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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284화 (284/357)

284화

창공을 가르는 수많은 조각들.

네크로 클록을 두른 용주가 재빠르게 공격을 흘려보냈다.

용주를 지나친 공격들은 용주의 뒤편에서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퍼즐을 맞추듯 자기 자리에 들어간 조각들은 하나의 언노운이 되었다.

“천년 큐브라. 오랜만에 보는 녀석이잖아? 녀석은 내가 처리할게. 계속 가.”

구름을 탄 헌터가 언노운에게 달려들었다.

조각조각 갈라진 언노운 사이를 오가는 헌터의 움직임은 빠르고 예리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형만이 믿고 있으면, 그걸로 끝난 거야. 다 끝나면, 뜨끈한 국밥에 소주 한 잔 때리자고.”

“…생각해 보지.”

길을 열어 준 헌터를 지나친 용주는 계속해서 달려 나갔다.

힘이 다한 네크로 클록은 끝에서부터 바스러지고 있었다.

땅에 착지한 용주의 곁으로 형만을 비롯한 헌터들이 따라붙었다.

콰앙!

폭발과 함께 쏟아지는 유리와 콘크리트 더미.

상가 건물을 부수고 나온 언노운이 기다란 혀를 날름거렸다.

“하나? 아니, 둘인가? 여긴 나랑 천균이 상대할게. 계속 가!”

머리와 꼬리가 모두 머리인 특수 개체.

불과 얼음을 동시에 사용하는 언노운에 맞선 두 헌터는 물과 바위를 일으켰다.

언노운의 몸을 뒤덮는 바위의 갑옷.

“사석 장송!”

찌그러지는 바위에선 피와 진액이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언노운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온몸을 짓이긴 바위를 뚫고 나온 언노운.

“옛날이야기 하나 해줄까요? 2차 세계 대전 당시 실제 있었던 잔혹한 일인데, 사람의 몸에 피 대신 바닷물을 채우면 어떻게 되냐에 대한 실험이 있었대요. 결과는 뭐, 말할 필요도 없죠. 아~ 그래서 지금 제 말의 요점이 뭐냐고요? 그야~ 언노운의 혈관에 바닷물이 섞이면, 어떻게 되는지 보려고요. 조금 거친 방식으로요.”

고작 한 호흡으로 이 긴 문장을 소화해 낸 헌터가 물방울을 띄웠다.

형태를 변화시킨 물방울은 언노운과 똑같은 모습이 되었다.

“아쿠아 레조네이터!”

물방울의 머리와 꼬리를 붙잡은 헌터가 좌우로 머리를 비틀었다.

그와 동시에 갈기갈기 찢기는 언노운의 하얀 가죽.

바위 속에 숨어 잠입한 암살자들이 피에 섞여 흘러나왔다.

대량의 물에 희석된 피는 아까와는 전혀 다른 색을 하고 있었다.

“말 너무 많은 거 아니냐? LA에 유학이라도 가지 그래?”

“뭐, 제가 그러는 게 한두 번인가요? 그러려니 하실 때도 됐잖아요?”

“그러려니 하는 게 아니라, 고칠 생각이란 것도 좀 할 때 아니냐고?”

“그렇게 여유 부릴 때예요? 이 정도로 죽을 녀석이 아니란 거 아시면서.”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인 헌터가 단추 하나를 풀었다.

메마른 땅처럼 갈라진 언노운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작은 지진과 함께 솟아오른 대지에선 지금껏 보이지 않던 언노운의 나머지 부위가 보였다.

지금껏 상대해 왔던 언노운은, 한 마리의 개체가 아닌 녀석의 신체 일부.

이를테면, 아귀의 유인 돌기에 해당하는 부분에 불과했다.

본격적인 싸움은 이제부터였다.

“네 상대는 여기라고.”

하늘을 수놓는 빛의 포화.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잭 오 랜턴은 화염을 토해 냈다.

“계속 가! 녀석들은 우리한테 맡기고!”

남산 초입까지 뒤따라오는 언노운들을 막아선 헌터들이 길을 열어 주었다.

무리를 따르던 그 많던 헌터들도 이제 거의 다 흩어졌다.

남은 사람은 용주를 필두로 한 정예 맴버들.

쉬지 않고 움직인 용주는 앞을 가로막는 언노운의 머리 위에 올라탔다.

“1초라도 더 오래 살고 싶으면, 달려라.”

용주의 한마디에 등을 보인 언노운이 전속력으로 산을 탔다.

네발로 달리는 언노운의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뭐야? 잠깐만! 저 녀석 지금 잡혀가잖아?!”

순간 다급해진 서윤이 속도를 높였다.

“아니. 조금 달라.”

서윤의 속도에 맞춘 수지가 이야기했다.

“뭐?”

“잡혀가는 게 아니야. 잡아가는 거.”

“잡아간다고? 언노운을?!”

믿기지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말이 되지 않지 않은가?

대체 어떻게 언노운을….

“뭐, 태평하게 그런 걸 따지다간 놓칠 거라고?”

귀찮은 듯 머리를 긁적인 시우가 조금 속도를 줄였다.

“괜히 힘주면 귀찮으니까. 힘 빼. 발버둥 치면 강제로라도 얌전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속도가 가장 떨어지는 태영을 둘러업은 시우가 앞선 이들을 따라잡았다.

언노운들의 밀도가 점점 높아지던 것과 달리, 이곳은 오히려 언노운들이 별로 없었다.

꼭 태풍의 눈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 * *

정돈되지 않은 산길을 가로지른 용주는 폭발적으로 솟구쳤다.

남산 타워와 함께 팔각정이 내려다보였다.

한눈에 보이는 풍경은 또 있었다.

지면을 뚫고 오른 빛의 기둥.

붉은색의 빛의 기둥이 하늘까지 이어져 있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현상이었다.

‘조금 전부터 솟구쳤다?’

그런 가정을 세웠던 용주가 고개를 저었다.

정상의 경계선을 통과하면서 차원 압력이 한층 더 강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주변을 낮게 기고 있는 이 안개.

자연적으로 일어난 현상이 아니었다.

‘이건 마치….’

퀘스트 게이트.

그 문이 열렸을 때 나타나는 증상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안개의 정도가 그 정도로 짙지는 않았지만, 이게 그것과 같은 원리라면, 멀리서 이 현상들이 관측되지 않았던 게 이해가 됐다.

퀘스트 게이트 입구의 안개는 그 주변에서야 비로소 보이는 거니까.

물론, 그 안의 포탈의 입구도.

‘안개뿐만이 아니야….’

안개 사이에 붉은 파편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손톱만 한 크기밖에 되지 않는 저 파편들은….

카일론과 마주 섰을 때 봤던 세계의 파편들을 보는 것 같았다.

크기는 그때 봤던 것보다 훨씬 작았지만….

꿀렁.

지면에 착지한 용주의 눈에 작은 움직임들이 포착되었다.

‘저게 뭐야?’

사람의 살점처럼 보이는 것들이 여기저기 꿀렁거리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어딜 기준으로 한 마리를 나눠야 할지조차 불분명했다.

다만, 저게 살아 있었고, 지금도 계속 불어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언노운?’

녀석들에겐 언노운과 비슷한 느낌이 났다.

하지만 비슷한 것과 같은 것은 전혀 다른 말이었다.

저기 있는 건 언노운과 비슷한 것들이지, 언노운이 아니었다.

‘글러트니….’

용주의 머릿속에 녀석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나마 비슷한 걸 꼽으라면 역시 녀석에게서 느꼈던 느낌이었다.

‘녀석을 만들다 생긴 실패작이라든가 뭐, 그런 건가? 아니면….’

순간 최악의 가정이 스쳤다.

여기 있는 모두가 원래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녀석들이 사람의 피와 살점을 가지고 있다는 게 첫 번째 이유.

두 번째 이유는….

촤악!

재빠르게 움직인 용주는 살점을 베어 냈다.

겹겹이 쌓여 출렁거리는 살점은 마치 액체 같았다.

‘비켜!’

흘러내리는 피와 살점을 날카롭게 베어 낸 용주는 왼손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꽈악…!

무언가를 움켜쥔 용주는 있는 힘껏 그걸 쥐어뜯었다.

잠깐 사이에 눌어붙었던 살점에선 엄청난 양의 피가 뿜어져 나왔다.

‘역시… 잘못 본 게 아니었어.’

뒤로 크게 물러난 용주는 왼손에 든 것을 확인했다.

손안에 들어와 있는 건 피로 물든 이형 리액터였다.

‘윤현. 녀석이 그런 모습이 되기 전에 분명 이렇게 생긴 걸 가지고 있었지.’

이게 녀석들에게 있다는 건 최악의 가정이 충분한 신빙성을 얻는단 이야기였다.

여기 있는 전원은 윤현처럼 되지 못한 실패작들.

윤현의 말을 빌리자면….

선택받지 못한 자들이었다.

‘녀석들의 아지트에서 나온 것들인 건가? 무슨 이유에선진 몰라도 실패한 개체들을 보관하고 있었던 모양이지.’

꿀렁….

민달팽이처럼 불규칙하게 움직이던 살점들이 순간 멈춰 섰다.

그리고.

먹잇감을 발견한 개미 떼처럼 용주를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내가 제일 먼저 발견해서 다행이야. 인간들의 피를 묻히는 건 내 손 하나면 충분할 테니까.’

광폭화 상태로 진입한 용주는 리액터를 깨부쉈다.

용주의 손을 타고 피어오른 잿빛 일렁거림.

리액터에 붙어 있던 살점은 빠르게 부패해 문드러졌다.

부패의 근원.

생명과 대척점에 있는 바로 그 힘이었다.

파앗!

짐승같이 움직인 용주는 변형체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포악하게 찢어발겨진 살점이 떨어졌고, 피가 호수를 이루었다.

“샤아아…!”

용주의 눈치를 살피던 언노운은 재빠르게 도주를 택했다.

그리고 그런 언노운을 기다리고 있는 건.

지면에서 솟아오른 날카로운 꼬리였다.

* * *

“이… 이게 다 뭐야?”

뒤따라온 서윤이 마른침을 삼켰다.

피와 썩어 문드러진 살점이 난잡하게 흩뿌려져 있었다.

보통 양이 아니었다.

살점은 산을 이루었고, 피는 강을 이루고 있었다.

코를 진동하는 짙은 피비린내와 시체 썩은 내에 당장이라도 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았다.

“놀랄 포인트. 더 있는 것 같은데?”

“뭐?”

수지의 손짓을 쫓은 서윤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뒤틀림으로 일그러진 하늘 아래 카오스 게이트가 열려 있었다.

일그러짐에 비하면 정말 작고 보잘것없는 크기였지만, 통상적으로 봐 왔던 카오스 게이트의 크기를 생각하면, 그보다도 더 큰 사이즈였다.

“카, 카오스 게이트가 열려 있잖아?! 그리고 저 기둥은 뭐야? 이 안개는 또 뭐고?”

“결정 같은 것도 있어.”

“그런 건 말 안 해도 알거든! 그런데 이거 여기 오기 전까진 전혀 못 보지 않았어?”

백번 양보해서 안개나 결정들은 못 봤을 수도 있겠다 하고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 정도로 거대한 기둥과 카오스 게이트라면, 이미 한참 전에 목격했어야 정상이었다.

“이용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이게 다 뭐냐고!”

“글쎄.”

“글쎄는 무슨! 이것들 네가 처리한 거 맞지? 일단 이것들부터 설명해 봐!”

“설명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 그냥 언노운이 있었고, 찢어 죽였다. 그게 전부야.”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 낸 용주가 손에 들고 있던 걸 마저 부쉈다.

“언노운?”

“인간의 살점과 꽤 유사한 피부를 가지고 있던 개체였지.”

용주는 진실을 감추었다.

잔혹한 진실을 굳이 마주할 필욘 없을 테니까.

“그, 그럼 저 기둥은? 저 게이트는?!”

“말했잖아. 글쎄라고. 내가 올라왔을 땐 이미 같은 풍경이었다.”

“거짓말!”

“선대 눈이 그랬었지. 남산 주변은 이쪽 세계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고.”

형만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것도 아마 그 여파일 거다. 공간의 뒤틀림이 우리의 시야까지 왜곡시키고 있었던 거지.”

“뒤틀림이 시야를?”

형만이라고 이 현장을 완벽하게 정의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 말고는 납득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참고로 네가 상대했다던 언노운들은 저기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던 거냐, 애송이?”

“아니. 녀석들은 이 주변에 산개해 있었다. 아마 다른 녀석들과 같은 방식으로 출현했을 거다.”

“그렇다는 건 아직 안정화가 되진 않았다는 이야기군.”

용주와 나란히 선 형만이 게이트를 살폈다.

게이트는 조용했다.

안정화가 되지 않은 다른 게이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어떻게 생각하냐?”

“저 뒤틀림이 게이트의 정문이라 하면, 저 작은 균열은 일종의 쪽문이라고 생각되는데.”

“재밌는 해석이군.”

“전에 게이트가 열렸을 땐 그리드의 관과 한태영이 매개 역할을 했었다. 둘 모두 게이트 바깥쪽에 있었지. 그런데.”

사람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준은 물론이고, 팬텀 중 누구도 보이거나 느껴지지 않았다.

여기 있던 거라곤 그 실패한 변형체들뿐이었는데.

그들을 모두 죽이고, 그들의 리액터를 전부 파괴했음에도 현상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그렇군.”

“관의 역할을 어떤 게 대체했는지는 몰라도, 한태영을 대신할 게 뭔지는 알고 있다. 윤현 녀석이 결정화시킨 내 힘의 일부지.”

“이형 리액터….”

“팬텀도, 이안도, 매개체도 여기 없다. 그럼 답은 하나뿐이지. 전부 저 안에 있을 거다.”

룬검에 빛을 밝힌 용주는 게이트까지 이어지는 얼음 계단을 만들어 냈다.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오르는 용주의 모습은.

왕좌를 찬탈하려는 왕자의 발걸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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