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화
“젠장. 이래서 이런 외길을 준비해 뒀던 건가?”
남은 부대를 정비한 두목이 침을 뱉었다.
‘이런 게 또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겠군.’
“내가 신호하면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매달려라. 살고 싶으면.”
꾸역꾸역 전진한 이들은 외길의 딱 중간 부분을 통과했다.
“두목!”
“엎드려!!”
날 선 랫맨들의 외침이 보스의 달팽이관을 때렸다.
곧장 몸을 숙인 보스는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뭔가 묵직하고 서늘한 바람이 뒤통수 근처를 스쳐 가고 있었다.
“저건 또 뭐야?!”
자리에서 일어난 보스는 재빠르게 앞으로 이동했다.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양날 도끼는 두 외길을 가로로 관통하고 있었다.
“바위로 만든 도끼라고. 저걸 대체 무슨 재주로 고정해 둔 거야?!”
진자 운동을 시작한 도끼는 최고점을 찍고 다시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게다가.
운동을 시작한 도끼는 저거 하나가 아니었다.
이 앞쪽으론 일정 간격마다 저런 게 목숨을 위협하고 있었다.
“두… 두목. 지금이라도 물러날까?”
“헛소리 집어치우고 따라와라.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린 등대를 파괴해야 한다. 물고기 밥이 되기 싫거든 내 말을 들어라.”
“이렇게 된 거 입구 부근에서 굴을 새로 파자, 두목. 우리 전문이잖아.”
“밖으로 나가서 지상으로 이동하는 것도 방법일 것 같다.”
“주둥일 움직일 시간 있으면 몸을 움직여라. 여기까지 온 이상 이렇겐 못 돌아간다. 이렇게는!!”
강행 돌파를 명령한 보스는 잊힌 자 하나를 추가로 더 처치했다.
쉬익!
그 순간.
“크윽!”
어딘가에서 날아온 장도 한 자루가 두목의 어깨를 관통했다.
장도를 뽑아낸 두목은 장도가 날아온 방향을 노려보았다.
진자 운동을 하는 도끼 위에 누군가 있었다.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은 녀석의 머리는 마름모 모양을 하고 있었다.
세 자루의 장도를 추가로 던진 마름모는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피 묻은 장도를 버린 두목은 전방을 주시했다.
뭔가가 또다시 이쪽으로 굴러오고 있었다.
“매달려!”
고문 바퀴를 발견한 보스는 재빨리 명령을 내렸다.
첫 번째 때와 달리 두 번째에는 큰 피해 없이 고문 바퀴를 흘려보낼 수 있었다.
마름모의 공격은 그 후로도 서너 차례 반복되었다.
모든 공격을 받아 내며 전진을 계속한 보스는 마침내 반대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살았다!”
“드디어 도착했어!”
“이제 정말 끝난 거겠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던 그때.
“으아악!!”
무리의 꼬리 부분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보스의 눈엔 믿기 힘든 광경이 들어왔다.
분명 흘려보냈던 고문 바퀴가.
역방향에서 다시 이쪽으로 굴러오고 있었다.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하고 있던 랫맨들은 불의의 습격을 피하지 못했고, 무리 중 일부를 또다시 잃어버리고 말았다.
외길을 무사히 건너온 이들은 처음 출발한 인원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두… 두목!!”
문을 나선 두목은 다른 한 무리와 마주칠 수 있었다.
처음 세모의 습격을 받았을 때 도망갔던 무리였다.
“뭐야? 너희 어떻게 여기에.”
“석상 부쉈더니, 문 열렸다. 우리 달걀 귀신한테 쫓기고 있었다.”
석상을 모두 부수고 나서부턴 동그라미의 습격은 더 이상 없었다.
하지만 출구에서 만난 인원은 상당히 많이 줄어 있었다.
“흐음….”
주먹을 움켜쥔 두목은 가장 먼저 도망쳤던 랫맨의 면상을 후려갈겼다.
“또 한 번 그랬다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명심해.”
계단을 오른 두목은 문을 열었다.
유독 붉은색을 띤 문 안쪽은 광활한 공터였는데, 반대편엔 거대한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나무? 뿌리도 아니고 나무 전체가 땅속에 있다고?”
적어도 이 섬의 지하에선 한 번도 본 적 없는 식물이었다.
나무 몸통엔 일고여덟 개 두개골이 묻혀 있었다.
“뭔가 섬뜩한 나무다.”
“맞다 또 뭔가 일어날 것만 같다.”
3분의 1 지점까지 나아간 두목은 석조로 된 받침대 앞에 섰다.
받침대 위엔 석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서두르지도 뒤처지지도 마라. 빛을 피하고, 두려움을 극복해라. 두목 여기 또 무서운 메시지 있다.”
또다시 나타난 메시지.
반복된 학습이 준 결과는 극도의 공포와 혼란이었다.
마른침을 삼킨 랫맨들은 동그랗게 모여 사주 경계를 하고 있었다.
“두목, 그런데 이게 무슨 뜻이냐?”
“빛을 피하라니. 빛이라고는 여기 우리 불빛뿐인 거 아니냐?”
“…….”
말을 아낀 두목은 천천히 앞으로 이동했다.
저 끝에 들어왔던 입구와 똑같은 나무통들이 보였다.
저기가 진짜 등대의 지하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두목을 따라 천천히 이동하는 랫맨들.
“!”
이상을 감지한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위잉~! 윙윙윙~!!
시동이 걸린 전기톱 소리가 음산하게 메아리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이게 무슨 소리냐?”
“천둥소리?”
“크레아탄의 울음소리 아니냐?!”
놀란 랫맨들이 뒤를 돌아보았다.
“저… 저건!”
“괴물! 또 다른 괴물이다!”
그들의 뒤에 서 있는 건 전기톱을 든 네모.
시동을 건 네모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아… 안 따라온다.”
“못 움직이나 보다. 그 처음 만났던 세모난 녀석처럼.”
“다행이다.”
랫맨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붉은 빛줄기가 그들을 비추었다.
“빛?”
“이건 어디서 나온 거냐?”
“우리 불빛이랑 다르다. 마치 높은 곳에서 이쪽을 비추는 듯한…. 그래! 등대 불빛 같다!”
고개를 든 랫맨들이 빛의 진원지를 추적했다.
빛의 시발점은 나무에 달린 해골들.
두 안구에서 시작된 빛은 일대를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잡담할 시간 있으면 움직여라. 여기만 넘으면 된다.”
두목의 날 선 눈빛에 랫맨들은 걸음을 옮겼다.
그때.
위이이잉~!!
급발진을 한 네모가 랫맨 하나를 반으로 잘라 버렸다.
“으아악!!”
“움직였어! 움직였다고!”
습격은 계속되었다.
랫맨들은 달아나 보기도 했고, 공격을 시도해 보기도 했지만, 결과를 뒤집을 순 없었다.
“으…! 덤벼라!”
“어디 이렇게 된 거 찔러나 보고 죽자!”
죽음을 각오한 랫맨들이 두 다리를 뿌리내렸다.
그와 동시에 사라지는 붉은빛.
내리깔리는 어둠에 네모의 움직임이 멈췄다.
“머… 멈췄다.”
“지금이 기회다!”
어둠을 틈탄 일부 랫맨들이 네모를 공격하고 나섰다.
다시금 불이 들어온 건 그로부터 정확히 10초 뒤.
전기톱에 시동을 건 네모는 근처에 있던 랫맨들을 도륙해 버렸다.
“빛을 피하라는 말은 혹시 그런 건가?”
두 번째 습격이 끝날 무렵 두목은 한 가지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네모가 공격을 가해 오는 건 오직 빛이 있는 순간뿐.
가만히 굳어 있던 녀석들은 공격 대상에서 제외되었었다.
“작전 변경이다. 이제부턴 빛이 있을 땐 움직이지 않는다. 빛이 없을 때만 움직인다.”
두목의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네모는 어둠을 틈타 이동하는 랫맨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좋아. 역시 두목이다.”
“똑똑하다. 똑똑해.”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자신감이 붙은 랫맨들은 파죽지세로 전진해 갔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때.
“뭐냐, 이 빛은?”
“지금 움직일 수 있는 시간 아니었냐?”
무리의 가장 후미로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뒤쪽에서 다가온 빛은 서서히 앞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상하다. 계속 똑같은 시간에 비췄었는데.”
“저 앞은 아직도 어둡다. 빛 우리한테만 있다.”
고개를 든 랫맨들이 꼭대기 머리를 바라보았다.
저 머리는 다른 머리와 달리 빛을 내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저들이 빛을 볼 수 없었던 건 머리가 훨씬 더 뒤쪽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
안광은 꾸준히 이들을 뒤따라오고 있었다.
위잉~!!
날 선 전기톱 소리가 들렸지만, 랫맨들은 크게 긴장하지 않았다.
가만히 있는 한 공격당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꾸엑~!”
그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시동을 건 네모는 다시 한번 랫맨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어째서!”
“우린 한 발자국도 안 움직였는데?!”
공포에 질린 랫맨들이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빛의 경계면을 넘어선 랫맨들은 간신히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뒤처지지 말고, 두려움을 극복해라. 그 문장은 이런 의미였나?”
수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랫맨들은 잊힌 집합체가 있는 곳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네모의 모습은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콰아앙!!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 한숨 돌릴 여유 같은 건 없었다.
바람 없이 흔들리던 나뭇가지는 일순간 지면을 강타했다.
양쪽으로 늘어진 두 개의 가지는 더 이상의 전진이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무 괴물이 공격한다!”
“거짓말쟁이! 이런 이야기는 안 적어 놨잖아!”
“이 녀석 머리 도형 아니다. 쓰러뜨릴 수 있을 거다! 아까 그 해골들처럼!”
무기를 든 랫맨들이 일제히 잊힌 집합체를 공격하고 나섰다.
잊힌 집합체는 거대한 만큼 둔했다.
위치를 이동하지도 못하는 게 딱 샌드백이었다.
나무를 타고 오른 랫맨들이 집합체의 얼굴을 공격했고, 상처에서 흐른 진액이 사방으로 튀었다.
“뭐야? 별것도 아니잖아.”
“괜히 쫄았다. 처음부터 벌목해 버릴 걸 그랬다.”
랫맨들은 승리를 확신했다.
이때까지는.
“가렵다! 나 미칠 것같이 가렵다!”
“앞이 잘 안 보인다!”
“이게 뭐냐? 나 뭐 생겼다! 점점 부풀어 오르는 것 같다!”
공격을 이어 가던 랫맨들이 하나둘 이상 증상을 호소했다.
가려움증, 어지럼증, 시야 감퇴, 피부 발진과 수포.
각종 이상을 호소하던 랫맨들의 머리 위로 잊힌 집합체가 쓰러졌다.
생존자는 보스를 포함한 십여 마리의 랫맨이 전부.
“돌아가라고 했을 때 돌아갔으면, 서로 좋았지 않았겠냐?”
들려오는 목소리에 보스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사라져 가는 잊힌 집합체의 가지 사이에 누군가 있었다.
“이렇게 피 볼 일도 없고. 뭐… 나야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만.”
모습을 드러낸 용주가 죽음의 책을 덮었다.
모든 힘을 소진한 죽음의 책은 입자가 되어 사라져 갔다.
“두목, 저놈이다! 우리 꼬리 자른 거, 저놈이다!”
꼬리를 잘린 랫맨이 놀라 외쳤다.
“네가 이 말도 안 되는 미궁을 만든 장본인이냐?”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두목이 물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무슨 재주로 그 단시간에 이런 걸 만든 거냐? 기껏해야 하루 남짓한 시간밖에 없었을 텐데.”
“말해야 할 의무는 없다만.”
“고작 등대 하나 지키겠다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인 거냐?”
“그런 셈이지.”
이곳을 구축한 건 ‘골렘의 바위 심장’이란 아이템의 도움을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꽤 여러 사건을 경험해 온 용주로서도 제법 신선한 경험이었다.
맨날 당하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설계하는 자리에 앉아 본 거니 말이다.
각 방의 퍼즐 역시도 용주 혼자 구상했다.
죽음의 책과 4색 큐브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초점을 맞췄고, 4색 큐브의 특성을 활용해 코스믹 호러의 공포심을 의도적으로 조성해 놓았다.
역병균체를 지난번에 사용한 게 못내 아쉽단 생각이 들었지만, 어쩌겠는가.
메모리 다이얼을 쓸 정도의 중요도가 아니라면, 그냥 넘어가는 수밖에.
“지금 큰 실수 한 거다. 등대를 파괴하는 게 우리 모두가 살 수 있는 방법이거늘.”
“미안하지만, 거기 내 목숨은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말이야.”
“난 평화적으로 일을 끝내고 싶었다. 목숨을 빼앗거나 할 생각 같은 건 전혀 없었단 말이다!”
“그거야 피차 마찬가지지. 분명 경고했잖아. 돌아가라고.”
날 선 비판에 용주가 응수했다.
“이렇게 된 이상 나도 더 이상 신사적으로 나갈 순 없지. 내 부하들의 목숨값은 확실히 받아 가도록 하겠다.”
머리 위로 거대한 해머를 돌린 두목이 폭발적으로 거리를 좁혀 왔다.
손톱을 세운 용주는 녀석과의 일기토를 준비했다.