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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326화 (326/357)

326화

* * *

“이준은 어떻게 됐지?”

용주가 다른 이들과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형만에게 다가간 수호가 조용히 물었다.

“녀석은 죽었다. 차원 아래로 사라졌으니, 이젠 시체도 찾을 수 없겠지.”

용주가 포탈 너머로 사라진 직후.

붕괴는 빠르게 가속화되었다.

붕괴는 삽시간에 이준이 있던 자리까지 퍼져 나갔고, 그를 삼켜 버렸다.

“우리 쪽이랑 이야기됐던 게 있던 걸로 아는데?”

“그런 일이 있었던가.”

“…….”

“미안하게 됐군. 말로만 한 이야기는 금방 잊어버리는 타입이라.”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군. 약속을 지킬 생각 같은 건 없었던 거야.”

형만의 표정이며 목소리.

그 모든 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칫! 이래서 헌터 녀석들은….”

“곤란한가 보지?”

“당연한 거 아니냐? 내가 왜 여기까지 따라왔는데.”

“하나 정도는 충분히 확보할 기회가 있었을 텐데?”

“칫! 말이 쉽지. 그놈도 지랄인데, 아주 쌍으로 지랄이었다고.”

혀를 찬 수호가 고개를 돌렸다.

“어이어이~ 누가 들으면 나 혼자 지랄한 줄 알겠어~ 응?”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든 시우가 피식 웃어 보였다.

“뭐? 너 지금 나한테 시비 거는 거냐?”

“킥! 그렇게 받아들여도 상관없고. 왜~ 정 꼬우면 여기서 한판 뜨든가.”

“아~ 그래.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고요했던 두 사람 사이에 부는 기묘한 기류.

둘 사이를 파고든 수지는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싸우면 안 돼.”

“하? 왜 그러는데. 그냥 한 방 날려 주기만 한데도. 예절 주입이란 말 몰라?”

“싸우면 안 돼.”

단호한 수지의 눈빛에 시우가 어깨를 들썩였다.

저 상태의 수지라면 건드려 봐야 좋을 게 없다는 걸 시우는 알고 있었다.

“그나저나 저기 저 녀석은 뭐야? 저… 괴물 녀석 말이야.”

작은 스파크를 일으킨 시우가 물었다.

워낙 이상한 일투성이라 물어볼 타이밍을 놓치고 있었는데, 사실 여기서 제일 이상한 게 바로 녀석이었다.

형만은 짧게 카일론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의 말을 들은 시우는 피가 끓는 듯 유쾌한 미소를 지었다.

“흐음~ 언노운이란 말이지? 하긴 언노운처럼 변신하는 인간이 있는데, 인간처럼 변신하는 언노운이 있어도 이상할 건 없지.”

시우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그런 개체가 존재한다는 건 지금 처음 안 사실이었지만, 뭐 여기서 더 놀라 봐야 뭐가 바뀌겠는가.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수밖에.

“근데 언노운이면 한판 붙어 봐도 되는 건가? 일도 다 끝났잖아.”

형만을 바라본 시우가 눈썹을 들썩였다.

음악도 안 나오고, 데이터도 안 터지고.

어딘지도 모르는 세상에서 심심하게 시간만 보내고 있던 차에 완전 땡잡지 않았는가.

“키힛! 넌 머리에 뭐가 들은 거냐?”

“뭐?!”

치고 들어오는 수호의 비웃음에 시우가 불쾌함을 표했다.

“그 마나로 뭐 하겠다고. 모기가 앵앵거리며 죽여 달라는 것밖에 더 되겠냐, 멍청아.”

“멍청이? 뭐야. 또 한 판 해보잔 거야?”

“하! 해보시든가!”

“싸우면 안 돼.”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은 수지가 또 한 번 둘을 떼어 놓았다.

“사이 한번 겁나게 좋네. 아주 환장의 짝꿍이야.”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서윤이 기지개를 켰다.

“그러게요. 잠깐 못 본 사이에 사이가 더 좋아진 것 같은데요.”

서윤에게 다가온 태영이 들고 있던 가죽 주머니를 건넸다.

조금 전 랫맨들에게 받은 보급품의 일부였다.

“뭐야? 이건.”

“물이에요. 꽤 시원하던데요.”

물주머니를 건네받은 서윤이 마개를 열었다.

생긴 것만 봐선 꽤 고약한 냄새가 날 것처럼 생겼는데, 그렇진 않았다.

“다친 곳은 좀 어때요?”

“뭐 너랑 비슷하지 않겠어? 똑같은 녀석들한테 도움받았잖아. 그 황도인가 뭔가 하는.”

“하긴 그렇네요.”

고개를 든 태영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베히모스.

정말로 자신들이 저 고래의 배 속에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정말 저기 있던 거겠죠, 저희?”

“그렇다고 하잖아. 왜? 거짓말이라도 했을까 봐?”

“아뇨. 그런 건 아닌데 뭔가 실감이 안 나서요.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게.”

“음~ 뭐 어떤 기분인진 대충 알 것 같아.”

서윤이 빈 가죽 주머니를 뒤로 던졌다.

뒤통수를 거하게 얻어맞은 랫맨은 근처에 있던 무고한 랫맨에게 시비를 걸고 있었다.

“그래도 지금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어? 그리드한테, 팬텀 녀석들한테 진 빚도 전부 갚아 줬고.”

귓가에 손을 가져간 서윤이 머리를 찰랑였다.

“그건 그렇네요. 그렇다 해도 제가 지은 죄를 다 용서받을 순 없겠지만요.”

태영이 가지고 있던 강철 케이스를 쓸어내렸다.

그의 모습을 빤히 지켜보던 서윤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팍!!

큰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태영의 어깨를 쳤다.

“사내 녀석이, 어깨 펴. 누가 보면 패잔병인 줄 알겠어.”

“…….”

“네가 죽였어? 네가 죄지었냐고. 네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렇게 한 거 아니잖아.”

“그렇지만….”

“아~ 정말 답답하네.”

머리를 긁적인 서윤이 또 한 번 태영을 후려쳤다.

“속죄라면 할 수 있는 이상으로 했잖아. 그런 걸 품에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세상에 너밖에 없었을 거라고.”

“…….”

“너도 피해자야. 너도 피해자라고. 세상에 피해자한테 번뇌하라고 하는 녀석이 세상에 어디 있어? 그게 미친 새끼지.”

날 선 목소리로 쏘아붙인 서윤이 태영의 이마를 꾹 밀었다.

“그래도 혹시 누가 뭐라고 해코지하면, 나한테 말해. 내가 시원하게 박살 내 줄 테니까.”

짧게 흐르는 침묵.

서윤을 빤히 바라보면 태영은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서윤 씨는 보기보다 따뜻한 사람이네요. 고마워요.”

“흥! 당연하지. 응? 야! 잠깐만! 보기보다라니! 지금 그거 무슨 의미야?!”

“하하, 죄송해요. 말이 헛나왔나 봐요.”

멋쩍게 웃어 보인 태영이 급하게 상황을 마무리 지었다.

한 대 시원하게 맞아서 그런지.

어깨가 조금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얼추 정리된 모양이군.”

카일론이 이야기했다.

“남은 건 순환을 끝내는 일뿐.”

카일론이 움켜쥐었던 손을 펼치자 잿빛 가루가 흩날렸다.

▶‘끝과 시작의 교차점’을 획득했습니다.

▷ 부패와 탄생 사이 어딘가의 힘의 집합체입니다.

-사용 시 HP와 MP를 포함한 모든 스테이터스를 회복합니다.

-사용 시 소모한 체력과 정신력 등을 최상의 상태로 되돌려놓습니다.

-다른 아이템의 효과로 재사용할 수 없습니다.

용주의 손으로 모여든 잿빛 가루.

형태를 이룬 가루는 상당히 기묘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반은 새하얀 새의 깃털.

나머지 반은 뼈로 이루어진 깃털.

깃털에 무슨 뼈가 있겠냐 하겠지만, 지금 이건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가 없었다.

“이런 게 있었으면, 진작 좀 넘겼으면 좋지 않았겠냐.”

“한 번의 필요밖에 충족시킬 수 없다면, 가장 간절하게 필요로 할 때를 위해 남겨 두는 게 이상적인 사용이지.”

“말이라도 못했으면.”

아이템을 사용한 용주의 힘이 빠르게 원상태를 찾아갔다.

“그런데, 정리라면 아직 하나 더 할 게 남아 있을 텐데. 아직 녀석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지 못했잖아.”

“네가 소망하면, 그리할 수 있을 거다. 지금의 너라면. 그리고 지금의 불안정한 차원의 상태라면 충분히 가능할 테니.”

“…….”

힘이 완전히 회복되기를 기다린 용주는 회색의 비눗방울 하나를 만들어 냈다.

사람 하나 들어가기에 충분한 크기의 비눗방울.

하나였던 방울은 이내 여러 개로 늘어났다.

“이거면 충분하겠지.”

용주의 곁을 떠난 방울들은 터진 듯 일제히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뭐, 뭐야 이거?!”

“회색 방울….”

“누가 그걸 몰라서 물어?!!”

사라졌던 비눗방울들은 다른 헌터들을 감싸며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걸음을 옮긴 용주는 방울들을 마주하고 섰다.

각자 자유롭게 떨어져 있던 방울들은 조금씩 떠 오르고 있었다.

“무슨 장난이래, 이건? 재밌는 거면 미리 귀띔이라도 해주지 그랬냐.”

시우가 키득거리며 물었다.

“여기서 할 일은 다 끝냈잖아? 돌아가야지. 집으로.”

“아~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그럼 후딱 가버리자고.”

귀를 후벼 판 시우가 후 바람을 불었다.

그때.

“야! 잠깐만!”

뭔가 이상을 감지한 서윤이 급하게 외쳤다.

“돌아가자며? 너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용주에겐 방울이 없었다.

애초에 왜 이런 게 필요한가도 의문이었다.

여기 올 땐 이런 게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나도 가야지. 뒷정리만 좀 끝내 놓고.”

“뒷정리?”

“너희랑은 관계없는 일이야.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고.”

“뭐?! 그게 뭔데! 그런 얘기 들은 적 없거든!”

힘을 실은 서윤이 방울 벽을 내리쳤다.

충격에 터질 만도 하건만.

얇디얇은 방울 벽은 그 충격에 흔들림조차 없었다.

“팬텀과 관계된 일은 끝났어. 너희가 할 일도 거기서 끝난 거고. 그러니까 먼저 가 있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용주의 손짓과 함께 하늘에 뒤틀림이 생겼다.

“왜 그런 얼굴 하는 건데, 왜 이럴 때만 그렇게 웃어 보이는 건데. 이 나쁜 놈아!”

안심하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 용주의 미소.

이슬처럼 희미한 미소였지만, 그렇기에 더 비겁하단 생각이 들었다.

“난 이렇겐 못 가! 알아? 난 이렇겐 못 돌아간다고!”

서윤이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방울이건 뭐건 다 베어 버릴 심산이었다.

그런데.

“뭐야? 뭐야, 이게?”

아무것도 베어지지 않았다.

방울 벽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블로우 블러디”

조금 회복한 마나를 끌어모은 서윤이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사복검이 아무리 춤을 추어도 방울엔 흠집도 나지 않았다.

“무슨 짓을 한 거야! 야!!”

서윤의 다급한 외침에 용주는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

“야! 눈깔! 뭐라도 좀 해봐! 그 나이트메어인가 뭐시긴가 그거라도 써보라고!”

급하게 반대편 벽에 붙은 서윤이 수호를 불렀다.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눈깔이라고 한 거 기분 나빴으면 사과할게! 그러니까 빨리!”

“그런 뜻이 아니잖아. 생각이란 걸 좀 해보라고. 멍청아.”

수호가 안대에 손을 올렸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전에 이그노얼 나이트메어 속에서 멀쩡하게 움직이던 녀석이 누구였는지 벌써 까먹은 건 아니겠지?”

“…….”

“게다가 지금의 녀석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어.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내 힘의 통제를 기대하는 건 바보 같은 망상이란 이야기다.”

“푸하하핫! 뭐야? 인정할 줄도 아는 거야? 웃겼어, 방금.”

웃음을 참지 못한 시우가 폭소를 터뜨렸다.

분위기 파악 못 하는 시우를 노려본 서윤은 어금니를 물었다.

“젠장. 젠장! 이용주! 너 진짜 가만 안 둬! 부숴 버릴 거라고! 야! 너 듣고 있어?!”

점점 멀어지는 거리.

거친 말들을 쏟아 내던 서윤은 체념한 듯 마른침을 삼켰다.

이 이상 멀어지면 하고 싶은 다른 말들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꼭 돌아오는 거다? 기다리고 있을 거니까! 너! 아직 나한테 해줘야 할 말 있는 거 알지? 나 아직 너한테 해주고 싶은 게…. 같이 해보고 싶은 게 산더미처럼 많으니까! 그러니까…!”

다급함이 느껴지는 그녀의 목소리.

“나가게 해줘.”

그 사이로 들어온 차분한 목소리에 서윤의 눈동자가 반응했다.

“!”

그런 서윤의 눈동자에 들어온 건.

회색 방울을 통과하고 있는 수지의 모습.

무슨 짓을 해도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던 감옥을 수지는 너무 쉽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안수지… 너….”

순간 마주친 두 사람의 시선.

두 사람의 거리는 빠르게 멀어졌다.

“너 어떻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용주가 말꼬리를 흐렸다.

이런 건 자신이 의도한 게 아니었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그냥 나가게 해달랬더니, 나가게 해줬어.”

“나가게 해달랬더니, 나가게 해줬다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 방울들은 일종의 안전장치였다.

자신이 설정한 법칙을 완벽하게 적용하기 위한 안전장치.

예외를 둔 적은 없었다.

“야! 안수지!”

바닥에 바짝 붙은 서윤이 수지를 불렀다.

“그 녀석 꼭 데리고 나와! 알았지? 오늘만 특별히 양보하는 거니까!”

어떻게 나갈 수 있었는지.

왜 수지만 나갈 수 있었는지.

묻고 싶은 것도, 따지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지금은 묻지 않기로 했다.

왠지 조금 안도감이 들었으니까.

녀석이 같이 있으면 그래도 꼭 돌아올 거란 생각이 들었으니까.

뭐… 라이벌한테 할 소리는 아니었지만.

“응. 그럴게.”

“애송이들.”

말을 아끼고 있던 형만이 두 사람을 불렀다.

그리고 그걸로 끝.

형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두 사람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이.

그의 눈빛이.

목소리를 대신하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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