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8화
‘뭘까…. 대체 뭘까.’
영업을 마친 상가 계단.
빛바랜 조명 하나가 쓸쓸하게 밝히고 있는 그곳에 걸터앉은 수지는 턱을 괴었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계속 뭔가 이상하단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대체 뭐가 이상한 걸까?’
집에서의 일들에 이상한 점은 없었다.
학교 역시 그럴 것이다.
헤매지도 않았고, 수업을 놓치지도 않았으며, 친구들 역시 오래 알고 지낸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모든 게 일상 그대로일 거다.
그런데 그 일상에서 어딘가 낯설다는 느낌이 들었다.
단순히 새로운 한 학기가 시작되었기 때문일까?
“아! 언니!”
수지가 한창 생각에 잠긴 그때.
한 여학생이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여기 계셨네요.”
“넌….”
“예은이에요. 이예은. 같이 앉았었잖아요.”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인 예은은 수지에게 좀 더 다가갔다.
“여기서 혼자 뭐 하고 계셨어요? 바람 쐬기 좋은 자리 같지는 않은데.”
“응. 대신 조용하잖아.”
“그렇긴 하네요. 엄청 조용해요.”
걸음을 멈춘 예은이 수지와 눈높이를 맞췄다.
“옆에 앉아도 돼요?”
“응.”
“그럼 잠깐만 실례할게요.”
수지와 같은 칸에 자리를 잡은 예은은 작게 숨을 내쉬었다.
숨소리에 섞여 나온 소주 냄새는 은은하게 수지의 콧등을 간질였다.
“용케 찾았네.”
예은이의 말로 유추컨대 그녀는 자신을 찾고 있던 게 분명했다.
신입생이라면 여기 뭐가 있는지도 아직 잘 모를 텐데.
“아~ 언니라면 왠지 조용한 곳에 혼자 계실 것 같았거든요. 시끌벅적한 거 불편해하시는 것 같아서.”
“음. 그렇게 보였어? 딱히 싫어하는 건 아닌데.”
“그래요? 힛! 그럼 다행이고요.”
싱긋 웃어 보이는 예은.
가까운 곳에서 그 웃음을 마주한 수지는 뭔가가 가슴에 푹 박히는 기분이었다.
아팠다.
가슴 한구석이.
이 웃음이.
이 해맑음이 왜 이렇게 아프게 다가오는 거지?
“그래도 뭔가 생각이 많아 보였어요. 일찍 들어가셔야 하는 거면, 일찍 일어나셔도 돼요. 저희 신경 쓰지 마시고요.”
“응. 아니야. 그런 거.”
수지가 고개를 저었다.
“근데 왜 찾았어?”
“아! 명지 언니가 언니 어디 있나 한번 찾아보고 오라고 하셨거든요. 입구를 이렇게 딱 틀어막으시면서.”
팔짱을 낀 예은이 당당하게 어깨를 폈다.
“전 무슨 관우를 보는 줄 알았다니깐요.”
“명지 언니?”
웃음을 참지 못한 예은을 향해 수지가 고개를 갸웃했다.
“응? 왜 그 저희랑 같은 테이블에 앉은 언니 있잖아요. 아! 혹시 제가 이름을 잘못 말했나요?”
순간 웃음기가 걷힌 예은이 놀라 물었다.
“으응. 아니야. 그냥 내가 잘못 들었나 봐.”
분명 그런 이름이 맞을 거다.
그런데 지금도 순간 낯선 이질감이 들었었다.
분명 알고 있는 이름일 텐데.
들어본 적 없는 이름처럼 느껴졌다.
“나오면서 보니까 밖에 난리더라고요. 누가 완전 대자로 뻗었다고 하던데. 이름이 뭐였더라….”
“다른 이야긴 없었고?”
“완전 필름 끊겨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아마 술 마시고 어디 잘못 디딘 거 같다고. 선배들이 가게 안쪽으로 업어다 놨어요.”
“응. 그렇구나.”
수지가 왼손을 움켜쥐었다.
예은이랑 이렇게 이야기를 나눠 보는 건 분명 처음일 텐데.
뭔가 되게 익숙하단 생각이 들었다.
“있잖아. 우리 혹시 어디서 본 적 있나?”
“언니랑 저랑요?”
“응.”
“음…. 글쎄요. 신입생 MT 땐 아닐 거고….”
조용히 핸드폰을 꺼낸 수지가 예은이의 이름을 검색해 봤다.
검색 결과는 없음.
예은의 번호는 수지에게 없었다.
“응. 아니야.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냥 내 착각이었나 봐.”
고개를 저은 수지가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통학한다고 했던가?”
“아! 네! 막 그렇게 멀지도 않으니까요.”
“그래도 2호선은 힘들잖아.”
“하하. 뭐, 그렇긴 한데. 타고 싶어도 못 타는 애들도 많잖아요. 그런 불만 말했다간 돌 맞을 거예요.”
“음. 부모님이 뭐라고 안 하셨어? 뒤풀이 있는 거 말은 했고?”
“말씀드렸어요. 차 끊기기 전에만 들어오라고 하시던데요. 아! 무슨 사고 안 치게 긴장하라고도 하셨다.”
“응~ 맞는 말씀만 딱딱 해주셨네. 너무 묶는 것도, 너무 풀어 주는 것도 안 좋지.”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도 일장 연설로 치면 꽤 길었다고요. 외동이라 더 그런 건 알겠는데, 저도 충분히 다 이해했었는데 말이에요.”
‘외동?’
그 단어가 또 머리에 팍 꽂혔다.
이상한 일도 아닐 텐데.
외동인 게 뭐 어때서.
“외동?”
“네. 아! 그렇게 안 보인단 말 자주 들어요. 막냇동생 같다는 이야기.”
“음…. 그래?”
슬슬 일어나자.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럼 만약 나란 사람을 너밖에 기억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 거냐?”
아주 먼 곳에서 울리는 메아리 같은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혹은 어떤 우연한 사건으로 내가 없던 사람이 되어 버린다면?”
점점 더 멀어져 가는 메아리.
낯선 소리에 놀란 수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언니?! 왜 그래요?”
놀란 예은이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수지는 뭔가를 찾으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언니?!!”
“방금 그 소리 못 들었어?”
“소리? 무슨 소리요? 언니랑 제 목소리 말곤 아무것도 못 들었는데….”
‘아니야.’
예은의 단호한 대답에도 수지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방금 분명 목소리가 들렸었다.
절대 잘못들은 게 아니었다.
‘뭐지? 뭐였지? 대체 누구야?’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머릿속이 뿌옜다.
‘한마디만. 한마디만 더 해줘.’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 뭔가 떠오를 것 같았다.
딱 한마디만 더 있으면….
‘내가 대답해주면, 해줄 거야?’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뭔가가 입을 틀어막고 있는 것처럼 갑갑했다.
하지만 해야만 했다.
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기억해 줄 거야.”
“언니?”
갑작스러운 수지의 헛소리에 예은이 놀란 눈동자를 깜빡였지만, 수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기억하고 또 기억해 줄 거야.”
“그러냐.”
조금 더 선명해진 누군가의 목소리.
눅눅하고, 답답했던 공기는 갑작스럽게 시원한 바닷바람이 되어 불어왔다.
그 순간 보이는 어느 바닷가의 모습.
바로 앞엔 누군가 있었지만, 얼굴을 볼 순 없었다.
눈앞에 있는 건 그저 새하얀 실루엣이었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이 바로 그 목소리의 주인이란 걸.
자신은 이 사람을 알고 있단 걸.
자신이 이 사람을 기억해 줘야만 한다는 걸.
“내가 기억해 주지 않으면, 정말 없던 사람이 되어 버릴 테니까. 기억해 줄 거야. 이제 제발 그만하라고 해도, 기억해 줄 거야.”
앞으로 뛰쳐나간 수지는 새하얀 실루엣을 껴안았다.
“가족이니까.”
그 순간 채워지는 색깔.
따스한 체온을 느낀 수지의 두 눈에서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알 것 같았다.
이 사람이 누군지.
다른 건 몰라도.
지금 해야 하는 게 뭔지, 해야만 하는 게 뭔지, 이제는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언니? 언니?! 괜찮아요?! 잠깐만 여기 계셔 보세요! 제가 사람들 불러올게요!”
다시금 돌아온 풍경.
다급하게 뛰어가려는 예은을 잡은 수지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눈물을 닦아 낸 수지가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네? 그치만….”
“정말로 괜찮아. 응.”
안심하란 듯 끄덕이는 고갯짓.
예은은 여전히 당황한 모습 그대로였지만, 수지는 그런 예은의 손을 감쌌다.
“있잖아. 실은 너한테 할 말이 있어.”
“저한테요? 아! 네! 말씀하세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여전히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단 반응이었다.
하지만 수지는 거기에 크게 무게를 두지 않았다.
더 중요한 게 있었으니까.
“외동이라고 했지?”
“아…. 네!”
“아니야.”
“아…. 네?”
“외동 아니라고. 응.”
고개를 끄덕이는 수지.
그걸 보는 예은의 표정이 살짝 찡그려졌다.
당연하지 않은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갑자기 자기보고 외동이 아니라는데.
그런 이야기를 어떻게 멀쩡한 얼굴로 마주할 수 있겠는가.
“저기…. 언니?”
“외동 아니야.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분명 있었어.”
“언니. 좀 이상해요. 무섭게….”
예은은 수지의 손길을 뿌리치려 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수지의 힘은 너무도 강력했다.
‘말해 줘야 해. 어떤 반응이어도, 그게 얼마나 슬픈 결과를 가져올지라도.’
이상한 점이라면 아주 많았다.
왜 자신이 여기 있는지.
예은이의 부모님들이 어떻게 여기 계신지.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말해 줘야만 했다.
“있었어. 너밖에 모르는 사람이. 널 위해서라면, 자기 목숨을 걸고 검을 들 사람이.”
“에? 검?”
“있었어. 찢어지고, 뭉개져서, 엉망이 되어도 절대 쓰러지지 않았단 사람이. 좀비 헌터라고 놀림 받으면서도 아득바득 살아남았던 사람이.”
“좀비? 헌터? 언니 대체 무슨 소리를….”
“있었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사람이. 널 위해서라면 전부를 버릴 수 있었던 오빠가.”
“…오빠?”
조금 달라진 예은의 목소리.
손을 놓아 준 수지는 예은을 꼭 끌어안았다.
“기억하지 못해도 알아야 해. 죽을 만큼 아파도 말해 줘야 해. 가족이니까. 용주한테 말해 주겠다고 약속했으니까.”
“…….”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
울먹임이 섞인 수지의 목소리에 예은은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그게 힘에 의한 건 아니었다.
이건 타의가 아닌 자의에 의한 것.
저항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저항하지 않는 거였다.
“용주… 오빠?”
의문 부호로 끝난 예은의 목소리.
침묵 속에 잠긴 목소리 끝에 예은의 손이 움직였다.
“용주 오빠. 불쌍한… 우리 오빠.”
뭔가가 떠오른 듯 중얼거리는 목소리.
울먹임이 섞인 목소리 사이로 굵은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먼 곳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종소리는.
점점 더 선명해졌다.
* * *
“!”
산산이 조각나는 수정.
쏟아지는 파편을 뚫고 나간 용주는 몸을 던졌다.
미끄러지며 멈춰선 용주의 품엔 수지가 있었다.
“무사하냐?”
수지를 받아든 용주가 무심한 듯 물었다.
용주는 광폭화를 해제한 상태였다.
팔다리는 100% 온전하다고 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까진 회복한 상태였다.
스팀팩의 효과로 통증 자체도 둔화시켜 놓은 상태였고 말이다.
“응.”
수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 몽롱했다.
술에 취한 것 같기도 했고 말이다.
눈앞에 있는 용주의 모습은 태연하게만 보였다.
하지만 속은 전혀 그렇지 않단 걸 수지는 알 수 있었다.
그야.
사방에 수많은 차원의 균열들이 널려 있었으니까.
무사하냐는 그 짧은 물음 속에 깊은 안도감이 느껴졌으니까.
“말도 안 돼.”
기괴하게 뒤틀린 누군가의 목소리.
고개를 돌린 수지는 로지를 바라보았다.
그녀를 감싸고 있던 수정은 완전히 산산이 조각나 있었다.
“망각 속에서. 삼켜지지 않고 나왔다고? 자기 힘만으로?”
수정이 파괴된 건 수지를 가둔 수정이 깨진 바로 그 순간.
용주가 어떤 공격을 퍼부어도 흔적조차 남지 않았던 수정은 해변의 모래만큼이나 고운 입자가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있을 수 없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로지의 몸을 감싸고 있던 돌기들이 힘없이 흘러내렸다.
모습을 드러내는 흉한 몰골.
로지의 상처는 전혀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게 네 잘난 재생력인 모양이지. 확실히 굉장하긴 하군.”
“그으윽…!”
용주의 도발에 로지가 이를 갈았다.
이게 아니었다.
이게 아니었을 텐데.
어째서 이렇게….
“행복한 꿈이었잖아. 행복한 일상이었잖아. 왜 동화를 부순 거야. 너한테 부족했던 건 아무것도 없었을 텐데?!”
씨앗은 용주가 그 차원을 여는 순간 심어 뒀었다.
그 씨앗이 파괴되지 않는 한 이쪽의 꿈 역시 파괴될 일 없었다.
그런 질서였고, 그게 바로 질서였다.
그게 뭔가 잘못됐다는 사실조차 인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망각이란 그런 거니까.
그건 녀석의 기억을 토대로 재구성한 또 하나의 현실이었으니까.
녀석은 그렇게 잊히고,
자신은 다시 온전함을 되찾는다.
그렇게 되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완벽했고, 완전했던 자신의 꿈이 갑작스럽게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생각해 본 적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방법으로!
“약속했으니까. 말해 주기로.”
“약속이라고…?”
“응. 만약 모두가 널 잊는다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사람이 네 오빠였었다고. 동생한테 꼭 말해 주기로 약속했어.”
“우… 웃기지 마! 기억할 수 있었을 리가 없어! 그 망각 속에서, 내 망각 속에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 리가 없다고!”
“으응. 할 수 있었어. 말해 줬어. 예은이한테.”
고개를 저은 수지가 용주를 바라보았다.
“예은이도 잊지 않았어. 그러니까 괜찮아.”
“그러냐.”
수지가 겪은 일을 용주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대략 어떤 것이었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수지가 본 꿈은 자신이 잊힌 세상.
아무도 자신이란 사람이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그런 세상이었겠지.
“더 할 말은 없겠지.”
“자, 잠깐만! 잠깐만 기다리라고!”
다가오는 용주에게서 로지는 도망가려 했다.
하지만 도망갈 수 없었다.
팔과 다리, 돌기들까지.
머리를 제외한 모든 게 액체처럼 흘러내리고 없었다.
회복하지 못한 대미지의 여파가 해일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끝이다.”
속도를 높인 용주는 로지를 덮쳤다.
벽면을 차지하던 거울은.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