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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327화 (327/357)

327화

“이제 안 보이네.”

완전히 사라져 버린 서윤의 목소리.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지가 흔들던 손을 내렸다.

“잘 도착했겠지?”

“그래. 별일 없을 거다. 저쪽은 이안이 알아서 하고 있을 테니까.”

같은 곳을 보고 있던 용주가 고개를 돌렸다.

퀘스트 게이트의 녀석들 역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것 역시 그자가 봤던 미래의 조각인가.”

카일론이 흥미롭단 듯 수지를 내려다보았다.

“계승자의 숨결을 나눠 받은 자라. 그 작은 바람이 어떤 태풍으로 이어질지 궁금하구나.”

“넌 지금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알고 있는 거냐?”

“너를 내 세계에 불러들일 수 있던 것, 너의 세계에 내가 손을 댈 수 있던 것, 나의 세계에 저 여자가 들어올 수 있던 것, 그리고 너의 법칙에 예외가 생긴 것, 현상은 다르지만 뿌리는 모두 같지.”

“쉽게 말해라. 돌려 말하지 말고.”

“너의 죽음은 나로 인해 거부당했다. 그리고 저 여자의 죽음은 너로 인해 거부당했지. 넌 내가 벼려 낸 검이자 계승자란 이름의 ‘이레귤러’다.”

“이레귤러라고….”

불규칙한, 변칙의, 이례의. 은밀한, 비밀의.

이레귤러(irregular)라는 단어의 뜻은 대략 그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여자 역시 이레귤러라고 할 수 있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근원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았단 것, 그리고….”

용주를 바라본 카일론이 잠시 뜸을 들였다.

“행동의 목적과 의지가 달랐다는 것. 그 정도겠지.”

용주의 죽음은 다분히 의도되고 계획된 것이었다.

자신이 용주의 생명을 연장시킨 것 역시 자신의 계획과 필요를 위해서였다.

거기에 담긴 마음이나 감정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이 둘의 경우는 달랐다.

필사적인 간절함.

처절할 정도의 비통과 슬픔.

삼켜 낸 감정과 쏟아 낸 진심.

자신에겐 없던 것들이 이 둘 사이에는 있었다.

“그럼 이것도 다 그때 그 키스 때문이란 거네. 그치?”

용주를 빤히 본 수지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래, 뭐….”

“그럼 넌 날 여자로 만들어 준 게 아니라, 이레귤러로 만들어 준 거네.”

“…….”

그녀의 평온한 얼굴에 불편함을 보인 용주는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장난인지 진심인지 모르기에 뭐라 말하기가 더 껄끄러웠다.

“그래서~ 처리해야 하는 뒷정리라는 건 뭐야?”

뒷짐을 진 수지가 물었다.

“복수. 한마디로 정리하면 그렇게 되겠지.”

책임이라고 표현할까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그것보단 역시 이게 더 적절한 표현일 것 같았다.

“음~ 그렇구나. 그럼 역시 부모님에 관한 거겠네.”

“그래.”

“좀 더 구체적으로는?”

“이 녀석이 언노운이란 이야기는 했었지?”

용주가 카일론을 곁눈질했다.

“응. 그랬지.”

“이 녀석과 같은 개체가 둘 더 있다.”

“같은 개체란 건 힘이랑 생김새를 말하는 거지?”

용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러고 보니까 이름도 못 들은 것 같네. 안수지. 그쪽은?”

“…카일론. 그렇게 부르면 된다.”

카일론이 퉁명스레 대답했다.

“카일론….”

수지가 그의 이름을 읊조렸다.

분위기나 말투.

그런 게 왠지 용주랑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들 말로는 ‘부패’라는 뜻이라더군.”

“음~ 그렇구나. 그럼 네 입이 그렇게 변했던 것도 그런 영향이었겠네.”

“뭐… 그렇겠지.”

“음. 좀비 헌터란 이명이랑 엄청 딱 맞아떨어졌네. 마치 누가 그렇게 될 걸 알고 붙여 놓은 것 같아.”

우연치곤 상당히 퍼즐이 잘 맞아떨어진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명을 처음 붙여 준 사람이 누군지 알 수만 있다면, 가서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뭐, 아무튼. 지금부터 할 건 나머지 둘. ‘죽음’과 ‘망각’을 처리하는 거다.”

“둘이란 말이지.”

“그래. 그렇게 하면, 아마 더 이상 카오스 게이트로 고생하는 일도 없을 거다.”

“카오스 게이트는 자연재해의 일종이라고. 그렇게들 말하는데. 그렇지도 않은가 보네.”

“지금까지 우리 세계에 열렸던 카오스 게이트. 그건 말하자면 녀석들의 침략 전쟁의 일종의 교두보였다.”

“침략 전쟁? 교두보?”

“자기 세계를 평정한 강자들이 다른 세계로 눈을 돌린 거지. 더 강한 힘을 가진 언노운들이 차원을 넘기 위해선 그만큼 더 많은 것들이 필요한 거고.”

“상위차원의 게이트가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가 그거였나 보구나.”

“그래.”

고개를 끄덕인 용주는 카일론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주었다.

“배신자. 음~ 그쪽 입장에선 그렇지만, 우리 입장에선 영웅인 셈이네.”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수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아무튼. 그래서 이제부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둔 방법은 있는 건지 이야기를….”

“있잖아.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걸 빼먹지 않았어?”

카일론에게 돌아간 대화의 중심을 수지가 도로 가져왔다.

“중요한 거?”

“응. 그 둘을 쓰러뜨리면, 내가… 아니, 우리가 잃어버린 기억이 다 돌아올까? ‘영웅’이라면 또 있잖아.”

“…그래.”

용주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신보단 소망에 가까운 이야기였지만, 지금은 그거면 충분했다.

“그럼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장소를 바꾸지.”

카일론의 손짓을 따라 일대의 풍경이 변화해 갔다.

세 사람이 있는 곳은 잿빛 성채의 정상.

배신자들의 왕좌였다.

“여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 세계는 그 모습 그대로 있으니.”

걸음을 옮기는 카일론의 곁으로 세계석 하나가 날아들었다.

다른 것들보다 유독 크고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세계석이었다.

카일론의 등장과 함께 왕좌를 지키던 수백의 사신형 언노운들이 날아올랐다.

그들을 따라 비상하는 수십, 수백 종류의 언노운들.

“사신형 언노운. 그리고 저쪽은….”

잠깐이지만 익숙한 개체들이 꽤 많았다.

A급 언노운들.

그중에서도 비행 능력이 있는 개체라면 거의 다 모아 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메뚜기떼처럼 이동하는 그들을 따라간 수지는 깎아내리는 절벽 끝에 섰다.

수지의 눈동자에 비치는 또 다른 절경.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건 셀 수도 없이 많은 언노운들이었다.

군세를 이룬 언노운의 물결은 같은 곳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언노운들이 마치 군대처럼.”

“녀석들은 내 휘하에 있는 녀석들이다. 오랜 전쟁으로 지금은 내 권세도 많이 줄었지. 잃어버린 영토도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고개를 돌린 수지의 눈에 다수의 카오스 게이트가 보였다.

언노운들은 그곳을 통해 이쪽으로 집결하고 있었다.

“언노운과 언노운의 전쟁. 보이지 않는 곳에선 이런 싸움도 벌어지고 있었구나.”

배신자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게 확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많은 카오스 게이트를 접해 온 수지였지만, 이렇게 많은 수의 대군은 처음 봤다.

“우리의 최종 목적은 ‘죽음’을 치는 것이다.”

용주에게 시선을 고정한 카일론이 이야기했다.

“망각은?”

“로지는 쥬다스에게 닿기 위해 밟아야 하는 중간다리. 최종 결정권을 쥐고 있는 건 녀석이다.”

“그래도 상대해야 하는 건 변함없을 텐데.”

“그래. 하지만 그 과정엔 차이가 생기지.”

가볍게 휘저은 카일론의 손짓 한 번에 부패의 기운이 퍼져 나갔다.

마치, 모래성을 쌓아 놓은 듯 쌓아 올려진 것은 이 성채와 주변 지형이었다.

“죽음을 치기 위해선 우선 두 가지 일을 해야 한다.”

“하나는 망각을 치는 걸 테고, 다른 하나는?”

용주가 한발 앞서 물었다.

“죽음을 치는 것.”

“…자기가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건진 아는 거냐.”

용주로선 그의 이야기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죽음을 치기 위해 죽음을 쳐야 한다니.

그게 대체 무슨 뜻이지?

“이런 뜻이지.”

순간, 용주의 눈앞에 창이 활성화되었다.

< 새로운 퀘스트가 부여되었습니다. >

▶ 망각의 성체에서 로지를 찾으십시오.

▶ 망각을 제거하십시오.

< 새로운 퀘스트가 부여되었습니다. >

▶ 죽음의 성체에서 쥬다스를 찾으십시오.

▶ 죽음을 제거하십시오.

▶ 동시에 두 번의 죽음을 안겨 줘야만 죽음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두 번의 죽음을 동시에?”

물음표가 남는 문장은 역시 이것뿐이었다.

동시에 두 번의 안겨 줘야 한다니. 두 개의 심장을 동시에 도려내기라도 해야 한단 건가?

아니면, 두 개의 근원을 동시에 파괴해야 한다거나?

“쥬다스는 이곳을 향해 오고 있다. 이곳이 바로 녀석의 최종 목적지.”

“쥬다스가?”

“너희 세계와 우리 세계를 나누고 있는 마지막 경계면이 바로 이곳이다. 여기가 무너지면 너희 세계에 재앙이 도래할 테지.”

“녀석이 여기로 오고 있다면, 같이 쓰러뜨리면 되는 거 아니냐. 망각과 떨어져 있다면 둘도 없는 기회일 텐데.”

“두 번의 죽음을 각각 다른 장소에서 안겨 줘야 한다. 여기선 불가능하지.”

“다른 장소라고?”

“그렇다. 하나는 지금 다가오고 있는 실체. 다른 하나는 그의 왕좌를 지키고 있는 실체. 양쪽 모두 실체이자, 양쪽 모두 죽음이다. 녀석을 제거하기 위해선 둘을 한날한시에 제거해야 한다.”

“그러니까… 쥬다스가 두 명이란 이야기냐?”

“너희 세계의 상식과 물리 법칙으론 불가능한 이야기일 테지. 하지만 여기선 그게 진실이다. 그게 근원이자 현상인 녀석을 제거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둘이 하나라면… 힘도 공유한단 이야기냐?”

“육신이 입는 대미지 자체를 공유하진 않는다. 그런 거면 실체가 2개인 이유가 없으니까. 하지만 녀석의 근원과 힘은 같은 뿌리를 두고 있다. 떨어진다면 동시에 바닥을 드러낼 테지.”

“뭔가 어려운 이야기네.”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용주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수지는 어느새 거기 와 있었다.

“그래도 해야 하는 건 똑같은 거 아니야? 쓰러뜨릴 거잖아.”

“…만약 ‘동시에’ 쓰러뜨리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거냐.”

특정 단어를 강조한 용주가 다시 한번 물었다.

수지의 말처럼 간단한 문제라면 좋겠지만, 당연하게도 그럴 리는 없겠지.

“한 번의 죽음. 그게 불러오는 건 재생.”

“재생?”

“불사조. 피닉스. 너희 세계엔 그런 생명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죽음에서 돌아온 자들은 다시 원래의 힘을 되찾는다고.”

“……?”

고개를 갸웃한 수지가 용주를 바라보았다.

불사조랑 피닉스가 존재한다니. 그랬던가?

“그렇게 이해하면 보다 근원에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거다. 죽음과 탄생은 뒤통수를 맞대고 있으니까.”

“그래…. 그래서?”

“네가 네 세계의 문을 닫는 동안 난 죽음과 한 차례 얼굴을 맞댔었다. 녀석의 신념은 확고했고, 오랜 기다림에 굶주려 있었지.”

카일론의 손짓을 따라 다시 한번 재의 모습이 변화했다.

이번에 보이는 건 거대한 정원을 낀 궁전이었다.

“이제 나는 다시 한번 녀석과 마주할 거다. 그리고 그게 녀석과의 마지막 만남이겠지. 어떤 방향으로 미래가 결정된다 하더라도.”

“그럼 우린?”

수지가 물었다.

“네가 녀석과 맞서는 사이에 로지를 치고, 쥬다스까지 치란 이야기겠지. 맞지?”

“바로 맞혔다. 다만 시간이 우리 편은 아닐 거다. 너무 빨라도, 너무 늦어도 안 된다.”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 거 아니냐.”

“혜안을 가진 너라면, 타이밍을 맞출 수 있을 거다. 네가 너무 늦지만 않는다면 말이지.”

“…….”

깊은 한숨을 내쉰 용주가 뒷목을 쓸어내렸다.

날릴 불만이라면, 충분히 있었지만, 더 말해 봐야 이쪽만 손해겠지.

“쥬다스의 성체는 외부인이 쉽게 다가갈 수 없다. 녀석을 피해 빙 돌아가는 것 역시 좋은 선택지는 아니지.”

카일론의 손짓에 마지막 요새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와 함께 나타난 건 작은 다크 포탈이었다.

“이레귤러. 널 그렇게 부른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지.”

가볍게 손을 내린 카일론의 손에 클레이모어가 쥐어졌다.

“저들은 나의 검에 대해, 너에 대해 모르고 있다. 경계하지 않고 있어. 가서 망각을 쳐라. 그리고 녀석을 흡수해 침소에 놓인 문을 열어라.”

“침소에 놓인 문이라고?”

“죽음의 요새와 직통으로 연결되는 유일한 문이다. 쥬다스가 신경 쓰지 않은 유일한 루트기도 하지. 명심해라. 기회는 딱 한 번. 그걸 놓치면 다음은 없다.”

날개를 펼친 카일론이 폭발적으로 날아올랐다.

-가라. 가서 너와 나의 적을 집어삼켜라.

너의 눈이 본 미래를.

배신자의 전부를 건 미래를 내 앞에 보여라.

몸이 날아갈 것 같은 바람에 용주는 수지를 붙잡았다.

용주의 눈엔 점자로 된 녀석의 문장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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