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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336화 (336/357)

336화

‘팔, 다리를….’

순식간에 머리만 남은 로지의 모습.

뭔가 큰 게 올 거라는 생각과 동시에 로지의 머리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불과 몇 초 만에 최고점에 도달한 가속.

핵까지 뚫고 들어갈 기세의 회전이었지만, 녀석이 의지하고 있는 지면은 놀라울 만큼 잠잠했다.

하지만.

다른 곳의 사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 녀석….’

마치 초대질량 블랙홀이 끌어당기는 것 같은 엄청난 힘.

강도가 다른 수많은 중력과 인력을 마주했던 용주였지만, 이건 그 이상이었다.

지면과 함께 들어 올려진 용주의 몸.

힘으로, 발톱으로 버티고 할 것도 없이 날아가기 시작한 시야는 빠르게 중심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우웅….

엄청난 힘이 있었기에 바람이 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바람 소리는 경험했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마치 진공 상태처럼 조용했지만, 그 속에 작고, 낮게 기는 불쾌한 저음이 불규칙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다.

‘벡터를 조작해서….’

로지를 중심으로 생겨난 깎아내려지는 절벽.

중심으로 빨려 들어간 그 많은 바위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피부로 느껴지는 힘과 지금까지 경험해 온 것들을 토대로 용주는 벡터 방향을 조작하려 했다.

이 힘을 자신의 검으로 쓸 수 있다면, 단칼에 녀석을 쓰러뜨릴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조작할 수 없었다.

이 강대함을 통째로 조작하기엔 힘이 부족했다.

자신이 가진 마나를 전부 사용한다 해도,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자신에게 가해지는 것만을 생각하면, 힘이 부족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 소용돌이 안에 작용하는 힘은 단순한 중력이나 인력만이 아니었다.

이 안엔 경험해 보지 못한 무언가가 더 있었다.

‘이건….’

코끝을 스치는 기묘한 향기가 있었다.

분유 냄새와 비슷한 무언가였다.

귓가를 괴롭히던 불쾌한 저음이 점차 편안하게 느껴졌다.

자동차의 엔진 소음이라고 해야 할까.

태중에서 듣는 물소리라고 해야 할까.

불규칙하게만 들리던 소리들이 점차 규칙적으로 느껴졌고, 편안함이 느껴졌고, 눈꺼풀이 점차 무겁게 느껴졌다.

연등의 빛처럼 은은한 노란색의 무언가가 보였다.

불과 1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빛이었건만, 지금은 시야 여기저기에 흩뿌려져 있었다.

빛에 눈이 아프다거나 하는 건 전혀 없었다.

편안했고, 포근했다.

그리고 용주는 그게 ‘근원’의 힘이란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망각의 기운.

이게 바로 녀석을 녀석으로 만든 힘이었다.

‘다른 녀석들이라면, 벌써 잠들었을 거란 건가.’

자신은 다른 근원에 쉽게 삼켜지지 않는다.

자신 역시 근원을 소지한 이질적인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자신이 아닌 다른 녀석들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거다.

여기서 잠든다는 건 곧 죽음을 의미했다.

자신이 죽는다는 것도 잊어버린 채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설산에서 조난 당한 사람이 잠든 채 얼어 죽는 것처럼.

그리고 아마 그 끝은 그렇게 죽은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할 거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거고, 아무도 찾지 않을 거고,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테니까.

세상에 없던 존재가 되어 버릴 테니까.

‘이준의 힘으로 안 된다면, 이안의 힘으로….’

녀석이 아무리 날뛰어도 이곳은 자신의 차원.

아까 한 번 했던 것처럼 다른 공간으로 이동해 공격 자체를 무위로 돌리는 선택지도 있었다.

‘칫…!’

하지만.

이것 역시 불가능했다.

이곳은 이미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피할 수 없다면, 깨부술 수밖에.’

반신이 아니라, 죽기 직전까지 날려 보자.

녀석은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이 공격이 쌍방의 피해가 있을 거란 이야기였고, 그 피해가 폭식 분쇄를 상회할 거란 선전 포고였다.

‘우선은….’

맹렬하게 쏟아지는 용주의 원거리 공격.

페이탈 붐과 에스카톤 저지먼트.

무의 승천으로 이어지는 3단 공격이 로지의 얼굴을 강타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충격에도 제동은 걸리지 않았다.

‘어디 누가 먼저 부서지나 해보자고.’

용주의 전신을 뒤덮는 흑염.

그 주변을 흐르는 부패의 안개는 용주의 곁을 지켰다.

허공을 차며 도약한 용주는 로지의 머리 위로 내리꽂혔다.

순간 마주친 두 사람의 시선.

엄청난 속도의 회전에 아이러니하게도 로지의 눈은 회전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더 강한 속도로 부딪쳐 주다니, 대환영이야. 예술적으로 한번 부서져 보자고. 우리. 피와 살이 튀고, 내장과 혈관이 빗발치는 예술로 말이야.”

맞부딪치는 두 사람의 힘.

충격에 부서진 로지의 신체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졌고, 길게 찢어진 로지의 하관에서 산산이 조각난 이빨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건 용주도 마찬가지였다.

손끝부터 바스러지기 시작한 붕괴는 빠르게 몸 전체로 퍼져 나갔다.

날카롭게 세웠던 손톱이 압축되어 첫 번째 마디로 밀려 들어왔고, 첫 번째 마디가 두 번째 마디로 밀려 들어왔다.

손가락 전체가 손바닥 안쪽으로 밀려 들어왔고, 손바닥이 손목으로, 손목이 팔목으로 팔목이 어깨로 찌그러졌다.

그리고 그건 당연히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얼굴에 있는 굴곡이 점차 사라졌고, 뜯겨 나간 피부가 창호지처럼 흩날렸다.

위험을 느꼈을 때는 이미 사건의 지평선을 넘은 뒤였다.

의식은 빠르게 흐릿해졌고,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시야가 붉게 물들었고, 호흡을 할 수도 없었다.

찌그러지며 뒤틀린 시야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흘러내리는 피눈물.

두 눈을 깜빡인 용주는 로지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로지의 얼굴은 아직 온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용주도 마찬가지.

손과 팔 그리고 머리까지.

온전한 형태로, 있어야 할 곳을 지키고 있었다.

‘더 강한 힘으로 부딪치면, 날아가는 건 이쪽이란 소린가.’

잠깐 사이에 본 미래의 풍경.

혜안은 용주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설령 그걸로 끝을 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거기 있는 건 공멸이라고.

‘공멸론 안 돼. 넘어야 할 산은 하나 더 있다고.”

자신이 여기서 쓰러지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

쥬다스와 카일론의 일전에서 설령 카일론이 승리를 가져온다 하더라도, 결국 웃는 건 쥬다스일 것이다.

그럼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게이트가 열리고, 죽음이 도래한다면,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이안, 서아, 나은.

그 밖에 어떤 S급 헌터가 막아서더라도 막을 수 없다.

카일론의 힘을.

부패의 근원을 차지한 쥬다스를 그들은 당해 낼 수 없을 거다.

이겨야 하는 건 전투가 아닌 전쟁.

지금 이 방법으론 전쟁을 이길 수 없었다.

‘그럼 지금 해야 할 건 날려 버리는 게 아니라….’

버티는 것.

그렇게 확신한 용주는 자신의 형태를 변화시켰다.

갑피 위로 자라나는 또 다른 갑피.

자라난 갑피 위론 또 다른 갑피가 겹겹이 쌓여 갔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건 한 마리의 투구게.

날카롭고 두꺼운 껍데기는 머리를 비롯한 신체의 중요 장기들을 완벽하게 보호하고 있었다.

“더 강한 속도로 부딪쳐 줄 줄 알았는데, 재미없네. 그래도 괜찮아. 피와 살이 튀고, 내장과 혈관이 빗발치는 예술로 안내해 줄 테니까.”

맞부딪치는 두 사람의 힘.

충격에 부서진 로지의 신체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졌고, 길게 찢어진 로지의 하관에서 산산이 조각난 이빨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까 용주가 봤던 미래에서처럼 말이다.

하지만 결과는 아까와 같지 않았다.

엄청난 회전과 마찰에 갑피가 갈라지고, 으깨지고, 안쪽으로 말려 들어갔지만, 머리만은 온전하게 지킬 수 있었다.

휘익!

바람을 가른 날카로운 꼬리.

갈라지며 부서지는 꼬리는 마치 로켓 추진체의 보조 장치처럼 마구마구 떨어져 나갔다.

그 순간.

파바바밧!!

로지의 얼굴로 내리꽂히는 검은 깃털.

꼬리 안쪽에 숨겨져 있던 블랙 페더는.

마치, 수류탄처럼 로지의 면상을 엉망으로 헤집어 놓았다.

* * *

“하핫! 꺄하핫! 하하하핫!!”

울려 퍼지는 로지의 웃음소리.

회전을 멈춘 로지는 안쪽으로 말아 놓았던 신체 부위들을 하나씩 꺼내 놓았다.

“멋진 시도였어. 그런 식으로 나올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했다고.”

돌기들을 움직인 로지는 얼굴에 박힌 블랙 패더를 뽑아냈다.

일부는 머리를 관통해 지나갔지만, 일부는 여전히 박혀 있었다.

“그래도 꽤 멋졌지? 서로의 살점이 흩날리는 폭죽쇼 말이야.”

지반이 무너지며 일대는 날 선 절벽이 되어 있었다.

로지가 서 있는 한 평을 제외하곤 끓어오르는 마그마가 보글거리는 게 보일 정도였다.

“카…각…!”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한 평의 부유석.

미끄러지듯 그곳에 멈춰 선 용주는 이빨로 지면을 긁어냈다.

전신을 뒤덮던 투구게의 껍데기는 간신히 그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뺨을 타고 갑피 조각이 쏟아져 내렸다.

팔과 다리에 감각은 살아 있긴 했지만, 그중 90%는 끔찍한 통증이었다.

나머지 10%는 저릿저릿한 마비감이었고.

‘그렇게까지 했는데 이 상태인가….’

용주의 시선이 자신의 팔로 향했다.

손가락부터 팔목 윗부분까지가 납작하게 압축되어 있었다.

다리 역시 상태는 마찬가지.

칼날처럼 날카롭던 다리는 깡통처럼 찌그러져 있었다.

‘칫…!’

주고받는 혈투를 벌인 게 아니었기에, 재생이 더딘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처는 그걸 감안하더라도 회복이 너무 더뎠다.

잘려 나가거나, 부서진 게 아니라 형체 그대로 으깨진 상처.

잘려 나간 팔을 붙이는 것보다, 이렇게 납작해진 팔을 복구하는 게 힘들다는 건 오늘에서야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래도 상처라면 녀석이 더 깊어. 광범위하게 힘을 사용한 것도 녀석이고.’

“내 마나가 바닥을 드러냈다고, 나보다만 빨리 부상만 회복하면, 날 끝장낼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지?”

생각의 마침표가 찍히기도 전에 들려오는 로지의 목소리.

입꼬리를 올린 두 개의 입에선 부서진 피부 조직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내가 말했지? 그 잘난 재생력도 나한텐 안 된다는 걸 보여 줄 거라고.”

돌기로 얼굴을 감싼 로지가 다리를 마치 가시처럼 바짝 세웠다.

“이 모습으로 그런 말 해봤자라고. 허세 떨지 말라고. 그렇게 말한 것 같네.”

로지의 신체는 전혀 재생되고 있지 않았다.

갈라짐은 갈수록 심해질 뿐이었고, 몸 안쪽에 넣어 뒀던 신체 부위들도 형태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말이야. 어차피 이건 다 꿈일 뿐이야. 한숨 자고 일어나면, 다 사라질 것들이라고.”

로지의 몸을 감싼 연등의 빛이 점차 단단하게 굳어 갔다.

모습을 드러낸 건 주황색의 수정.

눈동자만 바깥으로 드러낸 로지는 그 안에서 용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도, 지금 이 현실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리는 거야. 영원한 망각이 되는 거지.”

잠에 취한 듯 탁해져 가는 로지의 눈동자.

스르륵 감기기 시작한 눈동자엔 깊은 만족감이 묻어 있었다.

“걱정하지 마. 망각 속에 잠긴다는 건 나랑 하나가 된단 거니까. 너 자신은 사라져도, 너는 내 안에서 살아갈 거야. 내 말의 의미. 너라면 이해할 수 있겠지.”

로지가 완전히 눈을 감자 위아래의 돌기들이 그녀의 눈을 덮었다.

파바밧!

등에서 돋아난 여섯 개의 촉수로 몸을 일으킨 용주는 촉수를 다리 삼아 뛰어들었다.

“카악!!”

180도로 찢어지는 용주의 입.

‘포식’으로 수정을 씹은 용주는 그대로 수정을 관통하며, 반대편 절벽을 뚫고 들어갔다.

“…….”

지면을 뚫고 올라온 용주는 촉수로 몸을 지탱했다.

용주의 눈동자에 보이는 로지의 모습은.

포식을 적중시키기 전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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