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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264화 (264/357)

264화

‘말만 다르지. 결국 도박이란 거잖아?’

손을 뻗은 용주는 잠시 고민했다.

55%.

확률상으로만 보면 분명 5할이 넘는 수치였다.

위쪽 두 개에 시도하는 게 일반적인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뭔가 누르면 안 될 것 같았다.

틱!

뭔가 나선 안 될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손상도의 첫 번째 보석칸이 갈라졌다.

첫 시도의 결과는 실패.

성공 확률은 65%로 올라가 있었다.

‘하아…. 느낌대로 가길 잘했네.’

어떻게 보면 역배에 건 거였는데, 다행히 결과가 따라와 줬다.

확률과 감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 용주는 4개의 보석을 더 활성화했다.

칼날연마 : ◆◆

룬벼림 : ◇◆

손상도 : ◇

결과는 3승 1패.

성공 확률은 45%였다.

‘이거… 생각보다 더 쫄리잖아.’

감소치가 없이 오로지 성장만 한다고 하면 이렇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칼날연마 : ◆◆◇◆ ◆◇◆◆

룬벼림 : ◇◆◆◆ ◆◇

손상도 : ◇◇◇◆ ◇◆◆

“하아….”

25% 확률에서 연속해서 2번의 성공을 한 용주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위쪽 2개였다면, 상황이 정반대였겠지만, 지금 성공한 확률은 붙어선 안 되는 곳의 수치였다.

‘손상도에 켜진 보석은 벌써 3개. 한 개만 더 들어와도 페널티가 활성화돼.’

불행인지 다행인지 성공률은 25%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25%에서 성공했어도 여전히 확률은 25%였다.

“맨 위에 두 번 해보는 건 어때?”

들려오는 목소리에 용주가 고개를 돌렸다.

곤히 자고 있던 수지가 그새 일어나 있었다.

“벌써 일어난 거냐?”

“응. 잠든 줄도 몰랐어. 그보다 위에 두 번 어때?”

“너 이게 뭔진 알고 하는 소리냐?”

“으응. 잘은 몰라.”

“…맨 위라고?”

“응.”

확률은 여전히 25%였다.

이미 발등을 찍히긴 했지만, 가장 아래를 찍는 게 정배일 것이다.

수지에게 어떤 근거가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아니, 애초에 확률이 저기 적혀 있는지는 아는지조차 의문이었다.

하지만.

칼날연마 : ◆◆◇◆ ◆◇◆◆ ◆◆

25%의 확률은 보란 듯이 두 번 연속으로 붙어 버렸다.

만약 확률대로 걸었었다면, 페널티가 활성화됐을 것이다.

“확률 싸움 같은 거 좀 자신 있냐?”

“음. 글쎄. 남들 하는 만큼은 할 것 같은데.”

“…그래?”

몸을 돌린 용주는 화면이 수지의 정방향으로 오게 했다.

“첫 번째 줄은 끝났고, 두 번째 세 번째 것만 마저 완성하면 된다. 가장 이상적인 건 두 번째 줄은 8개 이상, 세 번째 줄은 3개 이하로 만드는 거다.”

용주가 두 줄을 차례차례 짚었다.

확률에 대한 언급은 일부러 하지 않았다.

“내가 해도 돼? 잘 안되면?”

“그럼 그럴 운명이었던 거지. 괜찮아.”

고개를 끄덕인 수지는 보석들을 하나씩 누르기 시작했다.

큰 망설임 없이 쭉쭉 이어진 새김의 결과는….

룬벼림 : ◇◆◆◆ ◆◇◆◇ ◆◆

손상도 : ◇◇◇◆ ◇◆◆◇ ◇◇

“룬 벼림…. 8칸 못 채워 버렸네.”

마지막 새김을 끝낸 수지가 아쉬움을 표했다.

새김의 최종 결과는 8, 7, 3.

굉장하다면 굉장하고, 아쉽다면 조금 아쉬울 수도 있는 결과물이었다.

룬 벼림의 8칸은 끝내 채우지 못했으니 말이다.

“아니. 충분해. 고생했다.”

새김을 끝낸 용주는 룬검을 회수했다.

외형은 전과 크게 차이가 없어 보였다.

장비창을 연 용주는 룬검의 상태를 확인했다.

-공격력 : 200

우선 눈에 띄는 변경점은 공격력.

8단계가 모두 들어온 덕분인지 전과 비교했을 때 2배의 수치가 올라 있었다.

‘다른 건….’

또 다른 변경점은 ‘혹한의 룬’ 그리고 ‘굶주린 룬’의 항목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 혹한의 룬

-굶주린 룬검 : 룬검이 입힌 피해 중 일부를 소울로 흡수합니다.

▷ 굶주린 룬

▶ 왕의 통치

-얼음과 뼈로 이루어진 망자의 군대를 불러일으킵니다.

-군대의 종류와 위력은 사용한 소울에 비례해 증가합니다.

▶ 보좌관의 현신

-왕의 보좌관을 현신시킵니다.

-지속 시간과 생명력은 사용한 소울에 비례해 증가합니다.

‘그렇단 말이지?’

새롭게 생긴 능력들을 확인한 용주는 룬검을 집어넣었다.

복도를 지나는 바퀴 소리는 일이 진행되고 있단 걸 말해 주고 있었다.

* * *

“자, 이걸로 됐습니다.”

힘을 합친 노엘이 등대의 불을 밝혔다.

▶ 등대의 빛이 돌아왔습니다.

▶ 퀘스트를 클리어했습니다.

▶ 대항력이 10 상승했습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1,000골드를 획득했습니다.

▷ ‘오우거의 과일주’를 획득했습니다.

-복용 즉시 깊은 잠을 유도합니다.

-수면 시 지속적으로 HP를 회복할 수 있지만, ‘취약’ 상태가 됩니다.

-‘취약’ 상태에서 받는 공격은 2배의 대미지를 입힙니다.

▷ ‘은막의 거울벽’을 획득했습니다.

-주변 풍경과 동화되는 거울벽을 설치합니다.

-거울 바깥쪽에선 안쪽을 볼 수 없지만, 안쪽에선 바깥쪽을 볼 수 있습니다.

▷ ‘랫맨의 털옷’을 획득했습니다.

-착용 시 자신의 기척을 완전히 지울 수 있습니다.

-손상도가 100이 되면 털옷은 소멸합니다.

-현재 손상도 : 70

▷ ‘고양이에게 맡긴 생선’을 획득했습니다.

-누군가 이미 다 먹어 뼈만 남은 생선입니다. (놀랍게도 살아 있습니다.)

-뼈에 잔류한 원한은 주변 적의 공격을 강제합니다.

등대에 불이 들어오자, 클리어 메시지가 나타났다.

“이렇게 하면 끝난 거야?”

“그래.”

수지의 물음에 용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뭔가 하나 빠졌단 생각이 들었다.

항상 보이던 다음 퀘스트의 지도.

그게 획득 목록에 들어 있지 않았다.

‘어째서 지도가….’

▶ 히든 퀘스트 : ‘황혼의 바다’를 클리어했습니다.

▶ 대항력이 5 상승했습니다.

▷ 모든 능력치가 영구적으로 30 상승했습니다.

▷ ‘영원의 계약’을 맺을 수 있습니다.

: 계약을 맺은 두 사람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의문을 품던 용주의 앞에 또 다른 메시지가 나타났다.

▷ 히든 게이트에 입장할 수 있습니다.

-히든 게이트는 다차원의 공간이 얽힌 약육강식의 세계입니다.

-다차원의 포식자들은 자신의 굶주림을 채우기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히든 게이트의 24시간은 현실에서의 1시간으로 계산됩니다.

-한 무리의 승자가 결정되면, 다음 무리와 조우하기까지의 시간이 주어집니다.

-불안정한 게이트의 모습은 언제 어디서든 변화할 수 있습니다.

-계승자의 자격이 있는 자만 입장할 수 있습니다.

이윽고 이어지는 메시지.

용주에게 바짝 붙은 수지는 손으로 글자를 따라갔다.

“뭔가 밀린 문자가 한꺼번에 오는 것 같아. 원래 이렇게 한꺼번에 많이 나오는 거야?”

“뭐,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

용주는 다시 한번 문장들에 집중했다.

히든 게이트.

여기서 중요한 핵심은 이 두 부분이었다.

히든 게이트에 다차원의 포식자들이 있다는 건.

아까 싸웠던 크레아탄이나 돌발 퀘스트 등에서 만났던 네임드 몬스터들 같은 게 여럿 있다는 소리일 것이다.

그리고 그건 집중적으로 레벨과 대항력을 끌어 올릴 수 있는 기회라는 뜻이었다.

그만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24시간이 현실에서의 1시간…. 완전히 시간이 멈춰 있던 게이트의 흐름과는 조금 다르단 이야긴가.

“있잖아.”

수지가 생각에 잠긴 용주의 소매를 당겼다.

“히든 게이트라는 건 계승자만 갈 수 있다는데, 나도 갈 수 있는 거야?”

“아니. 넌 못 갈 거다.”

“음…. 그래? 너는 갈 수 있는 거고?”

“그래.”

“갈 생각인 거지?”

용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너한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멈춰 있어야 할 시간에 끌고 들어온 것도 모자라, 알지도 못하는 곳에 끌어들이고, 이젠 혼자 내버려 두겠다고 하고 있는 거니…. 퀘스트는 완료했으니 먼저 게이트 밖에 나가 있어라. 난 일을 끝내고….”

“응. 그렇구나.”

용주의 말을 가로챈 수지가 용주의 입술에 손을 올렸다.

“그럼~ 여기 적힌 영원의 계약이란 건 해본 적 있어?”

손을 뗀 수지가 물었다.

“아니.”

“그럼 아직 아무랑도 안 해 본 거네?”

“그렇다만.”

“응. 그럼 나랑 하자.”

“뭐?”

“나랑 하자고. 왜? 안 돼?”

“아니, 뭐 안 될 건 없다만, 왜….”

“이거면, 서로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는 거잖아. 떨어져 있어도. 몇 날 며칠 소식도 모르는 것보단 그래도 좋을 것 같아서.”

“…….”

잠시 망설이던 용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어떻게 하면 돼? 여긴 그런 거 안 적혀 있는 것 같은데.”

“영원의 계약은 대대로 전해지는 오랜 전통이랍니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노엘이 목소리를 냈다.

좀 더 정확히는 령 상태인 엘이 한 말이었다.

“섬의 반대편에 가시면, 새하얀 유채꽃이 피어 있는 들판이 나올 거랍니다. 두 분의 마음이 같다면, 길이 보일 겁니다.”

수지와 마주 선 엘이 그녀의 두 손을 꼭 감싸 주었다.

* * *

“예쁘다.”

절벽 위에 펼쳐져 있는 유채꽃밭.

허리까지 오는 꽃들은 바람을 따라 넘실거렸다.

“근데 길은 아직 안 보이는 것 같네. 그치?”

수지가 물었다.

용주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길이란 건 아마 무슨 추상적인 표현이었을 거다.”

“음~ 그래? 그럼 넌 지금 뭘 찾고 있는 건데? 추상적인 표현이 뭐였는지 알 것 같아?”

“아직.”

여기 오면 뭔가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특정한 조형물이라든가.

어떤 메시지라든가 하는 거 말이다.

하지만 그런 게 보이지 않았다.

분명 뭔가가 있을 텐데….

“음, 그럼 내 장단에 한번 어울려 줄래?”

“뭐 생각해 둔 거라도 있는 거냐?”

“응.”

고개를 끄덕인 수지가 이리 오라고 손짓했다.

걸음을 옮긴 용주는 그녀와 나란히 섰다.

“손.”

“뭐?”

“손. 잡아 달라고.”

“…….”

당혹스러움을 삼킨 용주는 손가락 끝을 살짝 잡았다.

용주를 빤히 바라본 수지는 그런 용주의 손을 확 붙잡았다.

“내가 신호하면 같이 걷는 거야. 알았지?”

“그래, 뭐….”

수지의 발걸음에 맞춘 용주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자.

“!”

하얀 유채꽃밭 사이로 새하얀 길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길의 끝에는 새하얀 비석 하나가 세워진 작은 정원이 있었다.

“길. 열린 것 같네. 그치?”

“…그래. 그런가 보네.”

용주의 입장에선 솔직히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그 길이 정말 이런 길을 말한 것일 줄이야.

“가자.”

유채꽃밭을 가로지른 두 사람은 새하얀 조약돌들이 장식된 정원에 들어섰다.

“뭔가 적혀 있는 것 같은데.”

“서약에 필요한 문구인 모양인데.”

“음~ 읽어 줄 수 있어?”

“그래.”

-우리 여기 이곳에서 영원의 계약을 하려 합니다.

죽음이 우릴 갈라놓는 순간까지 이 사람만을 사랑….

거기까지 읽은 용주의 목소리가 부자연스럽게 끊어졌다.

여기 적혀 있는 문장….

아무리 봐도 이건 계약이 아니라 서약이지 않은가.

그것도 결혼식장에서나 할 법한.

“응? 왜? 뭐 이상한 말이라도 적혀 있어?”

“…그래. 이상하다면 충분히 이상한 말 같다만.”

용주는 그 뒤로 이어진 내용을 마저 읽어 주었다.

사랑의 서약.

누가 봐도 그런 글임에도 수지의 표정 변화는 전혀 없었다.

“역시 그만두는 게 좋지 않겠냐? 이거….”

“사랑의 서약 같다고?”

“그래.”

“음~ 난 상관없는데.”

“뭐?”

“난 상관없다고. 어차피 너랑 나만 알고 있는 거잖아. 넌 어때?”

“…….”

용주의 머릿속에 순간 서윤의 얼굴이 스쳤다.

좋아한다고 말하던 그때의 목소리가 송곳처럼 마음을 찌르고 있었다.

“음. 그렇구나.”

용주의 얼굴을 살피던 수지가 뒤돌아섰다.

“돌아가자. 아까 그 이야기는 없었던 걸로. 우리 둘 다 이런 거인 줄은 몰랐으니까.”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인 수지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때.

거친 손길이 수지를 잡아끌었다.

“아니. 약속은 약속이지. 하자. 까짓것 하면 되잖아.”

“그래도 되겠어?”

“그래. 내가 한 말이니. 내가 책임져야지.”

싱긋 웃어 보인 수지가 용주와 나란히 섰다.

“어디 적어라도 줄까?”

“으응. 아니, 다 외웠어.”

“거, 대단한 재주네.”

크게 심호흡을 한 용주는 수지와 호흡을 맞추었다.

▶ 영원의 계약이 성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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