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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292화 (292/357)

292화

“그만 가자.”

태영과 서윤.

두 사람의 반응을 뒤로한 용주가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잠깐! 어딜 그렇게 어영부영 넘어가려고!”

그렇게 어물쩍 넘어가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난 아직 대답 못 들었어.”

서윤의 의지는 단호했다.

“대답이라면, 처음에 다 끝냈다고 생각하는데.”

“아니, 그러니까, 정말로 미래를 볼 수 있다고? 그럼 이준이 어딨는지나 그런 것도 알 수 있다는 거야?”

만약 그렇다면 지금껏 왜 그 과정이 필요했는가 싶었다.

미래를 볼 수 있다면, 미래를 알고 있다는 거고.

그러면 거기에 대한 대처도 할 수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말했다시피 내가 볼 수 있는 건 근미래에 일어날 일 정도다. 그것도 나와 내 주변에 한정되어 있고.”

용주가 왼손을 자신의 눈가에 가져갔다.

“네가 기대하는 대답은 아마 듣지 못할 거다. 그 정도 능력은 나한테 없으니까.”

피를 닦아 내는 용주의 모습에 서윤이 마른침을 삼켰다.

정말로 그렇다면, 용주가 본 건….

차마 입으로 담고 싶지 않은 그런 것일 것이다.

만약 자기 앞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졌다면.

그게 현실이 아니라 해도 절대 잊히지 않는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다.

그런 걸 혼자 보고 감당해야 한다니….

신의 힘에 필적하는 능력이라고 해도 이건….

이건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신의 힘’보다는 ‘신의 저주’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것 아닌가?

“움직이자. 어찌 됐든 계획했던 방향으로 오긴 했으니.”

고개를 돌린 용주는 비탈길의 위쪽을 바라보았다.

길엔 놀의 것으로 보이는 뼈가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비슷한 풍경을 전에도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골드록의 둥지로 통하는 길에서였지.

여기가 거기라고 확신할 순 없었지만, 어쨌든 녀석들이 여길 지난 것만은 확실했다.

턱관절만 간신히 남은 두개골에 선명한 이빨 자국이 남아 있었으니 말이다.

* * *

“음… 이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걸까요?”

태영이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비탈길의 끝에서 마주한 건 넓고 평평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지금껏 마주했던 지형들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안쪽은 마치 고성의 폐허와도 같았는데, 거대한 종유석을 비롯한 동굴의 일부가 고성을 잠식하고 있었다.

단순히 부서진 잔해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수준이 아니었다.

둘은 말 그대로 융화되어 있었다.

“…….”

용주는 석조 기둥 하나에 손을 올렸다.

두 가지 기둥이 미묘하게 뒤엉킨 잔해에는 오래된 발톱 자국이 남아 있었다.

어쩌면.

여긴 정말 그곳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장소에 자기장의 섬 어딘가가 덧씌워져 이런 이질적인 풍경이 된 거겠지.

“저기 더 안으로 통하는 문도 있는데?”

가장 먼저 앞서나간 서윤이 거대한 문을 밀었다.

낡고 썩은 문은 서윤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뒤로 넘어가 버렸다.

“아야얏…. 뭐야, 이거? 왜 이렇게 약해?”

서윤이 몸을 일으켰다.

문의 크기에 지레짐작해 어깨로 밀었던 게 화근이었다.

누가 보면 천하장사인 줄 알겠다.

뭐… 헌터가 일반인들에 비해 신체 능력이 강한 건 사실이긴 하지만.

“상당히 특이하군.”

형만이 안쪽을 살폈다.

방의 안쪽엔 자기장이 있었다.

지금까지 본 자기장만 해도 충분히 다양한 형태를 봤다고 자부할 정도지만, 안쪽에 있는 자기장은 그것과는 또 달랐다.

이곳에 펼쳐진 자기장은 흡사 미로.

자기장의 물결은 반대편이 보일 정도로 투명했다.

미로는 방향을 가지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꼭 미로 같은걸요?”

고개를 든 태영은 천장에 가까운 곳을 살폈다.

위쪽에서 내려다볼 수 있으면 그래도 미로를 통과하는 게 훨씬 수월할 것 같은데, 미로의 위로는 또 다른 푸른 자기장이 지나가고 있었다.

“지나가기 쉽지 않겠어요.”

태영이 쉽지 않다고 판단한 건 단순히 여기가 미로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미로보다 더 곤란하게 다가오는 건 찰랑거리는 자기장.

미로의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고 있는 저 푸른 물결이었다.

“사람이 넘어졌으면 괜찮냐고 물어보는 게 순서가 아닌가 싶은데?”

무릎을 턴 서윤이 불만을 제기했다.

“하하,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그만.”

“됐어. 근데 뭐가 저렇게 생겼대? 꼭 방을 딱 절반으로 나눈 것처럼 생겨 먹었잖아. 미로가 두 개인 건가?”

자기장으로 된 미로가 있는 것도.

그 미로에 자기장으로 된 액체가 흐르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물결의 방향이 미로와 어긋나 있다는 건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액체로 된 자기장이 흐르는 곳은 중앙선을 기준으로 정확히 왼쪽.

오른쪽으론 단 1mm만큼의 물결도 넘쳐흐르지 않았으며, 벽에 가로막히지도 않았다.

물결은 미로의 형태와는 무관하게 흐르고 있었다.

“저기도 뭐 있어.”

수지가 어딘가를 가리켰다.

수지가 가리킨 곳은 입구 맞은편에 있는 석조 기둥.

기둥엔 꽤나 거대한 조각상이 하나 올라가 있었다.

“염소 머리 같은데?”

조각상을 살피던 서윤이 이야기했다.

놀은 하이에나를 닮아 있었다.

하지만 저기 있는 조각상은 놀이 아니었다.

“코도도 아닌 것 같은데.”

“브로라고 하는 녀석이다.”

용주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브로?”

“그게 이름이야? 좀 많이 이상한데.”

서윤이 의심쩍은 듯 이야기했다.

HEY, BRO.

브로라고 하면 역시 그런 인사말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데 말이다.

“근데 이제 뭐 어떻게 해? 반대편 완전 막혀 있는 것 같은데.”

조각상의 뒤편은 동굴 벽으로 막혀 있었다.

“팬텀이 정말 여기로 지나갔을까?”

서윤이 다른 곳들을 살폈다.

팬텀이 지나갔으면 과연 이런 장치가 남아 있을까 싶었다.

부서지거나, 해체되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 아니! 그렇다고 널 못 믿는다는 이야기는 아니야!”

순간 용주와 눈이 마주친 서윤이 격하게 손을 저었다.

“하늘로 솟구치거나, 땅으로 꺼진 게 아니라면 분명 여길 지났을 거다. 이준 녀석이 있으니 여길 지나가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었을 테지. 반대편에 길이 안 보인다는 건 여길 지나가면 뭔가 보일 수도 있단 거고.”

골렘의 바위 심장의 효과를 사용한 용주는 샛길을 만들어 보려 시도했다.

그런데.

바스락…!

갑작스럽게 균열이 생긴 골렘의 바위 심장이 파괴되어 버렸다.

부자연스러운 효과 만료였다.

심장에 담긴 마나도 충분히 여유 있었고.

전에 사용했을 때에 비하면 변형의 정도도, 규모도 훨씬 작았는데 말이다.

‘여길 변형시키려고 했기 때문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용주의 귀에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드르륵….

바위 표면이 마찰하는 소리.

소리를 쫓은 용주의 시선은 브로의 조각상에 멈춰 섰다.

왼쪽을 바라보고 있던 브로의 머리가 서서히 오른쪽으로 옮겨 가고 있었다.

“어라? 저기 봐! 자기장이!”

서윤이 급히 어딘가를 가리켰다.

액체의 형태를 띠던 자기장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사라진 자기장이 다시 나타난 건 그로부터 약간의 시간이 더 지난 후였다.

왼쪽 절반을 파랗게 물들이던 자기장은 이번엔 오른쪽 절반을 파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바닥에 흐르는 자기장은 저 석상과 관계가 있는 것 같네요.”

태영이 이야기했다.

왼쪽을 보고 있던 석상은 이제 오른쪽을 보고 있었다.

“정확히 5분 주기로 바뀌나 보네요.”

시간을 재고 있던 태영이 이야기했다.

석상은 오른쪽을 보고 있었는데, 왼쪽을 한 번 거쳤다가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5분이면 너무 짧은 것 같은데.”

서윤이 팔짱을 끼었다.

여기가 그냥 평지였다면, 이야기가 달랐겠지만, 이 미로를 통과하는 데 5분은 말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반투명한 벽에 반대편이 보이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실상은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겹친 벽은 어디가 어떻고 할 만한 게 못 되었다.

“아까 그건 망가져 버린 거지?”

“그래. 인위적으로 다른 길을 내는 건 쉽지 않을 거다.”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거네. 그럼….”

검을 뽑아 든 서윤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저거나 한번 날려 보자고.”

검을 지면에 박아 넣은 서윤의 발밑에 펼쳐지는 거대한 붉은 마법진.

두 손을 앞으로 쭉 뻗은 서윤은 앞에 펼쳐진 마법진을 조율해 갔다.

목표가 된 조각상의 아랜 서윤의 발밑에 펼쳐진 것과 같은 마법진이 펼쳐져 있었는데, 서윤이 마법진을 조율해 나갈 때마다 조각상의 머리 위로 서클이 하나씩 쌓이고 있었다.

“이 물길만 없어도 미로를 통과하는 게 한결 쉬워질 테니까.”

세 개의 서클로 구성된 마법진을 자리에 맞게 조율한 서윤은 잘 보란 듯 용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블러디 루인(Bloody Ruin)!”

쭉 뻗은 손가락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한 점으로 압축되는 서클.

층층이 쌓였던 서클이 일으킨 폭발은 일대를 크게 뒤흔들어 놓았다.

“후~ 그렇게 놀랄 거 없어. 나도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게 당연하잖아?”

앞머리를 정리한 서윤이 자신감을 뽐냈다.

태영의 놀란 얼굴이 제법 만족스러웠다.

뒤에 풍경이야 뭐 안 봐도 비디오지.

이왕이면, 용주가 이런 얼굴을 해줬으면 싶지만…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니 말이다.

아쉬워도 어쩔 수 없지.

“아… 그것도 그건데요.”

“뭐야, 그 재미없는 반응은?”

서윤이 불만을 표했다.

그것 말고 지금 놀랄 게 또 뭐가 있느냔 말이다.

“안 부서졌어.”

“뭐?!”

수지와 순간 눈이 마주친 서윤이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정말로 석상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흘러나오는 자기장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걸 맞고도 멀쩡하다고?!”

서윤으로서도 이건 좀 충격이었다.

제법 긴 준비 동작이 필요한 만큼 위력 하나는 자신 있는 스킬이었으니 말이다.

“애송이. 어떻게 봤냐?”

형만이 물었다.

“아예 데미지 자체가 안 들어간 것 같은데. 아마 원거리에서의 공격이 원천 차단되어 있다고 보는 게 맞겠지.”

“같은 생각이군.”

그렇다는 건 결국 미로를 돌파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소리였다.

“5분이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이겠군.”

말은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미로로 통하는 입구는 정중앙에 위치한 하나.

이게 하나의 미로란 뜻이었다.

미로인 이상 길은 복잡하게 얽혀 있을 것이다.

정중앙을 기준으로 좌우가 분리된 상황이라면, 길을 찾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도 좋았다.

탐사의 연속성도 떨어질뿐더러, 맞는 길을 찾았다 한들 똑같은 벽에 계속 가로막힐 가능성이 농후했으니까.

“안쪽으로 들어가면 뭔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 일단은 팀을 나눠서….”

“아니.”

형만의 제안을 자른 용주가 입구 가까이 다가갔다.

“여긴 나 혼자 돌파한다. 그게 최선이야.”

“뭐?!”

곧장 반응한 서윤이 용주와 마주 보고 섰다.

용주의 독선적인 결정이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혼자 뭘 어쩌겠다고!”

“…….”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직접 그랬잖아! 이 자기장은 위험하다고! 그런데 지금 여길 혼자 가겠다고?! 우리가 그렇게 못 미더운 거야?!”

서윤이 무섭게 용주를 노려보았다.

“진정. 조금만 진정하는 게….”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좀비 헌터도 그런 의도는 아니었을 거예요. 분명….”

“또 혼자 끌어안겠다고?! 조금 정도는 믿고, 의지해 줘도 되는 거 아니야? 우린 팀이잖아! 나는 네 파트너고!”

태영은 서윤을 진정시켜 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비켜! 내가 제일 먼저 들어갈 거니까!”

자신을 지나치던 서윤을 용주가 급히 붙잡았다.

“너흴 못 믿겠다고 한 적 없다.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았고.”

“…….”

날카로운 두 사람의 눈빛이 서로 부딪쳤다.

“…팀이고, 파트너니까 그렇게 한다고 한 거다.”

“너만 아는 최선으로, 또 그렇게…!”

“녀석들을 따라잡으려면, 서둘러야 해. 어차피 감수해야 할 위험이라면, 최소한의 인원이 최소한의 시간 동안 경험하는 게 최선일 거다.”

“그러니까 그 최선이란 게 대체 뭐냐고!”

서윤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메아리가 된 서윤의 목소리는 몇 번이고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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