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화
* * *
“눈에 난 상처가 욱신거리나 보지?”
천지를 갈라놓는 공허참.
십자로 찢어진 하늘은 그 한 방의 위력을 여지없이 보여 주고 있었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다시 죽음과 마주했으니.”
언노운 형태의 쥬다스.
그 모습은 카일론에게 그다지 마주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한 장면이었다.
용처럼 기다란 몸통과 하나처럼 보이는 수십의 꼬리.
세 개로 갈라진 머리.
머리 안쪽에 자리 잡은 날카로운 이빨들과 그 안에 자리한 또 다른 머리.
몸 곳곳에 자리한 칠흑의 날개.
아름답게까지 보이는 그 형상은 죽음이란 재앙 그 자체였다.
“그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와라. 카일론. 그때의 그 전투를 다시 음미하고 싶구나.”
“…….”
지면을 후벼파는 날카로운 꼬리.
쥬다스의 꼬리 위에 올라탄 카일론은 돋아나 있는 날개 한 쌍을 베어 냈다.
곧장 이어지는 또 다른 꼬리의 참격.
십자를 그린 공허참에 하늘이 또 한 번 길게 찢어지고 있었다.
“겁이 난다면, 뭐 이해해 주지.”
“유치할 도발이구나. 너 같은 거구를 상대할 땐 작음 자체가 강력한 무기거늘.”
“흐하핫! 그래! 참으로 맞는 소리지. 하지만 그 모습으로 변하지 않고는 못 배길 거다. 작음은 무기인 동시에 커다란 약점이니까.”
날카롭게 갈라진 세 개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투사체.
재빠르게 움직인 카일론은 쥬다스와의 거리를 벌렸다.
“그 짧은 보폭으론 쉽지 않을 거다.”
카일론의 머리 위로 드리우는 거대한 그림자.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눈동자와 눈이 맞은 카일론은 검을 움켜쥐었다.
그와 동시에 카일론을 휘감는 쥬다스의 몸통.
똬리를 튼 쥬다스의 입가에 거대한 힘의 파장이 모여들었다.
“그 작은 몸뚱이로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작렬하는 죽음의 숨결.
점점 더 강도를 올려 가는 숨결에 죽음이 호수를 이루었고, 강이 되어 흘렀다.
물결이 흐르는 길엔 한 가지 변화가 있었다.
재와 먼지 말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던 그곳에서 무언가가 꿀렁거리며 일어나고 있었다.
형체도, 의식도 존재하지 않는 생명의 찌꺼기.
물길에 휩쓸린 생명의 찌꺼기들은 살려 달라는 듯 고통스럽게 발버둥 치고 있었다.
그 순간.
콰앙!!
천지를 진동하는 힘의 폭발과 함께 카일론의 몸이 갈가리 찢어졌다.
해일이 되어 흩어지는 죽음의 물결.
찢어진 부위를 순식간에 수복한 쥬다스는 입꼬리를 올렸다.
철그럭!
또각거리는 말발굽 소리에 더해진 강렬한 마찰음.
켄타우로스의 모습을 한 카일론의 모습이 지금 눈앞에 있었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최종 형태는 강력하지만, 그만큼 단출하고, 시시하거든.”
파도처럼 요동치는 쥬다스의 꼬리.
사방에서 덮쳐 오는 파도를 피해 뛰어오른 카일론은 날개를 펼쳤다.
앞다리를 꼿꼿이 편 폭발적인 강하.
부딪치는 모든 것을 재로 만든 카일론은 지면을 강타했다.
소용돌이치는 부패의 안개 사이를 질주하는 카일론.
장창과 방패로 무장한 기마병은 혜성과 같은 속도로 적을 꿰뚫었다.
“목숨을 거두는 덴 역시, 이 모습이 제격이지. 그게 우리끼리의 담판이라면 더더욱.”
몸통에 커다란 구멍이 뚫릴 정도의 일격이었음에도, 쥬다스는 고통 한 번 표하지 않았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느껴라. 이 말 기억하고 있겠지?”
솟아오르는 여덟 개의 소용돌이.
하늘을 가린 죽음의 기운을 마주한 카일론은 다시 한번 돌진을 이어 갔다.
녀석의 힘을 소진시키되 아직 끝을 내선 안 됐다.
동시에 녀석이 그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눈치채게 해서도 안 됐다.
녀석은 마주한 전투에 몰입하는 순간 다른 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
다른 건 아무것도 고려할 필요가 없으니까.
지금껏 그래 왔고, 그게 ‘강함’이란 거니까.
녀석은 지금 여기를 즐기는 데에만 온 신경을 집중할 거다.
이 즐거움이.
죽음이 생명을 앗아 가는 이 유희가 녀석에게 있어선 삶이자 오락의 전부였으니까.
그리고 그게.
이번엔 녀석의 숨통을 조이는 칼날이 될 거다.
녀석이 가진 치명적인 약점.
그건 바로 ‘오만’이었다.
* * *
▶ 망각의 근원을 흡수했습니다.
▶ 새로운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 디스트로이어(Destroyer)
-근원의 힘을 실은 소용돌이를 일으킵니다.
-회전의 중심이 되는 자와 스킬의 대상이 되는 자와의 충돌을 전제로 하는 공멸의 폭풍입니다.
▷ 망각의 수정
-망각의 근원을 사용한 꿈의 세계를 구축합니다.
-외부 세계로부터 자신을 완전히 차단합니다.
-수면 상태에서 급속도로 HP를 회복합니다.
-수면 상태에서 급속도로 MP를 회복합니다.
-망각은 계승자의 치유사임과 동시에 가장 위험한 적입니다.
-자신을 잊지 않게, 잃지 않게 주의하십시오. 주인을 인정하지 않은 망각으로부터.
로지의 최후와 함께 발현된 스킬들.
녀석의 마지막 한 점까지 남기지 않고 먹어 치운 용주는 가슴을 억눌렀다.
자칫 잘못했으면, 먹은 걸 전부 게워 낼 뻔했다.
“끝난 거야?”
“그래. 하나는.”
퀘스트 완료 메시지가 하나 깜빡거리고 있었다.
“나 때문에 괜한 고생 시킨 것 같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내가 없었으면, 로지란 사람이 수정에 들어가는 일도 없었을 거잖아.”
“무슨 바보 같은 소릴 하나 했더니.”
잠시 자세를 낮춘 용주가 고개를 숙였다.
순간 빈혈기가 스쳐 갔었다.
“녀석한테 치명타를 날린 건 내가 아니라 너였어. 녀석에게 있어서 너야말로 완벽한 이레귤러였던 거지.”
“…….”
“애초에 믿는 구석이 없었으면, 녀석도 그렇게 파격적인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을 거야. 시간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우리한테 웃어 주는 결과였단 거지.”
“음….”
“게다가 나 혼자였으면, 녀석한테 폭식의 여왕을 강탈하는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이 들어갔을 거야. 녀석이 중간에 깨어난다는 선택지도 없진 않았겠지. 만약 그랬으면 난 지금부터 훨씬 더 불리한 상태에서 녀석을 상대해야 했을 거고.”
로지와의 전투.
거기서 흐름을 확 끌어당긴 순간을 꼽으라면 역시 폭식 분쇄를 선보였을 때였다.
만약 그 기술이 자신에게 없었다면.
전투의 흐름은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여왕이 사용했던 또 다른 기술인 ‘블랙 패더’를 녀석에게서 빼앗은 것도 전투에 흐름을 바꾼 큰 물결 중 하나.
녀석의 속도로 움직이며.
녀석의 회전력을 더해 깃털을 흩뿌렸다면,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이쪽이 대파당했을 게 분명했다.
“응. 그럼 다행이고.”
자세를 낮춘 수지는 용주의 상처를 치유하려 했다.
“단순히 상처를 회복하는 것만으론 부족해. 그러니까 그냥 있어도 돼.”
“그치만….”
“너도 봤잖아? 아까 내 앞에 뜬 메시지. 회복이라면 이쪽이 하는 게 더 나아.”
한 걸음 멀어진 용주가 의식을 집중했다.
피어오르는 연등의 빛.
결정이 된 빛 속에서 용주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남은 계단은 이제 하나.
마음은 급했고, 시간은 촉박했지만, 지금은 이렇게 해야 했다.
* * *
웅얼거리는 소리와 뿌연 시야.
피부를 스치는 바람에 반응한 용주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머리카락을 스쳐 가는 날카로운 손톱.
눈앞에 있는 건 다름 아닌 언노운이었다.
‘뭐지?’
손가락을 타고 느껴지는 익숙한 감각.
룬검을 움켜쥔 용주는 단번에 언노운을 베어 냈다.
‘이게 꿈이라고?’
그것만은 확실했다.
하지만 꿈이라는 이질감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눈앞에 있는 언노운도.
몸을 움직이는 감각도.
실제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뭔진 몰라도, 일단은 찢어 버리는 수밖에.’
날카로운 손톱을 세운 용주는 녀석을 찢으려 했다.
바로 그때.
“집중 안 하면, 크게 한 입 베어 물린다?”
너무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소리에 반응하는 용주의 눈동자.
고개를 돌린 용주의 시야에 들어온 건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이제 S급 헌터라고 막 그러는 거야? S급 헌터라도 물리면 똑같이 아프다~?”
장난기 섞인 아버지의 미소에 용주는 심장이 요동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꿈이라기보단 질 나쁜 장난 같은데.”
“응? 방금 뭐라고?”
“둘 다 그렇게 한가하게 여유나 떨 때예요? 그러다 다치면 머리를 콱 쥐어박아 줄 거니까 그렇게 알아요.”
이어 들려오는 또 다른 목소리.
거슬리는 언노운들을 단번에 도륙한 용주는 뒤를 돌아보았다.
역시.
거기 있는 건 생각했던 그 사람이었다.
“아하핫! 봐달라고 여보. 언노운보다 그게 더 무서우니까.”
“무서우라고 한 소리라고요.”
‘이게 망각이 보여 주는 달콤함이란 건가. 확실히 잘 만들긴 했군.’
로지가 꾸던 꿈은 굉장히 동화 같은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던 사람 역시 로지 본인이었고.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야기는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이야기의 서술권을 쥐고 있는 건 자신이 아니었다.
‘망각의 기운이 아직 날 주인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은 건가.’
“그래도 이제 클리어가 코앞이야. 게이트 보스만 처리하면 된다고.”
생각에 잠긴 용주의 어깨에 따스한 체온이 전해졌다.
“가자. 아들. 환상의 콤비를 보여 주자고.”
‘…어쩔 수 없나.’
이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회복이 이루어진다.
그것만을 틀림없을 거다.
어쨌든 필요한 시간이라면….
조금 정도는 어울려 줘도 되겠지.
망각은 자신을 쉽게 삼킬 수 없었고.
이게 망각이란 걸 인지하고 있는 시점에 이게 자신에게 위협이 될 리는 없었으니까.
“그래~ 그렇게 나올 줄 알았어!”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공격.
거대한 체구로 굴러다니고 있는 녀석은 다름 아닌 글러트니였다.
언노운의 형태를 하고 있고, 언어능력도 상실한 채 그르릉거릴 뿐이었지만, 틀림없었다.
“그쪽으로 간다!”
미끄러지듯 녀석과 교차한 용주는 단번에 녀석을 낚아챘다.
거구의 글러트니를 힘으로 제압한 용주.
지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의 폭발이 글러트니를 직격했다.
“가아아악!!”
세로로 길게 찢어지는 글러트니의 몸통.
숨겨져 있던 본래 입을 드러낸 녀석은 엄청난 기세로 공기를 흡입하기 시작했다.
“아들!”
‘알고 있어.’
그 순간, 글러트니의 배 속에서 피어오르는 흑염.
“가악! 그으럭!”
안과 밖을 전부 불사르는 화염에 발버둥 치던 글러트니는 용주에게 달려들었다.
팽창하는 글러트니가 노리는 마지막 한 수는 자폭.
하지만 글러트니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바깥으로 퍼져 나가야 할 폭발은 안쪽으로 밀려 들어갔고, 일점으로 응축된 힘은 다른 차원으로 날아가 버렸다.
폭발에 찢어진 차원의 균열이 너덜거렸지만, 피해는 그게 전부였다.
카오스 게이트는 클리어되어 있었다.
“멋진 스킬 활용이었어. 아들.”
“…….”
“당신도 이제 용주한테 안 될 것 같은데요.”
“하핫! 그러게. 나도 이제 리더 자리 놔줄 때가 됐나?”
존재한 적 없고.
존재할 수도 없는 풍경.
그렇지만 행복해 보이는 한때.
그 풍경을 마지막으로 풍경은 빠르게 변해 갔다.
“우와~ 저기 봐! 저거 이용주 헌터 아니야?!”
“이용주? 이용주라면 그 S급 헌터?!”
“좀비 헌터를 내 눈으로 보다니…! 세상에! 어떡해!”
들려오는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
변화한 풍경 속 이곳은 어느 놀이공원의 매표소였다.
‘여긴….’
용주도 본 적 있는 풍경이었다.
아마 은정이랑 같이 왔던 거기였지.
“오빠, 뭐 해? 빨리 들어가자!”
또 한 번 목소리에 반응한 용주의 시선.
고개를 돌린 용주의 눈앞에 있는 이는 사복 차림의 동생이었다.
‘이건 또 무슨….’
“나 오늘 엄청 기대했단 말이야. 대학 가면 오빠랑 놀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빠 맨날 바빠가지고, 시간도 안 맞았잖아. 그렇다고 게이트 열렸는데 그냥 나랑 놀자고 찡찡댈 수도 없고.”
“…….”
“근데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다들 엄청 쳐다본다. 세계에서 인정하는 헌터는 역시 다르긴 다르네.”
용주가 주변을 흘겨보았다.
존경과 감사.
경외감이 느껴지는 눈빛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어디가 매표소 줄인지 헷갈릴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 있었고, 핸드폰을 들고 있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오늘은 나랑 실컷 노는 거야! 오늘은 나랑 노는 날이니까! 알았지?”
언젠가 한 번쯤 들어 본 것 같은 이야기.
‘예은이가 분명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지.’
그게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도 분명 이런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잠깐만 현실이라고?’
순간 머릿속이 빙 돌았다.
지금 생각한 현실은 어느 쪽이지?
자신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오빠, 내 말 듣고 있어?”
“…응.”
“힛! 가자! 나 타고 싶은 놀이기구 리스트 다 뽑아 놨어!”
용주를 잡아끈 예은이 싱긋 웃어 보였다.
‘뭐지.’
순간 뭔가가 희미해진 것 같았다.
뭔가 하려던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뭔지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