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화
룬검을 뽑아 든 용주는 해일이 충분히 가까워지기를 기다렸다.
파도가 만들어 낸 진동이 파도보다 먼저 절벽을 흔들고 있었다.
두 손으로 룬검을 움켜쥔 용주는 있는 힘껏 검을 박아 넣었다.
그와 동시에 날아오른 왕의 보좌관은 힘찬 날갯짓으로 파도를 갈랐다.
짙은 한기에 바다는 얼어붙기 시작했고, 산을 이루던 해일 역시도 등대를 덮치는 모양으로 얼어붙었다.
첫 번째 해일 뒤론 곧바로 두 번째 해일이 따라붙었다.
첫 번째 것에 비교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을 엄청난 크기와 위력이었다.
소리 없이 울부짖은 보좌관은 얼어붙은 파도에 부딪혔다.
산산조각 흩어지는 얼음 결정은 마치 한 폭의 그림.
파도의 중심에서 솟구쳐 오른 보좌관은 엄청난 속도로 두 번째 파도와 부딪쳤다.
얼어붙은 바다와 얼어붙은 해일.
등대 주변을 초토화한 해일은 등대에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
그때.
콰아아앙!!
하얀 바다를 깨부수며 무언가 솟구쳤다.
얼음 위로 모습을 드러낸 8개의 다리.
보좌관과 사투를 벌이던 다리는 이내 목표를 잃고 흐느적거렸다.
수면 아래로 사라진 다리와 함께 순간 찾아온 정적.
정적을 깨고 솟아오른 거대한 물기둥 사이론 강렬하게 번뜩이는 눈이 보였다.
“감히 누가 살아 있는 파도에 덤비느냐?”
모습을 드러낸 크레아탄이 분노를 표했다.
물살 속에서 까딱이는 네 개의 머리 집게는 멀리서 봐도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부하들 뒤에 숨어서 깨작거리더니. 이제야 움직일 생각이 든 거냐?”
“부하? 크흐흐흣! 아니, 그것들은 단순한 도구일 뿐이었다. 감히 이 몸을 부리려고 한 미천하고 미련한 짐승들일 뿐이지.”
“그렇게 말하는 것치곤, 꽤나 한심한 모양새인데. 직접 등대를 파괴하려다 한 번 실패하고는 부하들을 통해 처리하려 했으니 말이야. 게다가 고작 이런 등대 하나 때문에 여기 묶여 있는 상태라니.”
용주가 의도적으로 피식 웃어 보였다.
용주의 가벼운 도발에 발끈한 크레아탄은 거친 파도를 일으켰다.
“너랑 비슷했던 녀석을 하나 알고 있다. 그 녀석도 너처럼 봉인되어 있던 상태였지. 문어 다리 같은 촉수가 달린 것도 비슷하고 말이야. 그 녀석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
얼어붙은 파도에 발을 올린 용주가 바다로 미끄러졌다.
얼어붙은 바다에 선 용주.
해답 대신 날아오른 날벌레 무리는 크레아탄에게로 날아들었다.
“그 벌레들은….”
의문을 표한 크레아탄이 작렬하는 물줄기를 토해 냈다.
벌레들은 일격에 전멸했지만, 크레아탄의 표정은 영 좋지 못했다.
왜냐면 그건.
자신을 불러냈던 무리의 리더가 사용하던 것과 같은 것이었으니까.
“흡수했다고? 말도 안 돼. 그렇지만….”
얼음을 깨며 솟구친 다리들이 용주를 공격하며 나섰다.
문어 다리에 상처를 남긴 용주는 붉은 역병을 흩뿌렸다.
상처를 비집고 자라난 몽우리는 또 다른 포자를 토해 내려 하고 있었다.
‘이것도 그놈이 쓰던….’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머리는 말하고 있었지만, 상황은 그게 맞는다고 말하고 있었다.
랫맨도 오우거도 아닌 저 녀석은 두목이라 불리던 그 녀석의 능력을 흡수한 게 분명했다.
“이 몸을 흡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자만이고, 착각이다. 짐승.”
모든 다리를 회수한 크레아탄이 물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원을 그리며 회전하기 시작하는 크레아탄.
그의 움직임에 따라 소용돌이가 일었고, 얼어붙은 바다가 소용돌이 쪽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넓게 퍼져 있던 얼음들이 한데 뭉치며 서로 부딪치고, 부서졌다.
등대는 점점 더 멀어졌고, 용주는 얼음과 함께 점점 더 먼 바다로 끌려가고 있었다.
‘일단 주의를 끄는 덴 성공한 모양인데.’
조금 전 도발은 다분히 의도된 행동이었다.
타깃을 이쪽으로 확실히 돌려놔야 녀석이 등대에 눈을 돌리지 않을 테니 말이다.
‘룬검으로 바다를 얼리는 데엔 한계가 있어. 그럼 결국 수중전을 해야 한단 건가?’
수중전이라면 짧게나마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
그리드가 불러낸 아귀와의 전투에서였다.
‘어디 한번 해보자고.’
붉은 기포가 피어오른 용주의 모습이 빠르게 변화했다.
소용돌이 속으로 몸을 던지는 용주.
호흡을 멈춘 용주의 눈에 밑바닥에서 회전하는 크레아탄의 모습이 보였다.
‘이 기류 속을 헤치려면 뭔가가 더 필요할 것 같은데.’
용주는 크레아탄의 생김새에 집중했다.
녀석이 가진 여러 개의 지느러미.
자신에게도 저런 게 있다면, 물속에서 조금 더 유연하게 행동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 뼈대의 모티브는….’
순간, 모사사우루스의 모습이 떠올랐다.
엄청난 크기와 힘으로 바다를 지배했던 녀석을 모티브로 삼는다면, 분명 보다 완성도 있는 형태의 변이가 가능할 것 같았다.
팔과 다리를 덮던 갑피를 변이시킨 용주는 서서히 그리고 계속해서 모습을 조정해 나갔다.
육지 동물의 형태를 잃어버린 갑피는 물속을 헤엄치기에 적합한 형태로 조금씩 변해 갔고, 몇 번의 재조정 끝에 안정적인 형태를 잡을 수 있었다.
용주가 최종 선택한 변이의 모습은 수장룡의 형태에 익룡의 특징을 더한 모습.
날개와 동시에 팔과 손, 손톱의 형태를 갖춘 익룡처럼 언제든 팔과 손을 사용할 수 있는 복합적인 모습이었다.
두 발로 힘껏 물을 가른 용주가 폭발적인 속도로 강하했다.
빠르게 좁혀지는 둘 사이의 거리.
소용돌이의 밑바닥까지 내려간 용주는 크레아탄의 아가미를 물어뜯었다.
“크아아앙!!”
고통에 울부짖는 크레아탄.
살점과 함께 습격자를 떼어낸 크레아탄은 빙글 돌아 자세를 바로잡았다.
“너… 정말 아까 그 짐승 녀석이냐?”
고통을 삼킨 크레아탄이 거리를 좁혀 왔다.
날카롭게 휘젓는 네 개의 턱.
턱과 턱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용주는 날카롭게 변이시킨 꼬리로 녀석의 몸을 그었다.
“감히 살아 있는 바다와 바다에서 겨루려고 하다니. 무지하기에 가상하고, 가상하기에 가련하구나. 넌 여기 발을 들여선 안 됐어.”
여덟 개의 다리를 펼친 크레아탄이 사방에서 용주를 조여 왔다.
제자리에 멈춰 선 용주는 꼬리를 깨물었다.
꼬리는 칼날처럼 변이되어 있었다.
휘익!
때를 기다리던 용주가 날카롭게 물살을 갈랐다.
대회전 베기에 직격당한 다리 하나는 완전 절단.
주변에 있던 두 개의 다리는 반쯤 잘려 너덜거렸다.
‘물의 저항이 생각보다 큰데.’
만족할 만한 위력을 내지 못한 용주는 잘려 나간 다리를 타고 포위망을 빠져나갔다.
“날 너무 물로 봤구나. 하등한 짐승 주제에.”
위협적인 각도로 뻗는 두 개의 다리.
재빠르게 반응한 용주는 두 다리를 흘려보냈지만, 공격은 시작에 불과했다.
물살을 가르는 추가 공격은 점점 더 거칠어졌고, 피할 수 있는 각도와 틈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후욱!
아래에서 위로 쳐 올린 두 개의 다리.
끈적이는 빨판에 휩쓸린 용주는 그대로 수면 위로 내던져졌다.
잔류한 빙산 위로 떨어진 용주는 빙산을 깨부수며 다시 바다에 잠겼다.
그리고.
뭔가 이질적인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저건….’
녀석의 다리에 뭔가 있었다.
투명한 방울처럼 보이는 무언가는 자신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비슷한 게 아니라 똑같은 건가?’
디테일한 부분은 상당히 뭉텅하게 처리되어 있었다.
눈코입같이 세부적인 부분은 전혀 조형되어 있지 않고 말이다.
하지만 저 생김새는 영락없는 현재 자신의 모습이었다.
“너의 영혼은 어떤 맛인지. 이 몸이 친히 평가해 주지.”
방울을 입가로 가져간 크레아탄이 네 개의 턱으로 거품의 사지를 찢었다.
절단된 방울을 씹는 크레아탄의 다리는 빠른 속도로 재생되었다.
‘큭…!’
순간 전신을 강타하는 강렬한 통증에 용주는 이를 악물었다.
마치 녀석의 턱에 갈기갈기 찢긴 것 같은 끔찍한 고통이었다.
이어지는 통증 역시도 만만치 않았다.
날카로운 이빨에 잘근잘근 씹히는 통증에 HP가 뭉텅이로 깎여 나갔고, 역류한 피가 용주의 이빨 사이로 흘러내렸다.
‘젠장. 방금 그건….’
공격과 동시에 재생이 이뤄졌다.
게다가 이쪽에 들어온 대미지도 상당했다.
녀석이 뽑아간 방울 모양의 자신.
저건 반드시 주의해야 했다.
“음, 상당히 역겨운 맛이군. 꼭 썩은 시체를 뜯어먹는 맛이야. 이 몸이 먹어 본 것 중에 가장 형편없는 맛이라고 감히 평가해 주지.”
크레아탄의 도발을 무시한 용주는 페이탈 붐을 준비했다.
모여드는 입자에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크레아탄은 마찬가지로 물줄기를 결집시켰다.
“바다의 압도적인 힘을 느끼며 절망해라.”
동시에 발사되는 구체와 물줄기.
평행선을 달리는 두 힘은 서로 밀어내고, 밀려나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입만 산 녀석은 아닌 모양이군.’
블러드러스트를 사용한 용주의 모습이 한층 더 날카롭게 변했다.
더욱 강력한 한 발을 장전한 용주는 응축된 구체를 입안에 머금었다.
각도를 틀어 돌진하는 용주.
페이탈 붐과의 줄다리기를 그만둔 크레아탄은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페이탈 붐을 흘려보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까이.’
녀석이 쏘아대는 물줄기를 빙글 돈 용주는 빠르게 거리를 좁혀 나갔다.
‘지금!’
머리를 향해 휘는 여덟 개의 다리.
왼손을 움켜쥔 용주는 점멸로 중앙을 관통했다.
“!”
순간, 시야에서 사라진 용주의 모습에 당황하는 크레아탄.
녀석의 머리 아래에서 나타난 용주는 머금고 있던 페이탈 붐을 쏘아 올렸다.
크레아탄은 반응할 수 있는 최대 속도로 반응했지만….
폭발에 직격당하는 걸 막을 순 없었다.
폭발의 여파로 생겨난 거대한 물기둥이 해수면 위로 솟구쳐 올랐고, 크레아탄은 아래턱을 포함한 머리의 약 40%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그만한 치명상을 입고도 녀석은 멈추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360도 회전한 크레아탄은 남아 있는 위턱으로 용주를 찍어 눌렀고, 바다 밑바닥을 도마 삼아 두 동강 내려 했다.
‘디파일러.’
충돌 직전.
남아 있던 HP의 약 절반을 지불한 용주는 새롭게 얻은 스킬을 발동했다.
용주에게서 피어난 역병 포자들은 물속에서도 고개를 들었고, 이윽고 붉은 핏빛으로 바다를 물들였다.
“카악!”
남아 있던 위턱에도 심대한 타격을 입은 크레아탄이 고통에 몸서리쳤다.
그리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용주의 입이 거의 180도에 가까운 각도로 찢어지며 벌어졌다.
포식.
기괴하며 치명적인 일격은 녀석의 피와 살을 맛보았고, 끔찍한 상처가 누적된 크레아탄의 하얀 두 눈은 회색으로 굳어졌다.
축 늘어진 크레아탄의 몸은 뒤집힌 채 해수면 위로 떠 올랐다.
▶ ‘살아있는 바다 : 크레아탄’을 쓰러뜨렸습니다.
▶ 대항력이 10 상승했습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750골드를 획득했습니다.
▷‘천해의 심장’을 획득했습니다.
-소지자의 MP 최대치와 MP 회복 속도를 영구적으로 향상시킵니다.
▷‘심해의 입’을 획득했습니다.
-공간을 뒤틀어 깊은 심해 지대를 전개합니다.
-시전자는 수압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크레아탄의 눈’을 획득했습니다.
-무기에 사용 시 무기의 공격력과 예리도, 강도를 크게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확률적으로 아이템의 교유 효과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확률적으로 무기의 성능이 저하될 수 있습니다.
▶ 새로운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 살아있는 바다.
▷MP 소모량 : 10
- 접착력이 뛰어난 촉수를 만들어 냅니다.
▶ 소울 터치
▷MP 소모량 : 20
-‘살아있는 바다’가 발동 중인 경우 발동할 수 있습니다.
-촉수에 닿은 적을 본뜬 물방울을 만들어 냅니다.
-해당 물방울이 피해를 입으면, 상대에게 큰 피해를 입힙니다.
-입힌 피해량에 비례해 HP를 회복합니다.
▶ 선혈의 파도.
▷ HP 소모량 : 20
-대량의 피를 방사해 거대한 해일을 일으킵니다.
▶ 피의 메아리.
▷ MP 소모량 : 0
-자신이 입히는 피해와 입는 피해에 비례해 위력을 축적합니다.
-두 번째 발동 시 칼날과 같은 네 개의 턱을 만들어 공격할 수 있습니다.
-축적된 피해에 비례해 피해량이 증가합니다.
-사용 시 ‘핏빛 중독’ 상태가 됩니다.
-‘핏빛 중독’ 상태가 해제되기 전까진 해당 스킬을 다시 사용할 수 없습니다.
크레아탄의 사망과 동시에 나타나는 대량의 메시지들.
끓어오르는 갈증과 충동을 전력으로 억누른 용주는 광폭화 상태에서 벗어났다.
등대를 파괴하려던 장본인이 사라졌으니, 이제 남은 건 등대를 밝히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