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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좀비헌터-261화 (261/357)

261화

‘전에 싸웠던 그 녀석들이랑은 확실히 다르군.’

공중에서 내려찍는 두목의 일격.

오른쪽으로 치고 들어간 용주는 두목의 허벅지살을 깊게 도려냈다.

상처에서 튄 피에선 민들레 홀씨 같은 무언가가 멍울멍울 피어올랐다.

‘저건 뭐지?’

의문을 품을 새도 없이 두목의 해머가 머리카락을 스쳤다.

왼손으로 땅을 짚은 용주는 가벼운 백플립으로 거리를 벌렸다.

회전을 시작한 두목은 점점 더 속도를 높여 가고 있었다.

원심력이 더해진 해머에선 바람을 찢는 소리가 났다.

‘저 상태로 움직이는 거냐?’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두목은 맹렬하게 거리를 좁혀 왔다.

저 속도로 회전하면서 저렇게 움직일 수 있다니.

대단한 균형 감각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딱 그 정도라면….’

거리를 좁힌 용주가 미끄러졌다.

다리를 낚아채는 용주.

회전축이 꺾인 거구의 두목은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용주는 곧장 공격을 이어 가려 했다.

그때.

“진균 번식!”

가슴과 허벅지 부근에서 무언가가 급격하게 팽창했다.

‘뭐야, 이건?’

부풀어 오른 모습이 꼭 목화솜이 터진 것 같았다.

‘곰팡이?’

움직임은 물론이고, 시야까지 방해하려 드는 곰팡이의 팽창.

손톱을 세운 용주는 곰팡이를 떼어내려 했지만, 잘려 나간 곰팡이는 금세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뿌리가 남은 한여름 잡초가 자라나는 것 이상이었다.

‘귀찮게 나와 주는군.’

룬검을 뽑아 든 용주는 룬 문자를 밝혔다.

용주를 감싸기 시작한 차디찬 한기.

서리 갑옷의 냉기 속에 힘을 잃은 곰팡이들은 이내 떨어져 나갔다.

“로커스트 스웜(Locust Swarm).”

두목의 외침에 날벌레들이 날아올랐다.

털 속에 살고 있었다기엔 제법 많은 숫자였다.

‘파리? 아니, 모기인가?’

달려들던 날벌레들이 서리 갑옷에 부서졌다.

한 차례 공격에 실패한 날벌레들은 다시 두목에게 날아갔다.

그리고.

녀석의 피를 빨기 시작했다.

‘뭔가 온다.’

까맣게 배를 불린 날벌레들이 다시금 날아올랐다.

거리를 둔 채 맴도는 날벌레들.

경계의 눈빛을 보내는 용주의 시야에 검붉은 핏줄기가 날아들었다.

거슬리는 날갯소리를 내며 날아다니던 날벌레들은 자신이 머금었던 피를 총알처럼 쏘아대고 있었다.

‘소환물의 일종인 건가. 그럼….’

어둠 사이를 비집고 새하얀 안개가 흘렀다.

날벌레들에게서 흘러나온 기류는 용주에게 흘러 들어갔고, 이내 생명력을 모두 소진한 벌레들이 하나둘 땅으로 추락했다.

거리를 좁힌 용주는 공격을 이어 갔다.

계속되는 공방 속에 두목의 털이 하얗게 물들어 갔고, 약간의 둔해짐이 곧 허점으로 이어졌다.

“이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용주의 칼날이 옆구리를 베어 낸 그때.

용주의 다리를 휘어 감은 꼬리가 용주의 무게중심을 무너뜨렸다.

“플레이그!”

그와 동시에 흩뿌려진 붉은 역병.

얼어붙어 사라진 이전 포자들과 달리 이번 녀석은 결정이 된 채 용주의 몸에 박혔다.

▶ 부식성 포자에 감염되었습니다.

눈앞에 나타난 경고창과 함께 HP가 깎여 나갔다.

피를 머금은 포자는 싹을 틔웠고, 줄기를 타고 자란 몽우리가 금세 피어올랐다.

‘내 피를 먹고 자라는 건가? 그렇다면….’

상처를 찢고, 포자를 뜯어내는 것.

1차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해결책은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효과적인 생각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자신의 피에 독을 푸는 것.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맹독 스킬을 사용하면, 그게 가능했다.

용주의 피에 독성이 돌자, 싹은 빠르게 시들었다.

“아니!”

점멸을 사용한 용주는 놀란 두목의 뒤를 잡았다.

깊숙이 박아 넣은 룬검.

무게를 실은 용주는 그대로 보스를 찍어 눌렀다.

‘아웃레이지 스내치.’

쓰러진 두목의 뒷목을 붙잡은 용주는 다시 한번 보스를 내쳤다.

쓰러진 보스에게서 흐른 피는 일대를 적셨고, 포자의 정원이 일대를 가득 메웠다.

“쿨럭…. 강하군.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이런 걸 만든 게 우연은 아니었던 모양이야.”

피를 토해 낸 보스가 자신의 불꽃에 손을 집어넣었다.

역병에 달라붙은 불길은 활활 타올랐고, 활짝 핀 봉우리가 포자들을 토해 냈다.

“하지만 나라고 숨겨둔 패가 없는 건 아니다.”

두목의 전신이 순식간에 역병에 뒤덮였다.

붉은 점액을 뒤집어쓴 두목의 몸 곳곳에선 몽우리가 올라왔다.

“탈출할 곳은 없다. 내 피와 진균에 범벅이 되어 죽는 거다. 디파일러(Defiler).”

피를 먹고 피어오른 몽우리가 이내 개화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일어나는 진균 폭발.

화염 대신 흩뿌려진 피는 일대를 붉게 물들여 놓았다.

포자의 정원을 온통 집어삼킨 폭발은 서서히 잦아들었다.

“두… 두목?!”

안개와 포자가 낮게 기는 어둠 속.

급하게 발걸음을 옮긴 랫맨들이 자리에 굳어졌다.

뭔가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질척질척.

우적우적.

말로 표현하기도 참 기괴한 소리였다.

“두목?”

마른침을 삼킨 랫맨들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으… 으아악!!”

그리고 그들의 눈에 들어온 건.

가히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머… 먹고 있어.”

“저 녀석, 대체 뭘 먹고 있는 거냐?”

“고기 같은데.”

용주가 털이 그대로 붙은 고깃덩이를 뜯어 먹고 있었다.

붉은 점액에 덮인 고깃덩이는 큼직한 걸로만 주변에 몇 개 더 있었는데,

그중 하나엔 불 꺼진 양초가 박혀 있었다.

“두목은? 두목은?!”

“안 보인다. 분명 같이 있었는데.”

“저 녀석이 먹고 있는 거 설마….”

공포심에 사로잡힌 랫맨들이 털썩 주저앉았다.

게 중 몇 명은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용주가 뜯어 먹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자신들의 두목이었다.

▶새로운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플레이그

▷MP 소모량 : 15

▷역병에 물든 부식성 포자를 생성합니다.

-포자는 기생체의 피를 흡수해 반복적으로 포자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로커스트 스웜

▷MP 소모량 : 20

▷ 피를 주식으로 삼는 착취의 무리를 소환합니다.

-착취의 무리는 흡수한 피를 분사해 추가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습니다.

▶디파일러

▷ HP 소모량 : 1~100

▷ 자신의 피로 키운 역병 포자로 포자 폭발을 일으킵니다.

-피해량은 지불한 HP에 비례해 증가합니다.

-시전 시 시전자를 주변으로 포자 구역이 형성됩니다. 해당 구역을 벗어나기 위해선 포자를 우선적으로 제거해야 합니다.

-포자 구역 내엔 산소 입자와 결합된 포자의 잔해가 일정 시간 잔류합니다.

-포자의 잔해는 흡수를 통해 추가적인 피해를 야기합니다.

‘자폭하다니.’

역병과 포자에 범벅이 된, 끈적거리는 살점.

따뜻하면서 섬뜩한 그 날고기를 삼킨 용주의 상처가 빠르게 회복되어 갔다.

두목이라 불리던 랫맨을 이렇게 갈기갈기 찢어놓은 건 용주가 아니었다.

이건 그의 자폭의 결과.

용주는 그저 그의 피와 살을 취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 이게 오히려 전화위복인 건가?’

디파일러.

녀석이 마지막에 외친 이름이었다.

자폭의 대미지는 결코 적지 않았다.

한순간 잃어버린 HP는 거의 50에 육박했고, 코와 목구멍을 타고 극심한 통증이 일었다.

치명적이었던 그 기술은 지금.

자신의 손에 들어와 있었다.

‘플레이그, 로커스트 스웜, 디파일러. 세 가지 스킬 다 녀석이 사용했던 것들이었던 것 같은데.’

한 덩이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운 용주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공포에 질린 랫맨들의 눈이 자신을 향해 있었다.

“꺼져.”

용주의 한마디에 참아 왔던 비명을 터트린 랫맨들이 일제히 달아나기 시작했다.

용주는 굳이 녀석들을 잡지 않았다.

대신 반대편으로 걸음을 옮긴 용주는 골렘의 바위 심장을 조작했다.

랫맨들이 빠져나간 미궁의 문은 스르륵 닫혀 버렸다.

* * *

“말로는 못 끝낸 모양이네.”

등대로 돌아온 용주는 수지와 마주쳤다.

상처는 다 아물어 있었지만, 입과 옷 등에 묻은 핏자국은 전투가 있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래. 아마 다신 얼씬거리지 못할 거다.”

“응. 그랬으면 좋겠네.”

“위쪽 일은 잘 정리된 거냐?”

주제를 돌린 용주가 물었다.

자신들이 구해 왔던 것들이 사실 등명기의 재료가 아니었다는 것.

수지를 통해 들었던 이야기는 제법 믿기 힘든 이야기였었다.

“응. 거의 마무리 단계인 것 같았어. 소리 조율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래? 근데 어떻게 거기까지 이해한 거냐? 너 분명 그 녀석 말 못 알아듣는다고 그랬잖아.”

“꼭 말이 통해야만, 알아들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뭐, 그러냐?”

걸음을 옮긴 용주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장치를 따라 이동한 곳은 정말로 등명기 위쪽에 있던 바로 그 공간이었다.

노엘은 피아노에 앉아 바다를 보고 있었다.

“왜? 뭔가 문제라도 생긴 거냐?”

고개를 돌린 노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용주와 마주한 그는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됐다. 이야기는 다 전해 들었으니. 등명기를 고친다는 결과만 같다면,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자애로움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수리를 마쳤습니다. 피아노엔 이제 문제없습니다.”

“피아노엔 문제가 없다는 건 다른 쪽엔 문제가 있단 건가?”

“등명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뭐가 문제지?”

“피아노… 치실 수가 없는 거죠?”

갑자기 치고 들어온 수지의 물음.

용주는 그녀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아내에게 들려주려던 곡을 연주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칠 수 없단 걸 깨달았습니다.”

피아노 건반에 올린 노엘의 손이 바르르 떨렸다.

“손의 떨림이 멈추지 않습니다. 마음에 치는 파도가 악보를 지워 버립니다. 오직 하나를 위해 만든 이 곡은 전부를 잃어버렸습니다. 들어줄 이 없는 이 곡을 전 연주할 수 없습니다.”

자신을 보는 용주의 시선에 수지는 고개를 저었다.

설명은 필요 없었다.

방금 그 이야기 다 알아들었으니까.

“그럼 이제 등명기를 손볼 차례군요.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노엘이 피아노 건반을 닫았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그는 뭔가 이상을 감지한 듯 급하게 방향을 틀었다.

그를 쫓은 용주와 수지는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물이….”

바닷물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속도가 심상치가 않았다.

어젯밤 그렇게 갑작스럽게 물이 들이찼던 게 이해가 되는 속도였다.

“두 분께선 몸을 피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노엘이 차분히 중얼거렸다.

그의 눈은 여전히 바다를 향해 있었다.

“바닷물이 빠져나가시는 게 보이시지요.”

“그래.”

“지금은 물 때가 아닙니다. 썰물 때가 되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죠.”

“…….”

“딱 한 번 이랬던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바닷물이 빠져나가고 나서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파도가 등대를 강타했지요.”

고개를 돌린 노엘이 피아노를 바라보았다.

워낙 무거운 물건인지라 지금의 상태로 저걸 옮기는 건 불가능했다.

“문어의 다리를 가진 괴물을 근방에서 본 적이 있나?”

바다를 보던 용주가 물었다.

“괴물?”

“그래. 크레아탄이라고 불리는 모양인데, 랫맨들에게 등대를 무너뜨리라고 명령한 장본인인 모양이더군. 어쩌면 이 이상 현상은 녀석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등대의 아래 의식을 행한 장소가 있다.

그 말을 근거로 용주는 등대 아래쪽의 암석층을 살펴보았었다.

실제로 뭔가가 행해진 듯 보이는 공간이 있었다.

직접적으로 통하는 길은 바다 아래에 잠긴 수로뿐인 밀폐된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뭔가를 더 할 수는 없었다.

의식에 사용된 물건 등의 뭔가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건 발견하지 못했다.

“둘은 등대 지하실에 들어가 있어라. 이쪽 일은 내가 해결할 테니.”

“아닙니다. 여긴…!”

대화를 이어 가던 노엘이 갑자기 심장을 움켜쥐었다.

그의 호흡은 극도로 불안정해졌고, 힘이 풀린 다리는 그대로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서둘러 움직인 수지는 그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천천히 안정을 찾아가는 호흡은 당장의 고비를 넘겼다고 말해 주고 있었다.

“안수지. 녀석을 안으로 데려가라. 절대 무리하게 하지 마.”

고개를 끄덕인 수지가 노엘을 부축했다.

그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크레아탄…. 그렇게 쉽게 부술 순 없을 거다. 여기 걸려 있는 건 그 오우거 노부부의 추억만이 아니니까.”

등대에서 뛰어내린 용주는 절벽 끝에 섰다.

밀려갔던 파도가 지평선 쪽에서 거대한 산을 이루는 모습이 보였다.

“온다.”

용주의 중얼거림과 함께 날아오르는 새들.

멀게만 보이던 파도는 엄청난 속도로 가까워졌다.

다가올수록 거대해진 해일은 햇빛을 모두 가릴 정도로 몸집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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