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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313화 (313/357)

313화

* * *

작렬하는 태양과 이글거리는 아지랑이.

사막 한복판을 거닐던 형만이 분지 안쪽을 내려다보았다.

모래에 잠식되지 않은 분지는 수분이 축축하게 남아 있었는데, 야자나무를 비롯한 주변의 흔적들로 추측건대 오아시스가 있던 자리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엔 물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있는 건 흩날리는 모래와 누군가의 울음소리.

그리고.

익숙한 녀석의 실루엣이었다.

“아무래도 꽝이었나 보군.”

사막에 혼자 떨어진 형만에겐 길잡이도 나침반도 없었다.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것 또한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다.

적과 아군.

정확히는 용주와의 관계에 있어 어떤 자들인지 자신으로선 파악하기 힘들었으니까.

그렇기에 형만은 누구와도 조우하지 않고, 이 넓은 사막을 걷고, 걷고 또 걸었다.

더위엔 상대적으로 내성이 있기에 버티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정확히 한순간을 기점으로 다른 존재.

정확히는 이질적인 언노운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글러트니.

녀석을 덮고 있던 장막이 사라졌다는 게 의미하는 건 하나.

“안수지….”

부서지는 세계에서의 승부에 마침표가 찍혔다는 이야기일 거다.

그리고.

녀석이 여기 있다는 건 이준은 용주가 간 게이트 쪽에 있다는 이야기이고.

“엔비. 엔비…. 엔비!!”

서럽게 울부짖는 글러트니의 울음소리.

슬픔에 젖은 그는 아직 형만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 듯 보였다.

그가 주저앉아 있는 오아시스의 밑바닥엔 약간이나마 물이 고여 있었다.

처음엔 그저 남아 있는 물.

혹은 지하에서 올라온 물 정도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저기 고여 있는 건 글러트니가 흘린 눈물.

보다 정확히는 그가 토해 낸 물과 침이 섞인 액체였다.

갈라진 그의 배에선 꿀렁거리며 계속해서 액체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플레임 세츄레이션!”

거두절미하고 내리꽂히는 형만의 일격.

혜성처럼 쏟아진 화염은 오아시스를 한순간 분화구로 바꿔 놓았다.

“악! 뜨거!”

이글거리는 화염 속에서 날뛰는 글러트니.

데굴데굴 구르던 글러트니는 있는 힘껏 숨을 들이마셨다.

빨려 들어가는 거센 불길.

모든 불길을 빨아들인 글러트니는 고래처럼 불길을 뿜어냈다.

분수가 되어 쏟아지는 화염.

형만을 향해 쏟아지던 불길은 그를 한 바퀴 돌아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파이로매니아(Pyromania).”

불길 속에서 나타나는 눈과 입.

마치 악마를 연상시키는 불꽃은 거센 불길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강을 이루며 요동치는 거대한 불의 파도.

글러트니를 집어삼킨 불길은 고인 액체를 모조리 증발시켰다.

“엔비…! 엔비가 없어! 엔비가 없어!!”

고통에 찬 비명과 함께 사라지는 화염.

파이로매니아를 모조리 집어삼킨 글러트니는 입에 든 것을 그대로 삼켜 버렸다.

“버닝리전.”

지면에서 솟구치는 크고 작은 불기둥들.

그 속에서 일어난 불사조들이 창공을 향해 날아올랐다.

“뜨거워! 뜨거뜨거뜨거!!”

사방에서 치고 빠지는 불사조들의 게릴라전.

글러트니를 감싸는 혜성의 꼬리는 마치 그를 포박하는 밧줄처럼 보였다.

“방해하지 마! 방해하지 마!”

좌우로 갈라지는 글러트니의 배.

그 속에서 뻗어 나온 검은 촉수들은 날아가는 불사조들을 낚아채기 시작했다.

“방해하지 말라고!”

사라진 혜성의 꼬리.

파리를 삼키는 개구리처럼 모든 불사조를 집어삼킨 글러트니의 몸이 갑작스럽게 날아갔다.

탱탱볼처럼 튕기는 글러트니.

거센 불길 속에서 나타난 형만은 다시 한번 대검을 휘둘렀다.

외벽에 처박힌 글러트니의 머리 위론 사막의 뜨거운 모래가 쏟아져 내렸다.

“박형만…!”

폭발하듯 터져 나가는 모래.

글러트니의 두 눈이 처음으로 형만을 향했다.

“너와 나눌 대화 따윈 없다. 살 점 하나, 뼛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태워 주마, 애송이.”

수지의 싸움이 결판이 났다는 건.

그녀가 그녀와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매듭을 지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이쪽에서도 그렇게 해주는 게 당연하겠지.

이건 죄나 복수가 아니라, 당연한 정의였으니까.

“애송이…. 애송이애송이애송이…!”

발작 스위치가 올라간 듯 경련을 일으키는 글러트니.

과도한 흥분 상태를 보이는 그의 모습은 흡사 뇌전증 환자를 보는 것 같았다.

“엔비! 박형만! 엔비!! 박형만!!”

형만의 존재를 인지한 글러트니가 기이한 행동을 보였다.

뭔가 두 개의 인격이 싸우고 있는 듯 좌우를 번갈아 보았고.

눈동자의 초점도 심하게 불안정했다.

“플레임 인젝터!”

뭐가 어떻게 된 건진 몰라도 형만은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았다.

찬스가 있다면, 그게 뭐든 알 바 아니었으니까.

솟구치는 화염에 날아가는 글러트니.

그의 움직임을 따라잡은 형만은 거센 불길로 그를 찍어눌렀다.

“인페르노!”

마른 오아시스를 강타하는 세 번의 폭발.

강렬한 열파에 노출된 야자나무엔 불길이 일었고, 메말랐던 풀들은 바스러져 흩날렸다.

“뜨거…워…!”

순식간에 바짝 구워진 글러트니.

보통이라면 이미 죽었을 만큼 끔찍한 화상이었지만, 글러트니는 죽은 피부를 금세 복구해 버렸다.

“목말라! 배고파!!”

온몸을 둥글게 만 글러트니가 순식간에 형만을 강타했다.

공처럼 회전하며 날뛰는 글러트니.

육탄전차는 빠르고 강력했고, 또 파괴적이었다.

“파이어 월.”

두 사람 사이에 솟구치는 불의 벽.

겹겹이 쌓여 가는 벽을 정면 돌파 한 글러트니는 불길을 타고 솟구쳤다.

“방해하지 마!!!”

지면을 울리는 강렬한 충돌.

외팔로 공격을 막아선 형만은 육탄전차의 회전력이 다 할 때까지 공격을 버텨 냈다.

회전력을 잃은 글러트니를 찍어 누르는 대검.

인간의 것을 벗어난 글러트니의 탄력은 형만의 대검을 마치 무딘 검처럼 보이게 했지만, 형만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녀석이 인간이 아니란 것도.

녀석이 이안의 앞을 가로막고도 살아남은 괴물이란 것도.

녀석이 상식을 벗어난 존재란 것도.

이미 다 알고 있는 바였으니 말이다.

“선스폿(Sunspot).”

글러트니의 몸에 새겨지는 선명한 흑점.

밝게 타오르는 흑점은 글러트니의 피부를 불살랐다.

“아파! 아파!!”

불과 몇 초의 시간 동안 피부가 몇 번이고 재생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흑점은 사라지지도, 희미해지지도 않고, 계속해서 글러트니를 불태웠다.

“그만! 아파!”

양쪽으로 벌어지는 글러트니의 몸.

끝을 알 수 없는 입속에 삼켜진 흑점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래 주면 이쪽이야 일이 쉬워지지.’

“솔라 플레어(Solar Flare).”

순간 글러트니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강렬한 빛.

어둠을 뚫고 솟구친 맹렬한 화염은 흡사 태양의 플레어를 연상케 했다.

“매워! 매워매워!”

뱃속을 후벼 파는 맹렬한 통증에 팔짝팔짝 뛰는 글러트니.

매운맛은 통증이라고.

계속해서 같은 말을 중얼거리는 글러트니는 숨을 들이켰다.

그 흡입력에 뜯겨 나가는 바닥.

딛고 있던 바닥과 함께 들어 올려진 형만은 검에 불을 지폈다.

“그렇게 먹고 싶다면, 한 방 더 먹여 주지.”

소용돌이치며 뻗어 나가는 화염.

조준할 필요도 없이 빨려 들어간 화염은 그대로 글러트니에 배 속으로 이어졌다.

쾅!!

그 순간 일어난 격렬한 폭발.

나오려는 불길과 들어가려는 불길이 부딪치며 만들어진 폭발은 순식간에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끝을 볼 순 없었다.

폭발 속에 터져 나갔던 그의 몸은 서로 엉겨 붙으며 다시 원래 모습을 찾아 가고 있었다.

“구, 구웨에엑!”

원래 모습을 되찾은 글러트니가 먹었던 것을 토해 냈다.

나무와 모래.

소화되다 만 리저드맨의 머리와 꼬리.

부러지고 부서진 갑옷과 칼.

건물의 잔해와 바실리스크의 갑피.

마지막으로 나온 건 선스폿이 새겨졌던 자신의 살점이었다.

“아팠어! 나 무지무지 아팠다고!”

순식간에 불어나는 글러트니의 몸집.

꿀렁거리며 부푼 살집은 이내 그림자가 질 만큼 거대해졌다.

“박형만! 먹을 거야!”

희미해져 가는 사람의 모습.

누더기 골렘의 형태가 된 글러트니가 형만을 붙잡으려 했다.

“엔비…. 만나야 해! 엔비한테 돌아갈 거야! 방해하지 마!! 방해하지 마!!!”

촤라라락!

글러트니의 왼손으로부터 사슬이 뻗어 나갔다.

날카롭게 부딪친 대검으로 사슬을 튕겨 낸 형만은 마나를 폭발시켰다.

“파이어 월, 파이로매니아.”

거리를 좁히는 형만이 사용한 두 가지 스킬.

글러트니를 감싼 네 개의 벽 위로 쏟아진 불길은 바깥으로 흘러넘쳤다.

“뜨거워! 아파!”

“엄살떨지 마라. 네가 빼앗은 목숨은 그것보다 몇 배는 더 고통스럽게 죽었을 테니.”

불길을 빠져나오는 글러트니를 덮치는 형만.

검의 궤적을 따라 흩뿌려진 불씨는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버닝 퀘이사(Burning Quasar)!”

불꽃 사이로 뻗어 나가는 하얀 빛줄기.

기둥이 된 하얀 불길은 글러트니를 일자로 관통했다.

“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쓰러지는 글러트니.

자비 없이 일으킨 화염은 화장시킬 기세로 글러트니를 물어뜯었다.

“일어나라, 애송이. 이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란 거 알고 있으니까.”

점점 거세지는 형만의 불길.

타는 걸 넘어 몸이 녹아내리던 글러트니는 갑작스럽게 하늘 위로 튀어 올랐다.

벌어지는 글러트니의 등.

있는 힘껏 공기를 들이마신 글러트니는 형만을 내려다보았다.

“아프다고! 괴롭히지 말고 그냥 잡아먹혀!”

오아시스를 강타하는 검고 누런 브레스.

파동에 섞여 나온 토사물들은 크기와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

폭발의 반동으로 튀어 오른 형만은 토사물의 강을 거슬렀다.

거두절미하고 글러트니의 머리를 베어 내는 형만의 대검.

글러트니의 몸은 참격에 쉽게 베이지 않았지만, 그런 건 애초에 예상했던 바였다.

진짜 노리는 건 그 뒤로 이어진 불꽃.

몸통과 분리된 글러트니의 머리엔 베인 게 아니라, 짓이겨진 상처가 남아 있었다.

“머리가 잘려 나가도 죽지 않는다. 분명 그랬었지.”

머리가 있던 자리에서 튀어나오는 촉수들.

연가시처럼 뻗치는 촉수 사이를 누빈 형만은 그대로 그 빈자리를 꿰뚫었다.

“그렇다면, 이번엔 지옥의 불길에서 헤엄쳐 봐라. 헬 플레어!”

확산하는 푸른 화염.

빠르게 상승한 온도에 아지랑이가 일렁였고, 신기루가 여기저기 나타났다.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푸른 하늘.

바짝 타버린 글러트니와는 제법 거리를 둔 곳으로 떨어진 형만이 바닥에 내던져졌다.

“후…. 애송이 주제에 발악은.”

헬 플레어가 작렬하는 순간.

글러트니의 몸에 큰 변화가 나타났었다.

불길 속에 보이던 건 검게 물든 달.

어깨를 중심으로 옆으로 길게 늘어진 글러트니의 몸은 수백의 이빨을 가진 초승달이었다.

불길 속에서도 흘러넘쳤던 녀석의 침은 다시 생각해도 소름이 끼치는 광경이었다.

“거기서 그렇게 나올 줄이야.”

반응이 조금만 늦었어도, 다리 하나 정도는 우습게 뜯겼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안의 예상이 어느 정도는 맞은 것 같은데.’

글러트니에 대한 정보는 이안을 통해 들을 수 있었었다.

당시 이안이 경험했던 글러트니의 재생 속도는 지금의 배 이상.

그렇다면 역시 그 전투 이후 이전 상태까지 회복하지 못했단 결론이 나온다.

글러트니는 오직 이안의 발목을 잡기 위해 준비된 카드.

지금의 녀석은 그 준비 기간 동안 비축했던 힘에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쿠구구궁….

그때.

강렬한 진동이 지면을 뒤흔들었다.

‘뭐지?’

글러트니가 뭔가를 했다고도 생각할 수 있었지만, 어쩐지 그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이 진동은.

녀석과는 정반대 방향에서 가까워지고 있었으니까.

‘온다.’

순간 찾아온 정적.

영원만 같았던 정적을 깬 진동이 빠른 속도로 지면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엄청난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무언가 솟구쳐 올랐다.

‘언노운?’

충분히 그렇게 보여졌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고.

형만의 눈앞에 있는 건 전에 용주가 쓰러뜨렸던 ‘모래 먼지의 타라하칸.’

아니, 정확히는 녀석의 뒤를 이은 다음 세대의 재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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