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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335화 (335/357)

335화

“맛있는 냄새가 나는 걸 보니, 그을린 게 맞는데, 음? 그을려?”

뭔가가 떠오른 듯 로지가 손 방아를 찧었다.

“어둠, 물, 불…. 그래. 그런 건가?”

빛 한점 없는 어둠.

그곳에 차 있는 건 당연하게도 전부 물이라고 생각했었다.

날아오는 구체가 공격의 전부라고 생각했었고.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차가움과 뜨거움이 주는 통증은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극저온의 냉수 속 불길.

마치 해류처럼 흐르던 그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던 건 아마 그 때문이겠지.

“물속에 불을 풀어놓다니. 너희 세계 바다는 꽤 재밌는 모습을 하고 있나 보구나?”

수수께끼를 풀었다고 생각한 그때.

안쪽에서부터 찢어지는 고통이 느껴졌다.

대미지의 원인은 소울 터치.

빨판에 딸려 나온 물방울은 용주의 이빨에 사정없이 찢겨 있었다.

“애무가 많이 서툴길래. 내가 좀 알려 줘야 하나 싶었는데. 그럴 필욘 없나 보네.”

“카각!”

기회를 살린 용주는 빙판을 따라 미끄러졌다.

서리 갑피의 효과로 한층 빨라진 속도.

제자리에서 바늘 같은 다리를 빠르게 움직인 로지는 땅을 뚫고 지하로 사라졌다.

촤자자작!

빙판을 뚫고 나오는 얼음 가시.

파도처럼 물결치는 가시 사이를 통과하던 용주는 자리를 박차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누구 마음대로 숨으려는 거냐.’

가벼운 도약에 솟아오르는 단층.

그 속에 똬리를 틀고 있던 로지를 강제로 끄집어낸 용주는 그녀의 돌기 하나를 강제로 물어 찢었다.

“그래. 여긴 네 동화 속 세계였지. 그걸 깜빡했네.”

순식간에 재생하는 돌기.

초록색 진액이 흘러나오는 돌기를 뻗은 로지는 용주의 뒷다리를 휘감았다.

“이번엔 내가 한 입 크게 베어 먹을 차례. 맞지?”

용주의 다리를 뽑아낼 기세로 잡아당기는 로지.

순간적으로 가해진 거친 힘에 용주의 골반에선 나선 안 되는 소리가 났다.

‘누구 마음대로.’

날카로운 꼬리를 퍼 올리는 용주.

로지에게 달려든 용주는 오른손을 힘껏 휘둘렀다.

“피했지롱~.”

용주의 손톱 아래로 미끄러지는 로지.

순간적으로 자신의 벡터를 조작한 용주는 진행 방향과 수직이 되도록 내리 찍혔다.

‘이거… 분명 어디선가.’

로지의 면상에 정통으로 들어간 일격.

등 뒤에서 차륜을 그리고 있던 흑염은 세 마리의 뱀이 되어 로지를 불살랐다.

우지직! 우직!

로지 역시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그때 만났던 인간들 중에서 이렇게 움직이는 인간이 하나 있긴 했었지. 응? 잠깐만, 그러고 보니 꿈을 실체화시킬 수 있는 인간도 있었던 것 같은데.”

용주의 손바닥을 우직우직 씹어먹고 있는 로지의 이빨.

“뭐야? 혹시 너희 인간들도 서로 잡아먹을 수 있는 거야?”

산 채로 잡아먹히는 소름 끼치는 감각을 애써 무시한 용주는 녀석을 그대로 찍어눌렀다.

빙판이 깨지며 나타난 건 영구 동토 아래 잠들어 있던 끈적한 늪.

예리하고 뾰족한 로지의 다리는 하나도 빠짐없이 늪 속에 잠겨 있었다.

‘인스네어.’

그 위로 펼쳐지는 초록 가스.

가스를 뚫고 떨어진 흑염은 상어의 형상이 되어 늪 속을 헤엄쳤다.

다섯 방향에서 동시에 입을 여는 지자메.

돌기를 뻗은 로지는 상어들을 모두 찢어 놓았지만, 영양가는 없었다.

자르고 찢는 대로 잘게 나누어진 상어들은 피라냐 떼가 되어 로지를 덮쳤다.

“흐음~? 이런 걸 숨겨 두고 있었구나?”

로지는 길게 뻗은 돌기를 이용해 빠르게 늪을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돌기가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느리게 느껴졌다.

게다가.

돌기가 닿는 모든 것이 그대로 늪으로 변하고 있었다.

누가 보면 자신이 늪을 만들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내 아래 있는 녀석 중에도 이런 가스를 뿜어대는 녀석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름답지 못하게 말이야.”

용주를 휘어잡으려는 로지의 손.

벡터의 방향을 조작한 용주는 팔과 다리를 사용하지 않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스카이다이빙 동영상을 역재생시켜 놓은 것 같은 그런 모습이었다.

‘사상 최강, 그리고 최악의 오니랬던가.’

고도를 높인 용주는 로지를 내려다보았다.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건 이글거리는 화염.

검은 태양은 종말을 고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어디 그 힘을 보여 보라고. 오타케마루’

윤현이 보여 줬던 최강의 기술.

지면을 향해 내려앉는 태양에 일대의 공간이 뒤틀렸다.

운석이 떨어진 듯 솟구치는 늪과 기화하는 얼음이 만들어 낸 새하얀 수증기.

흑백의 재앙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건 종말의 세상.

움푹 파인 크레이터는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만큼 광활했다.

‘녀석은….’

지면에 내려앉은 용주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육안으로 보이는 무언가는 없었다.

그렇다고 느껴지는 기운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죽었다.

그렇게 단정 지어도 이상할 건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녀석이 이 정도로 끝났을 리 없어.’

퀘스트의 알림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게 확신을 더해 주고 있었다.

녀석 정도의 언노운이 어떻게 이 정도로 완벽하게 존재를 감출 수 있는가.

거기에 대한 의문도 이미 한 번 접해 본 의문이었고.

정답은 얻지 못했지만. 그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

그 순간, 용주에게서 흘러내리는 피눈물.

오른뺨에서부터 왼쪽 뒤통수까지 일직선으로 잘려 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한 용주는 동물적인 속도로 반응했다.

지면을 뚫고 나온 건 날카로운 녀석의 발.

칼날처럼 예리한 일격은 간발의 차로 용주의 머리를 빗겨 갔다.

“멋진 시도였긴 했는데, 거미줄을 칠 거였으면, 조금 더 단단하게 묶어야 하지 않았을까?”

서서히 드러나는 로지의 하반신.

아티스틱 스위밍의 한 장면처럼 유려한 동작을 선보인 로지는 다리 사이에 엮은 새하얀 실타래를 뿌렸다.

“이런 식으로 말이야.”

용주를 사로잡는 실타래.

그물처럼 펼쳐졌던 실타래는 누에의 고치처럼 동그랗게 말려 들어갔다.

총알처럼 날아오른 로지는 고치 위에 올라탔다.

“어딜 찌르면 푹 하고 터질까~? 진액을 한 번 쪽쪽 빨아먹어 보고 싶은데. 아하하핫!!”

마구잡이로 고치를 쑤시는 로지.

“응?”

고치를 아주 누더기로 만들 때까지 같은 행동을 이어 가던 로지는 고개를 갸웃했다.

고치 안엔.

아무것도 없었다.

‘이 세계 자체가 내 공간이란 걸 잊으면 안 되지.’

다른 차원으로 몸을 숨겼던 용주는 로지의 뒤를 잡으며 나타났다.

“그건 아까 보여 줬잖아?”

불을 뿜으며 바람을 가르는 대회전 베기.

사선으로 기동한 로지는 칼날의 사정거리를 벗어났다.

‘그래. 하지만 이건 아니지.’

그 순간.

칼날을 타고 흩뿌려진 검은 깃털들이 총알처럼 쏟아졌다.

“이건…!”

엉망으로 부서지는 로지의 신체.

부서진 로지의 다리들이 나뭇가지처럼 우수수 쏟아졌다.

블랙 페더를 흩뿌린 용주는 블러드러스트 상태로 진입했다.

훨씬 더 단단하고 날카롭게 변한 갑피.

지면을 부수며 폭발적으로 달려 나간 용주의 모습엔 잔상이 남았다.

바람보다 한발 앞서 나가는 용주의 질주.

네 개의 돌기를 길게 뽑아낸 로지는 용주를 정면에서 맞이했다.

‘그냥 정면으로?!’

어떤 식으로든 용주가 반응할 거라고 생각했다.

방향을 틀든.

공간을 뛰어넘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든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용주의 브레이크는 고장 나 있었다.

피할 의지 따윈 애초에 없다.

저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날 너무 우습게 보는 거 아니야?!”

로지의 돌기가 더욱 크고 날카롭게 변이했다.

각기 다른 방향에서 한 점을 향해 질주하는 칼날들.

언홀리 프렌즈로 속도를 더한 용주는 칼날에 정면으로 부딪혔다.

파앙!!

충돌과 함께 진동하는 굉음.

흩뿌려진 로지와 용주의 신체 파편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깔끔하게 드러난 돌기의 단면.

네 개의 돌기 사이를 통과한 용주는 그대로 로지에게 돌진했다.

‘이 녀석 설마.’

남아 있는 두 개의 돌기를 뻗어 입체 기동 하는 로지.

기동이 끝나는 시점에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또다시 움직이는 로지의 움직임은 불규칙했지만, 치밀하게 계획되어 있었다.

스피드라면 자신이 있었다.

이 동선이라면 그 누구라도 따라올 수 없을 거란 확신도 있었다.

그런데.

‘빠르다!’

따돌릴 수 없었다.

저 속도론 절대 불가능한 방향 조절을 녀석은 해내고 있었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녀석의 움직임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마치 저항을 전혀 받지 않고 있는 것처럼.

‘잠깐만.’

그리고 그제야 보이는 한 가지.

용주의 다리 모양이 조금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내 다리를… 모방한 거야?’

무릎 아래의 형태는 아무리 봐도 자신을 베이스로 한 게 틀림없었다.

예리한 곡선을 그린 칼날 형태의 종아리.

지면을 차는 마찰력은 선이나 면이 아닌 점에 가까웠다.

“카각!”

순식간에 코앞까지 다가온 용주의 모습.

로지의 속도를 따라잡은 용주는 그대로 로지를 들이받았다.

“꺄악!”

로지를 관통하는 용주.

맞부딪친 두 사람의 육체가 반파되어 흩날렸다.

“칵…!”

“너… 진심이야?”

떨어졌던 두 사람의 그림자가 또다시 정면으로 충돌했다.

또다시 날아가는 두 사람의 반신.

허공을 차며 위아래를 뒤집은 용주는 그 속도 그대로 돌진을 이어 갔다.

반신이 부딪치며, 반신이 날아가는 스킬.

스킬이라고 말하기도 힘들 정도로 잔혹하고, 몰상식한 이 스킬의 이름은 ‘폭식 분쇄’.

폭식의 여왕을 집어삼키고 손에 넣은 두 가지 스킬 중 하나였다.

블랙 패더를 흩뿌렸을 때, 로지는 그것에 대해 아는 눈치였다.

그렇다면 이 전투법 역시 알고 있을 테지.

폭식과 싸울 때 이미 한 번 경험해 봤을 테니까.

“아름답지 않아. 이런 건 아름답지 않다고!!”

이를 악문 로지가 악에 받친 비명을 내질렀다.

반신이 날아가는 순간 두 사람의 몸은 빠르게 재생하고 있었다.

날아가는 속도를 따라잡을 정도로 엄청난 재생 속도였다.

하지만 같은 충격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두 사람의 재생 속도엔 차이가 생기고 있었다.

“너 뭐야. 설마 부딪치는 것만으로 날 먹고 있는 거야?!”

로지의 재생은 차차 둔화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용주의 재생은 그렇지 않았다.

대미지가 크면 클수록, 날아가는 신체 부위가 많으면 많을수록.

용주의 재생은 더더욱 탄력을 받고 있었다.

내부 에너지를 소모하며 자력 재생을 하는 게 아니라 외부에서 에너지를 강탈하고 있다.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껴졌다.

게다가.

“카칵!”

용주의 움직임을 따라 부패의 가루가 흩날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부딪칠 때마다 부패는 자신을 좀먹고 있었다.

보통의 녀석들이었다면, 이미 썩어 문드러져 가루조차 남기지 못했을 거다.

‘내가 진다고?’

본능적으로 든 생각이 또 하나 있었다.

이대로 있다간 당하는 건 이쪽일 거란 불안감.

폭식의 여왕 ‘올리비아’와 싸웠을 때도.

카일론과 싸웠을 때도.

쥬다스와 싸웠을 때도.

느껴보지 못했던 그런 감각이었다.

눈앞에 있는 건 자신들도, 그렇다고 인간도 아닌 무언가.

설명할 수 없고, 정의할 수 없는 말 그대로의 ‘언노운’이었다.

“인정할 수 없어. 인정할 수 없다고.”

자신이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를 인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로지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해도 당장의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부패의 기운을 두른 용주는 전속력으로 부딪쳐 왔고, 더뎌진 재생에 처음으로 반신 이상이 한꺼번에 날아갔다.

“크윽!”

전신을 강타하는 강렬한 통증.

미간을 구긴 로지의 머릿속에 불현듯 무언가 떠올랐다.

“그래~ 그렇게 하면 되겠다. 내가 왜 그 방법을 생각 못한 거지? 녀석이 나를 계속 먹는 거면 못 먹게 하면 되는 거잖아.”

지금까지만 보면 그건 불가능한 말처럼 보였다.

들이박는 저 끔찍한 행위는 로지의 움직임을 한 수 앞서 있었으니까.

하지만 상처가 회복되고 있다고 해서 용주의 상태가 온전한 100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었다.

눈동자에 깃든 광기는 점차 선명해지고 있었고, 마나는 빠르게 고갈되고 있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도 자신을 극한까지 몰아세우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럼 답은 간단하지 않은가.

“그 전에….”

방향은 정했다.

그럼 그렇게 하기 전에 해야 할 게 하나 있었다.

“반신이 부딪치면, 반신이 날아간다. 아름답지 못한 방법이라 정말 싫어서 그렇지. 나도 할 줄 모르는 건 아니라고.”

폭발하듯 요동치는 로지의 마나.

일순간 모든 신체를 재생시킨 로지는 머리를 제외한 모든 신체 부위를 머리 안쪽으로 회수했다.

“반신이 아니라, 죽기 직전까지 날려 보자고. 그 잘난 재생력도 나한텐 안 된다는 걸 보여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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