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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280화 (280/357)

280화

용주의 눈동자를 가득 채운 수많은 쇠 구슬들.

빠르게 좁혀지는 거리 속 용주에게서 한 무리의 날벌레들이 날아올랐다.

위잉~!

맹렬한 날갯짓 소리와 함께 피를 쏟아 내는 착취의 무리.

정밀 타격에 나선 날벌레들은 하나가 전부인 것처럼.

전부가 하나인 것처럼 완벽하게 적의 공격을 상쇄시켰다.

‘저게 뭐야!’

피 폭발을 헤집고 나오는 용주의 모습에 준호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완벽하게 뒤를 잡은 용주의 손엔 난회전하는 피의 구체가 모여들고 있었다.

‘페이탈 블러드!’

용주의 스킬이 작렬함과 동시에 둘 사이에 얇은 크리스털 막이 형성되었다.

난회전하는 피의 구체에 금이 가는 크리스털 막.

조금 더 힘을 집중시킨 용주는 있는 힘껏 크리스털 막을 찍어 눌렀다.

“악!!”

부서져 흩날리는 유리 파편 속 울리는 외마디 비명.

페이탈 블러드에 직격당한 준호는 그대로 튕겨 나갔다.

‘그 순간에 그런 식으로 대미지를 최소화하다니. A급 헌터는 그래도 다르긴 다르단 건가?’

상필의 서포트가 있을 수 있단 고려는 했었다.

하지만 자신의 무게를 줄여 고의적으로 회전을 이용할 거란 고려는 하지 못했다.

미래를 보는 눈.

그 힘을 사용했다면 이런 결과도 예측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신의 힘에 필적하는 능력에 아무런 리스크도 없는 건 아니었다.

가장 눈에 띄는 리스크라 함은 역시 마나 소모.

진각성으로 마나가 폭발적으로 상승했음에도, 그 소모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리고 그 소모는 곧장 피로감으로 다가왔다.

진각성을 하기 전 마나가 거의 없다시피 했을 땐 느껴보지 못한 피로감이었다.

한계까지 힘을 쓴 수지가 왜 쓰러졌는지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부가적으론 눈에 오는 부담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피눈물을 흘리는 게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둘 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미래를 들여다봤을 때는 느끼지 못한 것들이었다.

다른 S급 헌터들도 힘 한 번에 이 정도 소모를 하는진 알 수 없었다.

단순히 숙련도에 문제일 수도 있고.

이 힘이 유독 더 많은 힘을 잡아먹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뭐가 됐든 여기서 너무 많은 힘을 소모할 순 없었다.

팬텀과 이준.

지금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건 그 녀석들과의 싸움이었다.

팟!

오른발을 축 삼아 급격하게 방향을 튼 용주는 상필과의 거리를 좁혔다.

주변 언노운들의 피를 흡혈한 착취의 무리는 상필이 도주할 수 있는 모든 경로에 공격을 쏟아 내고 있었다.

“미드나잇 크리스털!”

상필의 영창과 함께 수십 개의 크리스털 관이 나타났다.

거울처럼 매끈하게 가공된 크리스털은 한 개 아니었다.

용주의 시야에 들어온 것만 수십 개.

관은 말 그대로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다.

마주 보고 나타난 크리스털 관으로 몸을 던진 상필의 모습은 용주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거울 같은 관의 표면엔 어딘가로 뛰어가는 상필의 모습이 여러 개 겹쳐 보였다.

‘놓칠 줄 알고!’

도주를 위한 스킬.

직감적으로 그렇게 느낀 용주에게서 또 한 줄기의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90도로 방향을 튼 용주는 가장 작고 빛도 약한 관으로 달려들었다.

‘바보 같군요. 찍어서 맞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랍니다.’

헛다리를 짚은 용주의 뒷모습에 상필이 콧방귀를 뀌었다.

상대가 설령 TF의 눈이라고 할지라도 따돌릴 자신이 있는 상필이었다.

모든 관이 동일한 기운과 기척을 가지는 이 스킬은 그 많은 언노운들을 상대로도 한 번도 공략되지 않았던 절대 탈출의 스킬이었다.

‘바로 뒤를 잡기엔 아직 조금 위험하고, 준호 씨가 다음 공격을 개시하는 타이밍에 맞춰서….’

다음 수에 대한 계산을 마친 상필은 생각했던 출구를 열고 나왔다.

“!”

그런 상필의 어깨를 꿰뚫는 붉은 핏줄기.

“크윽…! 뭐야?!”

불의의 습격에 어깨를 짚은 상필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공격이 날아온 방향에 뚫려 있던 작은 홀은 빠르게 모습을 감추어 갔다.

힐끔 뒤를 돌아본 상필은 용주를 바라보았다.

용주의 발아래에도 마찬가지의 홀이 있었다.

공격 타이밍을 계산해 보면, 눈으로 보고 대처한 속도가 절대 아니었다.

미리 알고, 준비하고 있었다.

믿기지 않지만, 그것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이걸 위한 페이크였다고? 내가 다른 문을 열고 나오면 그만이니까?’

그런 가정을 하면 용주가 헛다리를 짚은 것까지 유도했단 말이 된다.

‘말도 안 돼. 그럴 리 없어.’

“아머드 크리스털.”

다시 한번 영창을 외친 상필이 파라오의 전신 갑주로 자신을 무장했다.

고강도 크리스털로 이루어진 이 갑옷은 티타늄보다 단단하고, 고온과 저온으로부터 착용자를 전부 보호해 주는 스킬이었다.

그러면서도 놀라울 만큼 가볍기에 움직임엔 아무런 제약도 없었다.

크리스털에 둘러싸인 상필의 검은 앙크를 닮아 있었다.

휘익!!

상필이 무장을 마칠 무렵.

묵직한 바람을 일으킨 무언가가 그를 스쳐 갔다.

투사체의 정체는 언노운의 유해.

‘아토믹 버스터.’

왼손을 움켜쥔 용주는 준호의 공격을 정면에서 받아쳤다.

강렬한 충격파를 일으키며 날아간 유해는 상필이 사라진 자리를 산산이 조각냈다.

용주의 손은 하얗게 변해 있었다.

“생각한 것보다 더 까다로운걸요?”

관을 열고 나타난 상필이 손목을 돌렸다.

“그래.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녀석. 다른 건 둘째 치고 사람 상대하는 데 꽤 익숙해. 어쩌면 태스크 포스 쪽 녀석일지도 몰라.”

“그거 말 되네요. 상대가 태스크 포스라도 딱 한순간만 기회가 오면 쓰러뜨릴 자신은 있는데.”

“이렇게 되면 협공으로 간다. 여왕을 잡았던 그걸로.”

“오케이. 접수했어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준호가 손가락 사이에 쇠 구슬을 끼웠다.

지금까지 사용했던 쇠 구슬들과는 모양도 색도 다른 물건이었다.

이형 결정체를 가공해 만든 자신만의 특별한 도구.

이게 낼 수 있는 힘은 지금까지 사용했던 쇠 구슬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바위와 낙화의 춤!”

단검을 고쳐 잡은 준호가 코앞까지 다가온 용주의 공격을 막아섰다.

“학과 깃털의 춤!”

바위와 깃털을 오가는 준호의 무게.

잔상을 남기며 이동한 준호는 끼고 있던 구슬을 흩뿌렸다.

‘풍참!’

오른손의 힘줄을 바짝 세운 용주는 검을 휘저었다.

챙!

탕!

끼이이익!!

불과 2초도 되지 않을 찰나의 시간.

검격과 쇠 구슬이 만드는 소리는 귀를 찢을 만큼 요란하게 들려왔다.

살짝 틀어진 궤도 사이를 통과한 용주는 그대로 공격으로 이어 갔다.

바닥 타고 기어간 얼음 돌기들이 솟구쳤고, 룬검이 만든 서리가 사방으로 튀었다.

공방을 주고받던 준호는 이번엔 약간의 붉은색을 머금은 구슬을 꺼냈다.

공깃돌처럼 가볍게 내던져진 구슬들.

부드러운 포물선을 그린 구슬들은 대포알처럼 쏟아졌다.

‘살아 있는 바다.’

쏟아지는 쇠 구슬을 마주한 용주의 왼팔에서 세 가닥의 촉수가 자라났다.

‘아토믹 버스터.’

연이어 발동한 두 번째 스킬.

아토믹 버스터는 기본적으로 팔을 변이시키는 기술이었지만, 지금 용주의 시도는 그것과 달랐다.

하얀 입자가 모여드는 곳은 조금 전 자라는 촉수들.

팔과 가까운 곳에서부터 자라난 하얀 뼈대는 넝쿨처럼 뻗어 나갔다.

휘릭!

촉수를 휘저은 용주는 떨어지는 구슬들을 받아쳤다.

강도와 힘이 상승한 촉수들은 그 공격에도 찢겨 나가지 않았다.

“그게 뭐야? 완전 최악이잖아!”

용주의 스킬에 한줄평을 남긴 준호는 상필을 곁눈질했다.

이미 준비를 마친 상필은 모든 준비를 끝내 놓은 상태였다.

“!”

공격을 이어 가던 용주가 순간 이를 악물었다.

어깨가 뒤틀리는 것 같은 이 충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건….’

점멸을 사용한 용주는 순간적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신을 공격한 건 녀석이 처음 던졌던 것과 같은 종류의 쇠 구슬.

녀석의 본체는 분명 앞에 있었는데….

‘그럼 이건 어디서….’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날아든 쇠 구슬은 용주의 오른발을 빗겨 갔다.

눈동자를 굴린 용주는 빠르게 상황을 분석했다.

그리고 자신이 놓치고 있던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 그런 거였군.’

바닥에 튕긴 쇠 구슬이 크리스털 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여기저기 난잡하게 널려 있던 관들은 지금 자신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었다.

땅에만 있던 이전과 달리 이번엔 공중에도 관이 떠 있었다.

지금껏 준호가 날린 쇠 구슬들의 종착역은 바로 저곳.

관들은 빠르게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고 있었으며, 그 과정 중에 재사출된 쇠 구슬들이 각도를 바꿔 가며 용주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흡사, 차원 너머에서 누군가 탁구를 치고 있는 그런 그림이었다.

‘차원을 가지고 노는 장난이라면, 놀랄 것도 없어.’

그렇게 생각하던 용주의 발밑에서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화상을 입을 정도의 열기.

불규칙적으로 일어나는 폭발에 용주는 공통점을 분석했다.

폭발이 일어나는 경우는 서로 다른 쇠 구슬이 부딪쳤을 때.

녀석이 다른 색의 구슬을 뿌렸던 건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 아니었다.

“그걸로 끝이라고, 별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지?”

빠르게 거리를 좁히고 들어온 준호가 마나를 폭발시켰다.

“추와 늪의 춤!”

아래로 잡아끄는 그의 손짓에 용주가 딛고 있던 바닥이 크게 무너져 내렸다.

“움직일 생각이라면 그만두는 게 좋아. 내가 조금만 까딱하면, 불어난 네 무게가 네 뼈를 전부 으스러뜨릴 테니까.”

무게를 컨트롤하는 힘.

그게 본인에게만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었다.

여기 있는 이 언노운들을 옮길 수 있던 건 온전히 자신의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그 상태로 서 있는 건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지.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야.”

“이중, 삼중 설계를 할 수 있는 건 그쪽만이 아니라고요.”

크리스털 관을 열고 나온 상필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아까 사장님이 보내 드린다고 했을 때 곱게 가셨으면, 얼마나 좋아요? TF에서 나름 실력을 검증받아서 그렇게 한 모양인데….”

상필이 끌끌거리며 혀를 찼다.

“후회해도 늦었어요. 지금 여기서 그쪽 구해 줄 사람 아무도 없다고요.”

오른손을 치켜든 상필이 호루스의 눈을 짚었다.

V자로 펼친 손가락 사이론 용주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였다.

“악의는 없어요. 그러니 서로 원망하지 말자고요.”

한 점으로 집중되는 상필의 마나.

“마지막 가시는 길 좋은 거 하나 알려 드릴까요? 전 결이 다른 두 가지 힘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요. 하나는 직접 각성해 얻은 힘, 다른 하나는 돈으로써 얻은 힘. 지금 보여 드릴 건 후자 쪽이에요. 세상에 돈이면 안 될 게 없다고요.”

황금색으로 물든 상필의 오른쪽 눈동자는 뭔가 일어날 거란 걸 예고해 주고 있었다.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드리밍 싸잇 (Dreaming Sight). 그렇게 외치는 영창과 함께 상필의 눈동자가 다시 원래 색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

뭔가 이상했다.

정신없이 날뛰던 언노운도 이거 한 방이면, 바닥에 풀썩 엎어져야 정상이었다.

인간이 대상이라면 더 볼 것도 없었다.

분명 그럴 텐데….

저기 있는 용주는 쓰러지긴커녕 자신과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압도적인 마나가 뒷받침해 주는 용주의 정신력.

그건 상필이 지금껏 만나본 적 없는 거대한 벽이었다.

“미안하지만, 누군가 구해 줄 거란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세로로 길게 찢어지는 용주의 눈동자.

붉은 핏방울에 둘러싸인 용주의 다리가 괴물의 형태로 변해 갔다.

“익숙하지 않은 힘과 마나로, 안 죽을 정도로 적당히 상대하는 게 꽤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뿐.”

부분 광폭화.

광폭화에 반복 숙달되며, 새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된 변형 기술이었다.

전신이 변화하는 광폭화 상태에 비해 모든 파라미터가 떨어지는 모습이었지만, 이 방법을 사용하면, 언어 기능이 퇴화하지 않았다.

투쾅!

지면을 부수며 뛰쳐나간 용주는 준호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으드득!

나선 안 되는 소리와 함께 날아가는 준호.

외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그를 따라잡은 용주는 등을 걷어차 퍼 올린 준호를 위에서 내리찍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당한 준호는 그대로 의식을 잃어버렸다.

“다음이 있다면, 온몸의 뼈를 다 으스러뜨릴 생각을 하는 게 좋을 거다. 내가 있던 그곳은 그렇게 친절하지 않았으니까.”

준호를 반 바퀴 굴린 용주가 그의 가슴을 사뿐히 지르밟았다.

“히익…!”

다리가 풀린 상필은 뒤로 발라당 넘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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