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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343화 (343/357)

343화

“죽음만이 구원이고! 죽음만이 생명이다!”

거칠게 찢겨 나가는 대지.

“죽음이 이 땅을 휩쓸고, 죽음이 모든 것을 삼킬 것이다.”

‘아까 했던 말을 또….’

대검에 꼬리를 부딪친 용주는 자연스럽게 대검을 휘감았다.

교전이 계속되면 계속될수록 한 가지 확실해지는 사실이 있었다.

이 녀석이 구사하는 언어의 종류는 지극히 한정적이었다.

비유하자면,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앵무새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해할 수 있고, 알아들을 수 있지만, 단어나 언어의 다양성 측면에선 한없이 부족했다.

“쿠오오오!!!”

갈가리 찢긴 칼날 촉수.

힘으로 용주를 패대기친 기사는 왼손을 앞으로 내질렀다.

그의 신호를 따라 날아드는 광역 브레스.

페이탈 붐을 연속으로 쏟아 낸 용주는 브레스 자체를 통째로 상쇄시켰다.

‘부패를 맨손으로.’

“저 사람 엄청 고통스러워 보여.”

기사를 살피던 수지가 이야기했다.

“마치 자기 생명을 갉아 먹으면서 싸우고 있는 것 같아.”

자신과 용주의 공격 자체에서 큰 타격을 입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기사의 움직임 하나하나에선 상당한 고통이 느껴졌다.

더 강한 힘을 끌어낼수록.

더 빠른 스피드를 끌어낼수록.

기사가 내지르는 기합이.

흔들리는 붉은 안광이.

더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죽음은 그 날개로 모든 것을 삼키지.”

하늘에 떠오른 붉은 태양.

순식간에 검게 물든 태양은 지상을 향해 무차별 포격을 가해 왔다.

‘칫…!’

주변의 중력을 인위적으로 조작한 용주는 두개골을 강제로 뜯어냈다.

하늘 위로 승천하는 무수한 뼈의 파편.

태양을 완전히 뒤덮은 뼈의 파편은 일점으로 수축했다.

쾅!

그 순간 일어난 폭발.

쏟아지는 수많은 파편들 위론 더 이상 태양이 떠 있지 않았다.

‘카르고스를 먼저 날려 버려야 하는데, 녀석이 날 집중적으로 마크하고 있어. 내 공격이 절대 녀석에게 닿지 못하게 하려고 할 거야.’

골키퍼가 있다고 해서 골이 들어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골키퍼가 있으면 골을 넣기 까다로워지는 건 사실이었다.

‘몸이 두 개가 아닌 이상….’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용주의 머릿속에 한 가지 스킬이 떠올랐다.

몸이 두 개가 아닌 이상 골키퍼를 제치기가 쉽지 않을 거다.

그럼 몸이 두 개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그래. 네 힘을 좀 써야겠다.’

피어오르는 빛망울.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빛은 순식간에 용주의 모습이 되었다.

두 방향으로 흩어지는 두 명의 용주.

수지를 등에 업은 또 한 명의 용주는 그들과는 독립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피어나는 죽음에 흩날리는 죽음.”

좌우에서 동시에 좁혀 오는 두 명의 용주.

갑작스럽게 휘날리기 시작한 검은 벚꽃잎이 두 사람의 시야를 잠식해갔다.

“모든 시작과 끝은 그분에게 비롯될지니.”

정중앙에 떨어진 기사가 머리 위로 대검을 들어 올렸다.

대검의 회전과 함께 몰아치는 칼날 폭풍.

지면에서 솟아오른 여섯 개의 검은 맹렬한 기세로 그의 곁을 맴돌고 있었다.

“칵!”

“카각!”

여섯 개의 꼬리를 펼치던 두 용주는 무서운 기세로 폭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윽고 일어나는 붉은색과 초록색의 폭발.

각각 플레이그와 인스네어를 사용한 두 용주는 칼날 폭풍을 정면으로 관통했다.

휘릭!

사방으로 튀는 갑피 속에 교차하는 세 사람.

갑피 사이를 비집고 나온 살아 있는 바다는 기사를 훑고 지나갔다.

하지만.

자연스레 이어지던 소울 터치를 사용할 순 없었다.

빨판에 끌려 나온 건 아무것도 없었다.

“칵!”

1초의 오차도 없이 뒤돌아선 두 용주는 손톱을 휘둘렀다.

풍참에 찢겨 나가는 대지.

왼편을 지나는 용주의 어깨를 잘라 낸 기사는 미끄러지며 쓰러진 용주의 가슴을 꿰뚫었다.

“죽음만이 구원이고, 죽음만이 생명이다.”

무언가를 움켜쥔 기사는 왼손을 끄집어냈다.

그와 함께 뜯겨 나오는 빨간 심장.

움켜쥐는 힘에 터진 심장은 옅은 빛이 되어 흩어졌다.

“칵!”

혼자가 된 용주의 분신은 맹렬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기사를 관통하는 폭식 분쇄.

반신이 부딪치면 반신이 날아가는 파멸적인 기술이었지만, 그 파멸에 부딪힌 건 용주뿐이었다.

기사는 여전히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쾅! 과강!

내리치는 카르고스의 손.

꼬리를 입에 문 용주는 강렬한 마찰을 일으켰다.

대회전 베기에 잘려 나간 세 개의 손가락.

꿈틀거리는 손가락들을 짓이긴 용주는 계속해서 속도를 높였다.

“갔다 와. 내 몸 정돈 지킬 수 있어.”

머리가 아닌 뒤편을 향하던 용주에게서 수지가 뛰어내렸다.

용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셋으로 갈라지긴 했지만, 진짜 용주가 누군진 바로 알 수 있었다.

모습도, 느낌도, 움직임도 차이가 없었지만, 그냥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신을 태운 게 본체라고.

카르고스를 노린 두 개의 자신은 일종의 연막.

용주가 후방으로 빠진 것은 단순히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으로밖에 볼 수 없었다.

팔이 여기 있다는 건 결국 이 두개골의 아래쪽을 통해 머리가 이어져 있다는 소리.

용주는 분명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거길 이용하면.

기사의 방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거라고.

“칵!”

반쯤 잘려 나간 카르고스의 손가락에 올라탄 용주는 하늘을 향해 꼬리를 휘저었다.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블랙 패더.

일렁이는 차원 속으로 빨려 들어간 깃털들은 그와 마주 보고 있는 포탈을 타고 지상으로 흩뿌려졌다.

카르고스의 손과 손가락을 관통하는 날카로운 깃털들.

십지가에 박힌 대못처럼 카르고스의 손을 고정시킨 용주는 녀석의 팔을 따라 달렸다.

모든 풍경이 거꾸로 뒤집혀 있어도, 용주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중력이야 벡터로 붙잡아 두면 그만이니까.

‘백도어까지 막을 수 있을까?’

용주의 그림자가 훨씬 더 짙어졌다.

섀도 일루전을 사용한 용주.

한 번의 저항도 없이 팔등을 타고 오른 용주는 녀석의 어깨 위로 치솟았다.

똬리를 틀며 잔뜩 웅크리는 용주.

흩날리는 포자 구역은 카르고스의 상반신 전체를 휘어 감았다.

‘디파일러!’

용주의 전신을 타고 피어오른 역병 포자.

포자 지대를 떠다니는 부패의 기운은 이 스킬의 위력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때.

갑작스럽게 불어온 돌풍과 함께 기사가 용주의 눈앞에 나타났다.

폭식 분쇄를 사용하며 거칠게 날뛰던 잔영은 사라지고 없었다.

‘꽤 빠르게 정리하긴 했는데…. 그래도 한발 늦었어.’

피어나는 역병 포자.

짙게 서린 부패와 함께 일어난 포자 폭발은 일대의 모든 것을 날려 버렸다.

분명.

그러했다.

그런데.

“죽음은 그분의 뜻.”

움켜쥐는 기사의 손을 따라 일어났던 현상의 일부가 원상태로 돌아갔다.

포자 폭발이 집어삼킨 건 용주와 기사의 대치선까지.

치명타라 여길 수 있는 머리에는 부패가 도달하지 못해 있었다.

“그분이 바라는 죽음은 너의 죽음이니.”

손안에 움켜쥔 힘에 바들바들 떨리는 기사의 왼손.

용주를 향해 대검을 휘두른 기사는 왼손을 펼쳤다.

그가 노린 곳은.

용주가 아니었다.

“칵!”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용주.

하지만 반응했을 때는 이미 한발 늦은 뒤였다.

짙은 부패가 서린 역병 폭발.

응축된 그 힘은 지금 수지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죽음을 피할 순 없다.”

용주의 앞을 막아선 기사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기사와 괴수가 뿜어내는 죽음의 기운은 주변을 완전히 잠식했고, 그 영향인지 이안의 힘도 이준의 힘도 원하는 대로 작동해 주지 않았다.

‘피해! 피하라고!’

거침없이 몰아치는 기사의 맹공.

그렇게 일방적으로 공격을 허용할 용주가 아니었건만, 이번만은 상황이 그렇지 않았다.

불과 몇 초 만에 온몸이 난자당한 용주.

별다른 저항도 노림수도 없이 공격을 허용한 용주는 이를 악물었다.

눈앞에 있는 것에 온전히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받아칠 생각 말고! 피하라고, 멍청아!’

은장도를 고쳐잡은 수지가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믿어 달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으니까.

“할 수 있어.”

호흡을 가다듬은 수지는 마나를 폭발시켰다.

푸른 오로라가 피어오르는 수지의 마나는 은장도로 집중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믿어 줘.”

저 기사는 오로지 용주만을 신경 쓰고 있었다.

가장 위협이 되는 적은 용주라고.

자신은 그저 발목 잡는 겉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공격을 이쪽으로 튕겨 낸 것 역시 용주를 몰아세우기 위함.

지금까지의 결과만 보면 그 수는 상당히 효과적이었다고 볼 수 있었다.

“이건 기회야. 지금이라면 나도 네 힘을 쓸 수 있어.”

자신이 가진 은장도.

이 검이 가진 능력은 기본적으로 피해를 축적하고, 축적한 힘을 발산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흡수와 방출은 별개의 사건이고, 독을 흡수했다고, 독을 발산하는 구조는 아니었다.

하지만 한 가지, 저 힘을 최대한 온전하게 되돌려줄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그건 바로 흡수와 방출을 별개의 사건이 아닌 하나의 사건으로 두는 것.

한 번 흡수했다 방출하는 게 아니라.

칼날에 닿는 즉시 방출할 수 있다면, 원형에 최대한 가까운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다만, 그렇게 하면 검에 가해지는 피해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저만한 정도의 힘이라면.

전 마나를 다 쏟아부어도 어찌 될지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발목을 잡을 순 없어.’

만약 저걸 되돌려 줄 수 있다면, 상황은 지금과 180도 달라진다.

잔영을 처리했던 것과는 레벨 자체가 달랐다.

이건 용주가 준비했던 비장의 한 발이었고.

자신이 장전한 총알에 용주 역시도 호응을 해줄 테니까.

후욱~!!

콰지직!!

강렬한 힘의 파장과 함께 뜯겨 나가는 대지.

턱 아래가 보일 정도로 깊게 뜯겨 나간 상처는 저 공격의 위력을 말해 주고 있었다.

1초가 다르게 힘이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머리는 피하라고 말하고 있었고, 심장은 도망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할 수 있어.’

스스로를 그렇게 타이른 수지는 다른 한 손으로 손목을 감쌌다.

‘할 수 있어.’

코앞까지 다가온 디파일러.

응축된 힘의 집합체를 막아선 수지의 몸이 크게 뒤로 밀려났다.

손가락이 잘려 나가는 것 같았다.

손목이 으스러지고 어깨가 통째로 뽑혀 나갈 것 같았다.

아무리 다리에 힘을 주고, 땅을 디뎌봐도 밀려나는 힘에 저항할 수가 없었다.

은장도는 당장이라도 부러질 것 같았고, 당장이라도 저 힘에 삼켜질 것만 같았다.

눈앞에 있는 힘은 너무도 컸고,

자신은 너무도 작게 보였다.

“아니야.”

앞꿈치에 힘을 준 수지는 더욱 힘껏 저항했다.

하지만 그런 저항이 무색하게 은장도엔 선명한 금이 생기고 있었다.

버틸 수 없다.

이대로면 검이 부러지고 저걸 정통으로 맞는다.

그런 공포심이 수지의 등골을 타고 올랐다.

“아니야.”

한 번 더 읊조리는 작은 목소리.

더욱 커진 균열에 칼날 전체가 조각조각 나고 있었다.

그때.

“!”

끊임없이 밀려나던 수지의 몸이 서서히 멈춰 섰다.

투둑!

바로 뒤에 있는 건 거대한 유골의 이빨.

이 하나만 지나면 깎아내리는 절벽만이 기다리고 있는 장소였다.

‘이건….’

자신의 힘으론 도저히 막을 수 없는 해일처럼만 느껴졌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눈앞을 지나는 회색의 입자가 보였다.

자신이 그게 거기 있다고 인지했을 땐 이미 그 입자가 자기를 감싸고 있었다.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나타났는지.

그런 건 알지 못했다.

다만, 이것만은 알 수 있었다.

이 힘은 지금 자신을 돕고 있었다.

그리고 이 힘과 함께라면, 눈앞에 있는 거대한 해일을 되돌려 보낼 수 있었다.

“갈게.”

정확히 반만 검게 물드는 칼날.

두 마리의 뱀 조각 역시도 한 마리만 검게 물들었다.

‘부패의 기운이….’

수지가 쏘아 올린 힘의 파동.

힘껏 뛰어오른 용주는 다시 한번 꼬리를 펼쳤다.

모여드는 에스카톤 저지먼트.

수지를 받쳐 주고 있는 건 틀림없이 근원의 힘이었다.

그게 아까 카일론이 감아 놓았던 힘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녀석을 날려 버릴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두 잔영을 날려 버린 것과 지금 이건 레벨 자체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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