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9화
“어떻습니까? 실력을 보여 주시면, 금액적인 조정은 얼마든 가능합니다.”
현민이 대답을 기다렸다.
공룡.
지금까지 인류의 상상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은 딱 그 정도였다.
하지만 호박 속 모기니, 유전자 역진화니 하는 건, 불가능하거나, 가능성이 희박한 일들이었다.
금액적인 부분은 책정이 불가능하고, 성공을 보장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사업은 달랐다.
멸종한 생명체가 아닌 살아 있는 생명체를 대상으로 한다.
관광 상품적인 가치에 더해 이형 결정체라는 부가적인 생산품도 제공한다.
공룡 따위에 비하면 이 얼마나 가치 있고, 확실한 사업 아이템인가?
지금까진 헌터 길드의 영향력 때문에 제대로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내 대답을 듣고 싶다고?”
주변을 살핀 용주가 물었다.
“네. 부디.”
대답을 기다리던 현민의 곁으로 소름 끼치는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바닥을 수놓는 무수히 많은 자상.
쇠사슬에 묶여 있던 언노운이 온몸에서 피를 뿜으며 목숨을 잃었고, 안정을 잃어버린 소와 말들이 분주하게 날뛰었다.
“이게 바로 내 대답이다.”
단 한 번의 검격에 찢긴 대지는 벚꽃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그러시군요. 그거 유감입니다.”
놀란 현민이 작은 손짓을 보냈다.
서류 가방을 닫은 비서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조금 전 베어 버리신 언노운은 못 본 척 넘어가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그쪽도 저희 일은 못 본 걸로 해주시길 바랍니다.”
대답 대신 왼손을 뻗은 용주는 한 줄기 파장을 발산했다.
혈사포에 직격당한 언노운의 알에선 점액과 함께 변태를 마치지 못한 유충이 흘러내렸다.
“…….”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현민의 앞에 두 사람이 멈춰 섰다.
준호 그리고 상필이었다.
“적당히, 그리고 조용히 처리해 주십시오.”
“공짜로?”
“금액은 원하시는 만큼 지불하죠. 현금이 싫으시다면, 주식이나, 건물로도 가능합니다.”
“역시 사업하는 양반은 뭐가 달라도 달라. 말이 잘 통한다니까?”
소매를 걷어붙인 준호가 단검을 닦았다.
인간을 상대로 검을 겨눈다는 게 상당히 꺼림칙하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A급 헌터인 모양이군. 두 녀석 다.”
“보면 알잖아? 다 알 만한 사람들끼리.”
준호가 단도를 굴렸다.
“설마 우릴 모른다고 하진 않겠죠? ‘현권(懸權)의 헌터’, 그리고 ‘파라오’. 저희 이명을 모르면 간첩인데요?”
상필이 한마디를 거들었다.
자신의 이명에 상당한 자부심이 있는 그였다.
“그런데 그쪽은 처음 보는 얼굴인데. 각성한 지 얼마 안 된 건가요? 일이 있었으면 그래도 얼굴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을 것 같은데.”
상필이 보기에 용주는 상당한 실력자였다.
하지만 그 경력에 대해선 의문이 찍혔다.
A급 헌터라면, 임무 중에 한 번쯤은 마주쳤을 것 같은데 말이다.
S급 헌터가 새로 나왔다면, 조용했을 리가 없을 테고.
S급만 아니라면, 상대가 누구라도 전부 이길 자신이 있었다.
마나와 기운이 크다고 해봤자, 상대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 고래.
실력과 경험이 축적되지 않은 초짜에게 겁먹을 필욘 없었다.
“A급 헌터면서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에 어울리고 있는 거냐? 돈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
상필의 물음을 무시한 용주가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A급 헌터가 돈이 없다는 말은 지네의 다리가 적다는 이야기와 똑같은 이야기였다.
이명까지 가진 검증된 실력자라면, 더더욱 그럴 거다.
“크게 배팅했거든. 그런데 그게 연속해서 나락으로 가버렸어, 벌어서 다시 붓고, 벌어서 다시 붓고, 무슨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도 아니고, 아무리 들이부어도 본전으로 올라올 생각이 없더라고.”
단검을 고쳐 잡은 준호가 칼등을 쓸어 올렸다.
“결국, 빚까지 왕창 져 버렸지 뭐야? 일할 맛도 안 나고, 일하고 싶어도 게이트도 영 뜸하고, 아주 미쳐 버리겠더라고. 그러던 중에 제안이 하나 들어왔지. 이런 걸 계획하고 있는데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준호가 단검 끝으로 앞머리를 정리했다.
“군침 흘릴 만한 제안이라 덥석 잡긴 했는데, 현실적으로 무제한 보류될 수밖에 없었지. 뭐, 헌터 길드가 그렇게 딱 버티고 있는데 윗선을 포섭하는 게 아니라면,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그래서 시스템적으로 우리보다 떨어지는 후진국에 가서 일을 벌이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하던 참이었는데….”
고개를 든 준호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 사태가 터진 거야. 나한텐 행운이었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구나 싶더라고.”
여기 모인 헌터들 역시 다 비슷한 마음이었다.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목적은 역시 돈.
목숨을 걸고 백날 구르는 것보다 이 한탕이 크다면, 충분히 매력적인 제안이지 않겠는가?
“사람에게 검을 겨눠 본 적은 있고?”
“음….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생각을 좀 해봤는데, 역시 직접 멱을 따버리긴 좀 불편하더라고. 그래서 그쪽을 흠씬 두드려 패 준 다음에 저기 저놈한테 던져 줄 생각이야. 잠에서 깨면 아주 게걸스럽게 먹어치울걸?”
단도 끝이 가리킨 곳에는 굼벵이를 닮은 A급 언노운이 있었다.
“그럼 어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준호는 쇠 구슬 하나를 꺼냈다.
가볍게 튕긴 쇠 구슬.
코인 토스를 하듯 던져진 쇠 구슬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일을 시작해 볼까나?”
눈앞을 지나는 쇠 구슬을 바라보던 준호가 쇠 구슬을 때렸다.
딱밤을 날리듯 가볍게 때린 일격은.
총알 같은 속도로 용주를 스쳐 갔다.
‘빗나갔잖아?’
빗맞힐 생각은 없었었다.
하지만 녀석이 몸을 살짝 트는 바람에 공격은 애꿎은 가로수를 부러뜨렸다.
우연인가?
그렇지만 우연이라 하기엔 뭔가….
“…….”
불의의 기습을 여유롭게 흘려보낸 용주는 역으로 거리를 좁혔다.
눈가를 타고 흘러내린 한 줄기의 피눈물은 조금 전 공격을 피한 게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현권의 헌터. 역시 날 알고 있던 건가?”
그렇게 결론 내린 준호는 손가락 사이사이마다 쇠 구슬을 끼웠다.
사람을 상대해 본 적은 없지만, 사람의 급소라면 전부 알고 있었다.
제압하는 것 정도야 어려운 일도 아니지.
“하나가 전부일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되지.”
흩뿌려진 쇠 구슬들이 또다시 폭발적인 속도를 얻었다.
타이밍을 재던 용주는 점멸로 모든 탄환을 흘려보냈다.
‘이준의 능력과 비슷한 능력인 건가?’
벡터를 컨트롤 하는 능력.
녀석이 쇠 구슬을 이용한 것만 보면 그렇게 보였다.
거리를 좁힌 용주는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단검을 고쳐 잡은 준호는 그런 용주의 공격을 정면에서 받아쳤다.
‘속도가 올라갔잖아?’
짧은 경합을 주고받은 용주가 사선으로 몸을 틀었다.
깃털처럼 가벼운 움직임.
준호의 움직임에 딱 어울리는 표현이었다.
“학과 깃털의 춤!”
수많은 잔상을 남긴 준호가 치켜든 단검을 휘둘렀다.
자신을 둘러싼 12명의 준호가 서로 다른 급소를 공격해 오는 일촉즉발의 상황.
사후 강직의 효과로 모든 공격을 그대로 받아 낸 용주는 뒤쪽으로 손을 뻗었다.
“큭!”
손안으로 정확히 들어오는 준호의 목.
그대로 의식을 잃게 만들려던 용주였지만, 원하는 걸 이루지 못했다.
쨍그랑!
‘방금 그건….’
용주의 손에서 날카로운 크리스털 파편들이 쏟아졌다.
용주가 준호를 붙잡기 직전.
준호의 목을 휘어 감는 얇은 유리막 같은 게 생겨났었다.
두께에 비해 꽤 단단한 강도를 가졌던 크리스털 막.
아무래도 그건 저기 있는 상필의 스킬인 모양이다.
“퉷…! 고맙다. 큰일 날 뻔했네.”
용주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간 준호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설마 거기서 뒤를 돌 줄이야.
“틈을 만들어 주시면, 제 쪽에서 한 방에 끝낼게요. 제압이라면 이쪽의 전문 분야니까.”
“치고 들어올 타이밍은 네가 알아서 판단해. 난 내 방식대로 제압할 테니까.”
“네. 그렇게 할게요.”
두 사람이 짧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반원을 그리며 펼쳐진 다섯 장의 부적이 용주의 앞에 펼쳐졌다.
“신명 - 오성주박!”
도술을 부리듯 손가락을 세운 B급 헌터가 영창을 외치자, 부적에서 흘러나온 빛이 용주를 휘어 감았다.
“몬스터 드로잉 - 해태!”
그와 동시에 실체화되는 환상의 동물.
또 다른 B급 헌터가 대검으로 그린 그림은 용주의 뒤통수를 찍어 누르려 하고 있었다.
“내가 잡았어! 내가 잡았다고! 아까 들은 보수! 당연히 우리한테도 유효한 거겠죠?!”
“무슨 소리! 잡은 거 나라고! 강남에 한강뷰 오피스텔 한 채면, 대대손손 놀고먹을 수 있을 거야!”
거대한 굉음과 함께 사방으로 먹물이 흩뿌려졌다.
제안을 받은 건 두 사람이었지만,
그 제안에 군침을 흘리고 있었던 건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사자들이 사냥하길 기다리던 하이에나들은 이빨을 숨긴 채 군침을 삼키고 있었다.
휘익!
두 사람이 서로의 활약을 어필하던 그때.
주박을 펼치던 다섯 장의 부적이 일제히 잘려 나갔다.
“내 오성주박이!”
놀란 헌터가 외쳤을 땐 이미 용주가 코앞까지 다가온 다음이었다.
왼손을 움켜쥔 용주는 녀석의 명치를 후려갈겼다.
“커헉!”
새우처럼 굽어지는 허리.
때리기 좋게 내려온 뒤통수를 내려다보던 용주는 녀석의 후두부를 가격했다.
검 손잡이에 급소를 맞은 헌터는 그대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어떤 스킬이든 발동만 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용주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여기 있는 녀석들은 전투 불능에 빠뜨리는 정도면 충분했다.
“카이저 블레이저!”
“뱀파이어릭 서커스!”
“사이펀 오큘러스!”
용주에게 쏟아지는 B급 헌터들의 스킬.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공격을 능숙하게 받아친 용주는 달려드는 헌터들을 차례차례 제압해 갔다.
용주의 힘은 압도적이었고, 용주의 속도는 모두를 상대로도 여유가 느껴졌다.
“내 속도를 따라올 순 없을걸!”
입에 검을 문 헌터가 삼도류를 휘둘렀다.
그리고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적의 눈동자가.
정확히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아… 아악! 아파! 아프다고!”
한 마리의 표범처럼 날뛰던 헌터의 얼굴을 붙잡은 용주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고통에 발버둥 치던 헌터는 그대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속도에 자신이 있던 그였지만, 용주의 속도는 그보다 한 수 위였다.
“모… 몬스터 드로잉 - 백호!”
다음은 자신임을 직감한 헌터가 다른 한 마리를 현실화시켰다.
“라이덴!”
용주의 부름에 나타난 라이덴은 백호의 앞을 막아섰다.
잔상을 할퀸 백호에게 흐르는 엄청난 양의 전류.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은 백호를 한 줌 먹물로 바꾸어 버렸다.
“저기 있는 두 녀석, 그리고 저기 저놈. 그렇게 셋은 내가 처리할 테니, 나머진 적당히 처리해. 죽이진 말고.”
용주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라이덴이 행동을 개시했다.
가장 먼저 뒤쫓는 건 그림을 실체화시키던 바로 그 헌터.
꽁무니를 빼며 도망가던 헌터의 앞을 가로막은 라이덴은 거대한 뿔로 녀석들 들어 올렸다.
“으악! 끄아아악!!”
사내의 몸을 관통하는 전류.
스턴건마냥 한 방에 헌터를 기절시킨 라이덴은 또각거리며 그 위용을 자랑했다.
라이덴의 걸음걸음마다 내리친 번개는 헌터들의 저항 의지를 꺾어 내고 있었다.
휘익! 휙! 휙!
연속해서 날아드는 작은 쇠 구슬들.
날카로운 손톱을 세운 용주는 그중 하나를 잘라 냈다.
‘뭐지.’
손톱을 타고 전해지는 이질적인 느낌에 용주는 쇠 구슬의 파편을 하나 쥐었다.
잘라 낸 손톱만 한 쇠 구슬은.
놀라울 만큼 무거웠다.
“바위와 낙화의 춤!”
세 번의 공중제비를 돌며 뛰어오른 준호가 검을 내리찍었다.
두 사람의 충돌을 버티지 못한 지면은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벡터 조작…. 아니,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던 건가?’
이준의 능력은 몸으로 직접 당해 봐서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 힘이 이준의 것과는 결이 다른 능력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녀석에게 팔다리가 뽑혔을 때.
녀석의 힘은 분명 엄청났었다.
하지만 그 묵직함은 결코 이런 묵직함이 아니었다.
‘현권의 헌터. 그게 이 녀석의 이명이랬던가? 바보같이 답이 눈앞에 있었는데도.’
이준이 조작했던 건 힘 그 자체.
하지만 지금 이 녀석이 조작하고 있는 건….
‘무게.’
점멸을 사용한 용주가 녀석을 뚫고 나갔다.
저울추를 매단다.
녀석이 무게를 다룬다는 건 녀석의 이명에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었다.
“!”
위험을 직감한 준호는 쥐고 있던 쇠 구슬을 뒤로 던졌다.
F=ma.
힘은 질량과 가속도에 영향을 받는다는 뉴턴의 운동 제2 법칙이었다.
물체의 무게가 커지면 자연스레 힘이 늘어난다.
자그마한 쇠 구슬이 철근도 뚫을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무게를 최대한 늘린 팔이 낼 수 있는 힘은 인간의 근력이 낼 수 있는 힘을 아득히 초월한다.
깃털보다 가볍게 만든 구슬을 이 힘으로 던짐과 동시에, 구슬의 무게를 한계까지 끌어 올린다.
구슬에 실린 가속도는 인간의 반응 속도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