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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310화 (310/357)

310화

* * *

보좌관을 타고 날아오른 용주는 안개 지대로 들어섰다.

‘녀석들이 지나간 게 그 무렵이면, 이미 시간이 상당히 많이 지난 뒤란 건데…. 아직 차이가 그 정도로 많이 났던 건가.’

그래도 거리가 제법 많이 줄지 않았을까 생각했었다.

상대적인 부분으로 보면, 여긴 자신의 홈그라운드였고.

녀석들은 어딘지도 모를 이세계에 던져진 떠돌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막상 열어 본 뚜껑은 그것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어쩌면.

녀석들이 가지고 있는 윤현의 리액터에 뭔가가 더 있는 걸지도….

‘그렇게 생각하면 녀석들의 동선이 그렇게 깔끔했던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고 말이야.’

인커젼으로 인한 균열은 생긴 것인가, 만든 것인가.

아직까진 그걸 정확히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했다.

전자라면 녀석들은 그게 어딘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후자라면, 마찬가지로 거기가 어딘지 녀석들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퀘스트 게이트. 이다음은 어디로 이어져 있는 거지?’

자신이 여기 도착했다는 건, 형만이 있을 곳은 붉은 사막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였다.

그럼 이다음은?

다음이 있다면, 이제 어디로 이어지는 거지?

“…녀석들. 다 무사하겠지?”

용주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피부를 스치는 차가운 바람 때문인지.

갑작스럽게 찾아온 고독 때문인진 모르겠지만, 문득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지나온 세계의 균열은 이미 모두 닫혔을 거다.

형만에게 큰 소리 뻥뻥 치긴 했지만.

자력으로 그 세계의 문을 다시 열 수 있는 방법을 용주는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용주는 등을 보였다.

다른 세계긴 해도, 거긴 실존 차원 장소였으니까.

일이 끝나면, 카일론과 다시 만날 테니까.

녀석이라면 문을 여는 방법을 알고 있을 테니까.

이곳에서의 일이라면 녀석도 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이 눈이.

분명 봤을 테니까.

“!”

용주가 마음을 다잡고 있던 그때.

안개 사이로 밝은 빛이 반짝였다.

‘페일노트….’

내리꽂히는 수십의 별똥별.

360도 회전하며 별똥별 사이를 누빈 보좌관은 안개 지대를 통과했다.

“키힛!”

그 순간 보좌관의 핵을 관통하는 한 자루의 검.

순식간에 고도를 잃어버린 보좌관은 지면으로 꼬꾸라졌다.

강물처럼 흘러넘치는 안개.

이름 없는 왕과 싸웠던 그곳엔 만나야 할 녀석이 나와 있었다.

“이거~ 생각지도 못한 월척이네.”

양손을 펼친 프라이드가 이빨을 보였다.

“킥! 근데 이런 것도 월척이라고 부르나? 무게만 나가지 먹을 건 하나도 없어 보이는데.”

“…역시 여기 있었군.”

이페탐.

보좌관을 한 방에 격추시킨 물건의 정체를 확인한 용주가 보좌관의 모습을 지워 나갔다.

같은 장소에서 두 번이나 쓰러진 녀석에게 더한 치욕을 줄 필요는 없을 테니.

“오~ 뭐야? 내가 여기 있는지 알고 있었나 보지? 키힛! 역시 너도 나랑 같은 생각이었구나?”

“…….”

“실은 말이야. 살짝 쫄아 있었거든. 알맹이만 쏙 빼 먹히고 쭉정이만 남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야. 아니면, 나한테 아예 기회조차 안 오든가. 그런데 보스 말이 딱 맞았네. 참은 보람이 있어.”

“이준은 어디 있냐.”

용주의 한마디에 프라이드의 미소가 순간 굳어졌다.

“어이어이~ 이런 전 전혀 하이하지 않다고. 왜 노골적으로 그렇게 흥을 깨는 건데? 그 정도면 너무 악의적인 거 아니야? 내가 얼마나 이 순간을 기대했는지 알아?”

“그 뒤인가 보지?”

용주의 시선이 태양 가까운 곳을 향했다.

이곳은 분명 이 여정의 종착역이었다.

더 이상 가고 싶어도 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이곳은 종착역이 아니었다.

회색의 안개로 이루어진 계단이 태양을 향해 이어져 있었다.

“이봐. 계속 그렇게 나오면 나도 어쩔 수 없다고.”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오는 프라이드.

모랄타크와 부딪친 룬검에선 푸른 냉기가 흩뿌려졌다.

“네 상대는 나야. 아무 데도 못 가. 이번엔 아무도 우릴 방해하지 못한다고. 왜냐면 지금은 내가 최고로 하이할 시간이니까!!”

날카롭게 이어지는 두 사람의 공방.

폭발적인 힘과 속도를 자랑하는 두 사람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이 녀석, 지난번에 붙었을 때보다 훨씬 세졌어.’

그때의 기억엔 빈칸이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용주가 기억하고 있던 놈의 힘과 지금의 힘은 자신만큼이나 차이가 났다.

그때는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그때보다 힘이 성장했다.

둘 다.

셋 중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였다.

이 녀석을 쓰러뜨리지 않는 한, 저 길로 나아갈 순 없을 것 같았다.

왜냐면.

“참고로 말하지만, 날 무시했다간 후회할 거야. 보스가 그랬거든. 여기 있는 녀석들을 전부 죽여 버리겠다고 하면, 네 반응이 아주 볼만 할 거라고.”

“…….”

녀석에겐 인질이 있었으니까.

“끼얏호~!!”

빙글빙글 돌린 장창을 휘두르는 프라이드.

‘레이징 브레이크.’

왼손으로 장창을 짚으며 몸을 수직으로 들어 올린 용주는 두 다리를 내리찍었다.

“키힛!”

예상치 못한 기습에 오히려 흥분한 듯한 그의 미소.

레바테인으로 무기를 교체한 프라이드는 용주를 불길로 집어삼켰다.

“불타오르는데? 하이해지기 시작했다고.”

얼어붙어 산산이 조각나는 불꽃.

터져 나가는 얼음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용주는 빠르게 거리를 좁혀 나갔다.

“눈에 보이는 건 페이크. 정말로 노리는 건 잘 안 보이는 곳에. 그렇지?”

다시 한번 피어오르는 거친 불길.

날개처럼 뻗어 나간 양 갈래의 불꽃은 땅을 기던 혹한의 파도와 부딪치며 상쇄됐다.

“나무는 숲에 숨기는 게 제일이라더니, 딱 그거네. 내 눈엔 다 보이지만.”

갑작스럽게 사라지는 용주의 모습.

점멸로 뒤를 잡은 용주의 움직임을 따라온 프라이드는 검을 휘둘렀다.

“아니?!”

단 1cm 차이로 용주의 정수리를 빗겨 가는 공격.

“이럴 수가. 말도 안 돼….”

안쪽 깊숙이 파고든 용주의 룬검이 바람을 갈랐다.

“키힛! 어때? 그럴듯했어?”

용주의 검을 막아서는 프라이드의 검.

거꾸로 돌려 잡은 모랄타크의 검은 용주와 정면에서 부딪쳤다.

“파워도 스피드도 그때보다 몇 수는 위. 그 모습으로도 이 정도로 싸울 수 있나 보지?”

올려 치는 장창에 한 발 물러나는 용주.

튀어나올 듯 요동치는 힘줄은 다음 한 방에 뭔지를 말해 주고 있었다.

‘풍참.’

일대를 찢는 고속검.

“역시 그때 끝내지 않은 건 내 최고의 한 수였어.”

날카로운 바람에 찢겨 나간 상처에선 피가 튀었지만, 고통 따윈 알 바 아니었다.

프라이드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즐거움과 희열.

지난번 시우와의 전투도 나름 즐겁긴 했지만, 역시 이 하이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인간 형태의 도입부만 해도 이 정도.

그렇다는 건 그때 그 괴물의 모습으론 대체 어디까지 갈 수 있는 거냔 말인가.

“오늘은 분명 내 인생 최고로 하이할 거야. 이번엔 참지 않아도 되니까”

“…….”

방어가 아닌 공격으로 응수하는 용주.

하얀 갑피를 두른 용주의 한 방은 모랄타크를 직격했다.

“키힛! 아프잖아.”

충격에 밀려난 프라이드가 즐거워 미치겠단 미소를 보였다.

“본 적 없는 새로운 스킬. 그래. 당연히 그렇게 나와야지! 그럼 이쪽도 맞춰 간다. 트랜스 폼 - 게이볼그.”

모습을 드러내는 붉은 장창.

“트랜스 폼 – 이카루스.”

저주받은 장창을 집어 던진 프라이드는 날개를 펼치며 날아올랐다.

‘무슨 의도지?’

빗발치는 공중사격.

녀석이 공중으로 날아오른 이유는 그걸로 설명할 수 있었다.

궁병이 고지대를 잡는 게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녀석이 던진 저 한 발의 투창은 물음표가 찍혔다.

저렇게 단조롭고 직선적인 공격을 쳐 내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챙!

가볍게 맞받아친 게이볼그.

“……!”

장창에서 시선을 떼려던 그때.

원을 그리며 회전하던 게이볼그가 사선으로 내리꽂혔다.

사정없이 관통된 심장.

장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피는 승부가 났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뚝…!

용주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피눈물.

자신의 죽음을 두 눈으로 목격한 용주는 내리꽂히는 장창을 한 번 더 쳐 냈다.

‘그건….’

용주의 의사와 관계없이 보인 미래.

이 눈이 죽음을 보여 주지 않았다면, 방금 그건 정말 현실이 되었을 것이다.

“휘우~ 그걸 쳐 내다니 제법인데?”

페일노트의 활시위를 당긴 프라이드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야. 게이볼그는 저주받은 마창. 적의 심장을 꿰뚫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거라고.”

어떤 각도로 틀어도.

심지어 점멸로 따돌려도 게이볼그는 계속해서 따라붙었다.

‘그럼 이건 어떨까?’

왼쪽 어깨 뒤편에서 치고 들어오는 게이볼그.

유성우 사이를 가로지른 게이볼그의 모습이 순간 섀도 홀로 빨려 들어갔다.

“사라졌어?”

홀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게이볼그는 불꽃이 얼어붙으며 생긴 빙산 그림자 아래에서 솟구쳤다.

일직선상에 놓인 건 프라이드.

그 속도 그대로라면 꿰뚫리는 건 프라이드였다.

“위험…! 이라고 할 뻔~.”

90도에서 또 90도.

일반적인 물리 법칙으론 절대로 휠 수 없는 각도로 휘는 게이볼그.

안쪽으로 휘는 마름모를 그린 게이볼그는 프라이드를 피해 갔다.

게이볼그가 노리는 건 여전히 용주의 심장뿐이었다.

‘부수는 것 말곤 멈출 방법이 없을 것 같군.

빠르게 좁혀지는 거리.

창끝이 느껴질 순간 점멸로 사라진 용주는 공중에서 허리를 비틀었다.

‘아웃레이지 스내치.’

분출하는 선혈의 폭발.

한 차례 폭발을 일으킨 용주는 한 번 더 찍어 눌렀다.

이어진 폭발에 두 동강이 난 게이볼그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 버렸다.

“키힛!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그렇게 나와야지!!”

공중이 아닌 직선으로 날린 혜성.

시야를 가득 채운 혜성을 마주한 용주는 선혈의 파도를 일으켰다.

혜성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해일.

두 힘의 충돌이 일으킨 폭발에 물과 빛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뿌득…!

달그락!

그와 동시에 죽음의 군대를 일으켰다.

“어이어이~ 너무 질 나쁜 농담 아니야? 이 신성하고 하이한 자리에 조무래기를 풀어놓는다고?”

왕의 통치로 일어난 언데드 조무래기들에 프라이드는 불만을 표했지만, 용주의 표정엔 변함이 없었다.

‘네크로 클록.’

종숙주 대신 일으킨 병사들을 두르는 용주.

뼈로 이루어진 망토는 보좌관의 날개를 보는 듯 위태로워 보였지만, 중력을 거스르기에 부족함은 없었다.

“공중전이라~ 키힛! 그거 좋지!”

묠니르를 움켜쥔 프라이드가 폭발적으로 강하했다.

“끼~햐앗!!”

내리꽂히는 뇌성.

“어때? 찌릿찌릿하지? 지금 내 마음도 그래. 두근두근거려서 미쳐 버릴 것만 같다고!”

팽팽한 힘 싸움을 벌인 두 사람이 공중을 누비며 부딪쳤다.

몰아치는 천둥 번개.

360도로 몸을 돌린 프라이드는 사정없이 묠니르를 휘둘렀다.

“막는 게 능사일까? 막는다고 막힐 게 아닌 것 같은데.”

충격에 낙하하는 용주를 따라붙는 프라이드.

안개의 파도를 일으키며 지면 가까이를 선회한 용주는 다시 고도를 높였다.

“같은 생각이다.”

방사되는 전류.

쭈뼛 서는 솜털이 위기를 알렸을 때는 한발 늦은 뒤였다.

기린의 역린이 흡수한 번개는 이미 프라이드의 몸을 관통한 상태였다.

“번개에 맞는 건 그때 이후로 처음인가. 키힛! 찌릿찌릿한걸.”

묠니르의 자리를 차지하는 엑스칼리버.

칼날이 빚은 빛은 용주를 집어삼켰다.

살을 찢고, 태우는 빛 속을 정면 돌파하는 용주.

‘페이탈 블러드.’

검과 검을 맞부딪친 용주는 준비해 둔 한 방을 꽂아 넣었다.

프라이드의 명치에 정확히 들어간 일격.

난회전하는 구체에 날아가는 프라이드는 쥐고 있던 엑스칼리버를 집어 던졌다.

하늘을 가득 채우는 성스러운 빛.

벚꽃처럼 흩날리는 빛방울은 아름다웠지만, 그 아름다움이 간직한 건 평화가 아닌 파괴였다.

모든 것을 집어삼킨 빛폭발은 하늘을 하얗게 물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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