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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322화 (322/357)

322화

“이 눈을 찾기 위해 이 공간을 준비해 뒀다…. 단순히 게이트에 진입한 모든 헌터를 한 자리에 모으기 위해서?”

용주가 허리춤을 짚었다.

“내가 직접 접촉하기 위해 필요한 공간이었다. 일반적인 수준의 게이트론 내 존재를 감당할 수 없으니까. 반대로 너무 높은 차원의 게이트는 네가 버틸 수 없을 테고.”

“퍼즐은? 그런 목적이라면 딱히 필요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답을 얻을 수 있는 건 어둠 속이라고 했다. 눈이 보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길이란 소리겠지. 보이지 않는 길에 답이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하필 점자로 기록을 남긴 건?”

“같은 이치다. 어둠 속에서 답을 찾기 위한 방법이었지. 내가 사용하는 가장 익숙한 문자이기도 했고.”

S급 헌터들과의 만남.

그 속에서 카일론은 그들과 대화를 주고받았었다.

고차원의 존재가 저차원의 언어를 이해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계승자가 된 용주가 다른 차원의 녀석과 대화를 할 수 있던 것처럼 말이다.

다만, 그때의 그건 조금 달랐다.

인간의 말과 언어는 그런 과정이 필요하지 않았다.

같은 모습을 가진 두 종족.

같은 힘을 공유할 수 있는 두 종족.

같은 언어를 쓰는 두 종족.

서로 다른 세계에 사는 두 종족이 만날 확률은 과연 몇 퍼센트나 될까.

“그럼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남겨둔 건? 그런 논리라면 필요 없는 문장이었던 것 같은데.”

“태양을 찬양하던 이. 등유를 나르고 있던 여인, 악기를 연주하던 자…. 눈먼 세 사람의 이야기 역시 그들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았다.”

“그럼….”

“제단으로 미래를 인도하는 것. 거기까지가 내가 의도했던 길이었다. 죽음에 다가서는데, 내가 현신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장소였으니까.”

“…….”

“거짓된 빛의 이야기가 탈출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니, 그렇지 않아. 거기 그런 이야기는 한마디도 적혀 있지 않았다.”

고개를 돌린 카일론이 다 무너지고 녹아내린 피라미드의 터를 바라보았다.

“너를 제외한 세 사람이 남았던 것도, 네가 그들을 탈출시킨 것도, 방의 입구가 하필 그때 뒤틀린 것도 전부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 우연이란 이름의 필연이었지.”

카일론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덕분에 확신할 수 있었다. 네가 내가 찾던 미래란 걸. 강한 자가 본 미래에 내가 제대로 도착했다는 걸.”

미완의 망각.

그 미완이 남긴 퍼즐이 있다는 건.

그 퍼즐이 하필 그의 혈육이란 건 심장에 손이 닿는 그 순간 느낄 수 있었다.

그건 분명 필연이었겠지.

죽음보다 위에 있는 것.

그 마음이 향한 곳이 그곳인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니까.

뭐.

자신은 그 마음이란 걸 머리로 생각할 뿐, 이해하진 못하지만.

“그래…. 그랬었군. 그런 거였어.”

그동안 제대로 듣지 못했던 그 날의 진실.

그걸 듣고 나니 가슴 한구석이 뭔가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묻고 싶은 건 이게 다냐?”

“아니. 한 가지 더. 꼭 들어야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 들어 보도록 하지.”

뭔가를 신경 쓰는 듯한 카일론의 표정이 있었지만, 용주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보다 당장 들어야 하는 이야기가 더 급했으니 말이다.

“퀘스트 게이트. 지금까지 지나왔던 곳들과 다시 길을 놓을 수 있는 거겠지?”

“그래.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

순간 안도감이 들었다.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어쩌면 그건 자기 최면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야만 한다고, 그래야만 하는 거라고.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으면, 녀석들을 거기 남겨 놓고 떠날 수 없었을 테니까.“단. 한 군데만은 불가능하다.”

“뭐라고…?”

아침이슬처럼 사라지는 안도감.

카일론에게 다가간 용주는 그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어디가? 대체 왜?!”

“붕괴된 세계에 길은 없다. 그곳에 남은 건 공허뿐이니.”

“붕괴라고….”

떠오르는 곳은 역시 하나뿐이었다.

급하게 패널을 연 용주는 수지의 상태를 확인했다.

수지의 HP는….

0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무리 창을 다시 열어 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수지의 상태는 돌아오지 않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대체 왜…. 붕괴는 멈췄던 거 아니었어?!”

눈을 부릅뜬 용주가 카일론을 바짝 끌어당겼다.

용주에게선 짙은 살기가 느껴졌다.

“문이 열리는 건 막았잖아? 이준은 죽었잖아! 네가 하라는 대로 했잖아! 근데 왜…!!”

“나쁜 소식이 있다.”

용주의 달리 침착한 카일론의 목소리.

자신의 외침을 무시한 그의 반응에 용주의 분노가 한층 더 짙어졌다.

대체 여기서 뭐가 더 나쁜 소식일 수 있겠느냔 말이다.

“닥쳐! 내 말에 대답이나 해!”

“멈췄던 붕괴가 다시 시작되고 있다. 다른 세계들 역시 균열에서 자유롭지 않아.”

“그러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고!!”

“이쪽에서 문을 열려던 자는 확실히 사라졌다. 하지만 너무 깊숙이 와 버렸어. 녀석이 비집고 뒤튼 균열을 저쪽에서 발견한 모양이다.”

“저쪽이라면….”

“죽음과 망각.”

“왜 그걸 이제야…!”

“내 입을 막았던 건 너다.”

“…….”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었다.

끓어오르는 분노도 전혀 식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럴 시간은 없었다.

‘아직 늦지 않았을 거야. 아니. 늦지 않았어.’

전투가 끝난 직후까지만 해도 수지는 무사했다.

그 이후 정확히 언제 어떻게 된 건지 시간 단위의 체크는 지금으로선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지금 1초 1초가 너무도 소중했다.

돌릴 수 있는 시간은 단 5분.

더 지체할 수는 없었다.

인벤토리를 연 용주는 ‘메모리 다이얼’을 꺼냈다.

남은 다이얼은 이제 하나.

그곳에 기록할 아이템 역시도 당연히 하나였다.

“문 열 준비나 하고 있어라. 남은 이야기는 그때 가서 다시 하는 걸로.”

역행의 모래시계를 불러온 용주는 호흡을 멈췄다.

이미 한 번 해본 일이었지만 당연히 익숙한 일은 아니었다.

편할 수도 편해질 수도 없는 감각이었고.

하지만 해야만 했다.

녀석을 이렇게 보낼 수는 없었으니까.

녀석과의 약속에.

녀석의 믿음에 보답해야 했으니까.

* * *

흩뿌려지는 물과 피.

멈춘 풍경을 마지막으로 잠긴 시야.

눈을 뜬 용주의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차원을 넘어오는 카일론의 모습이었다.

녀석을 마주한 용주는 가장 먼저 수지의 상태를 확인했다.

수지는.

살아 있었다.

“나쁜 소식이다.”

“닥치고 문이나 열어.”

“…….”

마찬가지로 형만의 놀란 표정을 볼 수 있었지만, 그때와 지금은 같지 않았다.

“섬마음 등대부터. 지금 당장!”

거두절미하고 카일론의 멱살을 움켜쥔 용주가 눈을 부라렸다.

격양된 용주의 반응에도 카일론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마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안다는 듯.

“유감스럽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할 수 있잖아! 할 수 있다고 했잖아!!”

“이미 그 세계는 무너졌다. 그곳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아니! 녀석은 살아 있어! 살아 있다고!!”

용주의 몸을 타고 붉은 기포가 방울방울 피어올랐다.

“당장 열어.”

“불가능하다. 그 세계는 이미 내 수중에서 벗어났으니.”

세로로 길게 늘어지는 용주의 눈동자.

카일론을 단번에 들어 올린 용주는 그대로 녀석을 내리쳤다.

피어오른 흑염은 벡터에 짓눌려 찌그러졌다.

“개자식…!”

너무도 쉽게.

너무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 용주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다.

그때.

순수한 분노 속에서 과거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방법이라면.

이쪽에도 있지 않은가.

‘녀석이 못하겠다면 내가 직접 하는 수밖에.’

분노를 삼킨 용주는 몸을 일으켰다.

이 이상 녀석을 붙들고 늘어져 봐야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용주의 손에 들려 있는 건 이형 워프 장치.

빛을 잃어버린 보석은 이곳에선 사용할 수 없다고 말하는 듯했다.

‘안내해. 안내하라고.’

이형 워프 장치라면 몇 번이나 사용해 봤다.

하지만 같은 방식으로 아무리 생각하고 집중해도 빛은 돌아오지 않았다.

‘난 녀석한테 가야 해. 그러기로 약속했어. 그러기로 맹세했다고.’

영원의 계약.

그곳에서 했던 서약의 문구가 떠올랐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서약을 했던 그곳 역시도 섬마음 등대였다.

‘녀석은 날 기다리고 있을 거야. 오지 않은 거라는 의심조차도 없이…!’

다른 녀석들이 뭐라고 생각하고, 뭐라고 말하든 그건 알 바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든 녀석에게 가야만 했다.

어떻게 해서든…!

‘열어! 당장!’

바닥을 드러냈다고 생각했던 용주의 마나가 폭발적으로 끓어올랐다.

‘이안의 힘도 흡수했었잖아. 어딘가엔 손톱만큼이라도 남아 있을 거 아니야!’

이안은 무수히 많은 차원을 넘나들 수 있었다.

물론, 그건 자신이 만든 차원이지, 퀘스트 게이트의 이야기는 아니긴 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렴 좋았다.

녀석이 할 수 있든 없든.

자신은 해내야만 했다.

‘점멸도 쓸 수 있잖아. 고대의 재앙이 쓰던 힘이 있잖아!’

점멸은 공간을 접어 이동하는 단거리 텔레포트.

차원과 차원이라는 초장거리를 이동하는 건 당연 불가능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상관없었다.

고대의 재앙이 자신들의 세계로 넘어왔던 것처럼.

자신도 그곳으로 가야만 했다.

일렁거리는 푸른 물결.

눈에 보일 정도로 선명한 마나의 흐름엔 이내 붉은빛이 섞여 들어갔다.

용주에게서 흘러나오는 서로 다른 두 마나.

아지랑이 피던 두 물결은 이내 두 가지 흐름을 만들며 이형 워프 장치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자.

잃어버렸던 워프 장치의 빛이 선명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 새로운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 더 게이트

▷ 차원을 구축하고, 차원 사이를 넘나들 수 있습니다.

-온전하지 못한 힘의 단편입니다.

-불완전한 힘을 컨트롤하기 위해선 더 많은 마나를 필요로 합니다.

“…….”

장치를 움켜쥔 용주는 가볍게 손을 움직였다.

포물선을 그리는 장치와 그 끝에서 열리는 차원의 균열.

완벽한 원을 그린 포탈을 마주한 용주는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다.

* * *

“어디냐….”

포탈의 안쪽은 지금까지 용주가 넘어왔던 곳들과는 전혀 달랐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있는 거라곤 오직 새까만 어둠뿐.

자신은 그저 이 어둠만이 존재하는 세계에 덩그러니 버려져 있을 뿐이었다.

“안수지!”

아무리 걸어도 걷는다는 감각이 있을 뿐 보이는 건 없었다.

흑염도.

부분 광폭화 역시도 마찬가지.

어둠은 빛마저도 삼켜 버리고 있었다.

‘이러고 있을 시간 없어.’

용주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피눈물.

혜안이 보여주는 미래시로 보이는 건 마찬가지로 어둠뿐이었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미래는.

그게 전부였다.

“젠장…!”

무리해서 사용한 혜안에 눈동자의 통증이 장난이 아니었다.

“왜 안내해 주지 않는 거야! 녀석의 마나를 먹었잖아! 녀석에게 안내하라고!”

문이 열렸을 때, 이제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용주의 악에 받친 외침엔 메아리도 돌아오지 않았다.

“생각해. 이용주. 생각하라고.”

침착하라고.

생각하라고 스스로를 아무리 타일러도, 심장이 빨라졌고, 머리가 굳어 갔다.

초조함이 턱 밑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더 이상 돌릴 수 있는 시간은 없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

이 시간을 놓치면 다신 되돌릴 수 없었다.

“안수지!!”

벡터를 등에 업은 흑염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그 속에 섞여 들어가는 부패의 기운.

지지지직……! 챙!!

갑작스럽게 들려온 균열음과 동시에 지반을 잃은 용주는 하염없는 어둠 속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건….’

순간 희미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너무도 익숙하기에 인지하지 못하는 것.

지금 그건 분명 자신의 기운이었다.

진각성을 한 서윤은 자신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었다.

자신의 것이기에.

너무도 익숙하고 당연한 것이기에 평소에는 인지하지 못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거였다.

신체 어딘가에 이상이 생기기 전까진, 그게 그냥 당연한 것처럼.

‘잘못 느낀 게 아니야. 분명…!’

하지만 지금 그걸 용주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다른 곳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자신의 기운.

그게 무엇이든, 지금은 그걸 잡아야 했다.

머리가.

가슴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으니까.

“거기냐.”

공중에서 몸을 뒤집은 용주는 어둠을 찼다.

폭발적으로 강하하는 용주의 눈동자엔 어둠만이 비치고 있었지만. 용주는 그 너머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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