었다.

편안함을 찾는 듯 줄어든 저항.

기사를 누르고 있던 용주는 그 차이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괜찮아. 여길 봐. 내 목소리에만 집중하는 거야.”

수지를 향하는 기사의 안광.

잔불만이 남은 그의 안광에선 안도감과 편안함이 느껴졌다.

그 순간.

“꾸오오오!!!”

잠잠해졌던 기사의 안광이 다시금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키이잉~!!

수지를 강타하는 한 줄기 섬광.

안광만으로 붉은 섬광을 쏘아 올린 기사는 괴력을 발휘하며 바닥을 깨부쉈다.

“칵!”

바닥에 뻥 뚫린 구멍으로 사라진 기사.

추격을 포기한 용주는 재빨리 수지에게 다가갔다.

설마 안광을 레이저처럼 쏠 줄이야.

완전히 놓치고 있던 수였다.

자신이 치명적으로 위험한 게 아니었기에 혜안도 작동하지 않았다.

“괜찮아.”

수지의 손에서 갑피 조각이 떨어졌다.

일격을 막아 낸 갑피는 더 이상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분명 효과가 있었는데….’

진척이 있었고, 반응이 있었다.

그런데 그게 갑작스럽게 원상태로 돌아가 버렸다.

그에게 작용한 힘은 자신보다 한 수 위에 있는 힘.

순간이었지만, 그걸 느낄 수 있었다.

“피어나는 죽음에 흩날리는 죽음. 모든 시작과 끝은 그분에게서 비롯될지니.”

골격을 깨부수며 치솟은 기사가 두 사람을 덮쳤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찢어진 두 사람.

거칠게 날뛰며 뒤엉키는 두 사람의 모습에 수지는 왼손을 움켜쥐었다.

‘S급 의료 헌터였다면….’

힘이 부족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그치만 분명 효과가 있었어.’

조금만 더 했다면,

조금 더 직접적으로 힘이 닿을 수 있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직접적으로?’

순간 머릿속을 스친 한마디 문장.

뭔가가 떠오른 수지는 한 가지 물건을 꺼냈다.

‘구할 수 있다는 건 빼앗을 수 있다는 거라고 했지.’

수지의 손에 들려 있는 건 엔비의 메스.

마지막에 챙겨 놨던 그녀의 유품이었다.

‘그럼 빼앗을 수 있다는 건….’

엔비의 메스에 깃드는 수지의 마나.

옅은 형광빛으로 빛나는 메스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할 수 있다고.

자기가 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잠깐 쓸게. 엔비…. 아니, 강아린.”

결의에 찬 눈동자를 깜빡인 수지가 속도를 높였다.

용주가 쏘아 올린 불길은 유성우가 되어 쏟아지고 있었고, 기사가 휘두른 검기가 하늘을 갈라놓고 있었다.

“죽음은….”

‘쫑알쫑알 진짜 시끄럽네. 이 앵무새 같은 놈이.’

불규칙하게 휘는 칼날 촉수.

날아오는 촉수를 모두 베어낸 기사는 남겨둔 마지막 한 개를 잡아당겼다.

공중에서 회전하며 날아오는 용주.

꼬리를 날카롭게 세운 용주는 칼날 바퀴 그 자체였다.

가까워지는 거리.

어깨부터 가슴 중앙까지를 내어 준 기사는 용주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그분의 뜻.”

대검에 모여드는 죽음의 기운.

비장의 일격을 날린 기사는 미간을 좁혔다.

날려 버렸다고 생각했던 머리는 투구게 같은 형태로 변해 있었다.

쉬익~! 쾅!!

흩날리는 뼛가루.

용주를 90도로 내리꽂은 기사는 좌우로 용주를 내치고 또 내쳤다.

일방적으로 몰아치는 기사의 공격.

날카롭게 치고 들어온 꼬리를 흘려보낸 기사는 안광만으로 용주의 꼬리를 절단해 냈다.

그때.

“!”

지면에서 솟아오른 여덟 개의 촉수가 기사의 몸을 휘감았다.

당하기만 하는 것처럼 보이던 용주가 준비해 둔 반격의 봉화.

머리를 감싸던 갑피를 산탄총처럼 사출한 용주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

그런 용주의 눈동자에 보이는 한 가지.

빛나는 메스를 손에 쥔 수지는 기사의 뒤를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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