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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329화 (329/357)

329화

* * *

길게 이어진 복도.

홀을 몇 개나 지난 용주의 눈에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다 어디 갔지?”

홀에 들어선 수지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문을 부서져 있었다.

그런데 용주가 먼저 보냈던 언노운들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 너무 비정상적으로 큰 것 같지 않아?”

천장의 높이와 방의 크기.

어느 쪽으로 봐도 비정상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내부 구조가 있었다면, 밖에서 봤을 때도 분명 티가 났을 텐데, 건물의 외형에서 이상은 느끼지 못했었다.

“안쪽에서 바깥과는 다른 무언가를 느꼈었다. 아마 그 일종이겠지.”

한 발 앞선 용주가 손을 뻗었다.

더 이상 다가가지 말라는 용주의 손짓에 수지는 용주를 바라보았다.

“저 앞에 보이지?”

“저기 수북이 쌓인 가루 말이지?”

“그래. 저게 먼저 보냈던 언노운들이다.”

“저게?”

수지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만한 숫자를 이렇게 단시간에 정리했다면, 뭔가가 있다는 소리였지만, 눈에 보이는 풍경은 평범하디평범했다.

언노운은 물론이고, 생명체라고 할 만한 무언가는 느껴지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걸까?”

“뭔가 있는 거겠지. 여기에.”

비밀의 방.

거기에 비하면 여기엔 그렇다 할 무언가는 없었다.

피라미드라든가, 석판이라든가, 조각이라든가.

그런 것들 말이다.

대신, 벽 전면에 커다란 거울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특이점이라 할 만한 건 그것뿐이었다.

“거울이 엄청 많네. 응?”

용주를 따라 거울로 다가간 수지가 고개를 갸웃했다.

거울엔.

자신들이 비치고 있지 않았다.

“아무것도 안 비쳐. 우리 세계의 거울이랑은 다른 걸까?”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

용주가 턱을 괴었다.

창문은 하나도 없었다.

바깥 풍경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다른 곳으로 이어진 길 역시 보이지 않았다.

제법 그럴듯한 추측이었다고 생각했는데, 헛다리를 짚은 건가?

“옛날옛날 아주 먼 옛날에. 아름다운 공주님이 살았답니다.”

!

갑작스럽게 들려온 낯선 여성의 목소리.

놀란 용주가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거긴 아무도 없었다.

“목소리? 혹시 이게 로지란 사람의?”

“그래….”

이건 녀석의 목소리가 확실했다.

역시 녀석은 여기 있었다.

그런데 대체 어디에….

“공주님은 아름다웠지만, 전혀 즐겁지 않았어요. 왜냐면 아름다움을 질투한 못된 왕비가 그녀를 탑 안에 가뒀거든요.”

또다시 들려오는 로지의 목소리.

검을 뽑아 든 용주는 사주를 경계했다.

뭔가가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무슨 속셈인진 몰라도.

“닥치고 나오기나 하시지.”

용주의 양손에 모여드는 혈사포.

사방으로 사출된 혈사포는 위협적이었지만, 무엇 하나 파괴하거나 망가뜨리지 못했다.

“이 정도론 꿈쩍도 없단 거냐.”

피어오르는 흑염.

‘야마타노오로치.’

머리가 여덟 개 달린 뱀은 저돌적으로 날뛰었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그을음 하나 남기지 못한 야마타노오로치는 그렇게 사라졌다.

“탑 안엔 창이 하나도 없었답니다. 공주는 낮도 밤도, 하늘도 구름도 보지 못했어요.”

로지의 목소리에선 어떠한 변화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조금 전 소란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이런 방법으론 안 되는 건가.’

뒤를 돌아본 용주는 자신들이 들어왔던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꼭 동화책을 읽어 주는 것 같아.”

말투나 어투.

그런 것들 모두가 그런 느낌이 들게 했다.

“그래. 그렇지만 동화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닐 거다. 비밀의 방에서 봤던 이야기 기억하고 있지?”

“응.”

조용히 은장도를 꺼내 든 수지가 눈동자를 굴렸다.

점자로 적혀 있던 일련의 사건들.

그건 전부 실현되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 갔었다.

만약 이게 그것과 비슷한 것이라면, 마냥 기분 좋게 듣고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공주 앞에 괴물이 나타났답니다. 아주 못생기고 포악한 괴물이었어요.”

쾅!!!

로지의 내레이션이 끝남과 동시에 거대한 폭발이 두 사람을 덮쳤다.

천장을 뚫고 떨어진 건 이족 보행 타입의 언노운.

그것도 초고도 비만의 언노운이었다.

“냄새….”

코를 찌르는 악취에 수지가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몇 년 동안 방치된 공중화장실에 썩은 식초와 계란을 뿌려 놓은 듯한 그런 악취였다.

‘일단은 어울려 주는 수밖에 없는 건가.’

“내가 처리하지.”

룬검을 뽑아 든 용주가 폭발적으로 달려 나갔다.

지지직!

피뢰침처럼 우뚝 솟은 날개뼈에 모여드는 입자의 흐름.

언노운이 쏟아 낸 파동은 구의 형태로 날아들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용주의 왼손.

부분 광폭화로 신체를 강화한 용주는 구체를 맨손으로 쳐 냈다.

타다닥!

지면을 할퀴는 녀석의 팔을 타고 오르는 용주.

온몸에 난 작은 분비샘에서 나오는 체액은 마치 늪처럼 용주의 발목을 붙잡으려 했다.

‘그 정도론 붙잡을 수 없을 거다.’

일자로 일어나는 불길.

흑염 속에서 솟아오른 지네, 오오무카데에 올라탄 용주는 단숨에 어깨를 뛰어넘었다.

꾸륵~! 꾸르륵!

괴성과 함께 날아가는 언노운의 머리.

단칼에 몸과 머리를 분리시킨 용주는 마주 보고 떨어지는 머리를 향해 한 번 더 검을 휘둘렀다.

풍참에 여러 조각으로 찢겨 나가는 머리.

땅에 떨어진 언노운의 눈알은 질척한 소리를 내며 터져 버렸다.

“깜작 놀란 공주는 괴물들을 먹어 치웠답니다. 아주 맛있었죠. 그런 맛은 생전 처음이었어요.”

사라지는 언노운의 유해.

“괴물이 나타나면 먹어 치우는구나. 이 세계의 공주는 강하네.”

“…….”

수지의 놀라운 감상평에 용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태평하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다니.

뭐, 그런 게 녀석답긴 하지만.

“공주는 생각했어요. 밖에 나가면 이렇게 맛있는 게 있는 건가? 이런 걸 배 터지게 먹을 수 있는 건가? 그래서 공주는 결심했어요. 이 탑을 나가야겠다고.”

내레이션이 끝나자 방에 한 가지 변화가 나타났다.

입구와 반대되는 방향에 문이 하나 생겨 있었다.

“저기로 오라는 것 같은데?”

“그래. 그런 것 같군.”

앞장선 용주가 먼저 문을 열었다.

눈을 뜨기 힘들 정도의 바람과 함께 변화한 풍경은 이곳을 전혀 다른 풍경으로 바꾸어 놓았다.

눈앞에 있는 건 일자로 뻗은 외길.

길의 곳곳엔 사람만 한 가시가 우뚝 솟아 있었다.

“신기하네. 여기.”

갑자기 멀어진 수지의 목소리.

고개를 든 용주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수지는 거기 거꾸로 서 있었다.

“거꾸로 서 있으면, 피 쏠리지 않아?”

“거꾸로 서 있는 건 네 쪽인 것 같은데.”

“응? 그래? 그치만 내가 보기엔 아무리 봐도 네가 거꾸로 있는데.”

‘무슨 속셈인 거지.’

위아래가 뒤섞인 공간.

그건 러스트의 내면 세계에서 한 번 경험해 본 적 있었기에 그렇게 생소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역시 녀석의 목적을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단순히 침입자를 처리하기 위한 방법이라면, 이것보다 효율적인 방법이 훨씬 많을 텐데.

녀석은 이걸로 뭘 얻고 싶어 하는 거지?

“탑의 정상을 내려온 공주는 생전 처음 보는 이상한 공간을 마주했어요. 왕비가 만들어 둔 첫 번째 함정이었죠.”

‘탈출을 막기 위한 함정이라고?’

“수상한 인기척에 고개를 든 공주는 천장을 올려다봤어요. 또 다른 자신이 자신을 보고 있었죠. 공주는 손들어 보았어요. 반대편 공주도 똑같이 손을 흔들어 주었죠.”

내레이션을 듣던 용주는 왼손을 들어 보였다.

수지 역시 똑같이 왼손을 들고 있었다.

“응?”

자신의 손을 바라본 수지가 고개를 갸웃하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이 방엔 한 가지 규칙이 있는 것 같다.”

“규칙?”

“그래. 우리 두 사람의 움직임이 하나로 묶여 있는 것 같아. 이번엔 네 쪽에서 한번 움직여 보지 그러냐.”

“응. 알았어.”

두 발을 가지런히 모은 수지가 제자리에서 폴짝 뛰어 보였다.

똑같은 자세를 취한 용주 역시도 정확한 타이밍에 동시에 땅에 착지했다.

“뭔가 신기한 느낌이네. 그 오우거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이런 느낌이시지 않았을까?”

“…….”

수지의 상상은 엉뚱하게 들렸지만, 한편으론 상당히 일리가 있게 들렸다.

뭐.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만 말이다.

“근데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아까처럼 처리해야 하는 적도 안 보이고.”

“반대편에서 시작하는 길이고, 다른 출구가 없다면, 중앙에서 만나라는 뜻이겠지.”

용주가 방 중심부에 있는 연등을 가리켰다.

“목표는 아마 저기 도착하는 걸 거다.”

“응. 그렇구나. 척하면 척이네.”

“뭐, 그냥 감이지.”

이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침착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그동안 퀘스트 게이트에서 겪었던 사건들 덕분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당연하단 듯 생각할 순 없었을 테지.

“잠깐 거기 있어 봐. 그래도 혹시 모르니.”

용주의 손에 모여드는 페이탈 블러드.

맹렬한 바람을 일으키며 뻗어 나가던 구체는 1층과 2층의 경계면에 닿자마자 사라져 버렸다.

“여기서도 여기 룰을 지켜야만 하나 보네.”

“그래. 그런가 보네. 천천히 움직여 볼 테니, 한번 맞춰 봐 줄래?”

“응. 가만히 있을 테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해봐.”

수지의 동의를 얻은 용주는 첫 번째 가시로 다가갔다.

수지의 앞에도 마찬가지의 가시가 있었다.

“있잖아!”

“왜?”

“그 앞에 가시 두 개라고. 혹시나 해서.”

“두 개라고?”

아까 수지와 함께 도약했을 때 이 앞 가시의 배치는 대략 파악해 뒀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첫 번째 가시는 분명 하나였었다.

‘특정 거리로 다가가야만 나타나는 가시가 있다는 건가?’

가시의 배치는 대칭을 이루고 있지 않았다.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신경 쓸 게 더 있는 모양이다.

숨겨진 가시가 있었다면….

어쩌면 그 이상의 무언가도 숨겨져 있을지도.

‘그런 거면 조금 더 신중할 필요가 있겠어.’

뒤로 한 걸음 물러난 용주는 제자리에서 가볍게 뛰어올랐다.

공중을 밟고 이어지는 2단 점프.

수지에겐 그런 재주가 없었지만, 수지 역시도 용주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다.

그 정도는 여기서 허용한 법칙인 모양이다.

“혹시 뭔가 있으면 바로바로 말해 줘. 선조치해도 상관없고. 몸 하난 튼튼하니 걱정 안 해도 돼.”

“응. 알았어.”

앞과 위.

두 군데에 동시에 신경을 쓴 용주는 첫 번째 가시를 뛰어넘었다.

이어서 보이는 두 번째 가시 역시 뛰어넘은 용주.

안정적으로 착지에 성공한 용주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이 앞은 자신에겐 평지였지만, 수지에겐 가시가 있는 곳.

평지를 뛰어넘은 용주는 그대로 1층을 주파했다.

한 걸음 한 걸음을 신중했지만, 그 속도는 결코 느리지 않았다.

머리 위를 가로막는 발판.

2D 게임에선 캐릭터의 점프가 이런 발판을 넘어간다고 수지가 그랬지만, 이곳의 규칙은 그렇지 않았다.

허공을 디딘 용주는 한 땀 한 땀 발판을 올랐다.

이제 2층.

한 층만 더 올라가면, 연등이 있는 중심부였다.

“뭔가 특별한 건?”

“음~ 아직까진 딱히 없는 것 같아.”

2층에 들어선 용주는 마찬가지로 가시를 뛰어넘었다.

그때.

“!”

천장에서 솟아오른 가시가 수지를 향해 직행하는 게 보였다.

‘발판이 있으면 위론 통과하지….’

거기까지 생각했던 용주가 급하게 뒤로 물러났다.

물을 가르듯 발판을 뚫고 솟아오른 가시는 수지와 불과 5cm 간격을 둔 채 지나가고 있었다.

‘지나갈 수 있는 거냐.’

“괜찮아?”

작게 숨을 내쉰 용주가 물었다.

위로는 올라갈 수 없다.

그 법칙에 적용받는 건 아무래도 자신들뿐인 모양이다.

“응. 근데 난이도가 더 높아진 것 같은데.”

“괜찮아. 이 정돈.”

용주는 일부러라도 더 자신감을 보였다.

그래야 수지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을 테니까.

“응. 응?”

고개를 끄덕인 수지가 뭔가를 발견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왜? 무슨 일이라도….”

용주의 말을 기다리지도 않고 움직인 수지는 조금 전 올라왔던 발판 위로 뛰어내렸다.

“!”

그 순간, 용주의 머리 위를 지나가는 밝은 섬광.

놀란 용주의 눈동자가 섬광의 진원지를 찾아 내려갔다.

자신에겐 전혀 보이지 않던 시야의 사각.

섬광을 쏜 건 회전하는 정사각형의 큐브였다.

‘내가 지나오고 그 뒤에 생긴 장치가 있었다고?’

마름모를 그리고 있는 큐브의 바닥은 딱 그만한 홈이 생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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