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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320화 (320/357)

320화

‘시간을 끌면 녀석은 완전히 이준을 잡아먹을 거야. 불청객은 사양이라고.’

빗발치는 포화.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투사체 사이를 누빈 용주는 폭발적으로 거리를 좁혔다.

“내놔! 어서 그 피를 맛보게 해달라고!”

장벽처럼 앞을 가로막는 말뚝들.

점멸을 사용한 용주를 기다리고 있던 건 벡터와 화염의 폭풍이었다.

굉음과 함께 말뚝에 새겨진 용주의 흔적.

여섯 개의 칼날 촉수로 그곳을 빠져나온 용주는 또 하나의 이상과 마주해야 했다.

전쟁터의 칼과 창처럼 여기저기 버려져 있는 말뚝들.

흑염에 잠식된 말뚝들이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키야아악!!”

날카로운 이빨을 보이며 울기까지 하는 녀석들.

팔다리가 생겨난 말뚝들은 흡사 도마뱀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언노운?’

각각의 녀석들에게서 언노운의 기운이 느껴졌다.

여기 있는 하나하나가 전부 독립된 개체.

그것도 나름의 힘을 가진 녀석들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간단하게 찍어 내는 건 반칙 아니냐.’

좌측으로 30도 방향을 튼 용주는 눈앞을 지나는 언노운을 베어 냈다.

단칼에 두 동강 나는 언노운의 몸.

생각보다 몸체가 약하다고 생각한 그때.

콰앙~!!

강렬한 폭발이 일대를 뒤흔들었다.

연쇄 폭발을 일으킨 흑염.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갑작스러운 폭발이었지만, 용주는 아슬아슬하게 진원지를 벗어날 수 있었다.

‘워커…였던 거냐.’

전에 봤던 녀석과 생김새가 완전히 달랐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녀석이 워커를 만들어 냈다는 건 용주에게 있어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워커는 게이트의 안정화를 촉진 시키는 개체.

이만한 숫자가 원하는 걸 달성한다고 가정하면, 게이트가 안정화되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할 수 있을까.’

모든 개체를 한꺼번에 처리한다.

적어도 여기서 처리하면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었다.

문제는 그만한 힘이 자신에게 남아 있는가 하는 것.

‘아니, 무슨 소리 하는 거냐. 할 수밖에 없잖아.’

다시 한번 용주를 감싸는 붉은 기운.

살과 뼈가 더해진 칼날 촉수는 보좌관의 것과 같은 날개가 되어 있었다.

‘큰 거 한 방이면 잃어버린 체력을 대거 회복할 수 있어.’

녀석이 언노운을 이렇게 풀어 준 건.

상당한 기회일지도 모른다.

여기 있는 녀석들은 찢는 대로 찢기니까.

“칵…!”

순간 왼팔에 쏠린 힘에 용주의 어깨가 찢어졌다.

그와 동시에 뒤쪽으로 돌아가는 날개 끝.

날개 끝에 튀어나온 여섯 개의 칼날엔 페이탈 블러드가 모여들었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큰 위력을 낼 수 있는 한 방. 그거라면 역시….’

활용해 본 적 없는 스킬의 활용이었지만, 본능이 말해 주고 있었다.

할 수 있다고.

스스로 그렇게 믿는다면, 그걸 관철해 내는 것 또한 자신이 할 일이겠지.

‘간다.’

페이탈 블러드가 쏘아 올린 제트엔진.그 엄청난 힘을 타고 솟구친 용주는 마치 혜성처럼 하늘을 날았다.

붉은 꼬리를 남기며 원을 그리는 혜성.

붉은빛이 도는 혜성은 종말을 알리는 별처럼 보였다.

“추진력을 얻은 속도를 최대로 올린다. 그렇게 해서 뭔가를 해볼 생각인가 본데.”

세로결을 따라 찢어지는 이준의 왼발.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흘러내린 검은 액체는 거대한 웅덩이를 만들었다.

웅덩이 속에서 나타나는 수천의 이빨.

다섯 겹의 치열을 가진 웅덩이는 살아 있는 생명의 입처럼 꿈틀거렸다.

“부질없는 짓이야.”

순간 용주를 끌어당기는 강렬한 바람.

온갖 잔해와 석판들이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건 부딪쳐 보기 전까진 모르는 일이지.’

이준이 하던 대로 벡터를 조작했다면, 상황이 더 안 좋았을 거다.

하지만 지금 부는 건 단순한 바람.

흡입력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벡터 조작만 할 순 없었다.

‘이안의 힘을 썼던 것처럼. 그렇게 하면 돼.’

속도를 높이는 혜성.

혜성의 색깔은 붉은색에서 하얀색으로.

그리고 하얀색에서 보라색으로 변해 갔다.

지금 용주를 감싸고 있는 건 플라즈마.

용주를 위협하던 태양의 열기는 용주의 무기가 되어 있었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자신을 향해 정확히 떨어지는 혜성.

매초가 다르게 커지며, 가까워지는 혜성을 마주한 이준이 모든 힘을 집중시켰다.

하늘을 떠받치는 아틀라스처럼 혜성을 막아서는 흑염.

흑염을 타고 오른 끈적한 무언가는 플라즈마를 비집고 들어왔다.

‘이건….’

점점 가까워지는 정체불명의 기운.

녀석이 가까워질수록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죽음의 기운이었다.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건가.’

녀석은 하나뿐인 죽음의 형제.

쥬다스와 같은 근원을 가지고 있다 해서 크게 놀랄 건 아니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자신도 카일론과 같은 부패의 근원을 가지고 있으니까.

‘아니, 섞였다고 하면, 섞이긴 했나. 뭐,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죽음의 기운과 뒤섞이는 부패의 기운.

닮은 듯 다른 두 근원의 힘은 하나가 되지 못한 채 서로를 밀어냈다.

“!”

화염을 뚫고 질주하는 혜성.

눈 깜짝할 사이 코앞까지 다가온 혜성은 이내 이준의 시야를 집어삼켰다.

플라즈마에 섞여 퍼져 나가는 부패의 기운.

잔열은 마치 지옥과 같았고.

내려앉는 부패의 기운은 사신의 옷자락처럼 느껴졌다.

핵폭탄이 터진 듯 모든 것이 사라진 그곳에 남은 건 죽음이었다.

여기 생명이 있었다는 흔적은 녹아내린 바닥에 남은 무언가의 자국.

그리고….

“죽을 수 없어. 난. 난 이런 곳에서 죽을 수 없다고!”

더 이상 사람이라 부를 수 없는 이준뿐이었다.

전갈의 하반신을 가진 이준은 말 그대로 녹아내려 있었으며, 몸은 썩을 대로 썩어 있었다.

마치, 좀비처럼.

팔과 다리의 형태는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으며, 얼굴은 흘러내려 눈이 목과 가슴에 걸쳐 있었다.

수십 갈래로 갈라진 손가락과 발가락은 길이도 형태도 제각각인 채로 저기 멋대로 널려 있었고, 그중 일부에서 자라난 비정상적인 형태의 이빨은 자기 자신을 꿰뚫고 있었다.

“죽을 수 없어. 죽고 싶지 않아. 어떻게 돌아왔는데, 어떻게 지금 여기까지 기어 올라왔는데…!”

더욱더 뒤틀리는 목소리.

이준의 목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그곳에 남은 건 실베스의 목소리뿐이었다.

“나는 죽음의 하나뿐인 형제. 너희 짐승 잡종들을 사냥할 포식자다. 그런 내가 이런 굴욕을…!”

실베스의 몸을 휘어 감는 화염.

용주의 그 많던 상처는 눈 녹듯이 사라지고 있었다.

“넌 뭐냐? 우리 동족이냐? 아니면 짐승 잡종이냐?”

용주를 노려보는 실베스의 눈동자.

복부에서 떨어져 내린 신체의 파편은 그대로 바스러졌다.

“어째서 카일론의… 부패의 기운을 다룰 수 있는 거냐?”

“글쎄. 궁금하면 직접 물어보지 그러냐.”

돌아오는 인간의 모습.

거친 숨을 몰아쉬는 용주의 눈엔 피눈물이 흐른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리고.

부패의 기운이 감도는 용주의 이 사이엔 이형 리액터가 물려 있었다.

“네 하나뿐인 형제도 머지않아 네가 있는 곳으로 갈 테니까.”

“감히…!”

격하게 반응하는 실베스.

하지만 반응했을 땐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산산조각 부서지는 이형 리액터.

이형 리액터의 파편을 씹어 삼킨 용주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빨 사이로 피어올랐던 흑염은 이내 끈적한 액체가 되어 흘러내렸다.

“끄아아악!!! 안 돼! 안 돼~!!”

끔찍한 비명을 지르는 실베스는 잠식했던 것을 도로 토해 내기 시작했다.

그때.

“뭐…. 네 저승사자는 나 혼자만이 아니지만.”

차원이 찢어지며 균열이 생겨났다.

“!”

실베스의 등 뒤에서 일렁거리는 차원.

놀란 듯 반응한 실베스였지만, 이번에도 다가오는 재앙을 피하긴 역부족이었다.

“넌 대체….”

균열을 찢고 나온 건 한 마리의 화룡이었다.

흑염을 삼킨 화염은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머리카락 한 점, 뼈 한 조각 남기지 않을 기세로.

“혜안(慧眼)….”

그 순간 떠오른 과거의 한 조각.

끓어오르며 타들어 가는 눈동자 사이로 보이는 건 미래를 보는 자와 차원을 가르는 자의 모습이었다.

같은 풍경에 맞이하는 두 번째 죽음이자, 완전한 죽음.

절대 마주할 리 없다 생각했던 그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샐러맨더…. 확실히 잘 어울리는 이명이군.”

플라즈마의 잔열조차 삼켜 버린 맹렬한 화염.

그 속에 있는 건 형만이었다.

형만의 모습은 용주에게 낯선 것이었다.

불꽃을 두른 저 모습도.

불꽃을 마치 팔처럼 부리는 모습도.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었으니까.

“그 흉측한 모습이 네 마지막 모습이냐.”

왼팔을 움켜쥔 형만은 이준을 들어 올렸다.

실베스의 잠식이 사라져 갈수록 이준의 모습이 바깥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너한테 어울리는 추악한 모습이군. 지옥에도 그 모습으로 가지 그러냐.”

“말도 안 돼. 내가… 잡종 짐승들 따위에게 두 번이나….”

마지막 말을 중얼거린 실베스의 기운이 완전히 사라졌다.

실베스가 사라진 이준은 가슴에 구멍이 뚫린 그 마지막 모습.

죽음이 지나간 그의 몸은 그 여파로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나는 신세계의 질서인데. 어떻게….”

물에 잠긴 듯 흐리고 뿌연 시야.

흐릿한 시야 속에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이준은 그게 누군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박형만….”

움직이지 않는 입술을 간신히 움직인 이준이 희미한 목소리를 냈다.

“어떻게…. 문은 전부 닫혔을 텐데.”

“말했지. 불지옥에 떨어져 영혼 한 점 남지 않더라도. 너만은 반드시 내 손으로 죽인다고. 그 맹세를 지키러 왔다.”

형만에게 문을 열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

원래대로였다면, 그 사막의 차원에 남겨졌어야 정상이겠지.

하지만 거기엔 문이 있었다.

엔비를 찾으려던 글러트니의 필사적인 발악이 만든 균열이었다.

그 끝이 어딘지는 알 수 없었다.

등대가 있던 부서진 세계.

떠오르는 곳은 당연히 그곳이었지만, 확신은 없었다.

다만, 수지가 있는 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충분히 들어갈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녀석에겐 빚이 있으니까.

게다가.

만에 하나라도 용주가 있는 곳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면 더더욱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녀석의 마지막을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겠노라고.

그렇게 다짐했었으니까.

“네가 나에게 지옥을 선물했으니. 나도 너한테 지옥을 선물해 주마.”

포탈로 진입한 형만을 기다리고 있던 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다.

아무리 강한 화염도.

아무리 강한 빛도 주변을 밝힐 순 없었다.

자신은 떨어지고, 떨어지고, 계속해서 떨어졌다.

그리고 그 속에서 손에 쥐고 있던 리액터가 무언가에 반응하는 게 느껴졌다.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어떤 힘.

그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 리액터를 형만은 말리지 않았다.

그 끝에 있는 게 언노운이든. 팬텀이든, 이준이든.

전혀 상관없었으니까.

“그래. 그랬었지. 자기가 뱉은 말은 어떻게 해서든 지킨다. 과연 샐러맨더답군.”

서서히 죽음에 잠겨 가는 이준의 눈동자.

“지옥에 너만을 위한 자리가 있길 바란다. 네 능력으로도 절대 벗어나지 못할 영원한 고통과 함께.”

마지막 저주의 말을 남긴 형만이 손을 놓았다.

스르륵 흘러내린 이준은 힘없이 무너져내렸다.

“내가 나타날 거란 걸 알고 있었군. 그랬지, 애송이?”

용주와 눈이 마주친 형만이 물었다.

“뭐… 대충은. 그런데 그 차원은 어떻게 된 거냐?”

“그 눈이 거기까지 보여 주진 않은 모양이지?”

형만이 쥐고 있던 이형 리액터를 내밀었다.

한 조각.

딱 한 조각만이 남았던 리액터는 힘을 다하고 바스러졌다.

“글러트니 녀석이 가지고 있던 거다. 그 녀석, 엔비한테 돌아간다면서 별 발광을 하고 있더군. 이건 녀석이 만든 균열이고.”

“그래. 그럼 그걸 만든 건 수지인 셈인가.”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

형만의 손가락 사이로 고운 가루가 흘러내렸다.

‘녀석은….’

수지의 상태를 확인한 용주는 안도의 한숨을 삼켰다.

녀석은 무사했다.

“그리운 장소군. 별로 좋은 기억은 없는 곳이지만.”

고개를 돌린 형만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전의 형태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처참한 풍경이었다.

“여기가 어딘지 알고 있는 거냐.”

“애송이 같은 질문이군. 이 팔이 이렇게 아려 올 곳은 한 군데뿐이지.”

팔을 잃어버렸던 자리를 바라보던 형만이 휘청거렸다.

“무리했나 보지.”

형만을 붙잡은 용주가 퉁명스럽게 이야기했다.

비정상적인 마나의 고갈.

형만의 휘청인 이유는 분명했다.

하긴 그만한 위력의 불길이었다.

글러트니와 싸운 직후임을 감안하면, 놀라운 위력이었다.

그게 영혼을 불태워서라도 이루겠단 복수의 무게란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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