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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341화 (341/357)

341화

* * *

희미한 연등빛과 은은한 종소리가 가득한 공간.

빠르게 스쳐 가는 기류 속 공기의 온도가 큰 폭으로 변화했다.

희미해져 가는 빛.

짙게 내려앉은 어둠은 이곳이 조금 전 있던 곳과는 전혀 다른 곳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

차원 밖으로 빠져나온 용주는 주변을 살폈다.

로지의 침실과 같은 그런 느낌의 공간은 아니었다.

소름 끼치는 비명이 흘러가는 이곳은 훨씬 더 딱딱하고, 오싹한 공간이었다.

처음 떠오른 이미지를 표현하자면….

지옥 같다고나 할까.

“로지라는 사람은 자기가 제일 안전하고, 편안하다고 생각하는 공간에 포탈을 두지 않았어? 여긴 아무리 봐도 그런 공간은 아닌 것 같은데.”

좌우를 두리번거린 수지가 이야기했다.

“다른 한쪽은 그럴 마음이 없었나 보지.”

낡고 뒤틀린 회색의 벽엔 정체 모를 끈적한 액체가 남아 있었고, 오랫동안 방치된 아치형의 구조물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포탈을 둘러싼 거대한 호수엔 고통스러운 듯 발버둥 치는 손들이 흘러갔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손의 형태는 아니었다.

저건 각기 다른 언노운들의 손.

죽음의 호수 밖으로 내밀었던 손은 금세 형태를 잃어버리고 물속으로 사라졌다.

호수엔 그게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고통스러워 보여.”

“너무 가까이 가진 마라.”

호수를 내려다보던 수지가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아무리 자세히 들여다봐도 호수 안쪽은 전혀 볼 수 없었다.

다만, 저 손들이 자신들에게 특별한 적대감을 보이는 것 같진 않았다.

특별히 위협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저건 그냥 말 그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쪽에 뭐가 있고, 뭘 하든지 관심조차 줄 여력이 없는 것처럼.

“응. 근데 여길 건너가려면 어쨌든 가야 하는 거 아니야?”

호수 건너편에 석조로 된 문 하나가 보였다.

문엔 날카로운 손톱자국이 수도 없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흡사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가스실을 연상케 했다.

걸음을 옮긴 용주는 문과 포탈이 정확히 일직선이 되도록 섰다.

그러자.

쿠구궁…!

작은 떨림과 함께 호수 아래에서 뼛조각들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그렇게 생겨난 뼈의 다리.

허술하고 질서 없어 보이는 다리였지만, 그 강도는 결코 약하지 않았다.

“어떻게 알았어?”

뼛조각을 밟은 수지가 물었다.

“안 건 아니야. 그냥 느낌에 따라본 거지.”

“느낌?”

“그래. 여기만 물의 흐름이 달랐으니까. 뭐라도 일어날 거라고 생각한 거지.”

“물의 흐름이 달랐다고?”

미처 캐치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이 넓은 호수와 그 물결 속에서 ‘다름’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가까이서 보니까 훨씬 더 크네.”

석조문 앞에 선 수지가 위를 올려다보았다.

멀리서 봤을 때도 충분히 크다고는 생각했는데, 앞에서 보니까 그 위용이 더 어마어마했다.

문에 난 상처들 중에는 사람보다도 거대한 것도 있었다.

“지옥문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 것 같아.”

손을 뻗은 수지가 자연스럽게 문을 짚었다.

그 순간.

“끼아아악!!!”

머릿속을 관통하는 거대한 비명이 수지를 강타했다.

지옥 밑바닥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소리는 괴이하고, 기괴하게 뒤틀려 있었다.

“!”

놀란 수지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소리가 귀신같이 사라졌다.

수지는 자신의 손을 살폈다.

문과 닿았던 손가락 끝에 상처가 나 있었다.

상처 주위의 세포는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죽어 가고 있었다.

“봐봐.”

수지의 손목을 잡은 용주가 잡아끌었다.

“응. 괜찮아. 금방 치료할 수 있어.”

빈말로 하는 이야기 같진 않았다.

상처는 정말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으니까.

“하아…. 내가 열 테니까 물러서 있어.”

“응. 그치만.”

“알고 있어. 괜찮아. 문제없어.”

문 앞에 선 용주가 힘을 집중했다.

그 순간, 용주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바람.

몸을 감싼 바람은 검게 물들어 갔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수백의 언노운들이 나타났다.

“시끄러우니까. 그만들 좀 닥쳐.”

용주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심연에서 울리는 비명은 그 위세가 크게 줄어들었지만, 그렇다고 물러가지는 않았다.

‘로지가 이 길을 갔다고 한다면….’

여긴 로지의 침실과 연결된 다이렉트 통로였다.

녀석은 분명 여길 지나다녔다.

그럼.

‘녀석처럼 하는 게 맞겠지.’

떠오르는 빛망울.

빛에 밀려난 어둠이 뒤쪽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바람과 함께 회전하는 언노운들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난폭해진 것 같았다.

‘그럼.’

날카롭게 자라난 손톱에 휘감기는 빛망울.

바람을 찢은 날카로운 일격은 선명한 상처를 새겨 놓았다.

그런데.

이번에도 길은 열리지 않았다.

새롭게 나타난 언노운들의 머리는 빈자리를 빠르게 채워 갔다.

‘힘으로 전부 밀어 버려야 하는 건가. 어지간히 만나 주기 싫었던 모양이지.’

용주의 손안으로 모여드는 영혼의 안개.

활짝 펼쳐진 날개는 ‘무의 승천’을 알리고 있었다.

“비켜.”

산산이 조각나는 구체…

폭발과 함께 찢겨 나간 바람은 땅거미 지며 바닥에 눌어붙었다.

‘이제 저 문만 열면 되는 건가.’

방해꾼들을 대충 다 정리한 용주는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질척한 무언가가 발목을 붙잡는 게 느껴졌다.

갈기갈기 찢겨 고깃덩어리가 된 살점들이 거기서 꿀렁거리고 있었다.

“나한테 뭔가 더 원하는 게 있는 거냐?”

왜인진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꼴이 되고도 죽지도 못하고 있는 녀석들이 자신에게 지금 뭔가를 바라고 있다고.

“사라지고 싶은 거냐? 죽음 그다음으로.”

대답을 들을 순 없었다.

하지만 녀석들의 저항이 확실히 작아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그럼 소원대로 사라지게 해주지.”

오른손을 움켜쥔 용주가 손을 휘저었다.

흩뿌려진 짙은 부패의 기운.

주변을 뒤덮은 회색의 재에 언노운들의 모습이 사라져 갔다.

부패에 잠식된 녀석들은 괴롭다기보단 오히려 편안해 보였다.

“괜찮아?”

잦아든 바람.

다시 원래의 풍경으로 돌아온 용주에게 수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무슨 일 있었어?”

“별일 아니었어. 그냥 썩지 못한 녀석들을 좀 만난 것뿐이야.”

“응. 그렇구나.”

정말 별일 아니란 듯 고개를 끄덕인 수지는 앞을 바라보았다.

두꺼웠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 * *

“전혀 다른 여러 차원이 뒤섞여 있는 거 같아.”

반쯤 녹아내린 계단을 오르던 수지가 이야기했다.

실내는 왕성의 이미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지만, 곳곳에 지옥이 연상되는 풍경들이 뒤섞여 있었다.

망자들이 흘러가는 강이라든가.

용암이 흘러내리는 벽.

끊임없이 돌아가는 맷돌이라든가.

날카로운 가시가 비처럼 쏟아지는 방.

그런 것들이 별다른 경계도 없이 무분별하게 널려 있었다.

“그게 죽음이 지나간 자리란 거겠지.”

카일론은 다른 세계의 파편들을 결정의 형태로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이것도 그것과 비슷한 가지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일부라도 온전한 형태로 가지고 있던 카일론과 달리, 이 세계들은 더 이상 세계라고 부를 수 없다는 거겠지.

그렇게 완전히 죽음에 삼켜져서 동화되어 버린 거고.

“손님보고 정말 이런 길을 지나라고 하는 걸까?”

반쯤 녹아 있는 철문을 지난 수지가 물었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건 불길의 강.

그 건너편엔 지금 통과한 것과 대칭을 이루는 문이 하나 보였다.

반대편에 보이는 게 전혀 다른 성채인지, 같은 공간의 내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저기로 가야 하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손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걸지도 모르지.”

불길의 강엔 띄엄띄엄 부유석이 하나씩 있었다.

간격으로 보나 뭘로 보나.

딱히 저걸 밟고 오라는 이야기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저건 그냥 부서지고 남은 세계의 찌꺼기에 불과했다.

가장 가까운 부유석에 착지한 용주는 룬검을 뽑아 들었다.

푸른 빛이 차오르는 룬문자.

깊숙이 박아넣은 룬검을 따라 일대의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파도치던 화염은 그 모습 그대로 멈춰 있었다.

“뜨거우면 뜨겁다고 말이라도 하지 그러냐.”

룬검을 뽑아 든 용주가 뒤를 돌아보았다.

시야가 흔들릴 정도의 더위였다.

코끝으로 들어온 공기는 들이마신 것만으로 고통스러웠다.

인간이라면, 괴롭지 않을 수가 없는 끔찍한 환경이었다.

자신은 그나마 이런저런 내성이 있었지만, 저쪽이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도 말 한마디 안 하고 꿋꿋이 버티고 있다니.

뭐.

그것도 그거 나름대로 녀석다운 점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응. 참을 수 있겠다 싶어서.”

“그렇게 땀으로 샤워를 하고?”

“응.”

얼음 위에 올라선 수지가 태연하게 땀을 닦아 냈다.

얼어붙은 강은 이제 두 사람의 뒤에 있었다.

녹아내린 성문을 지난 두 사람은 다른 차원이 융화되어 있는 복도를 지났다.

복도엔 전혀 다른 골격과 모습을 가진 머리들이 쭉 걸려 있었다.

“…….”

박제되어 있는 머리들에 수지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쪽을 향했다.

언노운과는 어딘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그것보단 랫맨이나 오우거.

퀘스트 게이트에서 용주가 만났다는 그런 사람들의 머리에 훨씬 가까워 보였다.

그것보다 훨씬 포악하고, 괴물처럼 생긴 것들도 더러 있었지만, 그것들 역시도 언노운이 아닌 다른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비슷한 걸 섬마음 등대에서 본 것처럼.

“있잖아.”

마른침을 삼킨 수지가 용주를 불렀다.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아?”

자신들이 움직이는 걸 따라 눈동자가 움직이고 있었다.

죽었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주 살짝이지만, 입을 움직이는 것도 있었다.

아무 소리도 낼 수 없고, 아무런 변화도 만들 수 없었지만, 그것만은 사실이었다.

“아마 죽음으로 장난을 친 걸 거다. 살아 있다 한들 그건 더 이상 살아 있는 거라 할 수 없어.”

그게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그건 용주도 몰랐다.

하지만 여기 역시 카오스 게이트였다.

아니, 그 이상의 무언가라고 하는 게 맞겠지.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건 없었고,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었다.

여기 있는 건 아마 아까 봤던 융화된 세계의 종족들일 거다.

그중에서 얼마를 뽑아 이런 형태로 남겨 둔 거겠지.

마치 사냥꾼이 자기가 잡은 사자나 사슴의 머리를 벽난로 위에 걸어놓는 것처럼.

“그러니까 어떻게 해보겠단 생각은 포기해. 헛수고니까.”

“…응 그럼 하다못해 편안하게 해줄 순 없을까?”

“…….”

작은 한숨을 삼킨 용주는 부패를 흩뿌렸다.

머리들의 살점은 빠르게 부패했고, 밖으로 드러난 뼈는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복도를 지난 두 사람은 나선형 계단을 올랐다.

계단은 상당히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흡사 아주 거대한 생명체의 척추뼈를 뽑아 놓은 것 같았다.

계단을 오른 수지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거대한 종유석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자라 있었다.

아래에도 마찬가지였다.

종유석은 U자형으로 외곽을 따라 분포되어 있었다.

“이빨 같아.”

“동감이다.”

용주가 보기에도 이건 거대한 생명체의 유골이었다.

척추와 입안만 해서 이만한 크기라면, 생전 전체의 모습이 얼마나 컸을지 쉽게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근데 어째서지.’

확실히 특이하긴 하지만, 용주가 지금 의문 부호를 찍은 건 거기가 아니었다.

이 녀석에겐 확실하게 부패가 진행되어 있었다.

아까 봤던 머리들과는 확연히 비교되는 부분이었다.

“그럼 여긴 입 속인 걸까?”

그렇게 생각하던 수지의 동공이 무언가에 크게 반응했다.

“!”

눈앞에 보이는 건 날카로운 꼬챙이.

자신은 그 꼬챙이에 꽂혀 있었고,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자신은 무기력하게 축 늘어져 있었다.

몸에 감각이 없었다.

느껴지는 건 점점 느려지고 있는 심장 박동과 호흡.

그리고 다가오는 죽음뿐이었다.

“…….”

뭔가가 누르고 있는 것 같은 이질감에 수지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마주한 건.

텅 빈 동공으로 자신의 어깨를 누르고 있는 끔찍한 얼굴의 자신이었다.

“발버둥 치지 마. 그냥 받아들여. 그게 자연의 섭리야.”

속삭이는 자신의 목소리.

그건 마치 이미 정해진 결과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미 몸 밖으로 나온 자신이 죽은 자신의 몸을 보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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