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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282화 (282/357)

282화

“이게 무슨 일이야….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고.”

입을 떡 벌린 상필이 눈만 깜빡였다.

눈앞에서 일어난 일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또 남은 수가 있다면, 지금 꺼내 놓는 게 좋을 거라 생각하는데.”

“……!”

용주와 눈이 마주친 상필은 두르고 있던 크리스털들을 거두었다.

“져, 졌습니다. 잡아가십쇼. 순순히 따르겠습니다.”

무릎을 꿇은 상필은 검을 내려놓았다.

더 이상 뭘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언노운이 복종하다니….

그런 상식 밖의 일을 일으키는 사람에게 더 이상 뭘 어쩌겠는가?

또각!

발굽 소리를 내며 다가온 라이덴이 현민을 내려놓았다.

현민에겐 반성하는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사건이 어디로 넘어가더라도, 이미 대비를 해뒀다는 얼굴이군.”

“……!”

현민의 허벅지를 밟은 용주가 반강제로 현민을 무릎 꿇렸다.

그는 분명 최악의 경우를 고려해 뒀을 것이다.

물론, 태스크 포스가 움직이는 경우도 가정해 두었을 테지.

“감히 누구 몸에 발을….”

일어나려던 현민이 고통스럽게 다시 주저앉았다.

용주의 동작은 평범했지만, 거기 실린 힘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태스크 포스는 헌터들의 범죄를 다루는 기관, 그러니까 헌터가 아닌 널 수사할 순 없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

그의 말대로였다.

빠져나갈 길이라면 당연히 만들어 뒀다.

여기 있는 전원 태스크 포스로 넘어간다 해도, 자신이 수사받을 기관은 거기가 아니었다.

사건이 넘어간다면, 아마 경찰이나 검찰로 갈 터.

검경찰의 상부 쪽이라면, 이미 자신의 손아귀 안이었다.

재판부로 올라가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용히 일을 덮거나, 최소한의 눈치 보기식 처벌 정도로 끝낼 수 있을 거다.

여론이야 후에 댓글 부대와 신문사, 커뮤니티 등을 동원하면, 금세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을 터.

개가 짖는 소리는 기차 소리로 묻어 버리면 그만이었다.

“미안하지만, 그렇게 쉽게는 못 빠져나갈 거다. 네가 헌터는 아니라도, 헌터들을 고용했단 건 변함이 없으니까.”

“푸흡…!”

현민이 어이없단 듯 웃음을 삼켰다.

“어이, 헌터. 뭘 모르나 본데, 네 증언은 증거가 될 수 없어. 난 그냥 사건에 말려들었던 것뿐이라고. 나쁜 건 저기 저 녀석들이야.”

아까 몇몇 녀석들이 용주보고 태스크 포스가 아니냐는 말을 했었다.

하지만 현민은 그가 태스크 포스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목에 차고 있는 팬던트 줄을 잠깐이나마 목격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나 보지?”

“충고하는데 기업을 적으로 돌리지 마. 서로 피곤해질 뿐이라고. 돈이라면 줄게. 필요한 만큼, 원하는 만큼. 변호사비 아꼈다고 생각하지, 뭐.”

“…그래?”

가볍게 어깨를 들썩인 용주가 현민의 면상에 발을 올렸다.

“그럼 나도 답례로 충고해 주지. 하나, 목격자가 하나라고 넘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발을 힘을 준 용주는 그대로 현민을 찍어 눌렀다.

라이덴은 용주와 상필 사이에 서 있었다.

“둘, 지금 사건을 목격한 건 나 하나만이 아니야.”

그렇게 말한 용주의 시야가 순간 빛으로 물들었다.

불과 몇 초에 불과한 시간에 몰아치는 빛과 소리.

잔상을 남기며 이동한 라이덴의 발밑엔 수많은 탄흔이 남아 있었다.

“쿠스쿠스. 빠르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오~ 그러게요. 오면서 만났던 언노운들이랑은 생긴 것부터 다르다 싶더라니.”

귀에 익은 목소리와 말투.

고개를 든 용주는 단복을 입은 두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한과 지훈.

자칭 TF의 쌍성인 두 콤비였다.

“그런데 지금 이건 무슨 상황일까요? 뒤엉킨 언노운들이랑 사람들, 거기에 소에 말까지. 킁킁! 뭔가 구린 냄새가 풀풀 나는 것 같은걸요?”

“쿠스쿠스. 우리가 하달받은 정보가 정확했다는 이야기지.”

“음~ 역시 국장님의 정보력은 남다르시다니까요.”

“현장 급습! 뭔가 일이 잘 안 풀린 모양인데, 그렇다고 넘어가 줄 수야 없지. 전부 일망타진해 버리자고. 저기~ 저 고용주까지.”

등을 맞댄 두 사람이 총구를 하늘에 겨눴다.

“컴온~! 시리우스.”

“빛을 따라 내려오세요, 안타레스.”

하얀 깃털들이 흩날리는 창공엔 두 천사가 그 장엄한 모습을 드러냈다.

“쌍성…. 역시 저 녀석들이었군.”

용주가 천사 위에 올라탄 두 사람과 마주했다.

태스크 포스의 기동대원으로 보이는 이들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흠~ 내분이라도 있었던 모양이죠?”

“쿠스쿠스, 알 게 뭐야? 우리가 해야 할 건 전원 체포하는 것뿐이라고.”

“그럼 빨리 제압해 버리자고요. 언노운 쪽도, 범죄자들 쪽도.”

그렇게 말한 지훈이 단안경에 손을 올렸다.

그는 용주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어라? 근데 저기 저 사람 뭔가 낯이 익지 않아요? 분명 어디선가….”

“음… 아! 그래! 생각났어! 저 녀석, 그 녀석이야! 그… 눈이 실패하고 왔던 사건에!”

“아!!”

지훈이 탄창 집을 때렸다.

“뭐예요? 이번 사건에 연루되어 있단 이야기는 없었는데.”

“알 게 뭐야? 굴비가 제 발로 엮인 거겠지, 뭐.”

“음~ 그럼 저희가 골머리를 썩일 필요도 없었던 거네요. 역시 헌터들이 다 그렇죠, 뭐.”

“체포해 버리자고. 이걸로 한 번 크게 골려 줄 수 있겠어!”

“오케이~.”

날개를 펄럭인 천사들에게서 빛이 흩뿌려졌다.

하늘을 수놓은 빛의 구체들은 포화가 임박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까지 한통속으로 묶인 모양인데.’

용주가 현민에게 올려놓았던 발을 치웠다.

적당히 힘을 조절한다고 한 거였는데, 현민은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태스크 포스, 그래도 완전 허당인 것만은 아니었던 모양이지?’

녀석들이 여기 나타난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어떤 경로로든 이들의 움직임을 알고 있었고, 예의주시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TF의 쌍성.

저들의 천사를 격추시키는 건 이미 한 번 해봤던 일이었다.

그걸 다시 재연하는 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도, 시간도 없었다.

녀석들의 전투력이 어느 정도라고 확실히 말할 순 없었지만, 적어도 이 B급 언노운들이 주를 이루는 영역에서는 충분한 전력일 거다.

녀석들에게 맡겨 놓으면, 굳이 이 녀석들에게 더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알아서 뒤처리를 해주리라.

‘그래. 지금은 그렇게 하는 게 좋겠어.’

라이덴과 보좌관을 철수시킨 용주는 재빨리 속도를 높였다.

“놓칠 줄 알고!”

“도망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다니. 어리석네요.”

날개를 펼친 두 천사는 용주의 뒤를 추격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왜 녀석들끼리….’

태스크 포스를 추격하는 태스크 포스.

상필의 입장에선 지금 이 상황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럼 그 녀석은 태스크 포스가 아니었던 거야?’

나중에 나타난 녀석들이 TF임은 확실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그런 결론에 다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럼 길드에 그만한 힘을 가진 사람이 있었단 건가? 아니야. 그럼 내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그럼 뭐지? 길드에 등록되지 않은 헌터? 그게 아니라면 길드 자격이 오래전에 박탈된 헌터인 건가? 그래서 내가 몰랐던 건가? 아니. 그렇다고 하기엔 나보다 갑절은 어려 보이던데….’

하지만 그 결론은 또 다른 의문의 출발에 불과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의 홍수 속에서 상필은 고개를 저었다.

뭐가 어떻게 됐든, 지금이 기회였다.

‘지, 지금이라면…!’

눈치를 보던 상필이 재빨리 도주 경로를 모색했다.

지금이라면, 아무런 제제 없이 여길 빠져나갈 수 있었다.

“같이 가시죠. 태스크 포스 쪽 일은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서둘러 현민에게 다가간 상필이 이야기했다.

이 상황에서도 잡아야 할 동아줄이 뭔지 잊지 않은 상필이었다.

대한민국 최고 재벌이란 말이 아깝지 않은 그였다.

돈과 인맥.

기타 어떤 걸 동원해서라도 분명 태스크 포스를 막아 줄 것이다.

“…….”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현민은 이미 기절해 있었다.

“젠장…!”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르게 흘러가는 진행.

일이 틀어짐을 느낀 상필이었지만,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미드나잇 크리…!”

관을 열려는 상필의 머리 위로 아까 쌍성이 만들었던 빛이 떨어졌다.

무방비 상태로 직격당한 상필은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그를 공격한 빛은 족쇄가 되어 그의 몸을 구속하고 있었다.

“엄청 날래잖아, 저거?”

“그러게요. 아무래도 마나로 자기 신체를 강화하고 있는 것 같아요.”

두 천사가 쏘아 올린 빛이 거세게 빗발쳤다.

천사들이 도심을 질주하고 있는데도, 거리는 쉽게 좁혀지지 않고 있었다.

‘꽤 끈질기게 따라붙잖아?’

사선으로 몸을 튼 용주가 룬검을 휘둘렀다.

솟구쳐 오르는 얼음의 파도.

장벽이 된 얼음에 두 천사가 부딪치자, 부서진 얼음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어디로 갔지?”

“안 보이네요.”

얼음벽을 뚫고 나온 두 사람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라고 할 줄 알았나요?”

동시에 뒤로 돌아선 두 천사가 전투검을 집어 던졌다.

전투검이 노리는 곳은 얼음 장벽의 바로 아래.

용주는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차라리 쥐구멍 앞에 웅크리고 계시지 그러세요? 저흴 너무 바보로 아는 거 아닙니까?”

산산이 부서지는 얼음벽.

용주를 중심으로 그려진 동그란 마법진이 빛을 발했다.

각기 다른 형태를 자랑하던 여덟 자루의 창은 두 천사의 손짓에 교차하며 내리꽂혔다.

‘그거 때문인가?’

장창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한 용주는 마지막 한 자루를 쳐 냈다.

진각성과 함께 자신의 마나는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지금 저 두 놈이 자신의 눈속임에 걸리지 않은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휘익!

빛과 함께 발사된 탄환이 사선으로 내리꽂혔다.

용주에게 정확히 명중한 탄환.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용주는 이빨 사이에 끼인 탄환을 씹어 부쉈다.

“하?! 부쉈어?! 멈춘 것도 모자라 부쉈어?”

“악어도 저렇겐 못 하겠는걸요?”

명중한 것처럼 보였던 탄환은, 실은 명중하지 못했었다.

‘별로 내키진 않지만, 또 한 번 격추시키는 수밖에 없는 건가?’

두 녀석의 전력을 가능하면 온전하게 놔두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그렇게 하는 것 말고 더 빠른 방법은 없어 보였다.

말로 설명하는 건 길고 복잡하지만, 폭력으로 끝내는 건 짧고 간단했다.

“잠깐! 거기까지!”

용주가 천사들을 요격할 준비를 하던 그때.

붉게 물든 하늘에서 수많은 눈이 나타났다.

“이건….”

“눈? 잠시만!”

이그노얼 나이트메어의 효과로 사라져 버린 천사들.

날개 없이 추락한 두 쌍성은 간신히 착지에 성공했다.

“너 방금 저 두 녀석 또 날려 버리려고 했지?”

건물 벽에 동그란 구멍을 낸 수호가 지면에 착지했다.

“그러려던 참이다만.”

“아서라. 저 녀석들, 너한테 한 번 깨진 적 있다는 사실도 모를 거다. 여기서 서로 힘 낭비 해봤자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거라고.”

안대에 손을 올린 수호가 어깨를 들썩였다.

둘.

아니, 셋의 충돌을 느낀 건 이걸로 두 번째.

비슷한 듯 다른 과거의 풍경 속에선 용주가 쌍성을 거의 황도천에 담글 뻔했었다.

저기 저 녀석들은 분명 모르고 있을 테지.

그때 봤던 괴물과 지금 여기 있는 사람이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왜 그놈 편을 드는 거야?!”

“혹시 저희가 잡는 게 배가 아프셨던 건가요? 그렇지만 이건 저희 일이라고요!”

불만을 품은 지한과 지훈이 외쳤다.

기세 좋고, 타이밍까지 완벽했는데, 흐름이 완전 깨져 버렸다.

“이 녀석, 너희가 하고 있는 일이랑은 관계없을 거다. 가서 하던 일이나 계속해.”

“쿠스쿠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신입이라 뭘 잘 모르시나 본데, 저흰 현장을 덮쳤다고요! 그런 걸 뭐라고 부르는지 아세요? 현!행!범! 이라고 부른다고요! 게다가 그 사람! 저희가 보는 앞에서 그 회장인가 사장인가 하는 사람을 벌레 밟듯이 밟아 버렸다고요!”

수호의 말에 두 사람이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벌레 밟듯이 밟았단 게 같은 편이 아니라는 확실한 목격 증거 아니냐?”

“아니죠! 그냥 내분이 있었다는 소리죠, 그건!”

같은 결과를 놓고 벌이는 다른 해석.

이대로면 시간이 한참 걸릴 거란 걸 직감한 수호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태스크 포스가 지금 길드와 협조 중인 건 알고 있을 거다. 그리고 지금은 비상사태지.”

“그래도 이건 아니죠! 공과 사는 확실히 해야 하는 거라고요!”

“이 녀석이 정말 지금 너희가 맡은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게 밝혀지면, 내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 머리를 조아려 사과를 받고 싶다고 하면, 그렇게 해주지. 그러니 지금은 이 녀석의 시간을 낭비하게 하지 마라.”

창공을 채우던 이그노얼 나이트메어가 사라져갔다.

서로 반대편 볼을 부풀린 지한과 지훈은 눈빛을 교환했다.

“그 말 내 머릿속에 녹음해 뒀어.”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기예요. 엎드려 빌 준비 해오시라고요.”

손해 볼 것 없는 장사라고 판단한 두 사람이 총을 거두었다.

멀어지는 두 사람의 기운을 느끼던 수호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딴말은 됐고, 다른 녀석들 이미 전쟁기념관 근처까지 도착했으니 퍼뜩 움직이라고. 너 때문에 먼 걸음 수고했으니까.”

“그래. 근데 승우가 걸어 준 바람이 풀렸는데, 괜찮겠냐?”

“하! 그런 잔재주가 없어도, 하루 종일도 할 수 있어. 네 걱정이나 하라고.”

혀를 길게 내민 수호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언노운과 언노운이 서로 뒤엉켜 서로를 삼키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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