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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321화 (321/357)

321화

“한심한 모습을 보였군.”

심호흡을 삼킨 형만이 허리를 바로 세웠다.

마나의 고갈이라 하면 용주 역시도 만만치 않았다.

아니.

절대적인 소모값의 총량으로만 본다면, 쓰러져야 할 쪽은 당연 저쪽이었다.

그럼에도 용주는 태연한 듯 서 있었다.

“그나저나, 잘도 해냈군.”

이준.

류은의 헌터는 절대적이었다.

그 절대적임을 어떻게 공략할지, 어떤 방정식에 어떤 숫자를 대입하면 답을 도출할 수 있는지, 방정식을 맞췄다고 해도 그걸 실현할 수 있는지 마음 한편에 여전히 의문 부호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런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용주는 그걸 실현해 보였다.

정말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녀석이란 말이지.

“혜안이 답을 보여 주더냐?”

“그래…. 보여 줬지.”

혜안이 보여준 미래.

용주가 말한 답은 지금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아니기도 했다.

이 눈이 보여 준 과거의 미래가 바로 지금.

아버지가 보셨을 미래는 바로 오늘이었다.

‘이거면 된 거겠죠?’

작은 한숨을 삼킨 용주가 잠시 눈을 감았다.

‘아빠.’

순간 온몸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눈꺼풀이 바르르 떨리고, 약간의 통증도 느껴졌다.

잠시 앉아서 쉬었으면 하는 생각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일이 전부 끝난 건 아니란 건 알고 있었다.

죽음과 망각.

그 두 녀석이 아직 두 눈을 부릅뜨고 있을 테니.

하지만 그럼에도 안도감이 들었다.

적어도 오늘.

지금 최악의 상황이 열리는 것만은 막을 수 있었으니까.

“그러냐. 그런데 마지막에 그 모습은 뭐였던 거냐?”

용주가 눈을 뜰 때까지 기다리던 형만이 물었다.

차원 속에서 이준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이게 정말 녀석인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뭔가가 잔뜩 뒤섞여 있는 느낌.

다른 무언가 속에 이준이 삼켜진 것 같은 느낌.

녀석은 분명 녀석이었지만, 녀석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었다.

“이형 리액터. 녀석은 그걸 몸에 심고 있었다.”

“이형 리액터를?”

“그래. 윤현의 모습이라면 대강 알고 있겠지?”

형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준은 녀석에게서 회수한 리액터까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었다. 원래 원형이 되었던 리액터에 빼놨던 퍼즐을 끼워 넣은 거겠지.”

“그럼 아까 그 흑염은 역시 녀석의….”

말끝을 흐린 형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준과 뒤섞인 기묘한 기운.

그 속엔 희미했지만 윤현의 것도 있었다.

가장 볼품없고, 가장 보잘것없는 밝기와 농도를 가진 빛이었다.

“윤현이 그 정도의 힘을 손에 넣을 수 있던 건 리액터 덕분이었었지. 그럼 이준도 전보다 더 큰 힘을 손에 넣었었다는 건가.”

용주의 전투가 어땠는지 형만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만약 그랬다면 좋은 소식이 아니었단 것만은 확실했다.

안 그래도 신의 힘을 가지고 있던 자가 그 이상을 가지게 되었었다는 소리였으니까.

“아니, 윤현도 처음엔 힘에 먹히지 않았었다. 녀석이 먹힌 건 궁지에 몰리고 난 다음이었지.”

“그럼.”

“이준이 그런 모습이 된 것도 녀석이 만신창이가 된 직후였다. 아마 싸움이 길어졌다면, 좋을 게 없었겠지.”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어쩌면 애초에 그 흑염 자체가 녀석의….

그러니까 실베스의 힘이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이형 결정체에서 얻는 스킬과.

이형 리액터로부터 공급받은 힘.

둘은 결국 같은 선상에 있는 힘이지 않을까.

“문을 열던 매개가 파괴되었는데, 그럼 여긴 어떻게 되는 거냐? 우리가 지나 왔던 세계들은?”

전에 매개가 되었던 것들이 사라졌을 때 게이트는 빠르게 소멸되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라면, 문은 닫혔을 것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지금 자신들이 그 문 안쪽에 있다는 것 정도.

“카오스 게이트는 아마 닫혔겠지. 그러려고 온 거였으니까.”

“여기가 꽤 마음에 들었나 보지?”

형만이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그럴 리가.”

꼭대기의 왕좌엔 카일론이 있을 것이다.

일단은 녀석과 만나서….

‘잠깐만….’

그렇게 생각했던 용주의 머릿속에 문득 의문이 스쳤다.

피라미드 위쪽에 있던 통로.

전에 타고 올랐던 그 길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부터 본 기억이 없었다.

사신형 언노운들을 발견했을 때도.

플라즈마를 두른 채 비행하던 때도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 차원이 연결된 건 그곳 전체가 아니라, 작은 파편 한 조각뿐이었단 건가?’

“그래서 여긴 결국 뭐였던 거냐?”

위를 올려다본 형만이 물었다.

지나온 다른 곳들은 다른 세계.

생전 처음 보는 생태계와 생명들이 살고 있는 하나의 세계였다.

하지만 이곳은 그곳들과는 달랐다.

여긴 하나의 세계가 아닌 공간일 뿐이었다.

“카오스 게이트. 아니. 그 건너편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거다.”

“게이트의 건너편? 여기가?”

“아니. 여긴 그 일부일 뿐이다. 성채의 입구 정도일 뿐이지. 아마 매개가 구현할 수 있던 게 이 정도였든가, 아니면 그곳과 분리한 이 공간이 문을 열기 가장 좋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은데.”

“언노운이 건축이나, 조각을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는데, 점자를 쓴단 것도.”

“자세한 부분까진 나도 잘 모른다. 아쉽게도 그 녀석은 자기 할 말만 하는 녀석이거든.”

“그 녀석?”

“뭐, 지금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다만, 이 공간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곳일 거다. 그 게이트에 있던 것도 다분히 의도된 것이었을 거고.”

이 눈이 어둠 속에서 답을 알려줄 거다.

아버지께서 카일론에게 했던 말이었다.

녀석의 사고 과정이야 용주로선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마 이게 녀석 나름대로 도달한 답이었을 거다.

어쩌면 녀석은 그날보다 더 오래전부터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럼 어째서 그전엔 나타나지 않았던 건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가짓수는 더러 있었지만, 계획의 완성, 혹은 게이트 도킹의 최솟값이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게 용주의 생각이었다.

자신에게 아버지만큼의 힘이 없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녀석은 이런 번거로운 일을 계획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건 도박을 위해선 자신을 어떻게 해서든 키워야겠다고.

그걸 위해선 일대일로 접촉해야 한다고.

한 번의 죽음을 안겨 줄 필요가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르지.

헌터로서의 특별함도 없고, 혜안도 개안하지 못한 그때의 자신에겐 악에 받친 발버둥 말곤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뭐가 어떻게 됐든 눈이 답을 알려 준다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눈을 가지고 있던 것도.

눈이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도.

전부 다 눈이 알려 준 답이었으니까.

‘근데 다 깔끔하게 죽일 생각이었다면, 왜 그런 번거로운 퍼즐을…. 탈출한 세 사람의 이야기는 왜….’

큽!

용주가 의문을 품던 그때.

갑작스럽게 역류한 무언가가 목구멍을 타고 올랐다.

반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은 용주는 자세를 낮췄다.

몸속에서 뭔가 활활 타오르고 있는 그런 고통이었다.

“애송이?”

이상을 감지한 형만이 곧장 반응했지만, 돌아온 건 용주의 거절 의사였다.

손바닥을 보인 용주는 역류하던 것을 다시 삼켜 냈다.

▶ 근원에 기록된 힘과 정수를 흡수했습니다.

▶ 새로운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 룰 브레이커.

-벡터를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습니다.

-온전하지 못한 힘의 단편입니다.

-불완전한 힘을 컨트롤하기 위해선 더 많은 마나를 필요로 합니다.

-필요 마나는 조작한 힘의 크기에 따라 결정됩니다.

▶ 데스 스칼(death scar)

-죽음과 맞닿은 흑염을 부릴 수 있습니다.

-다음 스킬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츠치노코, 카마이타치, 야마타노오로치. 쿠단, 시라누이, 오오무카데, 지자메, 오타케마루.

그와 동시에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

발현된 두 가지 스킬을 확인한 용주는 입가를 닦아 냈다.

손등에 묻어 나온 검은 액체.

금방 증발해 사라져 버린 그건 분명 실베스가 사용하던 죽음의 기운과 같은 것이었다.

‘마지막에 녀석의 리액터를 삼킨 것 때문인가.’

발현된 스킬은 각각 이준과 윤현이 사용하던 것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아무래도 녀석의 리액터를 삼킨 게 원인인 모양이었다.

‘설마 이준 녀석의 힘까지 들어올 줄은….’

다른 헌터의 힘이 자신의 것이 되었다.

이안이나 이준의 힘을 잠깐 빌린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용주로서도 낯선 상황이었다.

이건 언노운이나, 퀘스트 게이트, 시련 등을 통해 얻은 것들과는 달랐으니까.

‘그 리액터에 녀석의 힘이 일부 남아 있었기 때문인가? 힘이 상대적으로 온전하지 않은 건. 녀석이 녀석을 완전히 삼키지 못했었기 때문이고.’

실베스가 집어삼킨 건 아무래도 겉모습이나 의식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헌터가 언노운의 힘을 부리듯.

언노운도 헌터의 힘을 흡수하고 부릴 수 있다.

적어도 녀석 정도의 개체가 되면 그게 가능하단 소리인 거겠지.

‘발현된 건 같지만 기인한 마나는 조금 다른 모양인데.’

가볍게 움켜쥔 용주의 손바닥에서 흑염이 피어올랐다.

그렇게 자신을 괴롭히던 힘이 자신이 것이 되어 있다니.

윤현 녀석이 들었으면 아마 속이 뒤집혔겠지.

‘하나는 헌터, 하나는 계승자인가.’

일렁거리던 화염이 네모나게 압축되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차이를 곧장 알 수 있었다.

벡터를 조작하는 룰 브레이커가 소모하는 건 헌터로서의 마나.

반대로 데스 스칼은 계승자로 지금껏 쌓아 왔던 그 마나를 사용했다.

‘벡터를 조작하는 게 영 쉽지 않은데.’

잠시 잡아 놓았던 큐브의 모양이 급격하게 요동쳤다.

고작 손가락 마디 하나만 한 불꽃조차도 마음대로 다루기가 힘들었다.

‘이런 걸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남발한 거냐.’

방정식에 넣은 완벽한 계산.

지금 상태로 그걸 해내긴 힘들었다.

지금 용주가 의존하고 있는 건 몸이 기억하는 이 불꽃에 대한 기록.

머릿속에 흘러들어오는 방법과 방향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왠지 이 방법이 더 다루기가 쉬운 느낌이었다.

“괜찮은 거냐? 멍하니….”

이야기를 이어 가던 형만의 표정이 굳어졌다.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무겁고 소름 끼치는 기운이 간담을 스쳐 갔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위압감이었다.

“!”

순간 형만의 눈동자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

온몸이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해진 옷 사이로 살점이 뚝뚝 떨어졌고, 검게 변한 피가 바짝 말라 있었다.

이성을 붙잡은 형만은 눈을 깜빡였다.

조금 전까지 산송장이 되었던 몸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방금 그건….’

온몸에 한기가 돌았다.

세포 하나하나가 얼어붙은 듯 뻣뻣했다.

‘설마….’

고개를 돌린 형만은 이준을 살폈다.

하지만 딱히 달라진 건 없었다.

이건 적어도 녀석과 관련된 무언가가 아니었다.

“애송이….”

“그래. 나도 느꼈다.”

극도의 경계를 보이는 형만과 달리 용주는 태연했다.

이게 뭔지.

알고 있었으니까.

“슬슬 나타날 때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일렁이는 포탈.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카일론이었다.

카일론의 등장과 동시에 흔들림이 일었고, 차원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마치 거미줄처럼.

“애송이. 이 녀석은….”

마른침을 삼킨 형만이 물었다.

눈앞에 있는 건 사람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아니었다.

이자에게 느껴지는 건 언노운에게서 느낄 수 있는 그것.

하지만 그 정도는 형만이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수준이었다.

그래.

글러트니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S급 위에 존재하는 언노운. 그렇게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할 거다.”

“언노운이라고….”

형만이 미간을 좁혔다.

S급을 상회하는 언노운.

그것도 인간과 같은 모습을 한 언노운이라니.

세상에 그런 게 존재했단 말이냐?

“묻고 싶은 게 몇 가지 있는데. 지금이라면 대답해 줄 수 있겠지.”

이야기를 던진 용주는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 갔다.

문을 막는 데 성공한 지금이라면, 이쪽에게도 그만한 권리는 있지 않겠는가.

“왜 이 공간을 거기 놨던 거냐. 그럴 필요가 있던 거냐.”

용주의 물음에 카일론은 잠시 뜸을 들였다.

“…강한 자의 눈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아니, 죽어 있는 상태라고 표현해도 부족할 건 없겠지. 그곳에 강한 자가 말한 미래가 있다는 건 확신했지만, 그게 누군지 특정하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나의 존재와 나의 감각은 두 차원 사이에 걸쳐 온전하지 못했다. 바늘처럼 작은 구멍으로 원하는 걸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잠시 생각을 정리한 카일론이 입을 열었다.

“…….”

그의 목소리에 형만은 한 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녀석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는 건 두 번째 문제.

언노운이 말을 한다는 것 자체로 이미 상식의 틀이 뒤집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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