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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312화 (312/357)

312화

격돌하는 두 사람이 만들어 낸 힘의 공명이 공간을 흔들었다.

9시 방향에서 부딪친 공명에서 이어진 건 6시, 그리고 3시 방향에서의 격동.

두 사람이 부딪칠 때마다 서로에게 생기는 상처는 서로의 체력과 생명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고 있었다.

‘힘도, 속도도 아까보다 더 끌어 올렸잖아?’

광폭화.

거기에 블러드러스트 상태까지 진입한 용주였다.

그럼에도 프라이드는 이 힘과 움직임에 결코 밀리지 않았다.

자만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지금의 상태라면 이준을 제외한 나머지 여섯은 그래도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만큼 실력에 있어 자신이 붙었었으니까.

하지만 프라이드의 전력은 자신이 생각한 것 이상이었다.

적당히 해서 끝낼 수 있을 상대는 절대 아니었다.

“키힛! 부러뜨리려고 했지? 다른 무기들에 했던 것처럼.”

폭발적으로 강하하는 용주.

찍어 누른 두 손을 받아 낸 프라이드가 용주를 날려 버렸다.

“그렇게 쉽진 않을 거야. 이 녀석 자기 몸 하난 끔찍이 아끼는 녀석이거든. 이게 부러질 때쯤엔 아마 우리 둘 중 하나는 저세상에 가고 없을걸?”

사방에서 덮쳐 오는 촉수 사이를 누빈 프라이드가 지면을 그은 검을 쳐올렸다.

세로선을 그으며 솟구치는 빛의 물결.

페이탈 붐과 부딪쳐 뒤섞인 하늘색의 빛은 거대한 폭발이 되어 사라졌다.

‘완전히 허세만은 아닌 모양인데.’

용주의 팔꿈치를 타고 자라나는 날카로운 칼날.

내리꽂힌 오른손으로 땅을 짚은 용주는 꼬리와 왼손, 왼팔로 이어지는 공격을 물 흐르듯 이어 갔다.

“크큭! 끼하하하핫!!”

불길이 일 정도로 큰 마찰에서 이어진 대회전 베기.

반동을 버티지 못한 프라이드는 한참을 밀려났지만, 발뭉엔 어떤 이상도 감지되지 않았다.

‘그럼 역시 녀석을 직접 타격하는 게 베스트겠지.’

자신이 쏟아 내는 대미지는 자신에게 돌아오고 있었다.

그게 반이라 해도 그렇게 적은 피해는 결코 아니었다.

게다가 블러드러스트 상태인 지금은 자신에게도 여러 리스크가 있었다.

자기 피를 부어 자기 잔을 채운다 한들, 채우는 것보다 붓는 게 더 많았다.

이 상태로 장기전에 돌입하는 건 여러모로 자신에게 불리했다.

“더!더!더!더더!! 하늘을 뚫고 천국을 넘어 지금껏 가본 적 없는 하이함에 가자고!! 카오스 트랜스!!”

순간 검게 물드는 칼날.

푸른빛을 잃어버린 보석은 황혼처럼 붉게 물들었다.

꿈틀거리며 요동치는 프라이드의 그림자.

하늘 위로 솟구친 검은 섬광은 하늘을 둘로 갈라놓았다.

중력을 무시하고 떠오른 검은 프라이드의 손을 벗어나 있었다.

“피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마음대로 해. 대신….”

오른손을 높이 치켜든 프라이드가 씨익 웃어 보였다.

뒤를 보란 그의 눈빛이 의미하는 걸 용주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이 각도.

이 구도.

이 위력이라면 범위는 게이트 중심부까지 들어온다.

자신이 피하면 다음은 성당과 종탑.

프라이드가 이 구도를 잡은 건 지극히 의도된 거였다.

‘저 녀석. 생각하는 걸 멈췄던 건 아니었던 모양이지.’

선명해지는 용주의 그림자.

섀도 일루전에 겹친 세 개의 그림자의 꼬리가 공작처럼 펼쳐졌다.

‘어정쩡하게 맞받아치는 건 오히려 힘과 시간을 전부 낭비하는 결과로 이어질 거야.’

모여드는 에스카톤 저지먼트.

날개의 형태를 유지하던 영혼 안개는 물결이 되어 구체를 감싸는 고리가 되어 갔다.

‘이 한 방이 승부의 분기점.’

뒤섞이기 시작한 부패의 기운.

세 가지의 힘의 융화는 불안정했지만, 용주는 그 세 가지 힘을 안정화시키는 데 전력을 다했다.

“그래! 그래그래그래! 바로 그거야! 바로 그거라고! 그렇게 나와야지! 끼햐하핫!!”

전력과 전력.

아니, 전력 이상의 전력이 부딪칠 거란 흥분에 프라이드는 침을 삼키는 것도 잊어버렸다.

발뭉을 움켜쥐는 프라이드.

검에서 뻗어 나온 검은 가시 줄기는 프라이드의 팔을 휘어 감았고, 그 안쪽까지 파고들었다.

“시작과 끝이 되는 고통으로 모두를 찢어발겨라. 모든 것이 사라지고 고통만이 남을 때까지!”

영창과 함께 검을 내지르는 프라이드.

하늘을 가르던 검은빛의 기둥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모든 것을 베어 냈다.

‘간다.’

그에 맞서 뻗어 나가는 세 발의 에스카톤 저지먼트.

부패에 잠식된 두 개의 힘은 그를 중심으로 완전히 하나가 되어 있었다.

* * *

댕~! 댕~! 댕~!

불규칙하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

“으왁!!”

엄청난 진동에 버티지 못한 조가 뒤로 넘어졌다.

그 뒤로도 전해지는 힘과 충격.

한참을 구르고 미끄러진 조는 바닥보다 높은 계단에 부딪히고서야 간신히 멈춰 설 수 있었다.

“지진? 아니 지진이라기엔 하늘까지도 흔들린 것 같은 느낌인데.”

“내 머슬들이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든다고 말하고 있어. 아까 하늘을 가르던 검은 기둥도 그렇고, 지금 피부를 스치는 이 역하고 불길한 기운도 그렇고.”

하늘을 올려다본 환이 손을 내밀었다.

힘의 충돌로 생긴 인위적인 바람.

그 바람에 실려 온 것들은 지금까지 살면서 느껴본 적 없는 것이었다.

“마신 느껴진다. 어둠과 어둠의 진검승부. 이 땅을 채운 죽음은 과거의 망령이지만 지금 이 바람에 실린 죽음은 오늘이다.”

Y자로 손을 들고 있던 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있는 곳은 와인 기사가 애용하는 왕좌.

스스로 생각하기에 가장 안전하다 생각되는 장소였다.

“어둠과 어둠의 진검승부?”

“과거와 오늘의 죽음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마신전쟁Ⅲ - 최후의 결전’ 출간되면 그때 사서 읽어봐라. 특별히 2배 가격으로 초회 한정판을 만나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팔을 내린 울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왕좌의 위치는 처음 있던 곳에서 미묘하게 밀려나 있었다.

* * *

촤악~!

교차하는 그림자 속에 난자하는 피의 향연.

네발로 땅을 디딘 용주는 뒤를 돌아보았다.

하늘을 갈랐던 거대한 기둥도.

공간을 뒤흔들었던 부패의 기운도 사라진 자리엔 프라이드만이 외로이 서 있었다.

발뭉은 여전히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하지만 그 손은 그에게 붙어 있지 않았다.

살과 근육의 저항도.

뼈의 단단함까지도 찢어발긴 용주의 포식은 프라이드의 오른팔을 단번에 앗아 갔다.

“키힛!”

왼손으로 얼굴을 집은 프라이드가 세상 떠나가라 웃어 보였다.

“어이어이어이~ 개 조심 팻말은 못 본 거 같은데.”

어깨에 남은 선명한 이빨 자국.

지혈은 고려조차 하지 않은 프라이드는 몸을 틀었다.

그나마 반응했기에 팔이 날아간 거지.

그게 아니었으면 저기 뜯겨 있는 건 자기 머리였을 거다.

“이거 완전 그때 생각나지 않아? 팔이 하나 없던 건 이런 기분이었나 보지?”

트랜스 폼 - 파라슈.

도끼를 휘두르는 그의 이마에 제삼의 눈이 개안되었다.

속도를 높인 프라이드는 다시 한번 용주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의 시야는 몇 걸음 가지 못해 땅에 처박혀 버렸다.

딱히 용주가 무언가를 더 한 건 아니었다.

프라이드의 침몰은 자멸에 가까웠다.

“하아~ 뭐야. 벌써 망가져 버린 거야?”

사라져 가는 무기.

몸만을 간신히 일으킨 프라이드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이러지 마. 난 아직 더 놀고 싶다고.”

그의 눈은 더 싸우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의 몸은 그의 기대에 부응해 주지 못했다.

마나도 체력도 이미 바닥.

누적된 대미지로 몸은 안과 밖으로 전부 만신창이였다.

“안 된다고? 키힛! 그렇게 단호하게 굴지 마. 뭐라도 더 끌어내 보라고.”

가슴을 움켜쥔 프라이드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길었던 승부에 끝이 왔음을.

이 끝을 모르고 상승하던 하이함이 막을 내릴 때가 왔음을.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

물고 있던 팔을 떨어뜨린 용주는 광폭화 상태에서 벗어났다.

프라이드는 전투 불능 상태.

한계의 한계까지 쏟아 냈던 그의 힘은 이제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극한의 절정은 한순간일 뿐이라더니. 키힛! 정말 그렇잖아. 이렇게 즐거운데, 이렇게 하이한데, 벌써 끝이라니.”

용주를 마주 본 프라이드의 초점이 순간 흐려졌다.

아무래도 과다출혈 때문인 모양이다.

“그런데 구경꾼이 있었는지는 몰랐는데.”

고개를 돌린 프라이드가 보다 높은 곳을 바라보았다.

종탑에서부터 이어진 하늘길.

그 끝에 앉아 있는 이는 다름 아닌 와인 기사였다.

“있다 해도 뭐 큰일 날 것도 아니잖아? 중간에 끼어든 것도 아니고.”

용주라고 그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던 건 아니었다.

용주가 그의 존재를 알아차린 건 아마 프라이드와 비슷한 시기.

어떤 방법으로 그 시간에 거기 나타난 건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였지만, 왜 그가 거기 나타났는지는 하나 추측해 볼 수 있었다.

‘만약 내가 그 공격에 밀렸다면, 뭔가 하려고 했던 거겠지.’

고대의 재앙보다도 강한 존재일 수 있는 와인 기사였다.

자신의 보금자리가.

자신의 친구들이.

그 한 방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단 걸 알았기에 그는 거기 있었던 것일 거다.

친우에게 부탁받았었던 것이 있었던 지난번과는 상황이 다르기도 했을 테니까.

“하! 뭐, 그것도 그렇네.”

가볍게 어깨를 들썩인 프라이드가 날아오는 물체를 잡아들었다.

그의 손에 들린 건 와인 병.

아직 코르크 마개도 뽑지 않은 새것이었다.

“크크큭! 어이어이~ 네 친구 뭔가 나랑 통하는 게 좀 있는데. 그 아줌마가 있었으면 분명 한 소리 했겠어.”

입으로 마개를 뽑은 프라이드는 시원하게 와인을 들이부었다.

“크으~ 이거 좋은데? 깔끔하고 뒷맛도 아주 달콤 씁쓰름해. 지금 내가 느끼는 패배의 맛이랑 아주 닮았다고.”

목과 머리를 흠뻑 적신 프라이드가 와인 병을 던졌다.

“최고로 하이했어. 만족했다고. 이렇게 망가질 때까지 날 흥분시키다니. 넌 역시 최고야.”

조금씩 걷혀 가는 광기.

광기가 비운 자리에 떠오른 그윽한 만족감은 그가 얼마나 순수하게 전투 그 자체에 임했는지.

그리고 지금 패배를 얼마나 깔끔하게 인정하고 있는지를 말해 주고 있었다.

“키힛! 질질 끄는 건 여흥에 방해만 돼. 내가 무슨 말 하는 건지 알지?”

한 걸음 한 걸음 좁혀지는 거리.

날카로운 손톱을 세운 용주는 그의 가슴을 꿰뚫었다.

손을 가득 적시는 붉은 피.

소름 끼치는 그 따스함 속에서 손을 움켜쥔 용주는 단번에 무언가를 깨부쉈다.

망가진 건 심장이 아닌 이형 리액터.

용주의 손에 딸려 나온 리액터의 파편은 피와 함께 흩뿌려졌다.

“키힛! 어이어이~ 그러고 보니 좋은 선물을 받았는데, 뭐라도 주는 게 인지상정이지 않겠어?”

역류한 피를 쏟아 낸 프라이드가 마지막 마나를 쥐어짰다.

그가 꺼내 든 건 모랄타크의 장창.

쌍을 이루던 무기의 반쪽이었다.

“내가 전부터 머릿속으로 굴려 본 게 있는데 말이야. 어떻게 하면 보스랑 한 판 붙어 볼까 하는 부분이었거든. 어떻게 하면 보스한테 한 방 시원하게 먹여 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보스의 그 평온한 얼굴이 구겨지는 걸 볼 수 있을까 하는 거 말이야.”

장창을 빙글 돌린 프라이드가 창을 길게 뻗었다.

“그리고 한 가지 묘수를 생각해 냈단 말이지.”

“묘수?”

“그래. 보스의 벡터엔 구멍이 있어.”

“구멍이라고.”

“무색, 무취, 무향, 느낄 수도 없고, 느껴지지도 않는 구멍이지.”

“…….”

“모랄타크의 힘이라면 잘 알고 있겠지. 직접 베여 봤으니 말이야.”

순간 비틀거린 프라이드가 장창을 지면에 박아 넣었다.

“모랄타크가 베어 낼 때 자연스럽게 함께 베어지는 게 있어. 무색, 무취, 무향, 심지어는 거기 있는지조차 아무도 모르지. 왜냐면 거기 있는 게 너무나 당연하니까. 어때? 그게 뭔지 알겠어?”

고개를 숙이고 있던 프라이드가 힘껏 고개를 들었다.

“키힛! 공기. 그게 내가 찾은 벡터의 구멍이야. 모든 공격을 반사하고, 모든 걸 되돌려도 인간인 이상 숨은 쉬어야 할 거 아니야.”

회심의 미소를 짓는 프라이드.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조작하지 않는 벡터가 있는 거야. 완전한 밀실에도 숨구멍이 있는 거라고. 그 길로 공격을 흘려보낼 수만 있으면… 끝내주는 거지.”

들썩이는 그의 눈썹엔 묘한 만족감이 묻어 있었다.

“난 그걸 실현할 방법을 찾진 못했어. 키힛! 너는 과연 어떨까.”

사라져가는 프라이드.

한 줌 모래가 된 프라이드는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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