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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316화 (316/357)

316화

“힘도, 스피드도 충분. 하지만 내 앞에선 모든 게 다 부질없을 뿐이야.”

완전히 무위로 돌아간 공격.

길게 뻗은 꼬리 끝으로 낫을 휘감은 용주는 비정상적인 궤도를 그리며 움직였다.

다리를 쓰지 않고 움직인 자리는 비정상적인 중력에 짓이겨지고 있었다.

‘풍참.’

꿈틀거리며 요동치는 힘줄.

일격이 만들어 낸 상처가 대지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고속검의 일종인가? 아니, 검이 아니니 그 표현은 부정확한가?”

찢겨 나가지 않은 타일의 중심.

맹렬하게 몰아치는 폭풍의 중심에서도 이준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벡터가 조작된 바람은 용주의 몸을 찢고 있을 뿐이었다.

“재밌는 우연이네. 고속검이라면 이쪽도 자신 있는데.”

검을 뽑아 드는 이준.

맞부딪치는 두 사람의 일격에 칼날 같은 바람이 불어 나갔다.

서로가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뒤따르는 참격은 약 백여 개.

하지만 모든 공격은 서로에게 부딪쳐 상쇄되고 있었다.

“네 벡터는 건들지 않았어. 완벽한 기회 아니야?”

이준의 말에 거짓은 없었다.

하지만.

기회를 살리는 게 쉽진 않았다.

건들지 않은 건 용주의 벡터뿐.

자신의 힘과 속도를 조작한 이준의 공격은 힘의 방정식을 완벽하게 무시하고 있었다.

“어디 보여봐. 네 전력을.”

미끄러지듯 용주의 안쪽으로 파고든 이준이 팔등을 올려쳤다.

고작 한 번의 터치가 만들어 낸 엄청난 충격.

수직으로 솟구친 용주는 천장에 거꾸로 매달렸다.

‘로커스트 스웜.’

날아오르기 시작하는 착취의 무리.

이준에게로 날아들었던 무리는 머리, 가슴, 배로 정확하게 3등분 되어 바닥을 나뒹굴었다.

용주의 피를 머금는 나머지 무리.

더욱 크고, 날카로운 모습으로 변한 무리는 이준을 동그랗게 포위했다.

“슬로스 덕에 벌레에 대해선 조금 아는 편인데, 이런 개체는 처음 보는걸?”

일제히 사출되는 피의 향연.

“머리, 가슴, 배, 셋 중 어디를 날려 줄까.”

벡터가 조작된 힘은 불규칙하게 휘며 동그란 고리가 되었다.

“우선은 가슴.”

말과 동시에 고리에서 튕겨 나간 일부가 무리의 3분의 1을 날려 버렸다.

날아간 부위는 공통되게 가슴.

움직이는 벌레들을 하나하나 정확히 노린 조준 사격이었다.

“다음은 배로 할까?”

그다음 이어진 공격은 살아남은 무리의 배와 머리를 차례차례 날려 버렸다.

“자~ 다음은 어쩔 거지?”

이준의 시선이 위쪽을 향했다.

용주가 흩뿌린 번개는 지면에 박힌 사신의 낫을 밝히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날아드는 페이탈 붐.

작렬하던 구체는 로슈 한계를 넘어선 운석처럼 유성우가 되어 쏟아졌다.

‘녀석의 눈이 이쪽으로 쏠린 지금이라면….’

유성우 사이를 질주하는 사신의 낫.

서로 다른 극성을 띤 낫들은 일제히 중앙으로 모여들었다.

“시도는 좋았어.”

시간이 멈춘 듯 사라져 버린 움직임.

낫과 분리된 전류는 그것보다 조금 더 전진했지만, 역시나 성과로 이어지진 못했다.

“번개로 할 수 있는 재주라면 거의 다 알고 있어. 시우보다 참신한 걸 보여 주지 못한다면, 아마 놀라게 하긴 힘들 거야.”

갑작스럽게 뒤바뀐 중력.

무서운 기세로 끌어당기는 중력에 용주의 몸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중력 속에서 꼬리를 당긴 용주는 날카로운 이빨로 그를 물었다.

거센 마찰에 일어나는 불꽃.

왼손을 끌어당긴 용주는 중력 속에서 사라졌다.

휘익!

회전하는 꼬리가 만들어 내는 바람과 불꽃.

오른손으로 땅을 짚은 용주는 자신에게 가해지던 힘을 자신의 힘으로 이용했다.

“…….”

대회전 베기를 막아서는 이준의 검.

힘의 충돌에 5cm 정도 밀려난 이준의 얼굴엔 약간의 당황스러움 묻어 있었다.

‘벡터 계산에 미스가 있었던 건가.’

벡터라면 분명 조작했었다.

하지만 공격은 위협적이었다.

용주의 힘이라면 어느 정도 가늠하고 있었다.

길드를 통해 얻은 데이터.

팬텀을 통해 얻은 데이터도 있었고.

무엇보다 윤현의 리액터로 습득한 데이터가 있었으니 말이다.

용주의 힘이 지난번보다 상승했단 건 알고 있었다.

당연히 그에 맞춰 이쪽의 계산식에도 변화를 주어 왔다.

하지만 방금 그건 그 계산을 뛰어넘는 일격이었다.

벡터를 조작하는 힘은 분명 완벽한 신의 권능이었지만.

그걸 다루는 인간은 신이 아니었다.

“나름대로 힘에 자신 있는 헌터라도,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할 중력이었는데, 역시 이안이 가만히 있진 않았던 모양이지?”

하나하나 더해 가는 중력에도 용주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바닥을 긁는 마찰과 함께 날아드는 날카로운 꼬리.

재계산을 마친 이준은 대미지의 방향을 반대로 돌렸다.

“칵…!”

떨어져 나갈 듯 찢어지는 꼬리.

뒤틀린 상처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용주는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 갔다.

섀도 홀에서 솟구치는 꼬리.

그림자에서 시작된 기습을 보지도 않고 무력화시킨 이준은 왼손을 쭉 뻗었다.

“그럼 이런 상황엔 어땠을까?”

순간 턱하고 막히는 숨.

용주가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느꼈을 땐 이미 폭풍우 치는 바다 한복판이었다.

‘이 녀석 설마….’

온몸이 압축되는 이 감각.

급속도로 상승하는 온도.

호흡기를 망가뜨리는 공기.

한 가지 떠오르는 가설이 있었다.

녀석이 하고 있는 건 공기를 압축하는 것.

사방이 뚫린 개활지 역시 녀석에겐 밀실이나 다름없었다.

“부디 버텨 주길 바라. 벌써 끝나면 재미없잖아.”

움켜쥐는 손.

압축의 영향권 안에 있던 조각상 하나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하지만 압축된 공기에도 용주는 여전히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니.

유지하는 걸 넘어 공기를 비집고 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광폭화에 더해진 사후 강직과 무호흡.

그 밖에 각종 스킬들과 경험들은 이준이 만든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용주를 움직이고 있었다.

“역시 제법이네. 그럼 한 단계 더 올려 볼까?”

더욱 강하게 움켜쥐는 이준의 손.

압력에 짓이겨진 용주의 몸에서 부서진 갑피 조각이 우수수 떨어졌다.

용주를 감싼 공기의 온도 때문에 용주의 모습은 하늘거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네가 날 짓누르고 붙잡겠다면, 나도 그 힘을 이용해 주지.’

여섯 개로 갈라지는 용주의 꼬리.

머리 앞으로 모인 꼬리를 타곤 엄청난 양의 힘이 집중되었다.

‘압축된 공기가… 빨려들어 간다.’

벡터조차 끌어당기는 흡입력.

에스카톤 저지먼트를 마주한 이준의 머리가 바람에 흩날렸다.

“훗…!”

옅게 번지는 이준의 미소.

짙은 만족감을 보인 그는 다시 한번 없는 안경테를 고쳐 썼다.

눈앞에 있는 건 말 그대로 언노운.

정의된 적 없고.

정의될 수도 없는.

매 순간 변화하고 진화하는 역동적인 유일 개체.

응집되는 저 거대한 힘을 마주하고 있노라니, 마치 자신이 작아진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런 기분을 느껴본 게 대체 얼마 만인지.

“그럼 이쪽도 그에 맞춰 주는 게 S급 선배로서의 도리겠지.”

이준의 머리 위로 빨려 들어가는 바람.

일점으로 압축된 공기는 다시 한번 엄청난 양의 열기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거기 있는 건 용주를 덮친 압력과는 차원이 달랐다.

하늘을 하얗게 물들이는 빛의 춤사위.

초소형 백색 왜성을 만들어 낸 빛은 이번엔 보라색을 띠기 시작했다.

“지금 네가 마주하고 있는 건 태양이야. 중심부의 온도는 5,000도를 가볍게 웃돌지.”

왜성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보랏빛 물결.

음산한 보랏빛 구름과 오로라의 정체는 바로 플라즈마였다.

공기 중의 원자를 양이온과 전자로 억지로 분해해서 만든 인공 플라즈마.

계산식이 복잡하고 컨트롤하기가 까다롭다는 단점이 있긴 했지만, 복잡한 값은 확실히 하는 녀석이었다.

“카각!”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부딪치는 힘과 힘!

작렬하는 두 가지 스킬이 만들어 낸 열파에 일대의 타일과 조각들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이만한 힘을 쏟아 냈는데도 용주는 그 자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준이 만든 압축 지대는 용주에게 완벽한 발판이자 지지대였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인 것 같네.”

팽팽하게 이어지는 줄다리기 속 이준이 입꼬리를 올렸다.

“프라이드가 그랬지. 그건 언노운이었다고. 최고로 하이한 건 그 괴물과 싸울 때라고.”

균형이 깨진 대치.

“그리고 전에 시우가 그랬었다지. 자긴 인간이랑 싸우는 게 더 재밌을 것 같다고.”

에스카톤 저지먼트를 밀어내는 플라즈마는 점점 더 거리를 좁혀 왔다.

“S급 언노운, S급 헌터. 양쪽 모두를 경험해 본 입장에서 누구 손을 들어줄지가 참 애매했었거든. 개인적으론 헌터 쪽에 조금 더 무게를 두는 편이지만, 표본이 너무 적었으니까.”

용주의 분투에 맞서 이준 역시도 진심을 쏟아부었다.

짧은 밀어냄.

짧은 대치.

그 뒤에 이어진 건 다시 한번 후퇴 전선이었다.

“근데 지금 확실해진 것 같아. 제일 유쾌하고 흥미로운 건 S급 헌터가 손에 넣은 S급 언노운의 힘. S급 언노운이 손에 넣은 S급 헌터의 힘이야.”

용주의 힘을 완전히 잠식해 버린 플라즈마.

지면을 휩쓰는 보랏빛 물결은 핵폭탄이 떨어진 듯 모든 것을 날려 버렸다.

“이안이 만약 그런 힘을 가졌다면, 서아가 만약 그런 힘을 가진다면, S급 이상의 언노운 개체가 인간과 같은 머리와 지성을 가졌다면…. 후. 생각만 해도 즐거운걸.”

플라즈마가 만들어 낸 부채꼴 모양의 불의 지대.

이글거리는 보랏빛 사이로 뛰쳐나온 용주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딱 한 걸음을 기준으로 뒤바뀌는 압력.

보이지 않는 밀실을 벗어난 용주는 인스네어 속으로 사라졌다.

두 다리를 덮은 하얀 갑피는 용주가 얻은 폭발적인 추진력의 원동력이 뭔지 말해 주고 있었다.

“단순한 연막은 아니네.”

초록 가스 안쪽의 힘의 흐름이 다른 곳과 다르단 걸 이준은 곧장 눈치챌 수 있었다.

언노운 중에 이런 비슷한 걸 사용하는 개체를 몇 알고 있었다.

사용자는 효과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기에 역으로 이용하는 건 힘들었지만, 무력화시키는 건 숨 쉬는 것만큼 쉬운 일이었다.

“그걸 맞고 살아남은 건 네가 처음이야.”

벽을 이루며 쌓아 올려지는 가스 지대.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힌 듯 멈춰 선 가스 지대는 이내 가라앉기 시작했다.

“칵!”

마지막으로 보인 곳과 전혀 다른 방향에서 튀어나오는 용주.

벡터를 조작한 이준은 강제로 용주의 입을 다물렸다.

안쪽에서 살을 찢은 이빨은 피부를 뚫고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그래도 완전 무사한 건 아닌 모양이지?”

그 상태로도 속도를 유지하는 용주의 모습은 분명 박수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박수는 승자를 위한 박수가 아니었다.

부서지고 찢긴 갑피는 재생력이 크게 떨어져 있었고, 흘러내린 피가 전신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플라즈마 속에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지만, 그 대미지는 저 작은 몸뚱이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었다.

“속도를 원하면 내가 줄 수도 있어.”

지금까지 이준이 이용한 벡터 방향은 용주의 힘의 역방향.

하지만 지금 조작한 벡터는 그와는 정반대되는 것이었다.

‘속도가…!’

비정상적인 가속이 붙은 용주는 이준을 지나쳐 피라미드에 처박혔다.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린 잔해는 용주를 완전히 덮어 버렸다.

‘역시 치고받는 공방이 아니니 상성이 영 별로인데.’

진짜 피라미드에 묻힌 것 같은 고립감과 밀폐감 속에서 용주가 고개를 저었다.

상성이 안 좋을 거란 것도.

이런 흐름이 될 거란 것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역시 HP의 소모는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큰 기술을 뽑아냈어.’

이안이 맡긴 비수.

최후이자 비장의 한 발은 역시 그것이었지만, 그거 하나에만 전부를 걸고 있는 건 아니었다.

신의 능력을 가졌다 한들 녀석은 인간이었다.

헌터의 마나는 무한하지 않으며, 그건 녀석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언제까지 하늘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을까?’

일방적인 소모전으로 보이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쌍방의 소모전.

전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전투가 지저분해지면 지저분해질수록.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건 이쪽이었다.

땅을 기어 본 적 없는 자와 땅을 기며 살아온 자.

흙먼지를 뒤집어쓴 두 사람이 느끼는 감각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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