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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342화 (342/357)

342화

“받아들여. 겁먹을 필요 없어.”

서서히 목을 죄어 오는 손길.

“피한다고 피할 수 없어. 더 고통스러울 뿐이야.”

텅 빈 눈동자에서 흘러내린 피눈물이 수지의 뺨으로 떨어졌다.

그때.

“!”

누군가의 거친 손길이 수지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모든 풍경.

수지의 눈동자에 비치고 있는 건 용주뿐이었다.

“죽음의 기운이 깊게 서려 있어. 역시 이 이상은 무리야.”

깊은 한숨을 내쉰 용주가 고개를 저었다.

수지의 눈동자가 순간 죽어 있는 게 보였었다.

불러도 반응도 없고.

수지를 감싼 죽음의 기운은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깊었다.

“아니. 괜찮아. 버틸 수 있어.”

“괜한 고집 부리지 마. 안 괜찮잖아.”

“…….”

“뭘 본 거야?”

“응…. 내가 죽는 모습.”

“죽는 모습?”

“응. 꼬챙이에 꽂혀서 죽어 가고 있었어. 이미 죽은 것 같은 내가 나한테 포기하라고 속삭였고.”

‘역시 억지로라도 돌려보내는 게 맞는 건가.’

자신은 근원을 가지고 있는 존재였다.

‘절대적 존재’의 효과 덕에 다른 근원의 힘에 쉽게 삼켜지지 않는다.

하지만 수지는 아니었다.

다른 녀석들과 조금 달라졌다고 해서, 자신이나 카일론처럼 될 수는 없었다.

‘그래. 그게 맞아. 이 이상은 고집부린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야. 녀석한텐 미안하지만….’

결심을 세운 용주는 수지를 돌려보내려 했다.

그 순간.

콰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천장이 뜯겨 나갔다.

‘저건 또 뭐야.’

본능적으로 수지를 감싼 용주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거대한 두개골의 위턱이 깔끔하게 찢겨 나가 있었다.

그리고.

붉게 물든 하늘 아래로 거대한 괴물의 모습이 보였다.

상반신만이 간신히 보이는 거구의 괴물.

수십 개의 붉은 눈과 태양처럼 이글거리는 입.

유독 발달해 튀어나온 아래턱엔 불규칙한 크기와 모양을 가진 이빨들이 제멋대로 자라 있었다.

전신을 덮은 가죽은 오래된 퇴적층처럼 어둡고 두꺼웠고, 가죽엔 상당히 치명적으로 보이는 상처들이 아물지 않은 채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외형과 크기.

그것만으로 미루어보면, 지금 자신들이 서 있는 뼈의 주인과 상당히 비슷하게 보였다.

“언노운?”

“아니…. 아니야.”

빠르게 움직인 용주는 미끄러지듯 멈춰 섰다.

그와 동시에 피부를 스치는 강렬한 충격.

등 뒤에서 떨어진 무언가는 지면을 강하게 강타하고 있었다.

“손가락?”

두개골을 때려 부순 건 아무리 봐도 그렇게 보였다.

엄청 길고 두꺼워서 사람의 손가락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그게 저 괴물의 것이라고 한다면 크게 이상할 것도 없어 보였다.

“머리가 저기 있는데 손가락이 저 뒤에 있다는 건….”

“녀석이 여길 완전히 감싸고 있단 소리지. 어디든 다 사정권 안이란 소리고.”

물러간 손가락들이 이곳을 감싸고 있는 게 보였다.

녀석이 마음만 먹으면.

지금 올라타 있는 이 두개골 자체를 깨부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거다.

“…언노운이 아니랬지?”

“그래.”

“확신하는 말투.”

“그야 녀석한테는 언노운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으니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뛰어오른 두 사람.

발밑을 지나는 거친 화염은 녀석의 입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그럼 저건?”

“다른 세계의 괴물이겠지.”

“머리만 남은 게 아니라 온전한 것도 있는 거네. 그럼.”

“그런 셈이지.”

왜? 라는 물음이 들었다.

왜 녀석이 굳이 이 녀석을 살려 둔 걸까.

왜 하필 이 녀석을 여기 배치해 둔 걸까.

지금까질 봐선 딱히 로지를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던데.

혹시 녀석이 오는 걸 막기 위한 문지기인 건가?

‘망각의 발목을 잡기 위한 히든카드라고?’

로지의 힘이라면 쥬다스 본인도 잘 알고 있을 거다.

어지간한 언노운들로는 발목잡기는 고사하고 손짓 한 번조차 이끌어 내지 못할 거다.

그렇기에 여기 녀석을 배치해 뒀다고 하면 어느 정도 말이 됐다.

고대의 재앙처럼.

와인 기사처럼.

S급 헌터들처럼.

다른 세계엔 어지간한 언노운보다 강한 힘을 가진 존재들도 있었으니까.

그 녀석들의 힘이라면 어느 정도 발악을 해줄 테니까.

‘이 녀석 정말 녀석을 아군으로 보고 있긴 한 건가?’

정말로 그런 거라면, 쥬다스는 로지를 만나는 걸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카일론과 쥬다스의 일기토.

처음부터 뭔가 이상했던 그 구도에 어쩌면 뭔가 다른 꿍꿍이들이 더 있었을지도.

“죽여야 하는 거야?”

“전신이 온전하게 붙어 있다 해도 살아 있단 보장은 없다. 녀석의 상처를 봐.”

“응….”

“걱정하지 마. 숨통은 내가 끊어 놓을 거니까.”

내리깔리는 한기 속에서 비상하는 본 드래곤.

내리치는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간 본 드래곤은 괴수의 머리 위로 솟구쳤다.

입안 가득 한기를 끌어모은 보좌관.

떨어지는 한 방울의 빛망울은 이윽고 일대를 푸른 빛으로 물들여 놓았다.

“…….”

하얗게 내려앉은 서리를 밟은 수지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거대한 괴수의 머리가 전부 얼어붙어 있었다.

단 일격에 결판을 냈다고 생각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순간이었다.

그런데.

“움직였어.”

얼음 안에 갇힌 녀석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얼음 무덤은.

녀석이 묻힐 곳이 아니었다.

‘아직이야.’

폭발적으로 속도를 높인 용주는 괴수의 머리를 향해 도약했다.

그때.

팡!!

괴수를 가둔 얼음이 깨지며 무언가가 솟구쳐 올랐다.

“!”

보좌관의 핵을 꿰뚫는 정체불명의 기습.

무음의 비명을 내지른 보좌관의 모습은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저건….’

빠르게 거리를 좁혀 오는 정체불명의 생명체.

회색의 전신 갑주로 모습을 가린 녀석은 거대한 대검을 들고 있었다.

선명한 붉은빛을 띠는 오른눈의 안광.

갈기갈기 찢어져 있는 망토.

녀석의 베이스는 분명 인간과 똑같은 구조였다.

‘이마 정중앙에 있던 상처. 분명 거기서 나온 것 같은데.’

괴수의 전신엔 엄청난 상처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녀석이 튀어나온 건 그중 하나.

당연히 쥬다스가 녀석을 찢어 놓으며 생긴 상처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전부였던 것만은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꾸워어어어!!”

작렬하는 사자후.

천지를 뒤흔드는 소리 속에 충돌한 두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떨어졌다.

‘이 녀석 힘이….’

첫 충격에 저릿 하는 통증이 느껴졌다.

대검에 실린 힘은 녀석의 몸집으로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묵직했다.

‘그렇다고 쉽게 밀려 줄 순 없지!’

힘의 방향을 인위적으로 조절한 용주는 역으로 기사를 밀어붙였다.

갑작스러운 힘의 역전에 당황한 듯한 그의 움직임.

기회를 놓치지 않은 용주는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그런데.

“!”

목을 노리며 들어갔던 룬검이 부자연스럽게 멈춰 섰다.

칼날 끝에서 일렁이는 푸른 물결.

조금 전 일격을 막아선 건 분명 저거였다.

“죽인다! 전부 죽인다!”

다시 한번 부딪치는 두 사람의 칼날.

똑같은 거리를 물러난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았다.

“저 사람이 쥬다스?”

아무리 봐도 사람처럼 보였다.

그리고 여기서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자라면 역시 그자뿐이지 않겠는가.

게다가 말까지 하고 있고.

“아니…. 아니야.”

“그럼?”

“녀석이 남겨둔 장기 말.”

“장기 말?”

“그래. 녀석이 삼킨 세계 중에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있던 자일 거다. 어쩌면 녀석을 고전시켰던 자일 지도 모르지.”

날카롭게 휘두른 대검을 따라 터져 나가는 대지.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붉은 검기에 맞서 용주 역시 검을 휘둘렀다.

파앙!

맞부딪친 두 힘은 강렬한 바람을 일으키며 상쇄되었다.

“그럼 쥬다스란 사람과는 적이라는 거 아니야? 왜 그런 사람이….”

수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청난 바람이 두 사람을 덮쳤다.

천천히 끌려가는 수지의 몸.

이 힘과 바람의 정체는 다름 아닌 괴수의 흡입 공기였다.

“셋 중 하나겠지.”

수지를 붙잡은 용주는 부패의 기운을 흩뿌렸다.

바람을 타고 흘러간 부패는 자연스레 괴수의 목구멍을 넘어갔고, 불길을 토해 내려던 괴수는 고통스러운 듯 발버둥 쳤다.

“녀석에게 붙었거나. 저항을 포기했거나.”

사방에서 내리꽂히는 손가락들.

그중 하나를 흑염으로 불사른 용주는 그 틈으로 빠져나왔다.

“자신을 잃어버렸든가.”

“죽음만이 구원이고! 죽음만이 생명이다!”

왼손을 뻗는 기사.

그의 손에서 사출된 네 개의 투사체는 두 사람을 향해 날아들었다.

각각 검은색과 붉은색을 띤 구체.

페이탈 블러드로 응수한 용주는 검을 치켜들었다.

팡! 파바방!

미끄러지듯 치고 들어온 기사의 4연참.

용주가 받아치는 사이 옆구리를 치고 들어간 수지는 은장도를 휘둘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까 용주와 같았다.

“그치만 저 사람,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까지 하는데?”

미끄러지듯 거리를 벌린 수지가 물었다.

“그건….”

확실히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퀘스트 게이트의 언어라면 수지가 알아듣지 못하는 게 정상이었고.

언노운 중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건 그 세 녀석뿐이었으니까.

“혹시…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인 건 아닐까? 망각에 모두가 잊어버린….”

“아마… 그건 아닐 거다.”

카일론이 보여 준 기억 속에서도 그런 사람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었다.

아버지의 말에서도 그런 기미는 느낄 수 없었고.

결정적으로 녀석에겐 헌터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카르고스!”

기사의 외침에 괴수가 반응했다.

거대한 진동을 일으키며 머리를 들어 올리는 카르고스.

무식하게 치고 들어온 머리는 두 사람이 있던 자리를 휩쓸었다.

“꽉 잡아라.”

수지를 등에 업은 용주는 폭발적으로 강하했다.

카르고스의 머리를 찍어 누르는 용주.

작렬하는 아웃레이지 스내치는 카르고스의 머리에 정통으로 직격했다.

하지만.

그만한 충격이었음에도 녀석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이 정도 대미지론 안 된다는 건가.’

공격이 적중하는 순간 녀석에게서 강한 죽음의 기운이 느껴졌다.

아마도 그게 대미지를 크게 경감시켜 준 것 같았다.

녀석이 근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녀석의 안쪽에서 아주 짙은 죽음의 향기가 났다.

죽음에 절여져 있다.

용주가 느낀 걸 한마디로 정리하기에 이 문장보다 정확한 건 아마 없을 거다.

“죽음이 이 땅을 휩쓸고, 죽음이 모든 것을 삼킬 것이다.”

용주의 뒤를 잡은 붉은 안광.

날카롭게 휘저은 대검에 수지가 은장도를 겨눴다.

순식간에 검게 물드는 은장도.

부딪치기도 전에 일어난 폭발은 기사를 날려 버렸다.

“너….”

“전에 모아 뒀던 거야. 그 꿈속에서.”

방금 쓴 일격은 폭식의 여왕의 공격을 축적해 둔 거였다.

그 위력이 얼마나 강렬한지, 공격을 되돌려 준 수지조차 어깨가 저릿할 정도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큰 효과는 없는 것 같네.”

종유석.

아니, 이빨의 화석에 처박힌 기사가 일어서고 있는 게 보였다.

기사는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은 듯 멀쩡했다.

“양쪽 다 꿈쩍도 안 해.”

“…….”

기사를 보던 용주가 괴수를 돌아보았다.

수지의 일격이 작렬했을 때.

기사와 괴수 사이에 일종의 공명 같은 게 느껴졌었다.

‘둘 중 하나를 날려 버릴 수 있다면….’

공명을 끊을 수만 있다면 상황이 지금과는 크게 달라질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만약 둘 중 하나를 날려 버린다고 하면….

‘역시 저 녀석이겠지.’

바닥을 타고 흐르는 짙은 서리.

기사의 발목을 잠시 붙잡아 둔 용주는 광폭화 상태로 돌입했다.

에스카톤 저지먼트가 노리는 건 카르고스.

기사와 달리 녀석은 대미지 자체는 들어갔었다.

죽음이 녀석을 감싸고 지키고 있다면, 이쪽에선 그를 뚫을 수 있는 창을 준비해야 했다.

근원의 기운을 삼킬 수 있는 건 같은 근원의 힘.

에스카톤 저지먼트에 스며드는 부패의 기운이 바로 용주가 준비한 창이었다.

“카각!”

엄청난 힘을 발산하며 사출되는 파동.

바람을 찢은 파동은 순식간에 카르고스의 머리를 노렸다.

거친 불길을 내뱉은 카르고스는 에스카톤 저지먼트에 저항해 보려 했다.

하지만.

힘의 차이는 너무도 압도적이었다.

힘없이 밀린 불길은 이제 이빨 사이를 흐를 뿐이었다.

“죽음은 그 날개로 모든 것을 삼키지.”

그때.

카르고스의 면전에 나타난 기사가 왼손을 뻗었다.

푸른 장벽에 상쇄되는 에스카톤 저지먼트.

기사의 붉은 안광은 높은 곳에서 용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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