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화
“큭…!”
왼손으로 목을 감싼 이준이 기침을 삼켰다.
치명적인 기체라면, 수도 없이 상대해 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역시 수도 없이 상대해 왔다.
인간계엔 존재하지도 않는 특수한 물질 역시 수도 없이 상대해 왔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자신을 위협하진 못했었다.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차단했으며,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었다.
이번 역시도 다르지 않았다.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공기에 무슨 짓을 했군.”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런 이상도 감지하지 못했고, 아무것도 걸러 내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것 말고는 말이 되는 설명이 없었다.
너무 당연하게 들이마신 숨이.
자신을 갉아먹는 칼날이었다.
“그것도 이안이 일러 준 수인가?”
공기가 없는 세계.
이안은 자신을 꺾기 위한 수로 그 세계를 만들었다.
실제로 상당한 위협이었고, 그대로였으면 당하는 건 이쪽이었을 거다.
이번 건 그것과 닮은 듯 달랐다.
공기를 이용한다는 발상 자체는 동일했지만, 이번엔 없애는 게 아닌, 활용하는 것이었다.
인간이기에 숨을 쉬어야 한다.
자신이 가진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약점이었다.
“카각!”
기회를 잡은 용주는 거칠게 이준을 몰아붙였다.
두 팔로 땅을 짚은 용주의 올려 차기.
가슴을 강타당한 이준은 그대로 천장에 처박혔다.
“큭…!”
풍참을 곁들인 할퀴기.
아슬아슬하게 몸을 뺀 이준이었지만, 용주의 사정권을 벗어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뿌려지는 인스네어와 플레이그.
포자와 가스 사이를 강하한 용주의 손엔 붉은 성흔이 새겨져 있었다.
‘그 정도쯤은….’
무의식적으로 숨을 들이켠 이준의 얼굴이 고통에 일그러졌다.
역류한 호흡이 기도를 막는 것 같았고, 잔불에 기름을 붓는 것 같았다.
촤악!!
잠깐의 버벅임이 만들어 낸 빈틈의 실.
가슴을 할퀸 상처를 타고 흘러간 불길은 선명한 성흔이 되어 나타났다.
“카각!”
공중을 디딘 용주에게 나타나는 변화.
포식을 준비하는 용주의 입이 인간의 규격을 한참 벗어났다.
폭발적인 광풍을 일으키며 90도로 내리꽂히는 용주.
기괴함을 넘어 공포스러운 용주를 마주한 이준은 검을 맞댔다.
“……!”
그 순간 이준을 스치는 소름 끼치는 감각.
이빨에 닿은 칼날이 마치 두부처럼 부서지고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세계를 압축시킨 이안의 검과 부딪쳐도 이 하나 나간 적 없었다.
그런데.
‘안 돼.’
멈춘 듯한 시간 속 느껴지는 이건.
틀림없이 죽음의 감각이었다.
자신이 이걸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이대로면 죽는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콰앙!!!
호흡을 멈춘 이준은 모든 벡터를 최대치로 반사 시켰다.
과도한 마나에 비례한 과도한 위력.
이준과 불과 7cm 거리만을 남겨뒀던 용주는 비밀의 방의 대문을 부수고 복도까지 날아갔다.
“!”
그와 동시에 이준을 덮치는 강렬한 충격.
용주와 똑같은 거리를 날아간 이준은 피라미드를 일자로 관통했다.
‘벡터의 방향은 분명 완벽하게 돌려놨는데 왜….’
반사적으로 가슴을 움켜쥔 이준은 이를 악물었다.
이 대미지.
뭔가 잘못됐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힘을 너무 과도하게 사용한 건가?’
그렇게 생각한 이준의 눈에 성흔이 보였다.
상처라고 하기엔 이질적인 이 문양은 조금 전 일격으로 생긴 거였다.
‘아니야. 이건.’
눈살을 찌푸리는 이준의 입술을 타고 피가 흘렀다.
입은 대미지의 절대적인 총량으로 치면.
이준이 입은 건 용주의 새 발의 피도 안됐다.
하지만 같은 대미지를 입었을 때 그걸 받아들이는 정도는 두 사람에게 큰 차이가 있었다.
‘자신이 받는 대미지를 되돌려 주는 스킬…인 건가?’
그런 가정이라면 지금 상황이 전부 설명이 되었다.
그리고 그 가정이 사실이라면 상황은 최악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건 제거해야만 했다.
‘어쩔 수 없지.’
결연한 결심을 내린 이준이 한 방울의 빛망울을 만들어 냈다.
손가락 끝에서 느껴지는 플라즈마의 열기.
“그아아악!!!”
벡터의 방향을 섬세하게 컨트롤한 이준은 그대로 성흔을 지졌다.
검게 그을린 그곳엔 더 이상 성흔은 남아 있지 않았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내쉬는 이준.
지면에서 솟구치는 꼬리를 피한 이준은 일격에 꼬리를 잘라 냈다.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던 꼬리를 붙잡은 이준은 맨손으로 그걸 짓이겼다.
강철보다 단단한 갑피는 마치 종잇장처럼 구겨져 있었다.
“이렇게 엉망으로 당해 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 이안이랑 싸울 때도 이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진 않았는데.”
심호흡을 한 이준이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어떤 상처에도, 어떤 공격에도 쓰러지지 않는 좀비. 확실히 딱 어울리는 이명이긴 하네. 고통에 익숙하단 건 어쩌면 꽤 훌륭한 능력일지도 모르겠어.”
촛불처럼 흔들리던 그의 눈동자엔 다시금 평정심이 감돌았다.
“하아…. 그래도 덕분에 끔찍했던 두통이 날아갔어. 이런 걸 두고 충격 요법이라고 하던가?”
타오르는 듯한 고통은 아직 남아 있었고, 숨을 쉴 때마다 고통스러웠지만, 덕분에 현실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카학… 칵!”
“대미지를 입은 건 나뿐만은 아닌 모양이지?”
대미지는 뼈아팠지만, 용주 역시도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되어 있었다.
당장 쓰러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받은 게 있으니 확실히 돌려줘야겠지.”
검 손잡이를 움켜쥔 이준이 벡터를 이용해 속도를 증폭시켰다.
작렬하는 이준의 고속검.
부러진 칼날이 무색할 정도로 참격은 빠르고 날카로웠다.
온몸을 난자하는 참격 속에서 기회를 노리던 용주는 왼손을 움켜쥐었다.
그런데.
“……!”
점멸을 사용하는 바로 그 순간 몸의 방향이 멋대로 왜곡되었다.
점멸은 용주가 원하던 곳이 아닌, 이준의 요리에 가장 적합한 위치에 떨어졌다.
“잃어버린 기억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어. 방금 그건 그 기억 중 일부라고 봐도 좋은 거겠지.”
모여드는 페이탈 붐을 역으로 용주의 입속으로 쑤셔 넣는 이준.
“그렇다는 건 내가 가지고 있던 이형 결정체의 주인. 녀석을 쓰러뜨리긴 했지만, 그 과정이 평탄치만은 않았다는 이야길 테고….”
날카로운 칼날이 된 용주의 촉수들은 서로가 서로를 베어 냈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런 녀석들을 원하고 있었다고.”
격렬하게 패대기쳐진 용주.
바닥에 튕긴 반동으로 튀어 오른 용주는 반쯤 무너진 피라미드를 사선으로 관통했다.
“유희, 기존 질서론 통제되지 않는 큰 혼란, 파괴와 희열. 오직 나로 인해 통제되는 새로운 질서!”
무너져 내리는 잔해 사이를 관통한 이준이 용주의 입안에 손을 넣었다.
무는 힘은 역설적이게도 용주의 입을 찢는 원동력이 되었고, 직각으로 돌아간 힘은 용주의 이빨을 강제로 부러뜨렸다.
“칵…!”
“말했잖아. 받은 빚은 돌려주겠다고.”
순식간에 뽑혀 나가는 이빨들.
이준의 팔을 타고 오른 이빨들은 용주의 척추를 타고 꼬리까지 흘러갔다.
용주의 이빨은 상어가 기겁할 정도로 빠르게 재생되었지만, 자기 이빨에 상처를 입는 굴욕감만으로 이준은 상당히 만족스러운 듯 보였다.
쾅!!
굉음과 함께 폭발하는 대지.
플라즈마에 녹아내린 대지 위로 떨어진 용주는 두 개로 가른 꼬리를 강렬하게 마찰시켰다.
“…….”
하지만 아무리 빠른 마찰에도 열은 발생하지 않았다.
열을 전해 줄 매개의 부재.
산소를 포함한 모든 전달 물질이 사라진 이곳은 우주 한복판과 마찬가지였다.
“공기가 없는 건 괴롭지. 나도 잘 알아.”
용주와 달리 이준에겐 소리가 있었다.
소리가 있다는 건 매개가 있다는 소리.
여기에 영향을 받고 있는 건 용주만이라는 이야기였다.
“한 걸음마다 중력과 압력이 바뀐다는 것도 괴롭고.”
이준의 말처럼 용주의 한 걸음마다 용주에게 작동하는 행성의 원리가 멋대로 변화하고 있었다.
심지어 다리와 머리에 작동하는 법칙이 다르기도 했으며.
왼쪽과 오른쪽 어깨가 받는 법칙이 다르기도 했다.
여긴 이준이 만든 세계가 아니었지만, 이곳의 규칙과 질서를 정하고 있는 건 그였다.
‘충분히 밀어붙였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S급 헌터는 요원한가.’
신체적, 정신적 대미지는 분명 기대치 이상으로 넣었다.
하지만 이준의 힘은 용주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크고 깊었다.
‘녀석이 남긴 플라즈마를….’
역할을 다한 플라즈마는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아까 그걸 온몸으로 뒤집어쓰며, 그중 일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이안의 힘을 흡수했던 것과 같은 원리로 말이다.
‘아니야.’
용주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피눈물.
미래시를 사용한 용주는 불규칙한 중력 영역을 벗어났다.
근미래의 현실.
그건 자신이 플라즈마 칼날을 사용했을 때 일어날 일들을 보였다.
플라즈마를 사용한 참격은 분명 강력한 일격이었다.
하지만 그 칼끝에 두 동강 나는 건 자신의 몸통이었다.
‘그럼 남은 방법은 역시….’
“뭔가 했지? 그렇지?”
용주의 앞을 막아선 이준.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용주는 교통사고를 당한 오토바이처럼 붕 날아갔다.
“네 마나가 큰 폭으로 요동치는 게 느껴졌어. 뭔가를 하지 않고서야 그렇게 큰 폭으로 움직일 리 없지.”
용주의 얼굴을 붙잡는 이준의 손.
용주의 뒤통수를 지면에 처박은 이준은 그대로 용주를 갈고 나갔다.
“숨겨 둔 뭔가를 꺼내야 할 만큼 궁지에 몰렸다. 그렇게 봐도 좋은 건가? 아니면 궁지에 몰려야만 쓸 수 있는 스킬?”
뭔가가 일어난 건 확실했지만 그 뭔가가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문을 열 열쇠는 소중한 자산. 그러니 멀쩡히 잘 회수해야겠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급속도로 팽창하는 벡터.
공성추처럼 찍어누르는 힘은 용주의 왼팔과 다리를 집요하게 뒤틀었다.
용주의 팔다리는 전처럼 쉽게 뽑혀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준 역시도 진심이었다.
끝끝내 뜯겨 나간 왼팔은.
지난번 용주의 패배를 떠오르게 하기에 충분했다.
“생각이 바뀌었어. 열쇠에 굳이 팔다리가 있을 필욘 없지.”
붉은빛이 감도는 이형 리액터.
“살아 있을 필요도 없고. 회수하면 되는 건 정수. 그거면 족해.”
용주를 뒤덮던 붉은 기운이 서서히 이준의 손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윤현의 리액터를 내 것으로 만든 것처럼. 네 정수를 내 것으로 만들면 그만이니까.”
마주치는 두 사람의 시선.
손 하나를 사이에 둔 용주의 눈동자를 타고 붉은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지금이다.’
용주의 머릿속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생각.
피눈물이 보이는 미래시와 동시에 움직인 용주는 지금까지 감춰 두었던 비장의 수를 펼쳤다.
바로 지금.
지금이 아니면 안 됐다.
본능적으로 몸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뭐지?’
두 사람을 감싸는 짙은 부패의 기운.
회오리치는 부패의 기운은 두 사람을 세상과 분리시켰다.
“…….”
마치 카타콤에 들어온 것 같은 끔찍한 불길함.
지옥문을 마주한 이 느낌을.
어째선지 이준은 알고 있었다.
이건….
부패의 기운이었다.
“큭…!”
끔찍한 두통과 함께 떠오르는 한 가지 풍경.
두 눈이 짓뭉개진 사내가 휘두른 검은 자신의 목을 반쯤 찢어 놓았다.
“아까 그 감각인가. 피에 반응했던 게 이번엔 이 부패에 반응하는 건가.”
남아 있는 모든 힘을 집중한 이준은 폭풍을 잠재우려 했다.
“그리고 이게 네 마지막 발악이고.”
컨트롤이 쉽진 않았다.
폭풍을 구성하고 있는 이 부패의 기운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물질이었다.
하지만.
몸이 뭔가를 기억하고 있었다.
뭐라고 설명할 순 없지만. 조종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집중하면….
“카…각!”
그 순간 작렬하는 용주의 일격.
잘려 나간 왼팔을 대신해 자라난 꼬리는 용주의 모습을 한층 더 기괴하게 만들고 있었지만, 이준은 거기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까지 모아 둔 피의 메아리가 위력을 더했지만 이준은 그것 역시 신경 쓰지 않았다.
이준이 신경 쓰는 건 오직 부패의 기운을 제어하는 것.
다 죽어 가는 용주의 공격쯤이야 아까처럼 벡터를 최대로 돌려놓으면 알아서 튕겨 나갈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
이준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다.
벡터의 그물을 찢은 날카로운 일격은.
벡터의 통제는 전혀 받고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