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8화
* * *
“여기가 로지라는 사람이 있는 곳이란 말이지?”
포탈의 반대편으로 나온 수지가 물었다.
두 사람이 있는 곳은 하늘이었다.
그것도 빨간 구름 위.
“그런데 차원 압력은 괜찮은 걸까? 그 정도로 강한 언노운이 있는 곳이면 차원 압력도 S급 이상일 것 같은데.”
“걱정하는 타이밍이 너무 늦는 거 아니냐.”
아래를 살피던 용주가 핀잔을 주었다.
“음~ 그런가?”
“괜찮을 거다. 이상이 생겼을 거면 벌써 생겼을 테니.”
말은 그렇게 했지만, 용주라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차원 압력에 대한 고려는 포탈을 넘기 전부터 했다.
용주가 괜찮을 거라 결론 내린 건 비상하는 카일론을 봤을 때.
바람에 섞인 부패의 기운은 수지를 훑고 지나갔었다.
그건 분명히 의도된 행동.
녀석이 뭔가 조치를 취했다면, 괜찮을 거다.
“그것도 그렇네.”
‘혹시나 하는 상황이 생기면 내 쪽에서 선조치할 거고 말이야.’
자신과 달리 수지의 상태는 온전하지 못했다.
상처야 없다지만, 그 외의 것들은 휴식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녀석에게 짐을 지게 할 생각은 없었다.
녀석이 마음대로 한 것처럼.
자신도 언제든 마음대로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움직이자. 여기서 오래 꾸물거려 봤자. 좋을 게 없으니.”
카일론과 쥬다스.
둘의 결전도 그렇지만, 여기 오래 머물수록 발각될 가능성이 높아질 거다.
헌터의 기운은 녀석들에게 있어 이질적인 기운일 테고, 그게 아니더라도 이만한 기운을 풍기는 자가 근처에 나타난다면 의심을 하는 게 당연할 테니까.
“꽉 잡아라. 착지는 이쪽이 알아서 할 테니까.”
거두절미하고 수지를 들어 올린 용주가 이야기했다.
높이는 대략 자기장의 땅으로 떨어질 때 정도.
내던져지듯 버려진 그때에 비하면 상황은 오히려 나아졌다고도 볼 수 있었다.
“응.”
망설임 없이 뛰어내린 용주는 속도에 몸을 실었다.
‘녀석이 보여 줬던 요새의 모습. 녀석이 아무 생각 없이 그걸 보여 주진 않았을 거야.’
하나부터 열까지 말로 설명해 줬으면 더 좋지 않았겠냐는 불만도 있었다.
그만큼 중요한 순간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녀석의 불친절함이야 이미 익숙했다.
눈치껏 알아서 하는 건 이미 학습되어 있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용주는 요새의 곳곳을 살필 수 있었다.
기습의 이점을 살리기 위한 최적의 전술.
적어도 그건 정면을 부수고 들어가는 건 아닐 것이다.
지금 해야 하는 건 일종의 잠입.
그것도 이 요새의 주인을 최단 시간에 암살해야 하는 미션이었다.
‘북쪽의 별채를 이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
망각의 요새는 붉은 사막에서 격파했던 요새와 제법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었다.
중심이 되는 요새를 다른 요새들이 감싸고 있는 그런 구조 말이다.
하지만 그중 북쪽에 있는 작은 요새는 다른 것들과는 상태가 달랐다.
오랫동안 방치된 듯 보였던 그곳은 이곳에서도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곳을 이용하면 상대적으로 눈에 띄지 않게 내부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
마치 폭군의 저택에 잠입할 때 별채를 이용했던 것처럼.
‘그리고 하필 여길 출구로 설정해 놓은 것도,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고.’
하지만 거기엔 필연적으로 시간이 소모될 수밖에 없었다.
시간제한이 있던 퀘스트라고 생각한다면, 리스크 있는 도박에 거는 게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할 수 있었다.
‘카일론의 왕좌는 요새의 가장 높은 곳에 있었지.’
카일론과 비슷한 힘을 가진 자라면 발견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밖에서는 녀석의 위치를 특정해 낼 수가 없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이 안쪽을 가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첫 번째에 맞으면 베스트, 그게 아니라면…. 플랜 B로 넘어가는 수밖에.’
벡터를 등에 업은 용주는 그 속도 그대로 하늘을 날았다.
두 사람이 떨어진 곳은 요새의 정중앙.
벡터를 조작한 용주의 강하는 어떤 소리도, 흔적도 남기지 않고 요새 지붕을 날려 버렸다.
“음~ 이상하네. 우리 분명 안쪽으로 들어오지 않았어?”
땅을 발을 내려놓은 수지가 물었다.
수지의 눈앞에 있는 건 광활하게 펼쳐진 정원이었다.
아무리 봐도 실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비주얼이었다.
“안쪽으로 들어온 건 맞아. 단지 안쪽이 우리 상식이랑 다른 것뿐이지.”
로지가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
적어도 용주는 여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꽝인 모양이다.
‘안쪽으로 들어왔는데도 녀석이 느껴지지 않잖아. 자리를 비우기라도 한 건가?’
직접 마주하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녀석의 위치를 특정해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 특별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자기 목숨을 건 도박이야. 녀석이 그렇게 대충 위치를 잡진 않았을 거야.’
로지가 여기 없다.
그 가능성을 제거하면 남은 가능성은 하나뿐이었다.
녀석도 수지처럼 방출하는 기운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
그럼 이쪽에서 취해야 할 수는….
“있잖아. 저기 바위가 굴러오는데?”
생각에 잠긴 용주에게 수지가 이야기했다.
“평지에서 바위가 구를 수도 있나?”
수지가 가리킨 곳에선 정말 바위가 굴러오고 있었다.
그것도 족히 3m는 넘는 크기의.
“…바위가 아니야.”
데굴데굴 굴러온 바위는 이내 여덟 개의 다리를 펼쳤다.
위협적인 소리를 내는 거미들.
바위의 정체는 언노운이었다.
“이렇게 큰 개체는 처음 봐.”
날카로운 독니를 드러낸 언노운들이 앞다리를 치켜들었다.
송곳처럼 내리꽂히는 앞다리 털.
털에 묻은 독성은 대지를 촉촉하게 적셨다.
‘이렇게 되면 플랜 B로 넘어가는 수밖에.’
부패하기 시작하는 용주의 입.
물어뜯기를 사용한 용주는 무리 사이로 뛰어들었다.
일격에 잘려 나가는 여덟 개의 다리.
거미의 머리를 사정없이 물어뜯은 용주는 다른 언노운들을 도륙해 나갔다.
풍참 한 방에 찢긴 다리가 하늘을 날았고, 이빨에 찢긴 머리가 땅을 굴렀다.
날아든 털 몇 가닥이 용주의 다리에 박혔지만, 용주의 움직임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흑염으로 지진 털은 힘없이 사라졌고, 맹독 역시 용주의 힘에 중화되었다.
용주에 의해 쓰러진 언노운 중 일부는….
그 온전하지 못한 몸을 이끌고 다시 일어났다.
좀비가 된 언노운들은 그 규모를 점차 불려 나가고 있었다.
“안 싸우고 그냥 조용히 넘어가려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나 보네.”
용주의 전투를 지켜보던 수지가 뒤를 돌아보았다.
뒤쪽엔 잔뜩 찌그러진 식물 하나가 아등바등 발버둥 치고 있었다.
정원을 채우고 있던 식물들 역시 언노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는 사냥꾼들이었다.
“그럼 나도.”
주먹을 움켜쥔 수지가 언노운의 머리를 깨부쉈다.
격파된 수박처럼 사방으로 튀는 체액.
두 사람의 난동에 정원은 금세 고요함을 되찾았다.
* * *
“엄청 많이 늘어났네. 응. 게이트 한 10개 치는 되겠어.”
언노운 좀비 무리를 본 수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제부턴 어떻게 할 거야?”
“이 정도 소란에도 나타나지 않는다면, 좀 더 크게 날뛰는 수밖에 없겠지.”
“이이제이. 그러니까 지금처럼 규모를 조금씩 늘려가는 거야, 그럼?”
“그럴까도 생각했는데, 어중간하게 수를 늘리는 것보다 더 좋은 수가 생각났어.”
“더 좋은 수?”
“그래. 그러니까 여기 얌전히 있어. 금방 돌아올 테니까.”
광폭화 상태로 들어간 용주가 떨어졌던 돔 위로 뛰어올랐다.
용주의 힘을 감지한 일부 언노운들이 날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방과 인간을 합성한 모스맨과 유사하게 생긴 녀석들.
녀석들을 마주한 용주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카일론에게 사신형 언노운들이 있다면, 저건 로지에게만 있는 특수 개체.
거대한 날개 아래로 번뜩이는 붉은 안광은 섬뜩할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미안하지만 한발 늦었어.’
펼쳐지는 여섯 개의 꼬리.
힘을 집중시킨 에스카톤 저지먼트는 일직선의 풍경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바람에 찢긴 잔해가 나뭇잎처럼 흩날렸고, 충격에 문드러진 언노운들이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푸드득!
재빠른 선회 비행을 펼친 모스맨들은 사방으로 찢어졌다.
하지만 그건 찰나의 순간일 뿐이었다.
갑작스럽게 몸을 잡아당기는 힘에 고도와 방향을 잃는 언노운들.
그들의 벡터에 약간의 장난질을 한 용주는 원을 그리며 주변의 모든 것을 날려 버렸다.
‘카일론이 그려 줬던 재의 성. 여긴 로지가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장소이자, 일대를 날려 버릴 최적의 장소. 거기다가….’
대지를 찢은 에스카톤 저지먼트에 포탈 하나가 소멸했다.
녀석이 보여 줬던 모래성은 작지만 디테일했다.
별채의 훼손까지 표현되어 있었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
그리고 그 속엔 여러 개의 포탈 역시도 표시되어 있었다.
워낙 작은 디테일이었기에 놓치기 쉬운 것이었지만, 용주는 놓치지 않았다.
저걸 전부 날려 버리면 이곳으로 오는 지원도.
이곳에서 나가는 지원도 전부 끊긴다.
그게 용주가 생각했던 플랜 B.
용주가 첫 기습의 장소로 여길 선택한 데에는 그런 이유도 포함되어 있었다.
목격자가 없으면 그게 기습.
붉은 사막에서 무기고를 털었을 때 사용한 적 있던 방법이었다.
“라이덴.”
광폭화를 해제한 용주의 곁에 번개가 내리꽂혔다.
주변의 풍경은 완전히 황폐화되어 있었다.
남은 건 중심이 되는 성채 하나.
그렇게 큰 소동이 일어났는데도 로지는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
“일대를 봉쇄해라. 개미 새끼 하나 나가지 못하게 해.”
번개와 함께 라이덴이 사라지자 일대를 감싸는 자기장이 형성되었다.
* * *
“있잖아. 혹시 여기 없는 건 아닐까?”
길게 이어진 복도를 거닐던 수지가 물었다.
정원을 빠져나와 마주한 성채 내부는 의외로 굉장히 따뜻한 분위기의 목조로 되어 있었다.
아름다운 등이 불을 밝히고 있었고, 마음을 진정시키는 나무 향기가 은은하게 났다.
그 소란이 있었음에도 성채는 고요했다.
마치 이곳엔 아무도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로지는 물론이고, 작은 언노운 하나까지도.
“그 정도 소란이었는데, 안 나오는 게 더 이상한 것 같아.”
“…….”
수지의 말이 백번 맞았다.
반박할 근거는 자신에게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결론짓고 싶지 않았다.
녀석을 처리하지 못하면, 다음으로 갈 수 없었다.
“침소에 뭔가 있단 이야기도 있었지? 그럼 우선 거기부터 찾아보는 건 어때?”
“…그래. 나쁘지 않은 생각이네.”
“그럼 일단 저쪽으로 가보자.”
수지가 다른 쪽 복도를 가리켰다.
방향으로 치면 북쪽.
폐허에 가까웠던 버려진 요새가 있던 방향이었다.
“왜 하필?”
“여자의 감…은 아니고. 왠지 그럴 것 같았어.”
“차라리 여자의 감이라고 하지 그러냐.”
용주가 퉁명스레 이야기했다.
“침소는 가장 편하고, 좋은 자리잖아? 그치?”
“뭐… 인간의 기준으론 그렇겠지.”
“창밖으로 가장 좋아하는 풍경이 보이면 더 좋고. 그치?”
“뭐… 나쁠 건 없겠지. 근데 그게 지금 이거랑 무슨 상관인 거냐.”
“망각…. 로지란 이름은 그런 뜻이랬지?”
“그래.”
“그럼 잊힘을 상징하는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풍경이 뭐일 것 같아?”
“뭐?”
“좋아하는 풍경 말이야. 눈을 떴을 때 보고 싶은 풍경.”
“…….”
용주로선 수지의 말의 의도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 녀석 대체 무슨 생각을….
“난 말이야, 잊힌 풍경이라고 생각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풍경. 북쪽의 요새가 버려져 있던 건 혹시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
“게다가 침소는 조용한 게 좋잖아. 누가 훔쳐볼 염려도 없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논리인가 싶었다.
하지만 딱히 반박할 수는 없었다.
“잊힌 풍경이라….”
북쪽의 요새가 그런 모습을 하고 있던 것도.
침소의 방향이 어디인가 하는 것도 용주는 설명할 수 없었다.
어쩌면, 수지이기에 생각할 수 있는 이 생각이.
혼자였다면, 절대 하지 못했을 이 추측이.
정답에 가장 근접한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